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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7. 2022

책은 고사하고 만화책조차 읽기 싫어했던 아이였지만,

일본을 필두로 전 세계 독자들을 홀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다.

235번째 대가의 이야기.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워낙 책 읽는 것을 싫어하고 끝까지 읽은 책이 없어 중학교 시절엔 다른 성적은 물론이고 국어 성적이 특히 엉망이었다. 


혹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냐며 담임은 그의 부모님을 호출하기에 이른다. 만화책만 읽힐 것이 아니라 책을 좀 읽히라고 조언하는 담임선생에게 그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 아이는 만화책조차 읽기를 싫어해서 안 읽어요.”


할 말이 없어진 담임선생은 그의 어머니에게 그렇다면 만화부터라도 시작해 독서를 좀 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머리가 아주 나빠서 성적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닌 케이스여서 당시 게이오대학에 지원했으나 보기 좋게 떨어져 네임벨류가 없는 오사카부립 대학의 전기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내내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황하며 그저 세월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전형적인 공대생의 학창생활을 마치고 졸업 후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인 ‘덴소’에 취업하여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마치고서는 추리소설을 쓰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처음 퇴고했던 <졸업: 설월화 살인게임>를 여러 군데 응모하지만 당연히(?) 떨어진다. 


이후 1985년 <방과 후>라는 작품을 통해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하게 되고, 바로 회사를 퇴직하고 도쿄로 올라와 전업작가의 길을 걷겠다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소개하는 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인물.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인정받으며 무엇보다 엄청난 가독성을 가지고 있어 한번 손에 쥐면 중간에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마성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ひがしの けいご)의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독자를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저평가를 받던 한국에마저도 이젠 서점을 가보면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버젓이 걸려있는 등 인지도가 높은 작가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영화나 드라마 홍보할 때 배우 못지않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내걸고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 그의 작품 중 19편의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또한 7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한국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글 <多分最後の物語り(어쩌면 마지막 이야기)>에 보며 <방과 후>로 데뷔한 뒤에 무작정 잘 다니던 자동차 회사를 때려치우고 도쿄로 상경하여 소설 담당 편집자가 ‘정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이라며 상당히 곤란해했다는 일화를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뒤로 거의 10년 동안 그는 이렇다 할 히트작은 내지 못하고 그 사이에 아내와도 이혼하는 암흑기를 10년이나 보내게 된다.


데뷔 초기에는 본격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집필하다가 이후 점차적으로 사회파적인 요소가 섞인 작품에 관심을 가진다. 다만 사회파 요소에 대해서는 덜 익은 사회문제를 대충 흉내 낸다며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1996년에 집필된 명탐정의 규칙을 전후로 해서 후더닛 중심인 본격 미스터리 특유의 논리적인 수수께끼 풀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데뷔 초기엔 본격파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엄밀히 말해 히가시노 게이고를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붙는 수식어와 그간의 이미지 때문인지 그는 일본추리작가협회 13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가 써내는 소설의 서사 전개 방식이 추리적 성향을 띠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가 등장하는 경우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형사 가가 코이치로 시리즈

형사가 등장하는 소설은 비교적 추리가 가능한 편이지만, 그 외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짙어 본격 추리소설의 장르성을 음미하듯 읽기는 어렵다. 예컨대 <비밀>이나 <레몬> 같은 경우,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장치는 거의 없고 독자는 다음 서사를 기대하며 읽게 만들고, 국내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추리적 성향을 약간(?) 띠긴 하나 본격적인 추리소설의 장르성을 갖추고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갖는 특성은 너무도 명료하고 그만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범행 동기가 이성이나 합리적 추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아니라 그 순간, 그 상황이 닥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만이 묘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본인이 그 인물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심리가 범죄를 벌일 수밖에 없는 기묘한 설득력(?)을 마련하는 방식인 것이다.

드라마화된 <백야행>

그것은 ‘감정을 못 이겨 저지르는 범죄 행위라 하더라도 그 감정이 유발되는 일련의 과정을 누구나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기본적이면서도 상식적인(?) 개연성을 중시하는 독자라면 처음 게이고의 작품을 접했을 때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이기도하다.


내용적인 면과는 별도로 그의 소설이 갖는 최대의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가독성이 좋다는 것이다. 그저 술술 읽히는 것을 넘어서 중간에 끊을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뿜어낸다고들 표현하는데, 그러한 마력(?)이 보통 책을 잘 읽지 않는 계층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멀리하던 독자층까지도 끌어모아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평론가와 대중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특성을 갖추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 본인 설명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 책은 물론 만화책조차도 안 읽었던 입장에서 어린 시절의 자기 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을 중점으로 쓰고 있다.’라는 확고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데뷔작 <방과후>

그가 정작 화려하게 데뷔하고 10년의 암흑기를 전업작가를 표방하며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 시간을 그가 그저 멍 때리며 소일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작품수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로 유명한데, 일각에선 ‘대중적으로나 인기가 많고 다작을 하느라 졸작이 많다’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일부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게 내린 결론이다.


실제로는 그는 비평적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에서 장단편을 모두 합쳐 5번이나 후보에 올랐으며 데뷔 14년 만인 1999년, <비밀>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2006년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과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성과를 보여줬다. 

영화되어 한국에서 대박났던 <비밀>

앞서 나오키상 후보에도 6번이나 오르며 무려 6수 끝에 수상한 것이며 이후 신풍상, 중앙공론 문예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대중문학작가로서 받을만한 상은 모조리 받아낸다. 


수상 경력, 수상 후보 경력만 따져봐도 단순히 ‘대중에게 어필을 잘하는 작가’라는 단어로 그를 폄하하기엔 그가 암흑기라고 말하는 그 10년간 얼마나 부단히 내공을 쌓아 올렸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과가 10년이 지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10년간의 다양한 글쓰기 실험과 그의 내공이 충분히 성숙할 수 있는 노력이 깔려 있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인 만큼 가끔 황당할 정도의 졸작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없지도 않은데, 무엇보다 본격 미스터리 기준으로 보면, 동기나 트릭 등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우연에 의존하는 것들이 많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을 둘러싼 논쟁을 비롯하여, 본격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작가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논쟁이 있는 이유 역시 그가 본격 추리소설파로 데뷔를 하였다가 다양한 장르로의 변용을 급격하고 다양하게 펼쳐냈기 때문이지 그가 그만한 소양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본격 추리소설에서 한참 벗어난 장르를 시도했다 싶어 논란이 거세질 즈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본격 스타일의 미스터리를 집필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그런 논쟁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작품 내에 그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 및 현상들을 잘 끼워 넣는 편이고, 그리고 그게 내용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한신 아와지 대지진, Y2K,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19까지 소재로 활용되었다.


10년 암흑기를 벗어나 한국에서의 저평가도 영화의 대히트와 함께 날려버린 <비밀> 소설판에서 주인공의 직장은 자신이 유일하게 월급쟁이로 일했던 자동차 부품회사고, <탐정 갈릴레오>에서도 공대생이 아니고서는 결코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디테일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던지, 스노보더 마니아로 유명한 그의 설산 시리즈를 보면, 스키장에서 시즌 내내 살면서 관찰하지 않으면 써내지 못할 스키장의 디테일들이 그의 작품에서는 묘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쿄에서 집필활동을 계속하면서도 오사카 출신이어서 작품에 오사카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등장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는 최소한 자신의 경험치를 통해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상상하거나 어림짐작으로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습성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순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전업 작가로 도쿄 중심가의 한 맨션에서 ‘가족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교사이기도 한 위대한 존재’인 네코 짱(고양이)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 그의 삶에는 ‘술시’라는 독특한 시간이 있는데, 밤 11시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혼자 또는 벗들과 술을 마시는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다. 


시계수리공이었던 부친이 늦은 밤까지 일을 끝내고 “아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냈군.”하면서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감을 끝내면 이모쇼추(고구마소주)를 마시면서, “그래, 그 대목은 그걸로 괜찮겠지, 아휴, 거긴 고쳐 쓰는 게 좋았을걸.” 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때로는 도쿄 긴자의 바 ‘문단’을 찾는다. 다양한 업계 사람들을 접하면서 현실 감각을 얻는 곳이며, 편집자들을 만나 인물과 이야기 전개 방향을 논하기도 한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에 대해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신에게 이 엄청난 당대의 베스트셀러 이야기꾼의 삶을 보여주는 이유는 그의 암흑기 10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기 위해서이다.

<내일의 죠>와 <거인의 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내일의 죠>와 <거인의 별>이라고 하며 자신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학 시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적도 있었지만, 이 두 작품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밝혔다. 항상 읽는 책이라고 하며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다가 잠든다고 한다.


참고로 이 시리즈에서 다룬 바 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다 읽는 것은 도서관의 한 서고를 다 읽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다 읽었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정통파 사회성 추리소설의 교과서로 학습은 이미 대학 당시 마쳤다는 것이고, 앞서 언급했던 만화도 읽지 않던 그 중학교 시절의 습성은 이미 완전히 고쳐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간저서만 약 750권에 달하는 마쓰모토 세이초

그는 원하는 명문대 게이오에 떨어지고 방황하던 시절 손에 잡고 시작했던 그의 정통 추리소설을 글쓰기 세포로 습득했고, 그 다작왕의 추리소설 학습의 결과물로 졸업과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취직했던 일보다는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국 작가로 데뷔했지만, 원하는 자신만의 형태를 갖추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수련했다.


내가 앞서 그 시간을 ‘암흑기’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그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혼까지 하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암흑기로 불릴 뿐, 지금 그가 대가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보면 그 시간이야말로 지금의 그가 있게 만든 담금질의 시기였을 것임을 그를 포함한 모두가 인정한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잘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그 시기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책은 고사하고 일본인들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만화책조차 중학생 시절에도 읽지 않던 소년은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공부도 하기 싫다며 수백 권의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며 추리소설의 세포를 자신의 영혼에 알알이 새겨가며 추리소설가로서의 꿈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일본 열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마니아층을 가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가 가장 못하고 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것을 자신의 특장점으로 바꿔 그 분야의 최고로 오른다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당신이 지금 암흑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너무 힘들고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면, 오늘 히가시노 게이고의 삶을 통해 뭔가 느끼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이 계속해서 암흑 일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내 앞으로 끌고올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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