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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6. 2022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 4

여름휴가 특집 중편소설 특별선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305


  그는 막 그녀의 로샤하 테스트 결과를 읽어보다가 서류를 덮었다. 처음 그녀를 인터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있어, 흔히 말하는, 정답을 끌어내서 치료에 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정신과 의사들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상담을 하다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어쩌면 의사인 자신의 레벨보다 상위의 사람이라고 느끼는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체스를 몇 수 두었을 때 상대의 경력이나 실력이 이미 내가 이길 수 있는 그런 정도를 넘어섰다고 느끼는 기분 나쁜 서늘한 느낌에 비하자면 상당한 고수를 만났으며 이미 나의 자존심에 해당하는 것을 내기에 걸었음을 다시금 환기하면 등줄기에 땀이 주욱 흐르게 만드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딱 맞을 상황이었다. 환자가 이미 내가 몇 년간을 통해 쌓아 온 의학적 상식에 대해 이미 꿰고 있다면 어떤 테스트나 질문도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그는 생각이 그런 결과에까지 미치자 등줄기가 서늘해옮을 느꼈다. 환자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이 가는 섣부른 행동 따위는 하지 말라고 선배들은 누누이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그녀의 시선에 자신이 첫 발부터 밀리고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 보고 계신 겁니까?”

  “……”

  “장영주 씨?”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을까요?”


  강한 결심을 하며 끊었던 담배를 세 번째 서랍에서 꺼내 주며 그는 다시금 자신이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고 있음을 느낀다.


  강하게 나가기보다는 그녀에게 이끌려 주는 방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자.


  다시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녀에게 담배를 내민다. 물론 얼른 라이터 불도 함께.


  “요즘은 어떠십니까?”

  “제 담당의가 바뀌는 게 이걸로 다섯 번째던가요?”


  여자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은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창 밖만을 응시하며 그의 시선을 여전히 무시하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건 피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아, 그건 저희 병원 사정상 그렇게 바뀐 거니까, 장영주 씨는…”

  “그래요.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차피 내가 얘기하는 대상이 바뀐다고 해도 난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누군가만 내 앞에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 비밀이 확실히 보장되는 걸 포함해서 말이죠.”


  그는 점점 은근히 뱃속 저 밑에서부터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이 무시되는 것도 그렇긴 했지만, 누가 상담자고 누가 피상담자인지의 경계를 무시해버리는 그녀의 행동이나 그 사고의 전반이 더욱더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면 지는 거다.


  그는 다시 자신의 감정을 끌어내렸다.


  “자꾸 이러시면 제가 상담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러 실 거면 병원엔 뭐하러 오시는 겁니까? 그리고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상담을 하시면 뭔가 진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약간 격양된 말투로 자신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 것에 그 스스로도 놀라며 앞으로 나선 몸을 다시금 뒤로 끌어 앉히며 외양을 추슬렀다.


  “말이 하고 싶어서겠죠. 버림받은 여자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한 집에 둘이 살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의 처지를 위하며 따스한 말을 나누며 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과연 그렇게 동화나 교훈성 드라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들에 치어 사는 친구들이 독신 생활의 즐거움을 얻어 나누려고 앞다투어 제게 전화를 걸어올까요? 집에는 위험한 것 투성이에요. 부엌엔 칼들이 너무도 많고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두꺼운 줄에 목을 매어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나무들도 많구요. 조금만 걸어 나가면 횡단보도인데도 신호와 상관없이 100킬로 이상을 밟고 사람을 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가는 차들이 널려 있다구요. 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그곳들을 지나며 산책해요. 저희 집 개도 저를 싫어해요. 동네 사람들은 반상회 할 때도 연락을 안 하죠. 벌금마저 받으러 올 생각을 안 해요.”


  여자가 입을 열고 뭔가 얘기하기 시작할 때, 바로 그때를 주의하라고 했던 앞선 네 명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고해성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녀는 글을 풀기 시작하면 멀쩡한 사람들도 몇 분 만에 울리는 천하의 글쟁이가 아닌가. 물론 어눌한 말투를 가지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글을 쓰는 이들도 많다고 하지만, 글과 같은 수준의 대화를 구사하는 글쟁이도 있다고 하던데, 그녀는 확실히 달변의 후자에 속했다. 아직도 그녀의 소설이 가장 수준 있다고 여기는 아내의 입에 마른 칭찬이 떠올랐다. 오늘 상담 후에 내가 당신이 그렇게도 존경에 마지않는 소설가를 상담했다고 말해주면 아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런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는 잠시 억지로라도 딴생각을 하며 그녀의 달변에 빠져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죠. 요즘 세상에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는 현대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는 이가 그걸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충동은 충동에 지나지 않을 뿐이죠.”

  “생각은 쉽고 행동하기는 어렵다 이건가요?”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예술을 하시는 특히나 글을 쓰시는 분들이 감수성이 더 예민하다는 건 알지만 장영주 씨 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그런 힘겨움을 노작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가요?”

  “훗. 그런 빌어먹을 말들은 평론가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도 그런 고상한 부류셨을지는 몰랐네요. 정신과 의사들은 시간이 많은가 보죠? 제 소설 따위를 읽을 시간이 다 있으시고….”

  “도대체 뭐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겁니까? 지금 장영주 씨에게.”

  “뭐 그리 심각한 문제는 없어요. 내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처럼 문학과 결혼해서 독신으로 살고 있네, 하면서 남자들을 향한 이유 없는 적대의식 같은 것을 풀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독설과 상징을 통해 그 족속들을 비난하고 특히나 결혼에 쩔어 결혼생활이 인생의 완성인 양 순종하고 사는 여성들을 비아냥거리는 시니컬한 소설들을 많이 쓰고 그것들에 사람들이 대리배설을 느낄 뿐이라는 것 빼곤 말이죠.”

  “그럼 본인의 창작활동에 불만이 있다는 겁니까? 아니면…, 생활에…?”

  “정말 선생님은 제가 가진 불만에 대해 듣고 싶으신 건가요? 그럴 준비가 되셨냐구요?”


  그녀의 눈빛이 잠시였지만 사뭇 진지해짐을 그는 읽을 수 있었다. 정신과 상담이라는 것이 원체 그런 것이긴 하지만. 실제 영양가 있는 대화는 그 수많은 거짓 질문과 쓸데없는 말로 에둘러치기 마련이다. 질문이나 상담자가 던지는 말들은 실제 영양가 있는 대화나 고백이라는 것을 도출하기 위한 수많은 덫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100% 피해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짧고 지극히 알아듣기 어려운 은유나 상징 투성이라도.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말씀하세요.”

  “한 여자가 있었어요. 가슴에 뭔가 엉켜 삭히지 못한 채 철조망처럼 안에 얽히고 섥혀 속을 쥐어뜯고 있다는 것을 철이 들면서 깨닫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걸 일기장에 써놓고 난 밤이면 아주 편안하게 음악을 낮게 틀어놓고서 잠을 잘 수 있었어요. 그리고난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엉켜있는 그것들, 그 새빨갛게 엉겨 검게 자란 넝쿨을 글로 파란색 펜으로 모두 쏟아놓으면 자신의 병이, 갈증이 해갈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병을 다스릴 때쯤 다시 새로운 병이 왔어요. 그녀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거예요.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는 작품 아세요? 그 작품에 나오죠. 주인공인 여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의 모습을 보고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심장마비로 죽어요. 마치 그랬어요. 캠퍼스 교정 가장 음침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의 한 켠에 앉아 글을 써대던 그녀의 눈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걸어가는 게 보였죠. 그녀는 그가 남자였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그제까지 관심이 없었던 모든 세상사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죠. 그녀의 모든 관심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만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그의 모든 것을 봐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알았죠.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온통 그에게 쏠린다는 것을 알았죠. 그저 무작정 그가 보이는 어느 한쪽에 그녀는 늘 있었더랬죠. 그러다가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의 존재를 깨달은 그가 그녀를 봤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될 운명이 이미 자신에게 지워져 있었다는 걸 말했죠. 그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떡거려줬어요.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받아들여준 것을 감사하게 여겼고, 그가 또 다른 자신이었음을 생각하며 자신의 밝은 모습을 찾기 시작했어요. 여자는 그때부터 글을 쓰지 않아도 가슴에 선혈 같은 것이 엉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너무 신기해했죠. 아니 그건 어쩌면 그녀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어요. 그를 위해 모든 생활의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이제까지의 인생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온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어요. 그건 그가 다른 여자와 이미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잊게끔 만들었죠. 그는 그의 아내와 별거 중이고 곧 헤어질 거라고 그녀에게 말했어요. 그녀는 그가 뭐라고 하는지도 들리지 않을 만큼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움직이는 입술만을 뚫어져라 보았죠. 그저 그가 밤새 그녀를 위해 옆에서 누워 자신의 잠자는 모습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그런데, 차츰 그에게서 늘 오던 연락이 뜸해졌고 그가 그의 아내와 재결합할 거라는 소식을 잡지 커버스토리를 통해 보게 됐지요. ‘대단한 집안의 딸,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큐레이터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다. 그리고 젊고 유능한 문학평론가이자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유학을 심적으로 밀어주었다.’라는 기사를 말이죠. 그즈음 그는 그녀에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를 거라고 여자는 생각하기로 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죠. 그렇게 말만 해줬어도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만 해줬어도 다시 글을 쓰게 되는 짓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죠. 그에게 자신이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기가 그녀는 싫었겠죠. 그의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그에게 아이를 빌미로 들러붙는다는 인상을 추호도 남기기 싫었을 거예요. 그것 아마도 자신의 자존심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가봐요. 그때부터 다시 그 병이 도졌고 그가 아무런 연락이나 소식도 없다가 그의 아내와 행복한 재회를 한다고 일방적인 전화 한 통화만을 남기고 떠나가 버렸어요. 그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 손목을 몇 번이고 칼로 그었고 그를 죽이려고도 했지만 그건 아까 선생님의 말대로 그저 충동이고 생각에 지날 뿐 그렇게 할 용기가 그녀에겐 없었어요. 그런 면에선 선생님 말이 맞을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라도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 수십 번을 생각했다가도 도저히 실행할 수가 없었대요. 그리고 미친 듯이 글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태교는 몇 장의 LP 레코드와 수십 권의 원고지와 검은 볼펜 한 통이었죠. 등단을 했고 조금씩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그즈음 다시 그에게 연락이 왔죠. 그는 그녀에게 위자료처럼 근사한 집과 공간을 제공했죠. 다신 자신에게 얼쩡거리지 않을 것이며 행여 그의 아내의 집안이 알게 될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 달라는 걸 조건이랍시고 내밀면서 말이죠. 참. 우스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이라는 건, 그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의 말처럼 아무 말없이 아이를 낳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대단한 서평으로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쓰게 됐죠. 그는 가끔씩 그녀의 아이를 보러 오지만 그것도 그의 아내가 아들을 갖게 되면서는 뜸하다가 이내 그 아이가 자라면서 그쳐버렸죠. 그렇게 그녀는 꾸역꾸역 살아가요. 그게 선생님이 말한 마지못해 살아가는 건가요? 그렇게 사는 게 진작에 죽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나요? 그래요? 선생님은 그 여자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죠?”

  “……”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조용히 다시 눈물 젖은 손으로 담배를 집어 불을 당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 아래로 양볼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듣는 동안 그는 자신이 그녀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에 몇 년 전에 끊었다고 생각했던 담배가 다시 들려져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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