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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04. 2022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

껍데기는 가라.

브런치파 궐기대회의 기치를 올린 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https://brunch.co.kr/@ahura/1084


행동에 동참하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퇴임한 여자 교장선생님에서부터, 예비 언론인을 지망하는 대학 졸업반 젊은이까지 참 다양하게 여러분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분연히 일어났다며 함께 움직여주시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국회의원실에 전화해보셨다는 분들도 계셨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작성해서 송고할 준비를 하는 분도 계시고, 파급력이 가장 클 것이라며 중랑 맘 카페에 아이 사진까지 올려가며 인증받아서 그곳에 글을 올리겠다고 벼르는 분도 있었으며, 인터넷도 익숙하지 않은데, 아들에게까지 물어가면서 아동학대협회에 글을 올리려고 하는 분도 계셨다.


방에서 자기 사무실을 10년 넘게 운영하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있으면서도 법률자문과 소송 관련에 힘을 보태겠다며 함께 해준 변호사 분도 함께 나섰다. 물론 브런치에 기생하며 파란당 스피커 노릇을 하며 한 자리 얻으려고 기웃거리는 이의 브런치에 댓글을 달며 딱딱한 그의 양심을 찌르는 일은 여러분이 하셨다.


그렇게 작은 힘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려고, 오픈 채팅방까지 개설이 되어 간략히 서로 간의 안부와 친목을 다지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 댓글까지 달며 의향을 물었을 뿐인데도, 온갖 말도 안 되는 궤변 늘어놓으며 도망가기 바쁜 자, <술 이야기> 연재로 안 한다고 하고 자기 아이디까지 글에 언급하니 불쾌하다며 구독을 끊고 어차피 없는 양심 흘린 것마냥 헐레벌떡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자들이 내 글을 구독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던 차에 그건 감사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발검 무적님의 글이 동참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부담스러워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고.


으음, 그럴 수 있겠다........라고 이해한다고 공감해 줄 알았나?


아니. 이미 그간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발검스쿨에서 공부하는 시늉을 냈던 이들이라면 다들 안다.


겨를이 없어서 무엇을 못한다고 하는 자들은 겨를이 생겨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아, 이쯤에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그 프로젝트를 강하게 추진하는지 그 후안무치하게 차마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양심이 아리고 쓰려 묘한 기분으로 이곳을 기웃거리는 자들에게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겠다.


하나 묻자.


만약 당신이 언론사 데스크와 통화를 하는 사이라면 삼류 일간지 기자에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사회를 바꿔보자고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세종에 있는 보건복지부에 문제가 있을 때 1, 2급 국장급 이상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데, 지방대 사회복지학과 나와서 고작 감사실 실장도 아니고 직원 했던 사람에게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자고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한국전력의 문제가 생겼을 때 사장이나 감사실장과 통화하고 그들을 호통칠 수 있는데, 굳이 어디 이름도 모를 지부의 이제 막 평직원 벗어난 대리에게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자고 손을 내밀겠는가?


만약 당신이 국회의원의 개인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임에도 굳이 여러 국회의원실 저 밑에 있는 보좌관도 아니고 비서관도 아니며 비서급에게 전화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경성제대 법대 출신 판사, 검사, 변호사들과 모임을 하고 있는데, 전문대 나와서 4년제 대학 가까스로 졸업하고 인 서울도 아닌 지방대 로스쿨 억지로 들어가 겨우 변호사 시험 붙어 월급쟁이로 사는 사람에게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아침마다 현재 출간된 해설서 어디에도 없는 그간 학자들의 해석을 모두 해제한 <논어 읽기>를 1년여 낼름거리며 날로 읽으며, 마치 살아있는 양심인 척 손가락 움직이는 품값도 안 들면서 라이킷이라고 누르며 댓글에 ‘훌륭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이렇게 매일같이 쓰십니까’라는 칭찬 날리며 정작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그냥 그놈의 라이킷을 누르는 것으로 응원 보낸다 생각하라며 스윽 지나가는 이들과 뜻을 함께 하자며 손을 내밀겠는가?


맞다. 내가 그랬다. 그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고 명분이었다.


왜 그렇게 잘나고 고결하신 분이 그 위에서 노는 분들의 네트워크와 힘을 빌어서 일을 해결하면 되지 굳이 이런 소시민들에게 함께 하자고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은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었다.


왜 내가 수십 년간 가르친 그 훌륭한 제자들이 강의실에서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빛내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사회지도층이 되어있는 지금쯤이면 분명히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나아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까?


결국 정답은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있었다.


소시민이라는 이름의 절대다수 민중을 일깨우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궐기하지 못한다고 여겨 야학이라는 곳에 가서 배우지 못해서 알지 못하는 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그들이 배워 태어난 혹은 그들의 조카뻘 되는 자들이 지금 브런치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직접 당하는 일의 경우에는 내 지식과 경험, 혹은 아주 효과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사회를 좀 먹는 것들을 하나하나 때려가며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왔던 내 입장에서 뒤를 돌아보니, 나를 만난 그 소시민이라는 존재들이 결코 반성하고 다시 똑같은 케이스에서 다른 소시민들을 만났을 때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던 대로 반성하고 더 나아가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판사 입네 변호사 입네 의사 입네 CEO 입네 타이틀 브런치 타이틀에 떡 박아놓고 글을 쓴답시고 글이니 그림이니 사진이니 기본 수준도 갖추지 못한, 변두리 주민센터 글쓰기 수업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며 작가놀이 하는 걸 보며, ‘전문직’이다 싶어 그들의 브런치를 구독하고 댓글에 침 질질 흘려놓는 것을 보면 왜 그들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썩어빠진 정치꾼이나 기레기들에게 개돼지 소리를 듣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글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아직 있지 않을까?


1년에 가까운 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매일같이 글로 나를 보여왔다. 나는 대단치 못한 사람이라 ‘교수’라는 타이틀이 혹여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릴까 싶어 ‘출간 작가’ 정도의 가벼운 이름으로 앞의 타이틀도 가렸다.


브런치가 좋은 점은 내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아도 오롯이 글로만 평가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전문직이랍시고 방송하는 전직 까불이 아나운서가 방송에 나와 브런치 하는 것 하나만 보고 구독을 누른 이들이 몇천 명이 되는 것을 보면, 이곳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었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브런치에 매일같이 글을, 그것도 서로 다른 장르의 글을 대량으로 쓰며 내 생각이 녹아 있는 글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뜻을 전했다. 물론 마냥 재미를 위해, 혹은 글을 읽지도 않으면서 그저 품앗이 라이킷을 받겠다고 오는 자들도 있었고, 새벽마다 올리는 논어의 본 뜻에 대해 십 분의 일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거들먹거리며 아는 척하려고 이메일을 보내는 철딱서니 없는 시골의 촌로(村老)도 있었다.


발행 글이 천편이 넘었을 때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이 캠페인을 통해 공부한 것을 실천으로 보일 수 있는 자들이 있는지를 묻기 위해 브런치파 궐기의 깃발을 올렸다.


<논어 읽기>를 읽으며 아침을 이 글로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살찌운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 쭉정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아예 구독을 끊고 쬐그만한 양심에서 질질 흘리는 피를 보이며 줄행랑을 쳤고 양심 자체가 아린 것조차 모르는 후안무치한 자들은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주저하고 있는 이들 사이에 숨어서 적당히 이 매거진에 대해 계속 라이킷을 누르며 어떻게 돌아가는지 끝까지 보겠다며 서 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체격 좋은 양아치가 여자를 가차 없이 폭행하는 장면을 당신이 목도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실제로 그런 일이 최근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경을 한단다. 그리고 3,40대를 중심으로 20대까지 젊은 친구들은 핸드폰을 들어 그 와중에 그걸 찍는단다.


어느 누구도 바로 그 양아치를 제압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못해 분개한 나이 드신 아주머니의 신고에 의해 경찰이 느기작거리며 출동하는데 대개 경찰이 나타나기 전에 그 양아치는 도망가거나 상황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단다.


그 난장판의 현장에 당신이 지금 서 있다.


당신들은 말한다. 브런치는 현실의 당신이 아니고 문학소녀와 문학소년을 꿈꾸던 자신의 같잖은 가상인물로 현실을 잊고 유리된 채 다른 사람이 쓴 글의 멋진 구절을 적당히 인용하며 있어 보이는 척 글을 쓰고, 어쭙잖은 사진이나 그림을 올리며 당신의 삶의 한 부분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고 자위하며 지내고 있다.


그 옛날 경성제대의 깨어있는 지성이라고 하는 친구들과 함께 야학에 가서 그들을 가르치고 일깨워줬던 것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재능기부나 잘난 척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그 민중들이 개돼지 짓을 하지 않으려면 먼저 일깨워줘야 하고 그 방법을 일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나는 그 마음으로 1년간 씨앗을 뿌렸고, 마치 끄덕이며 배움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고 실천하지 않으면 당신들이 욕하는 그 법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그들이 욕하던 법비와 정치꾼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자기가 그 위치에 올라 그들처럼 자식을 돈으로, 인맥으로 더 좋은 대학에 보내 변호사를 의사를 만들지 못해 배가 아파서 그런다는 사실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그러지 말아라.

그따위로 살지 말란 말이다.


내가 하려는 움직임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당신의 힘이 뭐가 그리 절대적이라고 내가 당신 따위의 힘에 구걸을 한다고 그 와중에 착각하며 있지도 않은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가?


내가 이 캠페인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소시민들의 하나하나의 힘으로 그 썩어빠진 경찰 조직을, 그리고 나쁜 짓을 하고서도 변호사를 사서 후안무치하게 사는 종교인을 혼쭐낼 수 있다는 경험을, 어렵게 용기 내어 동참한 소시민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다.


첫걸음은 힘들고 조금 더딜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잘못을 한 번 바로잡아본 소시민은 더 이상 개돼지가 아닌 진정한 정치를 직접 움직이는 민중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브런치를 통해 꿈꾸는 정치이다.


지금이라도 부끄럽고 가슴이 뛴다면 함께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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