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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31. 2022

그녀, 우츄프라카치아 - 마지막 편

여름휴가 특집 중편소설 특별선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310


 “누군데 그래요?”


  현준이 아는 척하며 그녀에게 다가섰지만 그녀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잡고 한 손으로는 쓰러지려는 자신의 몸을 무릎을 잡아 의지하며 손사래를 쳐보였다.


  “잠깐 기다렸다 들어오세요.”


  다시 수화기를 들고 문을 열며 황급히 몇 마디 던지고는 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준에게도 짧게 뇌까리듯 말했다.


  “손님이 오셨어. 현준 씨 다음에 만나기로 하지. 그만 돌아가 줘.”


  현준은 누가 이 늦은 시간에 여자만 사는 집에 찾아온 것이며 그녀가 그렇게 당황하는지에 대해 불쾌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코트를 집어 들고서 불쾌한 얼굴로 나가던 그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선, 선생님!”


  “으음. 누구던가? 아. 정현준 군이구만.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평론가로 워낙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강문식이었다. 대학 강단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바로 그였다. 현준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설도 되고 해서 정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가보지.”


  두 남자의 얘기 소리가 작게 들렸고, 여자는 화장을 다시 만지고 옷을 다시 꺼내 입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였다. 몇 년 동안 오지 않던 그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막 현준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여자가 거실로 나왔다. 남자는 장갑도 벗지 않고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물끄러미 서서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는 거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러고 사나?”


  “무슨 뜻이에요. 그리고 여긴 갑자기 왠일이구요?”


  “저런 시답잖은 놈팽이를 불러들이며 이렇게 더럽고 퀘퀘하게 사느냔 말이다.”


  “당신이 상관할 거 없잖아요.”


  “혜진인 어디 있어?”


  “이제 와서 혜진인 왜 찾아요? 혜진 일 만나러 온건가요?”


  “전에 얘기했잖아. 혜진이 유학 보내는 거 확정 지으려고 왔어. 이 참에 아예 데려가려구 온 거야.”


  “나한테서 혜진일 데려가겠다구요? 걔는 아직도 지가 다섯 살 때 일을 잊지 않고 있다구요. 알아요? 당신이 나한테 뭘 해준 게 있다고 아니, 우리 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이 집이요? 돈이요? 그 정도 당신이 해주고서 이제 와서 다 큰 우리 혜진 일 데리고 가겠다구요?”


  “곧 수속 밟는 대로 데리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준비하고 있어. 더 이상 이런 더러운 곳에서 당신이라는 여자한테 혜진일 그냥 맡길 수 없어. 혜진일 키우는 건 당신을 위해서나 혜진을 위해서나 좋지 못한 일이라고 이미 결론 내렸잖아. 길게 얘기하기 싫어. 그렇게 알아들어.”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당신은 뭐가 그리 대단하다구! 당신처럼 더러운 사람이 더 이상 더러운 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나 있다고 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알았어요? 혜진이 내 딸이지 당신 딸이 아니라구요!”


  남자는 여자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서 나갔다. 남자의 운전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선물 박스 같은 것을 몇 상자 현관 앞쪽으로 들여놓고서는 문이 닫히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그곳을 다시 차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여자의 흐느낌이 그 뒤를 따랐고, 음악을 크게 틀어둔 채 문밖으로 모든 상황을 응시하고 있던 혜진은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창밖으로 다섯 살 때 보고 기억해 두었던 그 아버지라는 남자의 뒷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보았다. 다섯 살 자기 생일에 와서 자신을 데리고 가려던 그 남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악몽이 다시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이모의 흐느낌은 더욱 짙어만 갔다. 그녀에게 뭐라고 탓할 수 있을까? 그 남자에게 가지 않을 테니 괜찮을 거라 말하는 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눈은 쌓여만 갔다.


  “아악!”


  혜진이 욕실에서 붉어져가는 탕 안에서 눈물이 말라버린 여자를 본 것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혜진은 뜨거운 탕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생각이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모의 잠자리를 보러 왔다가 그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길 뒤지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그녀를 발견한 것이었다. 여자는 손목에서 흘러져 나온 피로 이미 정신이 몽롱해져 가고 있었고, 깨진 유리에는 피가 엉겨 있었다. 혜진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황급히 그녀를 욕탕에서 끄집어 내려했다. 생각처럼 일이 쉽지 않았다. 눈물이 자꾸만 눈앞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여자의 몸은 점점 쳐져 무겁게만 느껴졌다.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혜진은 벌벌 떨며 오직 한 마디 말 만 계속해서 죽어라 외쳐댔다.


  “엄마! 죽지 마! 죽지 마!”


  혜진의 울음소리가 집안으로 계속해서 퍼져갔다.     


                         11     


  장영주 작가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은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거리도 아니었다. 설사 그런 기사가 났다거나 그런 일을 실제로 곁에서 본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살기에 바빠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시도를 애도하거나 관심 가져할 만큼 한가하지 않은 듯했다.


  그저 내가 사귀었던 여자와의 조금은 강한 정도의 해프닝 정도라고 지나치는 것이 낫다고 나를 위로하며 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몇 달이 흘렀고, 나는 사진기자로 정식 발령이 났고, 송기자와의 결혼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서 지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오후, 청혼을 하려고 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찾으러 갔던 은행의 한 켠에 앉아 있다가 여성지에 그녀의 이름이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차기 작품을 위해 제주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칩거하기 시작했다는 기사였다. 작은 별장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기사와 긴 주름치마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목이 보이지 않게 하고는 커다란 챙이 달려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예의 그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젊디 젊어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도록 그녀가 연출하여 찍은 사진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묵혀있던 핸드폰 메시지에 그녀의 음성이 녹음된 것을 찾아 들은 것도 그 기사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나의 앤써링 머신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핸드폰에 남겨진 그녀의 목소리 뒤에는 바람소리와 바닷소리가 묻어났다.


  “나 엄마랑 같이 바다 보러 왔어요. 들려요? 엄마 마음이 더 편해지면 서울로 돌아갈 건데…, 우츄프라 카치아라는 거 알아요? 식물인데, 사람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 죽는 나무래요. 엄마의 글에서 읽었어요.  엄마 새 소설 제목이래요. 자기를 키워준 사람의 손길을 기억해서 그 사람의 손길이 계속해서 닿아주지 않으면 그냥 죽고 만대요. 슬픈 일이죠? 그러게 된다면 말이에요. 사람이나 나무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 나 어쩌면 서울로 영영 안 갈지도 몰라요. 그냥 이쯤에서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전화해보고 싶었어요. 오빠나 나나 또 만나면 둘 다 서로 그리 해피할 것 같지 않아서… 행복해요. 그러길 바라구요. 나두 지금 그럴려구 그래요. 우리 엄마두 그렇구… 나중에 우리 지나다가 만나면 웃을 수 있겠죠? 엄마가 찾으시네요. 그럼 안녕.”


  나는 아직도 그녀가 말했던 모든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웃음이 쓰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난 그녀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들을 앤써링 머신에서도 지웠다.




재미있으셨나요?


늘 본의 아니게(?) 장편을 쓰는 편인데,  단편도 그렇고 중편도 그렇고 30여 년 전에 그냥 심심풀이로 써두었던 것들을 찾아 이번 텀에 발행했네요. 참고로 이 중편은 결국 소설이 아닌 당시 단편 드라마의 뼈대로 활용되었던 작품입니다.


앞서 단편부터 중편 9일 동안의 하루 한편 소설만 올리는 시간이, 호로록 휴지가 불이 타올라 사라지듯 끝나버렸네요. 서울은 열대야에 덥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름은 에어컨을 켜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정도로 선선한 느낌입니다.


강남의 우세종으로 살아있는 매미들은 여전히 그 잠시 동안을 애타게 울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사라지겠지요.


주변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소식을 접하는 것이 이제 전혀 멀찍이 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휴가라고 푹 쉰 것도 아니고 1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연재하던 글을 중단하면서까지 뭔가 일을 바로잡아보겠다고 했는데, 일이 더 꼬여버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버린 2주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풀리는 상황은 고사하고, 일이 더 꼬이고 더 안좋은 상황으로 치닫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혀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거나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쳐 쓰러지게 되면 한 번쯤 갖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유리 멘털들이 워낙 많아져버린 시대이기도 하니 말이지요.


슬프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의 아픔은 본인이 아니고서는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살아내야 한다고 저는 400여일이 넘도록 글을 통해 말해왔습니다.


일단 저부터 정신과 육체를 다시 정돈해야할 듯 합니다.


그래서 내일, 8월의 첫날부터 다시 정기연재를 재개합니다.


모두들...

결코 지쳐 포기하지 말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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