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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8. 2022

발검무적의 ‘브런치’, 좋아하시나요?

브런치 1년, 그 365일간의 기록

부러 따지지 않았던 날짜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새로 가게 될 나라의 출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매일같이 어딘가에 정체를 감추고 몰래(?) 글을 쓰고, 그것이 제법 차곡차곡 모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렇게 하루하루 쓰던 날이 벌써 365일을 채운 것이다.


그렇게 오늘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65일째가 되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30여 년 전 내 글의 연재를 담당하던 기자가 이제는 거의 고참 아줌마가 되어 자기 출판사를 차렸다고 하여 차나 한 잔 하러 갔을 때, 아마추어들이 글을 쓰는 플랫폼이 있고, 카카오 다음에서 그것을 장기적인 장삿속으로 운영 중인데 한번 살펴보시면 재미있을 거라고...


그렇게 론칭한 지 제법 되었던 이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1년 전 오늘이었다.


여러 가지 툴이 있었지만 사용법도 모르고 매뉴얼도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그저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되려니 해서 펼친, 종이가 빳빳해 잡고 있지 않으면 다시 금세 덮일 것 같은 새 일기장 같은 곳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현재, 1136편의 글이 발행되었다.(실제로는 30여 편정도 더 되는데 카테고라이징의 문제인지 카운팅이 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자비출판으로 책을 내고 출간 작가라고 하는 아마추어들 틈에서 가볍게 책으로 출간하지 않았거나 출판사로부터 다시 저작권을 거둬온 글들을 정리하며 쓸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출판한 지 20년이나 된, 어설픈 그림솜씨로 그리고 썼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발행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oll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나고 전부터 생각하던 고전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풀어주는 이야기를 쓰려고 일간지에 연재를 준비 중이던 ‘채근담 이야기’를 만지작거리던 차에 연습 삼아 <논어>의 구절을 한번 풀어서 A4 1장이 조금 될까 말까 하는 분량으로 짧게 썼다. 그것이 매일 같은 글쓰기로 본격적인 <논어>를 매일 새벽 한 장씩 풀어주는 연재 시리즈가 될 줄은 몰랐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ongjaw


그리고, 며칠 뒤, 20여 년 전 상담해주던 환자이자 제자였던 녀석에게 주었던 과제를 내가 정리해보겠다고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 것이 <인생에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ail


그렇게 진지하게 연재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논어 읽기>는 <논어>20장의 절반 분량을 넘겼고, <인생에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는 어제부로 226번째 대가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처음 올렸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내가 직접 전자책으로 작업해두었던 8개 국어로 다시 이 공간에 다 차곡히 올려졌다.


https://brunch.co.kr/magazine/doll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콘티로 그려본 웹툰 <라푼젤 이야기>도 슬쩍 그 사이에 공개되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rapunzel


그리고 여름을 맞으며 영화를 염두에 두고 오래전에 집필해두었던 먼지 나는 원고를 털어 납량특집 판타지 소설 <설녀이야기(유키온나)>를 꺼내 놓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nowgirl


그렇게 여름을 보내면서 여름 가족 휴가에 매일같이 연재하던 두 시리즈의 글을 휴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휴가 전에 휴가일의 연재분까지 미리 써서 연재하는 지극정성(?)까지 보이는 보이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간날만 빼고는 연재를 펑크 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왔다.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연재하던 두 시리즈는 들어가는 사진까지 내가 편집해서 넣느라 점점 형식과 분량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법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며 안데르센 동화 이벤트를 브런치에서 한다길래 그 이벤트에도 전 작품을 응모한 몇 안 되는 작가로 등록하였다.


https://brunch.co.kr/magazine/andersen


여름이 지나고 예정되었던 지금 있는 나라로 오기 한 달 전쯤부터 글을 쓰지 않던 주말에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심리분석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 한국의 모든 여성지에 연재했던 내 저작권 담긴 글들이 토대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haracter1


처음 연재를 시작했던 문제의 실화 소설 <대만에 사는 악녀>는 브런치에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는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20편까지만 연재하다가 중단했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hura


그런데 갑자기 어느 주말, 1편부터 정주행을 시작하는 마니아 팬(?)들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왜 20편에서 끝났냐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두어 명뿐인 요청이었지만 그 두어 명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연재를 재개하여, 300페이지짜리 두꺼운 단행본 소설 5권 분량을 매일같이 연재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본래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익숙했던 지라, 5권 연재가 끝나고 매일 밤마다 소설을 읽던 독자들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완전히 장르가 다른, 깔끔한 순수 소설 <마녀의 조건>을 연재하였다. 매일 조금씩 연재한다고는 하지만, 매일같이 A4 4장 정도를 연재하니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1권 분량은 끝이 났다.


https://brunch.co.kr/magazine/witchstory


여름이 지나면서 지금 있는 나라에 와서 강의와 일정을 소화하며 본래 연재하던 두 시리즈를 그대로 연재하고 밤에 소설을 연재하였고, 주말에는 심리분석 시리즈를 연재하는 것으로 일상 루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의 및 회의 등의 공식적인 내 본캐(?) 업무 외에 매끼를 직접 해 먹는 홀아비 식생활 빼고는 모든 시간과 정력이 브런치의 글쓰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구? 이 나라에 오면서 한국의 지저분한 잡무를 하지 않는 대신에 이른바 <중량 치기 시리즈>를 하나 더 매일같이 쓰기 시작하는 루틴에 넣고 나니, 하루에 A4 20장 분량의 글쓰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의 고백(?)처럼, 매일같이 하루 4편이 꼬박꼬박 알림에 울리는 것은, 게다가 신변잡기 잡문도 아니고,  분량도 가장 짧은 것이 A4 4장 분량인 글은 읽는 이에게도 버거울 정도의 압박(?)이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매일같이 그 분량을 읽는 것도 어렵다고 토로하는 판에, 그걸 구상하고, 준비하고 쓰는 일이 만만한 것일 리 없었다.


그렇게 브런치 글쓰기는 어느새 내 생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중량 치기 시리즈>(‘중량 치기’란 헬스장에서 무게를 턱턱 올리기 시작하는 트레이닝의 방법을 풍자한 용어이다.)로 처음 연재했던 것은 언젠가 한번 제대로 풀어봐야지 했던, <중국 10대 명차 이야기>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hinatea


그렇게 시작된 시리즈는 <화투 이야기>로 이어졌고, 어느 사이엔가 ‘***, 좋아하시나요?’라는 첫 발행 글은 내 중량 치기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를 알리는 시그니쳐가 되어갔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lowerwars


일반 구독자들이 꽤 늘어나기 시작하는 원인이 되었던 <천사와 악마 이야기>도 세 번째 중량 치기 시리즈로 이어졌다.


https://brunch.co.kr/magazine/angeldevilstory


그리고 다시 <만화로 읽는 국제정세>로 그 시리즈는 이어져나갔다.

https://brunch.co.kr/magazine/animations


새벽에 일어나 논어를 한 장씩 풀어쓰는 것이 ‘아침 연재’,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쓰는 중량 치기 시리즈가 ‘점심 연재’, 그리고 오후 업무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다시 <인생에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가 ‘저녁 연재’ 마지막 밤 시간에 연재소설이 ‘밤 연재’로 마무리되었다.


겨울이 되면서 코로나 사태로 너무 오래 쉬었던 운동 탓에 체력이 떨어져 매일 3KM의 수영을 시작했고, 그즈음 웹툰과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며 지자체와 테마파크 사업까지 기획한 <방상씨의 탈>이 밤 연재소설로 등장했다. 4권의 중간에 휴재가 되기까지 겨울밤 많은 독자들은 하회탈과 함께 판타지의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다며 즐거워해 주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maskbattle


그리고 그즈음 대망의 중량 치기 시리즈의 백미(白眉), <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망라해보겠다는 메모를 실행에 옮긴 것이었는데, 마지막 와인 편에서 이탈리아 와인 편을 매듭짓지 않고 휴재하게 된 것이 이미 100일간의 연재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https://brunch.co.kr/magazine/drink


새벽을 <논어>로 열고, 꾸준히 하루에 A4 20장을 뽑아내면서(?) 연재를 펑크 낼까 싶어 다른 개인적인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고, 공식적인 강의와 업무 외에 일주일에 한 번 장 보러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글 쓰는 것에 쏟아부었으니, 대부분의 독자들은 전업작가려니 막연히 생각했다고들 했다.


일주일에 단행본이 한 권씩 컨베이어 벨트에서 툭툭 떨어져 나오는 격이었으니 한 달에 두꺼운 300페이지 단행본이 무려 4권씩이나 한 사람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셈이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 날짜와 시간이 온라인에 기록된 그 365일의 브런치는 말 그대로 나의 생활을 오롯이 담아낸 것들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수도자의 생활처럼, 본업을 유지하면서 나머지 모든 시간에 허튼 시간(?) 하나 없이 그것을 해온 것이다.


4월 말에 발행 글이 1000편이 넘어가면서 내가 보여온 글에 담긴 진정성에 수긍했을 것이라 생각하여 ‘글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바람을 담아 캠페인을 시작했고,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도 무책임한 이들에게 실망하여 재미와 정보를 주겠다는 글인 중량 치기 시리즈, <술 이야기>의 연재를 과감하게 중단해버렸다.


https://brunch.co.kr/magazine/fixbad


현실의 올바르지 못함을 보고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바꾸는데 실천을 보이지 않으며 그저 양심 없는 쾌락으로 재미난 글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같은 이유로, 판타지 소설 <방상씨의 탈> 연재를 중단하고, 캠페인의 원인 사건을 재구성한 논픽션 소설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을 단행본 1권이 훌쩍 넘어가는 지점까지 연재해오고 있다.


https://brunch.co.kr/magazine/badcopstory


그렇게 나는 브런치와 함께 한 365일을 꽈악 채웠다.


지난 나의 1년은 브런치에 빼곡히 가득 차 있어, 브런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생활을 보냈다. 지금은 떠나갔지만, 좋은 인연이 될 뻔한 이들도 만나고 공감하며 교류했더랬다.


본시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기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는 하지만, 난 자리는 언제나 크게 비어 보이기 마련이다.


아직 이번 캠페인이 실패로 끝났다고 할 수는 없는 단계이기에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함께하는 동지들을 더 많이 구하는 중이다.


내가 지난 1년처럼 꾸준히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계속해갈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이 나라에서의 일정이 끝나는 한 달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능하다면 아직 갈길이 먼 <논어>를 완독하고 자칭 발검 스쿨의 학도들과 책거리를 하는 데까지는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는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이 365일, 지치지 않고 하루하루에 충실하고자 했던 내게 수고했다고,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돈 받고 일간지에 연재하던 글도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다하여 쓰지는 않았건만, 참 대단하다고 토닥토닥 쓰담쓰담해주기로 한다.


해마다 신작을 내던 작가에게, 어찌 그리 부지런하시냐고 말하던 동료 작가들이나 출판사 사장, 그리고 편집장들의 말에 따르면, 한 달에 4권씩 탈고를 하였으니 그 정도 칭찬은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수고했다, 36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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