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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15. 2022

천재라는 부담을 평생 안고 이혼에 슬럼프에 빠져도 –5

골프황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역사를 써나가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286


영국의 호일레이크 코스에서 개최된 제135회 The Open Championship에 참가한 타이거는 연습 라운드를 돌면서 그라운드 상태에 걸맞은 플랜을 짜고 시합에 임한다. 딱딱히 말라 굳어 버린 호일레이크 코스에서는 아무리 눌러 때려도 볼이 계속 굴러갔다.


그런 상황에서 쓸데없이 멀리 쳐 봤자 계산 안 되는 골프가 될 것이라 판단한 타이거는 나흘 동안 가장 계산이 안 서는 장비인 드라이버를 딱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모든 클럽을 평소보다 한 클럽 아래로 잡고 경기를 치렀다. 즉, 평소에는 5번 아이언을 들었을 거리에서 6번 아이언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도 충분한 런으로 5번 아이언만큼 거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볼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경기 플랜을 잡은 타이거의 선택은 탁월했다. 첫날 5 언더로 공동 2위의 좋은 출발을 보인 타이거는 둘째 날 단숨에 7타를 줄이며 선두로 뛰어올랐다. 특히 14번 홀에서 2번 아이언으로 티샷 한 뒤 200야드 정도 남은 세컨드샷이 이 글을 기록했던 것은 대회 중 타이거가 자신감을 갖게 된 터닝 포인트이자 우승을 위한 결정적인 샷이었다.


타이거 최고의 샷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글샷이 나온 뒤 순풍에 돛을 단 듯 타이거는 선두를 질주했고, 3~4라운드에서도 타수를 줄이며 도합 18언더파의 성적으로 우승을 달성한다. 전년도에 이은 대회 2연패이자, 월터 헤이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통산 11회째 메이저 타이틀 획득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우승을 결정지은 뒤 캐디, 스티브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던 타이거의 모습이었다. 코스 밖에서는 밝은 미소를 보여 주지만 코스 안에서는 냉혹한 승부사로, 장갑을 벗은 뒤에야 본심을 드러 내었던 타이거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이다.  

눈물이 터져버린 타이거 우즈

“아버지의 혼이 느껴진다”라며 대회 전 결의를 다졌던 타이거는 아버지에게 맹세한 자신만의 약속을 우승으로써 지켜 내었고 인터뷰에서도 “아버지의 영전에 바친 이 우승은 너무도 뜻깊다. 마지막 퍼트가 들어간 뒤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스티브(캐디)가 ‘이 우승은 너의 아버지 것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The Open Championship에서의 우승 이후 타이거는 그야말로 '포효'하기 시작한다. 올 타임 메이저 우승 회수 단독 2위에 등극하고 WGC 대회 중 하나인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통산 5번째 우승을 획득해 낸 것이다.     


PGA 투어 내에서의 높은 포인트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타이거는, 플레이오프 첫 대회인 ‘도이치뱅크 챔피언십’에서 비제이 싱을 2타 차로 제치고 우승하며 출전한 4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세운다.


약 한 달 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에서도 대회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쥐며 시즌 8승째를 거머쥔 타이거는 최종적으로 Tour Championship 우승은 놓치지만 해당 시즌 통틀어 최고의 선수임은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이후, 1월의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3년 연속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쥔 타이거의 발걸음은 2007년에도 거침이 없었다. Masters Tournament와 U.S. Open에서는 준우승에 그치며 메이저 사냥은 뜻대로 안 풀리는 모양새였지만, 2개의 WGC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큰 대회에서의 장점은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The Open Championship에서 TOP 10 진입은 실패했으나 시즌 마지막 메이저 PGA Championship에서 통산 13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4년 연속 메이저 우승, 해당 대회 2년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본다.     

2007 PGA Championship 우승 당시

그리고 딸 알렉시스 우즈가 태어나며 그 자신도 아빠가 된다. 그런데 그즈음. 참가 대회를 선별하며 스스로를 관리해 왔던 타이거에게 이 시점부터 무릎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강한 스윙을 위해 왼쪽 무릎에 압박을 많이 주었던 타이거의 스타일이 결국 몸에 부담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2월의 유러피언 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통산 2승째를 거둔 뒤 WGC 악센츄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스튜어트 싱크(미국)를 꺾고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지만 타이거의 무릎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타이거는 Masters Tournament가 끝난 뒤 왼쪽 무릎에 관절 경 수술을 받았다. 짧은 재활 기간 동안, 타이거는 왼쪽 경골의 이중 스트레스 골절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복귀를 선언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빨리 경기에 복귀할 의사를 비춘 타이거는 필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았다. 무릎은 물론 허벅지 근육에 문제가 생기는 등 컨디션이 최악에 달한 6월, 캘리포니아 토리 파인즈에서 열린 제108회 U.S. Open에서 타이거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골프의 역사를 쓴다.     


총 71타로 구성된 본 대회 1라운드 18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한 타이거는, 순간 자리에 서서 고통스러운 얼굴을 짓더니 절뚝거리며 이동하기 시작한다. 결국 1 오버파로 첫 날을 마친 타이거는 대회 내내 다리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도 메이저 우승을 향한 타이거의 집념은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무릎 부상의 여파로 샷이 안정감이 떨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땐 스코어를 지켜 내었다. 우여곡절 끝에 3라운드 70타, 총 3 언더로 1위를 지키며 파이널 라운드를 맞이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캐디인 스티브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타이거가 이동할 때마다 무릎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구역질 나는 줄 알았지만, 너무도 의연하게 버티며 플레이하는 타이거의 모습에 티도 못 냈다. 매우 영웅적인 모습이었다.”     


그만큼 당시 무릎의 상태는 최악이었으며, 그에 따른 왼쪽 허벅지 근육에도 일부 손상이 일어난 상황이라 멀쩡히 경기를 치르는 타이거의 모습은 기적 그 자체였다. 파이널 라운드 파트너였던 리 웨스트우드도 타이거와 같은 이븐파로 여기서 한 타를 줄이면 연장전에 갈 수 있는 상태였다. 리 웨스트우드도 좋은 서드샷으로 4.5미터가량의 내리막 라이를 남겨 둔 채 타이거와 함께 그린에 오른다.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타이거의 샷이 성공할 경우, 이어져 펼쳐지는 18홀 Monday Play-Off가 열리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 면밀히 그린을 체크한 타이거는 퍼팅은 언제나처럼 가볍게 스트로크 하여 홀의 우측을 살짝 핥으며 쏙 들어가 버린다. 모든 것이 드라마였다.     

통상적이라면 일요일의 우승 뉴스와 해당 주 대회의 전망으로 바빠야 할 날이지만, U.S. Open의 전통대로 18홀 플레이오프가 열린다. 3만여 명의 갤러리로 가득 찬 플레이오프에서 타이거와 로코는 환상적인 월요일을 연출해낸다.     


강한 상대와 붙어 쉽게 따돌리곤 했던 타이거는, 2000년 PGA Championship 때처럼 의외로 하위 랭커를 상대로 고전할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다리 부상의 여파이기도 했다. 10번 홀까지 타이거는 이븐파, 로코는 3 오버로 타이거의 완승이 기대되었으나 11번 홀부터 다리 부상 때문인지 타이거의 샷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로코의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의외의 결과로 뒤집히는가 싶었지만 여기서 타이거의 저력이 다시 발휘되기 시작한다. 파 5 18번 홀에서 티샷이 운 좋게 벙커 턱을 맞고 페어웨이에 올라왔고 아이언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리며 이글 퍼트의 기회를 맞이한다. 이글 퍼트는 실패했지만 버디로 마무리를 지었고 로코가 ‘우승 확정’ 버디 퍼트를 실패하면서 결국 18홀 플레이오프도 무승부가 되었다. 그리고 서든데쓰 플레이오프를 치러 첫 홀에서 타이거가 파, 로코가 보기를 기록하며 기적 같은 타이거의 14번째 메이저 타이틀이 확정되었다.     

로코와 함께

한쪽 다리로만 플레이하며 우승한 타이거의 승부욕과 집념은 화제가 되었다. 당시 타이거는 다음과 같인 인터뷰를 고해성사와 같이 한 바 있다.     


“내가 겪었던 모든 대회 중 가장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우승을 차지해서 너무 감격적이다. 더 이상의 플레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러나 몸의 부담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대가는 컸다. 감동적인 우승 뒤 얼마 후, 타이거는 공식적인 성명을 통해 무릎 부상 치료 등을 이유로 투어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힌다. 남은 시즌의 포기를 밝힌 타이거는 메이저대회를 포함한 모든 대회의 참가를 취소하고 재활에 몰두한다.     


재활 및 투어 중단 선언 후 8개월 동안 필드를 떠난 타이거는 바로 둘째 아이이자 아들인 찰리 엑슬 우즈가 2009년 2월에 탄생한 것. 복귀 직전에 태어난 아들로 인해 타이거는 더 절치부심한 모습으로 재활을 마무리 지으며 그해 2월 말 투어 복귀를 선언한다.     


복귀 후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회 중 하나인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한 타이거는, 1~3라운드에서 계속 언더파를 내며 변함없는 경기력을 과시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션 오헤어(미국)와 함께 한 타이거가 17번 홀까지 마쳤을 때 4언더파로 션과 동률이었다. 세컨드샷을 나란히 그린에 올린 두 선수 중 션이 먼저 퍼팅을 했고 볼은 홀에 미치지 못했다. 신중하게 라이를 살핀 타이거는 대선배 아놀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6m가량의 퍼팅을 성공시키며 버디를 획득, 2009 시즌 첫 승을 거두어낸다.     

  

이후 또 다른 대선배 잭 니클라우스가 호스트인 ‘메모리얼 토너먼트’ 우승을 거둔 뒤 WGC 대회인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도 우승한 타이거는 도합 시즌 6승을 획득, 무릎 수술로부터 정상적으로 회복했음을 경기력을 통해 입증하였다. 투어 챔피언십에서도 1승을 거두었고, 비록 최종전인 ‘Tour Championship’에서 우승은 필 미켈슨에게 빼앗겼으나 종합 페덱스컵 포인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1천만 달러의 보너스까지 획득하는 등 화려한 컴백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상금왕 – 다승왕 – 올해의 선수 – 평균 타수 1위 등을 싹쓸이하며 왕의 귀환을 알린다.     


하지만 메이저 타이틀에서는,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The Open Championship에서는 1~2라운드 5 오버파라는 성적으로 프로 생활 두 번째 메이저 컷오프의 수모를 당했다. 첫 번째 컷 탈락은 아버지와 관련한 심리 상태가 작용했다 볼 수 있지만 이번 탈락은 실력으로 컷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기에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 Championship은 타이거에게 중요한 대회였다. 복귀 후 첫 메이저 타이틀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질적으로 해당 대회 3회 연속 우승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2006~2007년 연속 우승에, 2008년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 포기), 무엇보다 The Open Championship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에 시즌 마지막 메이저만 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양용은이라는 뉴페이스가 거기서 등장한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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