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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04. 2022

공자가 패션에 대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옷이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큰 의미

君子不以紺緅飾, 紅紫不以爲褻服. 當暑袗絺綌, 必表而出之. 緇衣, 羔裘; 素衣, 麑裘; 黃衣, 狐裘. 褻裘長, 短右袂. 必有寢衣, 長一身有半. 狐貉之厚以居. 去喪, 無所不佩. 非帷裳, 必殺之. 羔裘玄冠不以吊. 吉月, 必朝服而朝.


君子는 紺色과 붉은색으로 옷을 선두르지 않으시며, 홍색과 자주색으로는 평상복을 만들지 않으셨다. 더위를 당하시어 가는 葛布와 굵은 葛布로 만든 홑옷을 반드시 겉에 입으셨다. 검은 옷에는 검은 염소 가죽 갖옷을 입고, 흰옷에는 흰 사슴 새끼 가죽 갖옷을 입고, 누런 옷에는 누런 여우 가죽 갖옷을 입으셨다. 평상시에 입는 갖옷은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하셨다. 반드시 잠옷이 있으셨으니, 길이가 한 길하고 또 반이었다.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푹신한) 가죽옷으로 거처하셨다. 脫喪하시고는 〈佩物을〉 차지 않는 것이 없으셨다. 帷裳(주름치마)이 아니면 반드시 〈치마의 허리통에 주름을 잡지 않고〉 줄여서 꿰매셨다. 염소 가죽 갖옷과 검은 冠차림으로 弔問하지 않으셨다. 吉月(초하루)에는 반드시 朝服을 입고 조회하셨다.

이 장은 공자의 의복 관련된 생활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묘사한 것인데, 소동파로 유명한 소식(蘇軾)이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는 공씨(孔氏) 집안의 유서(遺書)이니, 자질구레한 예절을 뒤섞어 기록한 것이요, 단지 공자의 일만이 아니다.”


워낙 복잡한 설명이 길기 때문에 주석도 46개나 되니 천천히 주석을 살펴보면서 왜 공자의 집안에서 의복 제도에 대한 글을 다음과 같이 남겼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君子(군자)’는 공자를 이른다. ‘紺(감)’은 짙게 푸르러 붉은 빛깔을 드러내는 것이니, 재계할 때에 입는 옷이다. ‘緅(추)’는 붉은 색이니, 3년상에 練服(연복)을 선두르는 것이다. ‘飾(식)’은 옷깃에 선두르는 것이다.


재계란 제사를 진행할 때 입는 옷을 말하는 것이고 그 뒤에 이어지는 옷에 대한 설명은 3년상에 입고 지냈던 상복을 설명한 것이다. 감색(紺色)과 검붉은 색으로 옷을 선두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제사 지낼 때 입었던 옷과 상복(喪服)이기 때문에 옷깃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홍색과 자주색으로는 평상복을 만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紅色(홍색)과 紫色(자색)은 간색(間色)이니 바르지 않고 또 부인과 여자의 옷 색깔에 가깝다. ‘褻服(설복)’은 사사로이 있을 때에 입는 옷이다. 이것을 말하여 이러한 색깔로 조복과 제복을 만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간색이라는 것은 지극히 감각적인 색이라서 평상복을 만들기에 적당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어서 더울 때, 가는 葛布와 굵은 葛布로 만든 홑옷을 반드시 겉에 입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袗(진)’은 홑옷이다. 갈포의 고운 것을 ‘絺(치)’라 하고 거친 것을 ‘綌(격)’이라 한다. ‘表而出之(표이출지)’는 먼저 속옷을 입고 갈포 옷을 겉에 입어서 밖에 드러내는 것이니, 그 몸을 나타내지 않고자 해서이다. 《詩經(시경)》〈鄘風 君子偕老(용풍 군자해로)〉에 이른바 “저 고운 갈포 옷을 위에 입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쉽게 말하면 살이 훤히 비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입었다는 설명이다. 다음으로 검은 옷에는 검은 염소 가죽 갖옷을 입고, 흰옷에는 흰 사슴 새끼 가죽 갖옷을 입고, 누런 옷에는 누런 여우 가죽 갖옷을 입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緇(치)’는 검은색이다. ‘羔裘(고구)’는 검은 염소의 가죽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麑(예)’는 사슴 새끼이니 색깔이 희고, 여우는 색깔이 누렇다. 옷을 갖옷 위에 덧입으니, 〈같은 색을 쓰는 것은〉 색깔이 서로 걸맞고자 해서이다.


평상시에 입는 갖옷은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길게 한 것’은 따뜻하게 하려고 해서이고,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한 것’은 일하는데 편하게 하려고 해서이다.


반드시 잠옷을 따로 입었고, 그 잠옷의 길이가 한 길하고 또 반이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재계는 敬(경)을 주장하니, 옷을 벗고 잘 수 없고 또 明衣(명의, 재계할 때 입는 옷)를 입고 잘 수도 없다. 그러므로 별도로 잠옷이 있었던 것이다. 그 반은 아마도 발을 덮기 위해서인 듯하다.


이어서,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푹신한) 가죽옷으로 거처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여우와 담비는 털이 길어 따뜻하고 푹신하니, 사사로이 거처할 때에 몸에 알맞음을 취하신 것이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이렇게 옷을 입는 것은 살림살이도 그렇지만 신분이 높지 않고서 그렇게 입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몸에 알맞음을 취했다는 의미를 바로 새겨야 한다. 또한 이 옷 자체가 보기에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실용성이 높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집에서 혼자서 사사로이 있으면서는 당연히 편하면서도 따뜻한 실용성을 가진 옷을 입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과는 달리, 여우와 담비 털로 방석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이견도 있는 부분인데, 나는 주자의 해석을 따른다.


한편, 脫喪하고 〈佩物을〉 차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군자는 연고(喪(상))가 없으면 옥이 몸에서 떠나지 않으니, 뿔 송곳과 숫돌 따위도 모두 몸에 차는 것이다.


본래 액세서리라는 것은 상을 치르는 동안은 모두 떼어놓기 마련이다. 남자임에도 패물이 단순한 장식품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위용을 돋보이게도 하고 그 패물의 모양이나 소리에 맞춰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당시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의 액세서리로만 이해하게 되므로 이 부분은 그 시대의 활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다음으로, 帷裳(주름치마)이 아니면 반드시 (치마의 허리통에 주름을 잡지 않고) 줄여서 꿰매 입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은 치마에 正幅(정폭, 온폭)을 사용하여 휘장 같이 만들어서 허리에 襞積(벽적, 주름)이 있고 옆에 줄여서 꿰매는 것이 없고, 그 나머지 深衣(심의) 같은 것은 허리 폭이 아랫단의 반쯤 되고 아랫단이 허리 폭의 배가 되니, 〈허리에〉 벽적이 없고 〈옆에〉 줄여서 꿰매는 것이 있다.


이것 역시 예복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닌 일상복은 반드시 손질을 하되 그 목적이 간편하게 입는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어서, 염소 가죽 갖옷과 검은 冠차림으로 弔問하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초상은 흰 것을 주장하고 吉事(길사)는 검은 것을 주장하니, 조문할 적에 반드시 옷을 바꿔 입는 것은 죽은 이를 슬퍼하기 위해서이다.


내용 역시 당시의 풍습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인데, 현대의 관습적인 색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당시에는 검은색을 조상(弔喪)에 피하는 것이 관습이었다는 점으로, 왜 조선 시대를 거치며 초상에 하얀 소복을 입는 관습이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吉月(초하루)에는 반드시 朝服을 입고 조회하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吉月(길월)’은 달〔月(월)〕의 초하루이다. 공자께서 치사하고 노나라에 계실 적에 이와 같이 하셨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당연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법에 맞춰 신하 된 자의 도리를 다 한다는 것을 복식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 이 장을 풀면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당시의 공통적인 복식에 대한 제도가 아니라, 공자를 시작으로 공 씨 집안에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옷에 대한 지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예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이유에 대해 파악하라고 일일이 주석을 달아 해석한 것이다. 

영화 <공자>중에서

복식이 예법에 들어가는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상대에게 보이는 것 때문에 그렇다.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예법을 갖출수록 옷은 실제로 입는 사람은 불편하기 마련이라는 설명도 하였다.


서구의 복식제도에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최대한 예뻐 보이기 위해 다소 과장되거나 불편한 복식을 감수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동양의 복식제도는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격식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지 자신이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님이 확연하게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해설을 차분히 내려오면서 느꼈겠지만, 단순히 예법에 맞춰 불편하게 일일이 세세한 부분들을 규제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서 실용적인 부분에 상당 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대하드라마나 심지어 한국의 사극에서도 나오는 그 긴 소매에 대해 남에게 보이지 않는 평상시에 입는 옷의 오른쪽 소매 길이를 짧게 한 것은 맞춤 실용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라 하겠다.


잠옷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인데, 잠잘 때 아무 옷이나 입지 왜 잠옷을 차려입냐는 사람들은 잠옷이 잘 때 최적화되어 몸에 편한 옷임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그것을 격식을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 가장 최적화된 옷임을 공자는 알고 있다. 


그 가장 큰 핵심이 잠옷이 길다는 부분에 있다. 날이 추울 때는 물론이거니와 잠을 잘 때는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불을 덮는 것과는 별개로 잠옷의 가장 큰 기능은 편안한 것과 별개로 몸을 감싸서 자다가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부러 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장의 핵심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예법에 맞춰 상대에게 맞춰 입어야 하는 옷을 강조하기보다 그 옷이 가진 기능과 의미에 대해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갖춰야 하는 옷에서는 반드시 그 옷이 가진 의미를 최대한 부여하였다. 

예컨대 패물에 해당하는 패옥이 달린 띠를 굳이 반드시 착용하여 상중에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편하거나 액세서리가 좋아서 한 것이 아니라 그 본연의 의미를 살렸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명 호텔의 피트니스 클럽이나 사우나를 이용할 때면 가장 눈에 띠는 것이 있다. 바로 와이셔츠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것이다. 왜일까? 비싼 수제 맞춤 와이셔츠임을 강조하는 것인가 싶은데, 최근에는 비싼 맞춤 수제 와이셔츠도 아닌데 일반 와이셔츠에 따로 자수(흔히 말하는 오바로크)로 그렇게 이름을 새긴다고 한다. 이른바 셀레브를 따라 하기로 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지 모르고 그저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와이셔츠가 많이 있어서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는 지경의 군대도 아니고 굳이 자신의 이름을 그것도 이니셜이라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을 일종의 장식이나 부의 상징처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일반 와이셔츠에 이름을 새기는 유행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옷은 물론이고 인간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그것을 왜 하는지, 혹은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메바들이 늘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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