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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06. 2022

仁은 자기 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仁을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樊遲가 仁을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居處함에 공손하며 일을 집행함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하기를 충성스럽게 함을, 비록 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오랜만에 다시 ‘仁’에 대한 질의응답이 다시 나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교과서적인 공자의 대답에서 바로 앞에서 공부했던 ‘직(直)’의 개념을 연관 지어 보아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仁’에 대해 대답할 뿐인데, 왜 뜬금없이 진정성에 대한 ‘직(直)’의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염두하며 ‘공경(恭敬)’이라는 부분의 공자 견해를 주자가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그 해석을 먼저 살펴보자.     


恭(공)은 용모를 위주하고 敬(경)은 일을 위주로 하니, 공(恭)은 외모에 드러나고 경(敬)은 속마음을 주장한다. ‘夷狄(이적)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굳게 지키고 잃지 말 것을 勉勵(면려) 한 것이다.     


공과 경에 대한 개념이 외면과 내면으로 나뉜다는 설명도 새롭긴 하지만, 더 새롭게 읽히는 것은 중화(中華)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이적(夷狄)의 개념이다. 대개 <논어>에서 공자가 언급했던 이적(夷狄)은 상대적인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즉, 자신들이 문명화되어 있고 정점에 있다는 전제하게 나오는 상대적인 의미로, 정리되지 못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며 갖추지 못한 ‘미개한 오랑캐’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공자가 본래 이 장에서 구체적인 실천의 의미로 부여한 세 가지 개념, 공(恭), 경(敬), 그리고 충(忠)은 막연한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닌 진정한 실천의 방식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다. 주자의 설명에서 이분화하고 충(忠)에 대해서 설명을 생략한 것은 본래 공자가 의도했던 설명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그것을 구현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명료하게 보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금 부연하자면, 주자가 공(恭)을 외면적인 사안으로 파악한 것은 실제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거처함에 있어서의 상황에서 신독(愼獨)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공손한 행동으로밖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과 대함에서 그 사람의 행동거지들이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거처할 때 자연스럽게 신독(愼獨)으로 갖춰지지 않고서는 그런 행동거지가 나올 수 없다는 결과물에 해당한다는 것으로, 평소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밖에 나가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안 그런 척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내면이 드러나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공(恭)을 외면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한편, 경(敬)을 외면적인 개념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가짐이라 설명한 것은 이미 공(恭)으로 드러난 외면적인 행위를 통해 기본적인 평상시 마음가짐을 살펴보되, 사회적인 활동을 함에 있어 개인을 수양하는 결과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적 활동의 결과물로서 도출되는 부분까지 확장해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내면의 마음가짐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개인의 마음가짐만으로 변화시키거나 제대로 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 및 사회적 활동의 성과로 도출되어 나오는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앞서 공(恭)과는 달리 내면적인 부분으로 구분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고 있는 원문에 있는 그대로 다시 설명하자면, 공(恭)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신독(愼獨)함에 있어서도 공손함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일상의 삶을 의미한다. 둘째로 언급된 경(敬)은 공식적으로 일을 행함에 있어 그 마음을 확장하여 함부로 하지 않고 늘 공경하는 마음가짐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설명으로 사회적 활동에 해당하는 부분을 의미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언급된 충(忠)은, 그 마음가짐이 모든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대함에 진심을 모두 다해야 한다는 방법론적인 부분으로 유가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충(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왜 뜬금없이 지금 중화(中華)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이적(夷狄)의 나라에서도 그것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그러한 마음가짐과 실행방식을 달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인가?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나는 늘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의 폐해를 구체적인 사례로 든다. 이른바 자신들이 더 선진화된 나라라는 우월의식을 가진 서양의 열강 제국들이 세계로 뻗어나가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보다 미개하고 더 떨어진 수준이라고 하는 이들을 정복하고 침략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보편적인 ‘직(直)’의 개념을 슬쩍, 아니 대놓고 내팽개쳤다. 만약 자신의 나라에 있었더라면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자신보다 저급한 민족이고 자신들이 막 해도 된다고 여겨 평소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들을 자행했다.     


늘 강조하지만, 이 장이 굳이 ‘직(直)’의 개념을 강조한 내용 바로 뒤에 나온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직(直)’의 개념을 공부했던 바로 이전 장에서 우리는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가치관의 부대낌에서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정직인가에 대한 우문(愚問)에 대한 공자의 현답(賢答)을 확인하였다.     


그 공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이란 인정(人情)을 별도로 논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불편함이 있거나 거슬림이 있는 것은 결코 정직(正直)일 수 없음을 검증하였다. 다시 말해, 20세기 서구 열강을 비롯한 이들이 상대적인 미개한 오랑캐들을 정복하면서 벌인 비인도적인 행위들이나 인간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범죄행위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의 자기 사회에서는 결코 벌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상식이나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말 그대로 제멋대로 자행한 것이다.     

공자는 이미 그러한 인간의 사악하고 자기 본위적인 본능에 대해 이 장에서 권계를 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보지 않고 혼자서 있는 때에도 마음가짐과 행동이 크게 달라서는 안된다고 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공(恭)을 신독(愼獨)과 맞물려 배치한 것이고, ‘직(直)’의 개념을 명확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충(忠)’의 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그것을 곁에서 따지지 않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법에 저촉되는 규제가 없는 이적(夷狄)의 나라에 간다고 해도 자신들의 기준이자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그 기준이 바뀌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일갈을 잊지 않은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원문의 해석을 몇몇 현대 해설서에서 내가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풀이한 부분을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해석한 이들이 있는데, 이건 이설(異說)이라기보다는 오역(誤譯)과 오독(誤讀)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을 가지고 와서 더 높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세계에 가더라도 내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더 아래의 세계에 가더라도 내쳐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히 오역하는 용기가 가상하기 그지없다.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정자는 이 장의 숨은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은 上下(상하)를 모두 통하는 말씀이니, 聖人(성인)은 애당초 두 말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 몸에 채우면 〈德(덕)스러운 모양이〉 얼굴에 빛나고 등에 가득하며, 미루어 천하에 도달하면 공손함을 독실히 함에 천하가 평해진다.”     


주자가 왜 내면과 외면의 두 가지로 양분하여 설명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양분화된 설명이다. 성인의 가르침이란, 내가 혼자서 있을 때와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같은 이유로 그 개념을 이해한 상위에 있는 자들과 있을 때와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하위에 있는 자들의 틈에 섞여 있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자기 본위적으로 그것을 바꾸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일갈인 셈이다.     

그래서 호씨(胡寅(호인))는 번지(樊遲)가 스승 공자에게 똑같은 개념인 仁에 대해 묻고 서로 다른 답을 얻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樊遲(번지)가 仁(인)을 물은 것이 셋이니, 이것이 맨 먼저이고, 〈雍也(옹야)〉의 ‘어려움을 먼저 하고 얻음을 뒤에 한다.〔先難後獲〕’는 것이 다음이고, 〈顔淵(안연)〉의 ‘사람을 사랑한다.〔愛人〕’는 것이 맨 나중일 것이다.”     


맨 나중이라고 언급된 ‘안연(顏淵) 편’의 22장에서 번지(樊遲)는 그나마도 스승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동문인 자하(子夏)에게 설명을 재차 청하여 듣게 될 정도로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가 仁에 대해 스승에게 때마다 질문을 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범위를 벗어났거나 자신이 앞서 이해했던 것과 상충된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나왔기 때문에 또 물어보고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논어>를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고 완독한 이도 거의 만나본 일이 없지만, 조금씩이나마 현대 해설서를 뒤적거리며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 仁이니 군자(君子)니 소인(小人)이니 하는 개념어들이 언뜻 와닿지 않기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아닌 명확한 사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면 조금은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적 개념이 모두 그러하듯이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상황에 맞춰 명확하게 설명해내고 그런 극히 부분적인 설명만을 통해 모든 면을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겪은 일중에서, 외교부 산하기관과 관련된 채용비리 건이 발견되어 그 문제를 감사실의 실장과 지적하는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아주 간단했다. 그들이 10여 년간에 걸쳐 똑같은 공고를 냈었는데 그 내용 중에서 가장 첫머리에 ‘공통자격기준’이라고 하여 채용하려는 이들에 대한 전공 기준 여부를 표로 구분하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전공과 학위에 대한 규정을 둔 것이 공문에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전공과 학위에 해당하지 않는 자들이 적잖게 채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그 사안을 감추기 위해 전공과 학위를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야말로 빼박 증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산하기관의 내부 감사실에서 실장을 맡고 있던 이가 너무도 당당히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공통기준 자격에 보면, 아래 예컨대 ‘65세 이하의 건강한 자’라고 되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처럼 공통기준 자격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기준 중의 하나로 제시한 것일 뿐 그것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당혹스러운 일은 자주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그들의 상식이 어떤 것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후안무치한 태도를 장착하고 ‘그건 문제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을 경우가 발생한다.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 조사를 하여 바로잡겠다고 하면 최상이겠으나 이제까지 공직에 있는 자들 중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자를 나는 내 평생에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차라리 당혹스러워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다시 검토를 해보겠다며 안개를 피우는 정도는 시간을 벌고 어떻게든 사안을 덮으려고 애를 쓰는 애교에 속한다. 도리어 당당하게 언성을 높이며 이게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될만한 사안이냐며 따지고 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철퇴가 가해져야만 한다.     

10여 년 전 외교부 장관이 자신의 딸을 부정하게 특채하려다가 결국 자신도 개망신을 당하고 장관직에서 쫓겨나고, 딸의 특채는 없어져버리고 그와 유사하게 음서제로 채용되었거나 버젓이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자들의 민낯이 드러난 바 있었다. 그렇게 난리가 났었지만 당시 장관과 그 딸을 비롯해서 어느 누구 하나 검찰에 기소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은 자들은 없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웃픈 현실은, 그렇게 외교부 마피아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 내부에서 절반도 채 안 되는 흙수저로 선발되어 음서제들의 뒤를 닦아주는 일로 내팽개쳐졌던 같은 외교부 직원들의 내부고발과 제보를 통해서 폭로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당신이, 이전 장의 직(直)의 개념과 이번 장의 내용이 왜 연결되는 것인지 곰곰이 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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