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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0. 2022

정치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너만 잘하면 된다. 너만!

자신도 바로잡지 못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한심한 자들에게.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季康子가 孔子에게 政事를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政事는 바로잡는다는 뜻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이 장에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사(政事;다스림)에 대한 질문을 대부(大夫)인 계강자(季康子)가 하고 그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춰 공자가 대답해준다.     


계강자 역시 <논어(論語)>에 적지 않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공자가 살아 있을 당시 계씨(季氏) 가문의 마지막 대부이기도 했던 사람이다. 추정컨대, 이 장의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노나라로 다시 돌아온 공자가 68세부터 세상을 떠난 73세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논어(論語)>에서 노나라 애공과 계강자가 등장하는 공자와의 대화는 대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공자의 생애를 기준으로 보자면, 말년의 기록인 셈이다.     

굳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앞에서도 한번 상술한 바 있지만, 공자의 철학과 공자의 사상이 어느 정도의 나이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있는가를 비교 분석하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확인했던 바와 같이, 기본적인 지식 및 사상과 가치관의 기본이랄 수 있는 부분을 이미 30대 중반에 완성(?)했다고 인정받는 공자가 수많은 인생의 고초와 천하를 주유하며 그 공부와 사상을 적용하고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그 이론과 사상을 가다듬고 했던 것들이 정련(精鍊)되어 이 간단한 대화에서도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은 문구가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당연해서 많은 이들에게 자칫 흘려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엄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政事는 바로잡는다는 뜻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오직 하나. 한 마디로 ‘정치’라는 것을 ‘바로잡는다’라는 동사로 규정한다. 본래 이것은 공자가 말하고서 그러한 의미로 규정된 것이 아니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이라는 글자의 본래 의미 자체가 ‘바르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자의 의미를 강조하여 다스림의 요체로 삼은 이유이자 그 말의 의미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공자는 늘 그렇듯 자신의 가르침이 갖는 특성에 따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여러 가지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제시한다.      

‘다른 사람을 다스려야 하는 위치에 있는 너부터 모범을 보인다면 굳이 그것을 일부러 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공자의 이 간단한 듯 심오한 한 문장의 가르침에 대해서 범 씨(范祖禹(범조우))는 자신의 이해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한다.     


“자신이 바르지 못하고서 남을 바르게 하는 자는 있지 않다.”     


이것은, 바로 어제 살펴보았던 ‘내로남불’의 공자 설명 버전에 바로 이어 이 장의 내용이 나온 맥락이기도 하다. 이에 구체적으로 이 대화의 상황이 왜 계강자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인지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기에 공자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서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한다.   

  

“노나라는 中葉(중엽)으로부터 政事(정사)가 大夫(대부)에게서 나오니, 가신들이 나쁜 버릇을 본받아서 邑(읍)을 점거하고 배반하여 바르지 못함이 심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것으로써 말씀해 주신 것이니, 康子(강자)가 올바름으로써 스스로 극복하여 三家(삼가)의 옛 버릇을 고치게 하고자 하신 것이었는데, 애석하다, 강자가 利慾(이욕)에 빠져서 이렇게 하지 못함이여.”     


그렇게 공자를 곁에 두고 이것저것 묻고 배우려는 듯 보였지만, 계강자(季康子)는 공자의 말만 듣고서 결국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호씨는 개탄한다. 노나라가 개국할 때와는 달리 나라가 중반이 되어가면서 군주가 아닌 세력이 강한 세 가문의 대부들이 참람된 권력 행사를 한 것에 대해 공자는 심히 불만이었고 걱정했으며 개탄한 바 있다.      

이 장에서 강조했던 바와 같이, 이 장의 내용을 평소 공자의 기본적인 가르침으로 풀어 해석하자면,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배우고 익히는 자들에게 모두 적용되어야 할 것이지만 특히나 직접 위정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공자에게 지혜와 조언과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구하려 들었던 당대의 전국에 있는 정치를 한다고 하는 인물들에게 가장 절실한 요소였다.     


공자는 ‘주이불비(周而不比)’라는 가르침으로, 자신들의 사욕(私慾)을 위해 편당을 지어 그것을 정치적인 담론이랍시고 암묵적인 동조하에 부정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자들에 대해 늘 추상과도 같은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정말로 올바른 정치란 자신의 이욕을 챙기기 위해 서로 간에 상부상조하는 ‘당파(黨派)’여서는 안된다는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정무적 자세를 의미한 것이며, 그렇게 백성을 다스리는 입장이 된 사람이라면 자식을 돌보는 심정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따르고 현재의 자신들을 위정자의 위치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준 백성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까지 설명하고 있다.     


이 장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똑같은 개념에 대해서도 몇 번이나 물었던 계강자(季康子)에게 공자가 다시 한번 뻔하고 지루할만한 도덕책에 나올만한 답변을 해준 것인지, 혹여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꾼들처럼 말로는 청산유수 너무 뻔한 이야기로 원론적인 부분만을 지적한 것은 아닌지 공자를 비슷한 급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에 접하게 되며 경험치로 갈고닦으며 세월을 묵히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공자가 늘 지적했던 바로 그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을 보고서 그를 판단하지 말고,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서 그를 판단하라.”     


공자는 평생에 걸쳐 말만 익숙한 이를 경계하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공자 자체가 눌변(訥辯)과는 거리가 먼 달변가였고, 말이 아니고서는 사상이나 가르침을 전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공자를 배우고 <논어(論語)>를 처음 읽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논어(論語)>를 수차례 반복해서 읽고 해제하고, 한국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대가들에게 사사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가르치면서 어느 순간 그것이 공자의 콤플렉스나 트라우마가 아닌 바로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렇게 강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장의 가르침에서 의미하는 올바른 정치(政治)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열전’에서 두 번째 이야기로 ‘관안열전(管晏列傳)’를 소개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지만, 사마천은 <사기(史記)> 열전을 집필하면서 소개하는 인물들의 순서에조차 큰 의미를 부여한 세심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그 열전의 두 번째에 소개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열전의 등장인물 중에서도 사마천이 그에게 부여했던 평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관안’이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바로 당신도 익히 들어보았음직한 관중(管仲)과 안영(晏嬰)의 이야기이다. ‘안영(晏嬰)’은 이전 공부하면서도 설명이 나왔던 인물인데,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의 재상이었으며, 제나라를 춘추오패(春秋五霸)로 만든 견인차 역할의 인물이었다. 훗날 ‘안자(晏子)’로까지 칭송받으며 <안자춘추(晏子春秋)>라는 책까지 저술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마천이 위정자 안영(晏嬰)을 왜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했는가를 다음의 일화를 통해 이 장의 가르침에 투영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제나라에 ‘북곽소(北郭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냥과 짚신을 짜서 모친을 봉양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안영(晏嬰)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안영(晏嬰)이 북곽소(北郭騷)에게 돈과 곡식을 주니,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받아갔다.      


그러던 중, 안영(晏嬰)이 제경공으로부터 의심을 받아 피신하던 차에, 북곽소(北郭騷)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뜻밖에도 북곽소(北郭騷)는 “알아서 처리하십시오”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안영(晏嬰)을 문전박대했다.     


안영(晏嬰)은 그 옛날 자신이 도와준 북곽소(北郭騷)가 맞는지 의심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심한 표정으로 다시 피난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안영(晏嬰)이 떠난 직후, 북곽소(北郭騷)는 친구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찍이 안영(晏嬰)에게 노모를 봉양코자 일용할 양식을 구했는데, 안영(晏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곡식을 주었네. 나는 안영(晏嬰)의 인자함과 의로움에 감복했고, 내 노모를 봉양하는데 도와준 은인이니, 나는 그를 위하여 내 목숨을 걸고 도와드리고자 하네.”     


그러고 나서, 친구에게 대[竹] 광주리와 검(劍)을 들게 하고, 궁궐로 찾아가 신하가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안영(晏嬰)의 억울함을 살펴주십시오. 이런 안영(晏嬰)과 같은 인재를 잃으면 제나라로서는 크나큰 손실입니다. 저의 목숨을 걸고 증명하겠나이다.”     

그리고 바로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친구가 가지고 온 대광주리에 담고서, 어서 제 나라 군주에게 진언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다시 궁을 찾아가 대광주리 안에 있는 북곽소(北郭騷)의 머리를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제 친구는 제나라를 위하여 안영(晏嬰)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바쳐 증명해냈고, 나는 북곽소(北郭騷)의 친구로서 친구의 진언을 위하여 내 스스로 자결하겠나이다.”     


그리고 다시 군주 앞에서 자신의 목을 베며 죽음으로 그 진정성을 내보였다. 이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일개 백성 두 명의 의기에 찬 모습에 깨달음을 얻은 제경공은 직접 안영을 다시 찾아가 상황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제경공을 통해 어떤 일이 있어 군주가 다시 자신을 찾아왔는지에 대해 들은 그간의 사정을 들은 안영은 통곡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훌륭한 정치인이 못되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로다!”      



이 일화는 다소간의 대륙 사이즈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긴 하겠으나 실화이다. 이 일화의 가르침에는 단순히 은혜를 갚은 북곽소(北郭騷)를 본받아야 한다던가 진실된 정치인으로서 백성들에게 베풂의 정치를 펼쳤던 안영(晏嬰)의 행동에 방점이 찍혀져 있지 않다. 바로 마지막에 내뱉은 안영(晏嬰)의 반성과 깨우침의 절규에 담겨 있다.      


수려한 언변과 주워들은 고전의 멋진 말은 누구나 외워서 떠들고 다닐 수 있다. 공자가 말만 익숙한 이를 그토록 미워하고 제자들에게 매번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했던 것은 말을 잘하는 이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다. 말‘만’ 잘하는 이가 되지 말라고 경계했던 것이다.      


그것이 왜 다른 이들에 대한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공자 자신에게 향한 이야기인가 하는 것은 공자 자신이 천하를 주유하며, 그리고 수많은 군주와 위정자들을 만나며 자신이 사욕을 가지고 한 자리를 얻겠다고 했던 정치꾼들과 어떻게 구분될지에 대해서 공자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을 것이다.     

공자가 그 수많은 정치꾼들이나 모사꾼과 변별될 수 있는 것으로 찾았던 것은 바로 위 일화에서 안영(晏嬰)이 내뱉은 절규와 같이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공자가 이 장에서 일침을 가하려던 것은 이미 수많은 잘못된 태도로 일관하고 앞으로도 개선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계강자(季康子)가 아니라 자신이 70 평생에 걸쳐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자신을 질정하기 위한 목소리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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