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무언가에 대해 아는 방법

사교계의 처세술, '척'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

by 발검무적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이른바 참새장, 혹은 제비장이라고

불리는 장이 되시겠다.

왜 그렇게 불리냐고?

옛 선비들처럼 <논어>를 직접 한자로 강독하다보면 이 장을 읽을 때 독음이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고 나와서 '지지배배'의 '지지'가 많이 나온다고 하여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린다.


이제 <논어>를 제법 읽으며 따라왔으니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질문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하라고 일러주었었다.


由(유)라고 불린 자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좋게 말해서 용감무쌍하고

나쁘게 말해 성격이 급하기 유명했던 '자로'이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아마도 자로가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우겨 안다고 여기는 일이 생겨

공자가 그를 완곡하게 지도하기 위해 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에도 설명했지만 '자로'의 수준이 <삼국지>의 장비 같은 사람이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일반인 기준으로는 공자의 제자들은, 특히, 72 제자들은 일반인들 이상의 수준이었다.

그러니 일반인 기준으로 봐서는 안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이 이 글은 여러분 모두에게 아주 적확하게 들어맞는

뼈 때리는 조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교모임에서 가장 위험한 삼척동자 중에서도

아는 '척'은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진상 케이스이다.

그런데 정말 똑똑해서 아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저 아는 척을 해대서 욕을 먹는 사람이 있다.

외모가 수려한 사람은 똑똑하고

못 생긴 사람은 그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할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지 않아도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자가 있는 반면,

내가 아는 것을 다 말하고,

심지어 그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욕먹고 까이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에 대한 대인 관계술도

이 장은 답변을 포함한다.


먼저 주자의 해석에서 공자가 부연 설명했다는 부분을 보자.

위와 같이 한다면 비록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속이는 가림이 없을 것이요, 또한 그 앎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알기를 구하면 또 알 수 있는 이치가 있음에랴!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면,

아이들의 질문이 폭주하는 때가 온다.

폭주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자라면서 궁금증이 많기 마련이다.


말을 배우고 받아쓰기를 하게 되면

올바른 한국어 표현에서부터 시작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영어단어나 문법

TV를 보다 보면 어려운 상식 용어나

책을 읽다가 나오는,

알면 당연하지만

어디서도 잘 알려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그래서 부모는 가장 가까운 스승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모르면서 대강 답하거나

초록창을 열어 누가 어디서 답변했는지도 모를

초등학생 지식인의 답변을 대신 읽어주거나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

아는 척 대답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식에게도 이러는 부모가

과연 밖에 나와서 다른 이들에게는

조심스럽고 삼가는 태도를 보일까?


물론, 너무도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렇기때문에 싸움이 나고 갈등이 터진다.


학계는 좀 다르냐고?

학계가 젤 지저분하고 젤 난잡하다.

지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이고

지가 말한 것이 상식이라고 우긴다.


자신이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검토해보니

상대방의 말이 맞더라, 하면서 너무도 정중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하는 자를

나는 이제까지 모든 학계를 통틀어

만나본 적이 없다.


왜일까?

위 장의 너무도 당연한 것이

실제로는 너무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자도 그것을 알았기에 자로를 빌어 이런 설명을 한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는 누구라도 할 줄 안다.

그런데 여기 숨겨진 방점이 있다.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내가 확실히 아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릴 지식 범위의 설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확실한지 검증을 위한

끊임없는 공부와 검토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보라.

자신이 살아온 그 짧은 생에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궤적 안에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장이 너무도 쉽지만

이해하기도 어렵고

체행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유이다.


내가 무엇을 확실하게 아는지

그리고 무엇을 확실히 모르는지

그것을 알고 규정할 정도의 수준이 되면

사실 위의 말처럼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공자가 은연중에 보여준 최고의 경지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기 전까지

혹은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말이지,

공자쯤 되는 자가 뭔 뻔한 소리를

떠들고 앉아 있지?라고 착각했던

대다수의 자들이여.


공부하자.

당신이 공자가 제시한 그 단계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 같은 거, 바라지도 않는다.

사교계에 나아가

입 꽉 다문 바보가 될 필요도 없지만

하찮게 나대며 자신이 전문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저 무작정 말을 삼가라는 것은

진정한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위의 단계에 올라서면

지적받을 꺼리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발언에 조심스러워지고

행동에 삼가게 되는 것은

당신의 지적 수준과 도덕적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일 따름이다.

당신의 삶이,

그리고 이 사회가 좀 더

정상적인 업그레이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 모두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