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l 25. 2022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 3

여름휴가 특집 중편소설 특별선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304


  교무실로 들어서기 전 좁은 복도에 들어서는 그녀는 행동을 멈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그녀의 이채로운 행동이 가증스럽다고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괴팍한 행동이나 모습들에 익숙한 그녀의 반 친구들이 보았다면 아마도 그녀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혹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 그 모든 분위기는 어느 사이에 지극히 다소곳한 형태의 소녀가 가져야 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늘 귀에 꽂고 결코 빼지 않던 이어폰부터 빼고 옷매무새를 간단히 만지고, 하는 등의 품행이 방정한 소녀로의 변신. 그것이 그렇게 하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사람들이 볼 때, 그녀의 행동이 자꾸만 엇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에 대해, 학교나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폐쇄적인 성격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관찰 끝에 알게 되었다. 그녀가 엇나가는 경우는 그녀가 이모와 함께 집에 단둘이 있어야 할 경우이거나 이모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이 이모와 연관 지어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일 때였다.


  흔히 결손가정의 아이들 같은 경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일찌감치 철이 든다는 임상 심리학 결과가 나와 있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의미를 분석 같은 것을 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없이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사는 이모에게서 키워졌다는 것이 그녀의 유년기를 휘저어놓아 심사를 뒤틀리게 하거나 부모보다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 히스테리가 심한 노처녀, 아니 독신여성에게서 지워지는 굴레 같은 것이 구속으로 작용하여 사람들 모두에게 문제아니 비뚤어진 아이니 하는 모습으로 삐딱하게 비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사람들이 뭐라 하든 적어도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를 지켜본 나의 생각은 그랬다.     




  “부르셨어요?”

  “어. 혜진이 왔냐?”


  담임은 입 안에 넣고서 오물거리던 엿을 꺼내 하얀 복사 종이를 하나 꺼내 그 위에 뱉어놓았다. 불그레한 엿을 입 안 가득 넣고 있다가 다음에 다시 먹으려고 싸 두는 모습이 충분히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미간이 약간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담임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어 보이며 자기가 맡고 있는 반의 학생을 편하게 만들게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허허. 이 놈의 엿을 먹어야 마음이 편하다니까…, 요즘 캔디나 초콜릿은 달기만 하지 이런 맛이 없어요.”


  이제 몇 년 있으면 정년을 맞이하는 담임은 그리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가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처음 교실에서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이제까지 선생들에게 가졌던 무관심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 그녀의 비위에 맞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뭐라 하지 않으면 적어도 사고를 치거나 하는 등의 일탈만 보이지 않으면 전혀 뭐라 터치하지 않는 그런 철저한 방관형 스타일.


  담임은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우등생으로 학교의 선생들에게 유명세를 치르며 이모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진 자신에게 유독 특별히 배려하는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은 과잉행동이 아닌 것처럼 하며 자신을 그리 귀찮게 굴지 않는 행동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흡족함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더더욱 실망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긴 했지만, 그런 담임의 모든 행동들도 이모의 봉투가 미리 전달되어 그녀에게 올 귀찮은 모든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보인 친절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지극히 격식에 맞춰 한치도 엇나가지 않는 범생의 행동으로 일관해 보일 뿐 그 역시 그저 그녀에겐 귀찮은 꼰대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따위 학교 안 다녀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은 그렇게 될 경우 이모와 벌여야 할 귀찮은 감정 소모전을 피하고 싶다는 그야말로 본능적인 차원의 벽이 누르고 있던 차였다.


  “으음.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어머니…, 아니, 이모 말인데…, 네 진학상담 말이다. 왜 오시질 않는 거지?”


  빌어먹을, 결국은.

  그녀의 미간이 다시 심하게 일그러졌다.


  보호자, 이른바 원서를 쓰기 전에 학교를 정해야 하고 진학상담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학교에 와야 한다는 이상한 원칙 같은 것을 그녀도 지켜야만 했다. 학기초에 부모들이 한번 학교에 다녀갔을 때도 그녀의 이모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워낙 콧대 높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성격이라도 그랬지만 아마도 그녀 생각으로는 이모는 이런 저급한 종류의 인간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자신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 그저 할 일없이 정원에서 개를 데리고 소일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여길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모는 봉투, 이른바, 촌지라는 이름의 간략한 편지와 약간의 격려금이라는 수표 몇 장을 보내고 난 이후 학교에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선생이라는 작자가 지금 그녀에게 다시금 부모를, 이모를, 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미 지난번의 약발이 떨어졌거나 더 많은 뭔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정통신문은 보여 드린 거냐?”


  비행기를 접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날린 그 종이 쪼가리가 언뜻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며 그의 말에 대한 대꾸를 대신해 상기시켰다. 이제 한 한기밖에 남지 않은 고등학교 생활에 그녀는 이 지긋지긋한 상담이며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 한다는 것이며 대학이며 하는 모든 것들에 신물이 났다. 갑자기 범생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속 저 깊은 어딘가에서 울컥거리며 태동하는 것을 느꼈다.


  “예. 이모가 바쁘셔서……”


  “그래. 이모가 참 많이 바쁘시지. 안다 알아. 거 참. 요즘도 많이 바쁘신가 보지? 그래. 이번 책도 또 보내주셨더구나. 참 잘 받았다고 말씀 좀 전해드려라. 일일이 이렇게 보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모의 친필 싸인이 들어간 책을 교무실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던 그는, 은근히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분필가루를 먹는 험한 직업을 감내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거들먹거리고 다녔다. 그녀는 그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도 화장실에서 주번이던 아이들이 쑥덕이는 것을 통해 들어서 더욱 불쾌감을 가중시켰다. 그런 식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불쾌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런데…, 꼭 오셔야 하나요?”


  그녀의 질문은 다소곳하다 못해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심함까지 갖춰서는 가녀린 소녀의 모습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었다.


  “음. 물론이지. 네가 우리 반에서 늘 1등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번 경시대회 수상으로 대학교도 선택해서 갈 수 있게 된 것도 상담드려야 하고…, 에 또 그 뭐, 학부모 상담이라는 것이 그렇잖냐, 왜…”


  뭐가 그렇다는 건지 속이 뒤틀려왔지만 그녀는 물었던 아랫입술에서 피라도 나올 정도로 다시 한번 앙 다물었다가 난처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전 부모님이 없어요, 선생님. 그래서 제 상담 같은 걸 해줄 진정한 보호자는 없는 거예요. 제가 갈 대학이나 그런 것들을 제가 판단하기에도 충분하잖아요. 이모는 이모 일이 바쁘고 사실 어느 대학교도 어딜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세요. 저 역시 그건 마찬가지구요.”


  “무슨 소릴! 이모 같은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서울대나 연고대 정도는 가야 하지 않겠니? 그러려면 선배님이 될지도 모를 이모와 상담을 하는 것도…”


  “이모가 무슨 내 보호자예요? 그리고 전 대학 같은 거 가고 싶은 마음 없다잖아요! 그러니까 상담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그리고 내가 언제 이모 같은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 수학경시대회 성적이 좋으니까 차리리 공대 같은 곳에 들어가면 되잖아요. 글 같은 거 쓰고 싶지 않다구요. 알아요?”


  담임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공격적 발언과 발작에 적잖이 당혹스러움을 보였다. 하지만, 그도 이제까지 교단에 서면서 낡을 대로 낡아빠진 노련한 역전의 용사였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작은 여자아이라면 수년간 거쳤고 더 심하고 막 나가는 아이들도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지 않아 왔던가? 지금 이 정도로 세게 나온다고 해서 자신의 학생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흥분할 게 아니다. 혜진아. 넌 이제까지 성적도 좋았고, 이대로라면 충분히 일류 대학에 갈 수 있어. 그리고 네가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고 친구들이 말해주던데…,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관두세요. 절 설득하려는 거라면…, 어제도 이모가 신인작가라며 작업실을 빌려준 작자 하고 붙어지내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알아요? 그런데 나보고 그런 이모 같은 글쟁이나 되라구요?”


  “……”


  “정 원하시면 선생님이 직접 다시 이모에게 봉투라도 두툼히 만들어 보내라고 전화하면 될 거 아니에요.”  


  “이 녀석이?… 혜진이 너 선생님한테 그게 무슨…”


  봉투 얘기에 그가 갑작스레 당황하며 교감 쪽 시선을 살폈다. 혜진의 목소리가 커지자 교감이 슬금슬금 이 쪽 얘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러지 말고 선생님한테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보려무나. 날 아버지나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마지막 말은 이미 수위를 넘어선 그녀의 감정선에 도화선을 당겼다.


  “에이! 씨…! 선생이면 선생답게 굴어요. 나 말고도 다른 얘들 부모들 많이 불렀잖아요. 그 정도 사람들 왔다가 갔는데 나 하나쯤 봉투 안 받는다고 그렇게 쪼들려요? 내가 나중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줄테니까 좀 참아요. 내가 우리 이모한테서 구걸하며 사는 애로 보여요? 왜 자꾸만 그래요. 날 좀 내버려 줄 수 없어요? 날 좀 내버려 두라구요.”  


  짝-


  선생의 두툼한 손바닥에 그녀의 얼굴이 돌아갔고, 교무실의 선생들은 물론, 교무실에 와 있던 다른 여학생들의 시선은 뺨이 돌아간 채 더욱 차가워진 얼굴로 약간의 흐느낌도 없이 입술을 너무 물어 찢어져 피가 흐르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다시 매만지고 아직도 흥분해서 떨고 있는 담임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교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문을 닫고 천천히 그녀의 그렁거리는 눈매에 떨어지는 눈물이 입술 가로 피와 엉겨 그녀의 감색 교복 치마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4


  그는 그가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 꽤나 부담스러울 것을 미리 알고 직업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물론 약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동료나 선배 의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야에서는 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가 이런 느낌으로 곤욕스러워하기는 처음이었다.


  여자는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앉아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 본능적인 방어본능이 이미 그녀의 온몸을 살짝 갑옷처럼 덮고 있는 듯해 보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306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