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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1. 2022

COFFEE TIME - 1

여름휴가 특집 단편소설 특별선

   

커피 한 잔은 여자들에게 있어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마력을 지닌다.     

                          1     


  “그 사람이 그러는 거야. ‘너를 보자마자 난 바로 이 여자라는 걸 첫눈에 알아봤어. 난 널 단순한 한 여자로만 사랑한 게 아냐. 넌 네게 있어 아주 특별한 존재야, 아니, 그 이상이야...’라구 말이야. 내가 이제까지 사는 동안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어.”


  그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깊은 한숨을 들이마셨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말했어?”


  연주의 얘기에 우리들 사이에선 저마다 침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할 짜릿한 긴장감 같은 것이 묘하게 흘렀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는 연주의 얼굴을 사뭇 처연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삶의 깊은 골이 패어 그 안을 힘겨움으로 채운 채 지쳐 있었다.


  마음속이 답답하고 암울해져 왔다.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말에서 시작된 것이 이렇게까지 진지한 서로 간의 얘기까지 진행되어 올 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학교 다니던 때부터 서로의 삶에 있어 밀쳐지지 않을 만큼의 팽팽한 긴장감을 지니고 있던 서로 간의 알력 아닌 알력관계로 봐도 지금 연주가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진지하게 친구들을 앞에 두고 자신의 묘한 인연으로 이어진 남자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커피타임에서 우러나온 묘한 마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남자랑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아니, 정확히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 거야?”


  성급하게 보라가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연주를 예의 주시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얘! 넌 뭐가 그리 성급해. 그래서, 그래서 그 남자가 뭐라고 했는데...?”


  “저기...”


  그때 막 현정이가 카페로 들어섰다. 그녀의 등장이 연주의 이야기를 다시 끊었다. 현정은 오랜만에 만나는 보라의 얼굴도 그렇고, 모두의 얼굴이 낯선 것처럼 쭈뼛거리며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자신을 환히 반기는 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내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오랜만이다, 얘.”


                          2     


  모임은 딱히 정기적이 아니었다. 물론 모임의 특정 목적이나 그닥 탄탄한 연계성을 가질만한 목적이 우리에겐 없었다. 그저 단순히 친구이고 여고동창이라는 것이 그 목적이라면 목적일까. 서로 결혼을 하고 서른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리고 난 후부터는 서로 간의 시간을 맞추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잊지 않고 간간히 전화통화를 하고 서로 사는 것을 확인하며 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날의 만남도 그러했다. 연주가 일본에서 돌아온 것도 계기가 되긴 했지만, 보라가 새로운 매장을 청담동에 차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한번 보자보자만 하던 차였다. 유일한 전업주부인 나를 제외하고 서로의 시간을 잘 맞추기만 하면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절묘하게 들어맞았던 거였다.


  “계집애 하고는, 얘들 잠깐 시집에 맡기고 나오면 되잖아. 너희 시어머니는 얘들 봐주는 것도 좋아한다며...”


  “그렇기는 한데...”


  “그럼 됐잖아. 우리 일 년에 한두 번 보기도 이렇게 어려우면 되겠니? 나두 이번 물건 선적 들어오는 것 때문에 정신없어. 더 바빠서 얼굴 까먹기 전에 커피라도 한잔하자.”


  “연주는...”


  “응? 아, 네. 가요. 야. 누가 왔나 보다. 연주 얘기는 만나서 하고 모레 3시에 청담동으로 와라. 알았지?”


  보라는 늘 에너지가 넘쳤다. 그저 집에서 아이의 뒤치다꺼리만 하며 지낼 때와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그것이 여자, 아니, 엄마의 힘일까?


  모레 3시면.


  나는 나도 모르게 약속시간에 아이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 몇 시에 나가서 몇 시에 들어올 것인가? 지하철을 탈 것인가? 들어올 때는 어떻게 몇 시쯤 뭘 사 가지고 들어올까 등등의 사소한 상황들까지 미리 체크하고 있었다.


  아이가 들어올 시간이 되었는데.     


  남편은 꽤나 흔쾌히 늦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외출에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아이는 친정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조언 아닌 조건이 붙은 후였다. 마음이 편할지는 몰라도, 엄마에게 갔다가 다시 나갔다가 돌아오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서울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 불편은 그에게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닌 듯 말했다.


  엄마가 우리 집을 잠깐 봐주는 것으로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한가한 커피타임을 갖게 되었다.     


  매장은 한가한 편이었다.


  “이렇게 한가한데 장사가 돼?”


  커피 거르는 종이를 갈면서 보라가 대꾸했다. 그녀의 손엔 내가 마실 커피와 자기가 마실 커피 향이 은은한 커다란 머그잔이 들려 있었다.


  “우리 매장은 많이 파는 것보다는 명품을 원하는 사람들한테 확실한 거 몇 벌만 팔면 그걸로 돼. 워낙 비싼 탓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하곤 다른 옷을 입고 싶다는 거지. 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는 대가로 내는 돈 때문에 내가 먹고사는 거잖니.”


  보라의 시니컬한 해설은 그럴싸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네. 아니요. 지금 친구들하고 있어요. 자기 점심은... 나도 보고 싶어요.”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돌린 채 전화하는 보라의 모습은 가게를 시작하기 1년 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서로 잘 나가는 집안끼리의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아이 하나 낳고 이혼한 그녀치곤 너무도 싱그러워 나보다 다섯 살 정도는 어리게 보였다.


  “누구?”


  “훗! 우리 자기.”


  핸드폰의 폴더를 덮으며 보라가 웃었다. 보라가 그렇게 밝게 웃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보라의 표정은 늘 자신에 차있는 약간은 차가운 듯한 표정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우리 자기라니? 너 남자 친구 생겼니?”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보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소녀의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이니?”


  “응. 왜 난 그러면 안 되니? 이혼녀는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뭐? 너두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 가지고 있는 거니?”


  “아니 그런 게 아니구... 너 정말이니?”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현정이니? 그래. 올 수 있어? 그래? 그럼 우리 매장으로 와. 여기가 어디냐 하면...”

  못 온다고 하던 현정이었다.


  “현정이도 불렀니?”


  멤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올 사람 중엔 현정이도 들어있었다. 현정이가 은행 일을 그만둘 즈음에 보라가 가게를 차렸으니 두 사람이 만난 지도 1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새로 직장을 찾는다고 약속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던 현정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현정이의 날카로운 성격도 성격이지만 서로 간의 배경적 차이나 근본적 차이가 두 사람을 학창 시절부터 자주 함께 보면서도 잘 맞지 않는 견원지간으로 정의해둔 지 오래였다.      


  “나 이혼했어. 앞으로 이혼녀라고 불러줘.”  


  이혼에 성공한 보라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말투도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이혼녀라고 놀리듯 말하는 것에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보라에게 좀 더 괴리감을 갖게 만들었는지 몰랐다. 그녀가 우리보다 훨씬 신식이고 훨씬 진보적 사고를 가졌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녀의 알량한 자존심이 자신의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고 그렇게 스스로를 격하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우리가 보라에게 가질 수 있는 감상의 전부였다. 그건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한 후 그녀가 보내줬던 그녀의 대학 학보 칼럼난에서도 읽었던 것 같다. 난 그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우리 고등학교 앨범 사이에 스크랩을 해둔 채 끼워뒀었다.     




  결혼에 실패한 것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인지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상황을 표현하는 것만 보더라도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결혼을 실패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 이혼은 결혼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입장일 경우는 남성 측에 비해 훨씬 더 그 정도가 확대된다. 한번 시집을 갔던 여자는 물리적으로 혹은 생체학적으로 다소 마모가 있다거나 심리적으로 약간의 흠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중고품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그나마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혼녀라는 존재는 한국사회에서는 물리적으로나,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보다도 심리학적인, 그리고 사회학적인 부분에서 보다 커다랗고 짙은 색의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이 그녀를 격리하도록 조장한다. 법적으로 한 사람의 아내였다는 것을 포함해서 그와 한 침대를 쓰고 혹시라도 그의 아이를 가졌었다거나 낳았었다면 그것은 또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 커다란 혹은 결국 그녀의 존재를 얽워매는 족쇄가 되고 만다......

                                                                                                                     

                                                       보라  기자....     


다음 편에 계속....

https://brunch.co.kr/@ahura/1301






개인적으로 사정이 생겨 오늘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와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을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내일 논어 읽기도 그렇고, 아무래도 며칠간의 재충전 시간이 필요한 지라, 연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본의 아닌 휴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30년 전에 써둔 원고 뭉치 중에서 잡히는 단편소설이 있어 하루에 조금씩 나누어 올리는 것으로 매일 발행 알림 폭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안배하고자 합니다.


그럼 조만간 다시 정규 연재와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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