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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3. 2022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법.

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孔子께서 衛나라에 가실 적에 冉有가 수레를 몰았는데, 孔子께서 “백성들이 많구나.” 하셨다. 冉有가 “이미 백성들이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富裕하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 “이미 부유해지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가르쳐야 한다.” 하셨다.     

이 장의 내용을 파악하기 전에 몇 가지 생경한 내용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앞서 살펴보았던 내용에서 공자의 수레를 주로 몰았던 것이 번지(樊遲)여서 번지가 공자가 탔던 관용차의 전용 기사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왜 염유(冉有)가 수레를 몰았는지 의아할 수 있겠다.


번지(樊遲)가 주로 공자를 모시는 수레를 몬 것이 다른 장에 많이 언급되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번지(樊遲)는 운전기사가 아니라 엄연한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이다. 기본적으로 공자 당시의 사(士)들은 육예(六藝)에 능해야만 했다. 즉, 육예(六藝)에 엄연하게 들어가 있는 어(御)라고 하는 말을 모는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 때문에 스승을 모시는 수레를 끄는 것은 제자 중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자는 ‘僕(복)’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주석으로 달아 이번에 공자의 수레를 본 사람이 염유였음을 짚고 넘어간다.     


‘僕(복)’은 수레를 모는 것이다.     


두 번째 체크할 부분은 왜 뜬금없이 ‘백성들이 참 많구나!’라며 감탄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저 지나치며 읽는 이들도 있겠으나, 늘 설명한 바와 같이 공자의 발화(發話)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는 없다.     


이 장은 추정컨대, 공자가 처음 위나라를 갔을 때의 문화적 충격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기원전 497년 당시 공자의 나이는 55세였고, 염유는 26세였다. 작은(?) 노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인원이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길거리에 가득한 것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원문에서 ‘庶(서)’라고 한 것이 ‘많다’는 의미이다.     


본격적인 논의는 그 많은 백성들을 보며 염유에게 떠오른 질문과 그에 응한 공자의 대답이다. 백성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군사력이자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염유의 질문에 공자는 먼저 백성들을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공자의 대답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주자는 다음과 같이 풀어준다.     


백성들이 많기만 하고 부유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田里(전리, 토지와 주택)를 마련해 주고 세금을 가볍게 하여 부유하게 해주는 것이다.     


백성이 많기만 한 것은 언제든 다른 더 나은 나라나 땅으로 옮겨갈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유지하고 더 많은 백성들이 바른 정치를 하는 위정자의 땅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 수 있게 하는 기본은 역시 먹고살게 해주는 것이다. 주자는 주석에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단순한 포멀리즘으로 선심성 행정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지되고 오래갈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근거가 마련되어있어야 함을 설명한다. 그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주자는 그것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먹고살 수 있는 땅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먹고사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만 세금을 걷는 것이다.     


사실 이 장의 방점은 마지막에 있다. 그렇게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이 이 장의 가르침이 갖는 핵심을 전한다.     


그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잊고 있는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묵직한 죽비로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다.     


부유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禽獸(금수)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우고 예의를 밝혀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줘야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배움이 업이거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백성들에게는 더더욱 배움을 먹고사는 것 앞에 둘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전제해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만해지고 나면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한다.     


공자의 발화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 목적어가 빠져 있는데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그 목적어에 들어갈 것들은 바로 ‘예의(禮義)’라고 설명한다. 현대인들이 자칫 에티켓 정도로 이해하거나 조선시대에 삐뚤어져 전달된 고리타분한 예의범절 따위가 아님은 이제까지 <논어>를 읽고 공부한 학도라면 이해할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 교착하고 호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여겼는지 호씨(胡寅(호인))가 공자가 말한 무엇을 왜 가르쳐야만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여 정리해준다.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실 적에 司牧(사목, 백성을 기르는 임금)을 세워 이 세 가지 일(庶(서) · 富(부) · 敎(교)를 가리킴)을 맡겨주었다. 그러나 三代(삼대) 이후로는 능히 이 직분을 거행한 군주가 백 명에 한 둘도 없었다. 한나라의 문제와 명제, 당나라의 태종은 또한 백성이 많았고 또 부유하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西京(서경, 前漢(전한))의 교육은 알려진 것이 없고, 〈後漢(후한)의〉 명제는 師傅(사부)를 존중하고 辟雍(벽옹, 太學(태학))에 왕림해서 三老(삼로)에게 절하여 宗戚(종척)의 자제들이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당나라 태종은 이름 있는 선비들을 크게 불러 모으고 생원을 增廣(증광, 증원)하였으니, 교육이 또한 지극하였다. 그러나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三代(삼대)의 교육은 天子(천자)와 公卿(공경)들이 몸소 위에서 실행하여 언행과 政事(정사)가 모두 본받을 만하였는데, 저 두 군주(한명제 · 당태종)가 능히 그럴 수 있었는가?”     


庶(서) · 富(부) · 敎(교)의 세 가지 일을 아예 하늘이 내려준 임무라고 규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이 부분에 대해 배우는 이들에게는 상식처럼 논의되어 왔던 것임을 선언한다. 백성들이 많아지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니 처음의 조건에 해당한다. 그다음으로 백성들이 더 많아지게 하고 그 많아진 백성들이 나라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고 위정자에게 감복하여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나라에 사는 것을 평안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한 부유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호씨는 이것을 역사적인 역대 왕들의 다스림으로 비교하면서 敎(교;가르침)까지 진전해 나아갔던 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가에 대해 역설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앞서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가져온다. 위정자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실천하는 다스림의 방식만이 敎(교;가르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자는 앞서 주석에서 학교를 세워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고 했는데 호씨는 당나라 태종까지 언급하며 교육이라는 것에 힘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는 점을 들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에 다시 한번 방점을 찍는다.     


백성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이 장에서 공자가 진정으로 의미하려 했던 교육의 의미를 깨달은 우리 선대의 조상들이 계셨다. 바로 일제 치하에서 미래를 위해 학교를 세웠던 독립투사들과 보이지 않게 그들을 도왔던 지원자들이다.     

당장 일제와 싸우기 위한 군자금이 필요했을 시기에 군사학교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워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여겼던 그들은 이미 <논어>의 이 장을 외우고 공부하여 뼛속 깊이 새겨 넣은 높은 수준의 지식인들이었다. 일제가 한국어를 금하고 자신들의 황국신민화를 교육을 통해 획일화하려고 했을 때 반발하고 그것을 거부하며 우리 얼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학교까지 세운 것은 같은 시기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며 그들에게 받은 교육을 감사하게 여겼던 타이완 같은 동남아의 허접한 이들과 대비된다.     


독립투사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우리 자본에 의한 학교를 설립해야 하고 우리 얼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모셔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은 바로 같은 생각으로 교육을 통해 우리 얼을 말살하고 우리를 자신들의 노비처럼 황국 신민화시키겠다고 여겼던 일제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논어>를 공부하면서 왜 배우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자가 그렇게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은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모르고 있는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을 넘어 도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도 사실관계의 제대로 된 파악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은 역시 제대로 된 배움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왜 배우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바른 것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하고 되새기는 것 또한 배움으로 얻게 되는 부산물이다. 결과물이라 하지 않고 부산물이라 표현한 것은 결과물이라고 해당하는 것은 그 부산물들을 이용하여 궁극적인 배움의 목표 지향점에 다달을 때야말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먹물처럼 화선지에 퍼져나가듯 번져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특성이다. 잘못된 인식을 억지로 강요하는 교육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배우는 과정에서 이성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하게 되면 모순점이 발견되거나 의문점이 계속해서 터져 나올 경우 그 잘못된 가르침에 따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대로 된 가르침을 익힌 이들은 그것을 통해 아직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투입하는 방식이 아닌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도록 방식을 가르쳐준다.     

맞다. 이 장에서 말하는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가에 대한 ‘목적어’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가르친다는 것인가에 대한 목표 지향점에 그 방점이 찍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한계를 구획하지 않기 위해 목적어를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배워야 할 것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나라에 가서 산다고 하고 화성에 이주한다고 계획을 세우는 이 첨단과학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배움을 제대로 익히고 있는가? 20세기까지만 해도 ‘know-how’라는 말이 통용되는가를 의심할 정도였는데 이제 쏟아지는 정보와 그것보다 수천수만 배 많은 가짜 뉴스와 잘못된 쓰레기 정보들로 인해 이제 어떤 것이 정확하고 믿을만한 정보인가를 가려내야 하는 지경의 ‘know-where’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엄청난 정보 쓰레기를 분별할 지식은 고사하고 그럴 의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거짓을 퍼트려 자신의 사리사욕에 활용하고자 하는 어설픈 잔 머리꾼들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의 얄팍한 꼼수를 모두 읽고 정곡을 찔러 그 사악한 의도를 까발리고 적당히 진실에 섞고 뭉쳐서 활용하려고 했던 그 거짓 뉴스와 정보들을 구분하여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 그 작업들은 실패하고 만다. 그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는 자들의 돈과 권력과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진 공범들의 네트워크의 방해공작도 그렇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자신의 사리사욕을 찾기 위해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까는 이용하는 또 다른 꾼들만이 설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이제 선망의 직업처럼 되어버린 유튜버들이 가짜 뉴스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동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짜 뉴스가 어떤 것인지 밝혀내고 그들이 어떤 목적에서 그런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 밝히거나 그것을 잘라내 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인터넷을 통해 어떤 사건의 일면이 터졌을 때 몰려가서 욕하고 비난하다가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것으로 인해 피해 입고 상처 입은 피해자들에게 진실을 밝혀주며 이전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사죄하거나 바로잡는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배설에 가까운 비난, 욕설 등이 일상이 되어버린 자들은 자신이 다른 이들의 먹잇감이 되어 난자되었을 때 과연 억울하다고, 도와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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