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전통 한옥집을 개량한 듯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집은 역시나 현관에 양쪽으로 자리한 사천왕 문양이 단청으로 칠해져 있었다. 현관을 지나 디딤돌로 박힌 커다란 바위를 밟으며 들어서자 정면으로 옛날로 말하면 사랑채가 먼저 보이고, 그 옆으로 푸른 잔디의 한국식 단촐한 정원 하며 자그마한 연못을 휘젓고 다니는 비단잉어 하며, 글 쓰는 사람의 집이라기보다는 웬만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주가 호사스러운 취미로 꾸며놓은 사치스러운 고급 가옥의 느낌이 강했다.
“어서 오십시오.”
집주인은 분명 여자라고 했는데 기껏 내 또래 정도의 젊은 남자가 뿔테 안경을 끼고 우리를 맞았다.
“이거 정 현준 씨, 아니십니까?”
선배가 아는 사람인 듯 그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반겼다.
“네. 오랜만입니다. 김기자 님.”
“아니,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선생님한테 보여드릴 원고가 있어서 왔습니다. 이번 작업을 하는데 선생님에게 이래저래 많이 도움을 받고 있거든요. 선생님은 곧 나오실 겁니다.”
남자는 멀쑥하니 허우대가 미끈해 보이는 미소년 스타일의 청년이었다. 대화 뒤에 선배의 말투로 보건대 역시 글을 쓰는 작가인 듯했는데, 문학을 한답시고 여자를 꼬시기에 딱 알맞은 면면새를 지니고 있었다. 허여멀금한 피부색 하며 호리호리해서 훌쭉한 키에 지그시 내려간 팔자 눈썹에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까지.
“어서들 오세요.”
잠시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여자가 인사를 건넸다. 이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얼른 사진을 찍으라는 듯 선배가 멍하니 집 구경을 하던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러댔다.
“아, 그렇게 함부로 찍는 거, 선생님은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마치 여자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냥 남자가 내 카메라 가방을 손으로 지그시 막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요. 그냥 놔두고…, 현준 씨는 들어가서 작업마저 하지.”
여자는 마치 여왕처럼 세 남자 사이를 지나 호스티스의 지정석에 가 앉고 젊은 남자를 별채로 보냈다. 일하는 아줌마가 마실 것을 내오자 40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싱해 보이는 그녀의 미소가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자아, 그럼 시작할까요? 어디부터 얘기를 꺼내는 게 좋을지…?”
“저희한테 정해주신 시간이 짧으니 거두절미하고 바로 이번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걸로 하죠. 괜찮으시죠? 이번에 새로 내놓으시는 장편소설은 어떤 의식을 담고 있습니까?”
“아, 네. 제 작품이 이제까지처럼 쭉 그래 왔듯 사랑에 성공하려고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고 자신들의 사랑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늘 이제까지의 작품에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해피엔드가 아닌 아주 비관적인 결론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렇게 결론을 늘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아니면 선생님의 세계가 비관적이기만 하다는 일부 평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에요. 평론가들은 흔히들 내가 비관적인 시각만으로 작품세계를 구성하고, 주인공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늘 비감 어린 투로 쏘아댄다고들 하는 것 같은데, 소설의 주인공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고 비난하는 건 사실 어폐가 있어요. 그들을 파국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표현 자체가 적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없죠. 솔직히 뭐가 비관이고 뭐가 파국이라는 거죠? 그건 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작품 속에서 인물을 만들어 낸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신의 의해서 탄생하지만 신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않는 것처럼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그저 제가 펜을 굴리는 대로 움직여주지만은 않아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제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들의 몫을 그 안에서 살아간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죽음으로 끝내는 것이 삶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 아닐까요?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일지라도 늘 심리적으로 힘겨워하고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할퀴고 긁어댄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전 그 동전의 양면 같은 삶의 이면성에 주목하고 싶은 겁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나 그 행복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하는 따위의 근원적인 문제는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거 아닌가요? 남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주거나 그렇게 보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아주 일반적인 이론이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객관적이고 타당하다고도만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의 작품에서 보이는 행복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에 의존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있다면, 그 핵심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과연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라고 바꾸면 질문이 명료해질까요?”
“꽤나 공부 많이 하시고 오신 것 같네요. 그래요. 많은 작가들이 그걸 주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예술행위들을 하죠. 아마도 사람들이 그 해답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그 해답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가들이 밥을 먹고살고 문학하고 예술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거 아닐까요? 솔직히 그런 욕구나 요구나 수요가 없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다분히 제 이런 말들이 통속적이랄 수 있겠지만 제 소설이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런 통속적인 톤을 유지하는 것은 제가 말하려는 행복관이 바보나 독재자가 행복하다는 일반론과는 다른 보다 직접적인 사람들의 얘기에 밀착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전 제 소설을 많은 독자들이 읽고 호응하길 바라진 않아요. 어려서부터 전 그리 ‘일반’에 어울리는 사고를 갖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그렇게 튀는 아이였다고도 생각하진 않지만 언젠가 동창회에 나갔었는데 절 튀지 않는 평범한 아이로 기억해주는 친구가 없더군요. 조금 지루한 것 같은데 정원으로 나갈까요? 사진도 실내에서 찍은 사진보다는 오늘처럼 맑은 가을 정경에 찍힌 것을 싣고 싶은데...”
여자는 능숙하게 자신이 주도하던 대화의 맥을 한 템포 늦추며,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했다. 사진을 몇 장 더 찍은 후 선배의 질문은 계속됐고, 나는 자연스레 그 대화에서 빠져나와 여전히 이채로운 모양들을 가진 집의 구조와 색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럼 선생님은 이제까지의 소설들이 저마다 제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밀리언셀러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작가로서 어떻게 해석을 내리시겠습니까?”
“글이 많이 읽히고 책이 많이 나가는 것이 출판사 사장 입장에서야 좋겠지만, 전 제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뭐랄까?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갖게 된다는 것도 내 나름대로의 색을 잃어버려 평범한 그들의 기호에 맞춰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거든요. 그 문제는 어느 정도 앞으로도 창작을 해나가면서 경계해야 할 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결혼을 안 하시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하시는 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일까요?”
“김 기자님의 질문이 조금 모호하긴 하지만, 모 평론가의 말처럼 제가 문학과 결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집을 삥 둘러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 잔디의 떼를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마치 조경을 한 것처럼 이어져 나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꽃들이 많아지는 방향을 따라 걸다 보니 뒤뜰의 항아리들이 있는 곳에까지 미쳤다. 모든 장과 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저마다 크기도 다른 항아리들이 나란히 햇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 뒤로 담배연기로 보이는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아까 봤던 그 소녀였다. 그녀는 교복을 벗고 적당히 낡아 보이는 청바지에 몸에 달라붙는 하얀 티만을 걸치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자기만이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있다고 여겼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나는 분명 불청객이고 그 자리에 있어선 안될 사람이었다. 내 인기척을 느꼈던지 고개를 치켜들어 일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적잖이 당혹의 시선이 눈동자에 어렸다. 그리고는 아주 잠깐의 정적이 맴돌았다.
“아까 들어올 때 보이까 교복을 입고 들어오던 학생이 있던데……”
“아. 제 조카예요. 언니네가 미국에 들어가 살았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아이만 남았어요.”
“이 큰 집에서 두 분만 사십니까?”
“꽤 개인적인 호기심이 강한 분이시네요. 그래요. 일하는 아줌마가 있긴 한데 밤늦게 가서 아침에 다시 오니까 여자 둘이서만 사는 거죠.”
“그럼, 조카는…?”
“아, 사생활에 관련한 부분은 그 정도로 하고 작품에 대한 얘기는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만 끝낼까요? 약속했던 시간은 충분히 할애해 드린 것 같은데요. 다음 약속이 또 있어서요.”
“아, 예? 예. 감사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멀리서 선배가 막 일어나며 나를 찾을 즈음에, 그녀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꽁초를 담 머로 능숙하게 튕겨내고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엉덩이 밑으로 허벅지까지 청바지가 길게 찢어진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말을 붙였다.
“전화번호…, 적어줄래요?”
그것이 그녀와 나눈 첫 대화였다.
3
낮은 음악이 흐르고 얕은 스탠트 불빛에 의지해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내 무릎을 베고 누워 뭔가 읊조리는 것을 좋아하던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기억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편하지 만은 않은 어딘가 비어있거나 퀭한 느낌으로만 남아있다.
그녀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 얘기만큼이나 슬프고 음산한 것도 없다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하는 얘기가 그렇게 슬픈 소재이거나 그렇다 할만한 분위기를 잡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가 얘기를 하고 있는 걸 가만히 듣고 있자면 우스운 얘기도 어두운 채색을 잔뜩 입혀 덧칠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워져 버린 이중섭 특유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자아냈다.
뭔가 편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배치된다기보다는 나 역시 가지고 있었을 그런 구석들이 서로 죽이 맞았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차츰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자연스럽고 친숙해져 갔다. 난 그런 그녀가 좋았고 그런 면에서 그녀도 나의 어떤 한 가지 점쯤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