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보라의 이혼 사실은 그즈음 우리에게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보라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있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의 아들과 연애를 하며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약간 배가 아플 만한 친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무엇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친구의 입장으로,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한 그녀의 행복을 누구보다 기원했고 아낌없는 축복으로 그 결혼을 축하해줬다.
그런 그녀가 결혼 6년 만에 이혼을 한 것은 그녀의 이른 결혼 소식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충격이었다. 아이까지 남편과 시집에 양육권 포기 각서를 써주고 이혼하자마자 가게를 한다며 청담동 한복판에 고급 유럽 스타일의 의상실을 마련한 거였다. 그런데 그 보라가 이젠 남자 친구까지 만나기 시작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우리 아까 어디까지 했지? 음. 내가 만나는 친구..”
“뭐하는 사람이니? 아니, 몇 살인데... 만난 지 오래됐니?”
“...”
나도 모르게 질문을 연거푸 내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말처럼 난 차츰 나도 모르는 사이 수다가 몸에 배어버린 아줌마가 되어버린 탓인지도 몰랐다.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 봐서 그렇게 한꺼번에 몰아치니, 몰아치길...”
그녀의 핀잔에 겸연쩍은 헛웃음도 나왔지만, 보라의 새남자라면 굳이 묻지 않아도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법 하다는 생각에 그녀의 옆에 앉아 있을 그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보라를 잘못 본 내 커다란 오판이었다.
3
“스물일곱이야. 그 사람.”
“얘, 너...!”
스물일곱이면 우리보다 무려 아홉 살이 어렸다. 요즘 아무리 유행하는 커플들의 유행이 연상녀 연하남이라고 미용실에 꽂혀있는 잡지에서 간혹 읽은 적은 있지만, 그 잡지속에 등장하는 미국 배우나 연예인도 아니고 실제 보라가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설마 그냥 한번 놀자는 거겠지.
“농담 마라 얘.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래.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런 친구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머그잔의 커피가 그녀의 진지함에 흘러넘칠 정도로 보라는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우리가 삼십 대 중반이라고 해서 꼭 우리보다 나이가 지긋한 늙다리라도 만나야 한다는 거니? 나도 한때는 그랬다. 내 남편이라는 작자가 저보다 10살 어린 여자아이를 자기 학생이라는 이유로 집안에 데려 오고 했을 때도 그저 나이가 어린 학생 얘들이 교수한테 애교떨고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애 속옷이 우리 집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
“보라야...”
세월이 꽤 흐를 동안에도 보라의 결혼생활이나 왜 그녀가 이혼했는지 그저 대강의 이유도 아는 친구가 없었던 것은 보라가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뭐라 물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우리끼리의 배려라면 배려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저명한 영화평론가이자 교수인 자기 남편과의 과거를 이런 식으로 내게 먼저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처음엔 왜 그렇게 영계에 탐닉하나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탈선을 해볼까 했는데 그게 영 그렇게 안되더라구. 그런데 그냥 얌전히 지내는 동안 여행을 가서 남자를 만났는데 말도 너무 잘 들어주고 매너도 너무 좋고 나랑 그렇게 맞을 수 없더라구. 처음엔 생각했지. 왜 내가 이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조건만 따지고 그런 남자와 살았을까, 하고. 그런데 난 이혼녀고 거리낄 게 없는데 굳이 이 남자랑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싶더라구, 그리고 내가 무슨 숫처녀도 아닌데 내 알몸을 보고 싶어 하는 남자한테 못 보여줄 거 뭐 있겠나 싶더라 이거야. 그렇잖아. 나도 내가 갖고 싶은 몸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어. 그게 뭐가 잘못이니? 그냥 얌전히 헤어지고 그렇게 안 보려고 했는데 몸이 벌써 달아올라있더라 이거야.”
“보라야. 그만해. 됐어.”
난 잠시 그녀가 들고 있는 머그잔에 든 것이 커피가 아니라 진한 럼이나 진으로 착각할 뻔했다. 그녀는 한번 이야기의 물꼬가 터지자 그간 자신의 안에 억누르고 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터뜨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솔직하고 진솔했던 것도 처음이었지만, 난 내심 그런 모습들이 겁이 났다. 빨리 친구들이 와 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연주에게서 곧 오겠다는 전화가 왔을 때 보라가 다시 진정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연미야. 난 탈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규정짓는 그런 고정관념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정말로 이 사람 사랑해. 지금은 언더에서 음악 하지만 곧 유학도 보내줄 생각이야. 이 사람만 생각하면, 이 사람하고 있으면 내가 정말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럼 된 거 아니니?”
연주가 들어와서 가게 문을 닫고 우리끼리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연주에게서 보라에게서 만큼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기까지 나는 보라의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그것은 다시 시간이 흐른 뒤, 충격이 아닌 곱씹을만한 우리 나이 즈음의 있을 법한 삶의 딜레마라고 여겨졌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리고 변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라고.
4
“그렇게 오래된 건 아냐. 그 사람이 사업하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연주는 오랜 일본 생활이 오히려 힘겨운 듯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떠나서 아이를 낳느라 1년 들어왔던 것을 빼고는 3년 동안을 내내 일본에서 연구소의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데 소진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국내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내의 교수직을 그리 쉽게 얻어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잔뜩 움츠러든 국내 경제상 그를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선뜻 받아들이는 업체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혼자서 아이만 데리고 한국에 나온 것은 의외라면 의외였다.
“그래서... 남편한테는 얘기는 꺼내 봤어?”
보라의 입심이 다시금 그녀의 말을 막았다.
현정의 날카로운 눈매와 나의 단도리에 보라가 움찔하긴 했지만 그녀는 연신 연주의 얘기에 빠져들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은 남편하고 이혼하고 자기랑 결혼하자고 해. 하지만, 이혼이라는 거... 함부로 생각할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어떤 때는 이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가도 나만 힘들면 상관없는데 여러 사람 불행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애는 어떻게 하라고, 그 사람이 내가 데리고 가라고 쉽게 수긍할 사람도 아니고, 시집에서도 이혼을 쉽게 허락할 분위기도 아닌데...”
연주는 우리 중에 가장 늦게 결혼을 한 경우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보라와 성격이 맞아 쉽게 어울렸고,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집안일의 대부분을 하는 소녀가장 아닌 소녀가장 역할을 해서 밑의 동생 둘을 버젓한 대학을 졸업시키고 결혼까지 시키고 나서야 자신이 결혼을 한 대단한 친구였다. 그런 연주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우연한 자리에 결혼할 남자를 소개받고서 연주의 결정이 꽤나 진지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를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집안으로 보나 외적인 조건은 물론이고 잠시였지만 말하는 분위기나 성격도 연주를 행복하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것은 어려울 것이 없는 결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초혼이 아니라는 것을 연주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녀의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의 이혼사유가 그의 문제도 아니었고, 아내의 정신적인 문제였다는 말에서처럼 그녀는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닥 문제 될 것이 없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고 남편 역시 똑똑한 사람이라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주고 헌신했다.
일본 생활에서 그녀는 외로움을 먼저 맛보았다. 일본에 떠나기 6개월 전부터 배운다고는 했지만 결혼 준비 때문에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뭘 할 것이라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 산후조리를 하러 서울에 들어왔을 때에도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고 아이가 난산이라 힘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행복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남편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새 남자 때문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작은 사업을 하는 무역회사의 사장이라고 했다. 일본에 와서 그녀가 전공했던 전통공예의 설명을 들으며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상처한 지 2년이 된 연주와는 동갑내기였다. 연주는 늘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서 함께 할 시간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하기 일쑤였고 남편은 주사가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연주 몰래 친자감별을 하려고 했던 일이 드러나 연주가 출산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결과도 가져왔었다고 후에 듣게 되었다.
그런 그녀는 가끔씩 공예품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만나는 그와 가까워졌고 가끔 차나 한 잔 하고 싶다는 말에 남편이 세미나를 떠난 이튿날 낮에 집에 놀러 온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같이 자게 되었다고 했다. 연주는 처음 그에게 연민을 느낀 것이 점점 사랑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지만, 그에게나 자신에게나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연주의 얼굴에는 그런 의지마저도 희석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강해 오히려 내 마음속이 갑갑해져 왔다.
“끝낼 순 없는 거니?”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그게 맘대로 잘 안돼.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니 남편은 괜찮은 거구?”
“아니. 괜찮지 않아. 그 사람도 눈치를 챘는지 몰라도 계속 전화를 걸어서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싶어 해.”
연주는 커피 한잔을 다 마시는 동안 자신이 마신만큼의 커피보다 훨씬 많은 3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모두 토해내고는 눈물을 떨궜다. 그런 연주의 어깨를 감은 것은 보라였다.
“괜찮아. 나 같은 이혼녀도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뭘. 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난 새파랗게 젊은 애인하고 재밌는 거 있으면 그거 보러 다니고 여행 다니고 그런다. 그런데 니가 무슨 바람이 난 것도 아니고 남편이 그렇게 정신적으로 쪼는데 그 정도도 못하니 그냥 헤어져버려. 하여간... 사내자식들이 젊은 년 만나서 바람피우는 건 영계를 좋아하는 거고... 여자가 그러면 뭐 화냥년 취급하려고 달려들어, 달려들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