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와 다른 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단을 전공하면 해가 될 뿐이다."
2015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원세훈 전 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서울고법의 모 부장판사가 판결문에 ‘공자왈(孔子曰)’을 인용한 적이 있다.
'지음'이 어쩌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인용한 예비 법비에 비해,
이 부장판사는 글 좀 읽은 티가 났다.
왜냐고?
윗글의 해석은 주자의 해석에 의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부장판사는 위 해석을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꼬집는 것으로 활용하였다.
주자학의 주류였던 주자의 해석이 아닌, 서계 박세당의 해석, 이른바 소수의견을 적용한 것이다.
'攻'을 '전공하다'로 해석하는 경우와 '공격하다'로 해석하는 경우에 따라 해석은 갈린다.
내가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은 당연히(?) <주자 집주>이기 때문에 주자학의 주류 해석(a.k.a. 다수의견)을 베이스로 하지만, <논어>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제법 다른 부분도 나오긴 한다.
주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범 씨는, 이단을 '성인의 도가 아닌 별도의 일단'이라고 규정짓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정통이 아닌 모든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의미로 본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견도 제법 있었다.
예컨대, 이 구절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공자(기원전 551~479)의 시대에는 (양주·묵적 같은) 이단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단'에 대한 해석을, 농사법이나 병법처럼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고 하면서,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 ‘전공하면 해가 될 뿐’이라 했다는 해석 하였다.
즉, “공자는 이단을 가볍게 금한 것일 뿐 타도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자아, 이 정도 되면 도대체 '이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단'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외의 것을 모두 이단으로 본 것처럼,
주자학, 주류라고 하던 주자는 공자(성인)의 가르침이 아닌,
다른 모든 것(도가사상과 불가 사상)을 이단으로 보았다.
정자가 나서, 불가에 대한 것은 양주 묵적보다 더 위험하고 나쁘다면서
학문을 하는 자들이 여색을 멀리하는 것처럼 여겨 멀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자학에 배치된 학문과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가차 없이 쳐버리려 한 의도가 보인다.
주자는 지극히 정치적인 사람이고, 주자학은, 중국은 물론 특히 조선에서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된 학문이고 사상이었다.
성인의 도라면 '공자학'이라고 하거나 '맹자학'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주자학'이라고 할까?
그것을 활용하려는 이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본래의 공자나 맹자의 의도가 아주 미묘한 차이로,
하지만 그들의 의도대로 견강부회될 여지가 있음을
학문을 하는 이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개신교에서 '이단'을 성경을 들어 비난하는 것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른 쪽의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
성인인 공자가 ‘이단을 전공하면 무조건 해롭다’식으로
반목과 불통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배격의 논리'는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격'하고 강하게 '차단'하며
'공격'하는 이들은, 일반인들이 파악하기 쉽지 않을 뿐 그 나름의 명확한 목적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안 좋은 사례가 정치인들이다.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어떻게 견강부회하여
내가 끌고 와 내 나름대로 조리하는가에 치중한다.
무식하고 단조로우며 천박하지만
그것에 반응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이 정치를 해 먹는다.
다산이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을 재정의하며,
'이단'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중용>에 나오는 ‘택선 고집(擇善固執)’은 말을 인용하여 정리한다.
'선한 것을 골라 이를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굳이 다산이 <중용>을 통해 극단적인 다른 쪽을 다루는 인식체계의 전환을 지적한 것이 수준 높다.
그 말에 숟가락만 얻어 이 장을 마무리 짓는다.
<중용>에서, 선(善)을 택한다 함은,
극단이 아니라, 말 그대로 '중용'을 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