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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09. 2022

슬기롭지 못한 브런치 생활, 10개월 차 중간 보고서

경축 <인생이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 200명 달성~!

2021년 5월 28일 입성한 브런치.


10개월을 꽉 채웠다.

아울러 최단기간 900여 편의 발행 글, 조만간 1000편을 넘을 기세이다.


사실 지난주는 일이 많았다.


타국에 혼자 나와 보내는 쓸쓸한 생일이 있었고, <인생이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200명을 넘기는 일이 있었으며, 중량 치기로 쓰기 시작했던 시리즈 중 최근작인 <술 이야기>가 어제부로 벌써 100편을 채우고야 말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10개월여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10개월 만에 1000편에 가까운 글을 쓴 작가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한 편의 글 분량이 최소 A4 4장 이상되는 글을 매일같이 쓰는 작가도 아직 보지 못했다.

매일 서로 다른 장르의 글을 4편이나 발행하는 작가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기 본업을 버젓이 가지고서 하루 A4 20여 장의 글을 매일같이 발행하는 작가를 이전에도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반대로 이런 이들은 숱하게 보았다.

일기 수준조차 되지도 않는, ‘글’이라는 단어를 붙여주기 어려운 낙서를 발행하고서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자신이 10개월간 글을 썼네, 1년 만에 300편이 넘는 글을 썼네, 심지어 소설이라는 것까지 써보았다며 참람되이 자랑하는 이들은 많이 보았다.


문득, 내가 왜 이곳에 글을 쓰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대개 사람은 자신이 속해있는 곳에서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며 자신의 위치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저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는 허망함과 무기력감이 문득문득 엄습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영양 불균형이 겹치며 장염 증세가 심해져 엊그제 갑작스러운 폭설로 도로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병원을 꾸역꾸역 다녀왔다.

병원을 예약하고 가기 전에 글을 발행하고 돌아와서 받아온 약을 입안에 털어 넣으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면서도 ‘이게 뭐 하고 있는 짓이지?’ 싶은 생각이 살금 거리며 타고 올라왔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몰라도, 브런치를 하며 맺은 인연들 중에서 격조해진 이들을 떠올리면 맘 한켠이 휑하다.


발검 스쿨의 반장이 1월 31일에 브런치를 작파하고 떠나갔고, 그보다 앞서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가을나들이로 잠시 들렀던, 마음을 나눈다고 (나만) 생각했던 칠순을 바라보던 구독자가 떠나갔으며, 칠순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들키기 싫은 즐거움이라며 글을 읽고 키득거린다던 구독자가 떠나갔다. 스페인에서 어려운 코로나 정국을 헤쳐나가던 아이들 아빠가 떠나갔고, 매형의 갑작스러운 수혈이 필요했던 아이 아빠도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 나만 그들이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되어 서베이를 하고 추적한 결과, 그들은 나와는 달리, 다른 이의 글을 구독하며 재미나게 잘 지내는 듯했다.


10개월 전에 자주 글을 쓰는 듯하던 구독자들 중에서는 재미를 잃고 브런치를 개점휴업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매일같이 아침 공부를 함께 하며 힘찬 응원을 보내주고, 생각을 나누며 아픈 곳을 공유하고 따스한 몇 마디에 감사의 인사를 깊이 전하는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삶이 그렇지, 그런 거지.

만나면 헤어지고 사람이 떠나가면 또 새로운 사람이 메우고...


5개월 차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적긴 했지만, 원래 이렇게까지 매일같이 브런치가 생활의 중심이 될 지경으로 글을 연재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찌하다 보니 이리되었다.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지 못한 ‘작가’라는 이름에 감격하며 책 한번 내보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거액의 원고료 드릴 테니 연재해달라는 칼럼 제안 모두 뿌리치고, 한 달이면 두 어번 제안하기를 통해 오는 출판사 관계자라는 이들의 출판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면서까지 이렇게 일같이 글을 써대는 것은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아주 가볍게 생각을 남기는 것에서 시작했던 것이 일이 커져, 아침마다 읽는 <논어> 읽기는 하루 분량이 A4 4장으로 포맷이 고정되어 절반을 거의 끝내가고 있고, <인생이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는 하루 분량이 A4 7장으로 이미 200명을 넘겨버렸으며, <술 이야기>는 대망의 와인 이야기만을 남겨두고 이미 100편을 넘어버렸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을 염두에 두고 썼던 <방상씨의 탈>을 이 공간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고 3권을 다 채워간다.


브런치 북 발행의 한계 숫자를 넘어 더 브런치 북을 만들 수 없어, 매거진의 형태로 계속 쓰고 있긴 하다. (하긴 브런치 운영 측에서 보면 이렇게 많은 브런치 북을 한 작가가 발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 A4 20장을 발행하게 되면 1주일이면 평균 100매가 넘는다.


다시 말해, 두꺼운 300페이지가 넘는 단행본, 1권씩이 1주일만에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한 달이면 4권의 책이 완성되는 분량이다. 10개월이면 40권의 책이 완성되었다는 말이다.


유감스러운 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글쟁이가 되고 난지 30여 년이 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글쟁이를 만난 기억이 없다.


한결같은 퀄리티를 유지하며 매일같이 발행해주어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며 보잘것없는 글임에도 노력을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 참 감사한 일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10개월을 넘기고 1년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쓰는 것일까?


분명히 생각하고 뜻한 바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이 나라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날에 조만간 글 발행을 멈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이 탐독하는 글이 아니긴 하나, 재미있다고, 의미 있다고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있어 오늘도 쓴다.


글 발행을 멈추게 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는 열심히 써나갈 생각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또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 공부하고 부족하기 그지없는 ,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술 이야기>는 이 글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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