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 어느 한순간도 쉬웠던 하루는 없었다.
서서히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적막과 암흑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에 보았던 세상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내 영혼을 해방시킨 선생님이 올 때까지 그랬다. 그러나 태어나 처음 19개월 동안 나는 넓고 푸른 들판, 빛나는 하늘, 나무와 꽃을 언뜻이나마 보았고, 이후에 찾아온 캄캄한 암흑도 이것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일찍이 본 적이 있다면 '대낮도 대낮이 보여 준 것들도 이미 내 경험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병을 앓은 후 몇 달 동안 있었던 일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다만 엄마가 가사일로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닐 때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있거나 엄마의 옷자락에 매달려 있던 광경만 기억이 난다. 나는 두 손으로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고 모든 동작을 관찰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곧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서 내 의사를 서투른 몸짓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 엄마도 또한 내가 많은 일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었다. ... 앞을 못 보는 긴 암흑의 세월 동안 그나마 겪었던 밝고 좋은 일들은 모두 엄마의 자상한 지혜 덕분이었다.
아빠는 슬픈 마음과 많은 걱정을 안고 가는 여정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고민은 전혀 모른 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짜릿한 여행만 즐거울 뿐이었다.... 내 몸짓을 잘 알아듣는 걸 보고 나는 벨 박사(전화기 발명가, 농아들의 교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금방 싹텄다. 하지만 그때 벨 박사와 나눈 인터뷰가 내가 어두움에서 빛으로, 고립에서 우정과 동료애로 그리고 지식과 사랑으로 옮겨 가는 관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벨 박사는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아학교의 교장에게 편지를 써서 나를 가르칠 유능한 선생님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아빠에게 조언했다. 아빠는 조언대로 했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선생님(설리반)을 찾았다는 위로의 확약이 담긴 친절한 답장을 받았다.
“누군가 펌프에서 물을 긷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꼭지 아래에다 내 손을 갖다 대셨다. 차디찬 물줄기가 꼭지에 닿은 손으로 계속해서 쏟아져 흐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다른 한 손에다 처음에는 천천히, 두 번째는 빠르게 ‘물’이라고 쓰셨다.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나는 마치 얼음조각이라도 된 양 가만히 서 있었다. 갑자기 잊혀진 것, 그래서 가물가물 흐릿한 의식 저편으로부터 서서히 생각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돌아오는 떨림이 감지됐다. 언어의 신비가 그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