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와 소인의 차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터럭 끝만 한 차이

by 발검무적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되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하되 두루 사랑하지는 않는다."

<논어>에는 군자와 소인을 대조하여 설명하는 방법이 많이 나온다.

극단적인 예를 보여줘 지향해야 할 바를 명확히 하는 데는 대조만 한 것이 없다.


"너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갈래? 아님 지방 전문대 같은 데 갈래?"

뭐 이런 극단적이고 험악한, 하지만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대조'이다.


주석에서는 대조의 핵심(눈알자)은,

'周'와 '比'이다.

각기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널리(두루) 하는 것과 편당 하는 것의 차이.


쉽게 이해하려면 조금 현대어로 풀어볼 필요가 있는데, 연이어 이런 주석이 달려 있다.

"모두 사람과 친하고 두터이 하는 뜻이나 '周'는 '公'이고, '比'는 '私'이다."


그리고 그 아래 친절한 작은 주석에 그 뜻을 다시 풀어준다.


"그것이 나뉘는 까닭을 연구해보면 公과 私의 사이로 터럭 끝 만한 차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아!'하고 탄성이 나오면, 이제까지의 고문 공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단계이다.

편당을 한다는 것은, 그저 무리를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익, 사리사욕을 위해 목적이 같아서 손을 잡고 무리를 이룬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의 여당과 야당 같은 정당, 정치적 무리이다.

대의명분으로는 정치적인 뜻을 같이 하고 있는 모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세력에 묻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합쳐진 모임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레 소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인'이라고 지칭을 받아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논어>에서 공자가 '소인'이라고 '군자'의 상대적 개념을 등장시킨 것은

정말로 치졸하고 사람으로서는 가장 하류에 해당하는 등급으로 등장시킨

말 그대로 극단적인 표현이었다.

그런데, 지금 <논어>에 '군자'와 대비된 '소인'을 키워드로 찾아 분석해보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지금의 시대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이들이

너무도 많고

심지어 그들은 방송에 자주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들이다.

부끄러워하는가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그들의 자식과 그들의 부모 형제는

또 어떠할 것이란 말인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의 부모와 형제, 자식들은

그들의 허장성세를 타고

함께 누리고

함께 부정을 부정인지 알고도 모른 냥

질펀하게 놀아제낀 자들이었다.


정치하겠다고 나선 이들이나

부정 축재한 기업인들만의 문제라고

TV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자신들은 서민이니

선한 사람들이라고 자위하는

당신들에 대해

살펴보라.


회사에서 식사를 하러 갈 때

만들어진 무리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급식판을 들고

어울리는 무리를 보라.

그저 자연스럽게 언제 누구와

어울리더라도 두루두루 자연스러웠던가?

아니다.


쟤는 이래서 싫고,

그러니까 '우리'끼리 걔 욕 좀 해도 되고

저 인간은 함께 밥 먹는 것도 싫으니까

'우리'끼리 몰려다니며 대놓고 무시하고

그렇게 당신들은 지내고 있다.


그것이 윗글에서 말하는 소인들의

자신들의 욕심과 부합할 경우만 무리 짓는 것의

적확한 예에 다름 아니다.

테레사 수녀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어

만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포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라고 하는 무리를 짓는 순간,

상대편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상대나 상대 무리는

상대적으로 당신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하지 않는다.

감정의 쓸데없는 소모이다.

그리고 부러 그렇게 선을 그어가며

당신이 감정에너지를 쏟을 일도 아니다.


나중에 '군자'에 대한 공자의 다양한 설명이 나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중요하고도

더 큰 당신을 위한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그저 개인적인 일이 아닌

공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확장된다는 점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 설명을, 지금 이 장과 연결하여 하기에는

연관성이나 지면의 한계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능적 특성에 따라

인간은 무리를 짓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무리를 짓는 것이

어떤 목적을 위함인지에 따라

당신의 인간으로서의 레벨이 평가된다.


당신은 당신이 인간으로서 어떤 레벨로

평가되길 원하는가?


당신이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