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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07. 2022

‘선비’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마, ‘사람’부터 돼라.

사람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하기 그지없는 존재들에게.

子貢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曰: “敢問其次.” 曰: “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曰: “敢問其次.” 曰: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曰: “今之從政者何如?” 子曰: “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子貢이 “어떠하여야 선비라 이를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몸가짐(行身함)에 부끄러워함(염치)이 있으며 四方에 使臣으로 가서 君主의 命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이를 수 있다.” “감히 그 다음을 묻겠습니다.” 하자, “宗族들이 孝誠스럽다고 칭찬하고 鄕黨(지방)에서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감히 그 다음을 묻겠습니다.” 하자, “말을 반드시 미덥게 하고 행실을 반드시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은 국량이 좁은 小人이나 그래도 또한 그 다음이 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지금 정사에 종사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하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 비루하고 자잘한 사람들을 어찌 따질 것이 있겠는가.”     

이 장에서는 ‘선비(士)’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다. ‘선비’의 개념은 원문의 소인(小人)과 비교하여 자주 언급되었던 군자(君子)라는 개념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결을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데, 실제로 <논어>에서 그 의미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언급은 다양한 장에서 등장하고 있다. 주요하게 살펴봐야 할 장들을 예시하자면 ‘이인(里仁) 편’의 9장, ‘태백(泰伯) 편’의 7장, ‘안연(顏淵) 편’의 20장 그리고 본편의 28장, ‘헌문(憲問) 편’의 3장, ‘자장(子張) 편’의 첫 장 정도가 되겠다.  

   

<공자가어>에 보면, 선비에 대한 공자가 직접 그 개념을 설명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설명은 ‘오의해(五儀解)’에 나오는 설명으로 공자가 애공(哀公)에게 그 개념을 이렇게 풀어주고 있다.      


“선비라는 것은 마음에 결정한 바가 있고 계획하는 바를 마음으로 지키며, 도에 대해서 근본은 다 모른다 할지라도 반드시 행하는 행실은 있으며, 비록 백 가지 아름다움을 다 갖추지는 못할지라도 반드시 마음에 결정하는 바는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많이 알려고 힘쓰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세밀히 배우려고 하며, 말도 많이 하려고 힘쓰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말하는 것은 세밀히 알아서 하며, 행하는 일도 많이 행하려고 힘쓰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행하는 일은 세밀히 알아서 행하며, 아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을 모두 요령껏 하여 마치 자신의 타고난 성명(性命)이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몸뚱이에 담겨 있어 옮겨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귀(富貴)에 처한다 해도 더 좋게 여기지 않고 빈천(貧賤)에 처한다 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 이런 사람을 가리켜 선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곤서(困誓)’에 나오는 부분을 살펴보면, 위의 설명과 비교하여 선비가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공자가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한 것으로 이는 설명해주는 대상이 따로 없이 공자가 선비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이 설명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선비의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 보지 않고서야 어찌 엎어지고 떨어지는 걱정을 알 것이며, 깊은 샘물에 임하지 않고서야 어찌 물에 빠지는 걱정을 알 것이며, 큰 바다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험한 풍파에 대한 걱정을 알겠느냐? 모르고 실수하는 자가 이 세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선비로서 이 세 가지를 삼가서 행하면 자기 몸에 누가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장에서도 제자 자공의 질문에 대해 가장 윗단계에서부터 단계별로 공자가 대답해주는 부분은 선비로서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한 부분을 나누어 설명하는데, 자공이 이런 질문을 한 배경과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것은 그 뜻(志操(지조))이 하지 않는 바가 있고, 그 재주가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이다. 자공은 말을 잘하였다. 그러므로 사신 가는 일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니, 사신 노릇하기 어려움이 비단 말만 잘하는 것을 귀히 여길뿐만이 아닌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공자는 첫 번째 궁극의 자질을 설명하며 몸가짐(행실)에 염치가 있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다른 나라에 使臣으로 가서 君主의 命을 욕되게 않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었다. 자공(子貢)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다른 나라에 가서 실수하지 말아야 할 덕목을 콕 집어 말한 스승의 가르침에 마음이 찔렸는지 아니면 더 상세한 덕목을 바랐던 것인지 그 바로 아래 단계는 어떤 경지인지를 묻는다.      


이에 공자는 자기가 속한 작은 지역에서 孝誠스럽다고 칭찬받고 공손하다고 칭찬받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것은 근본이 확립되었으나 재주가 부족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다음이 되는 것이다.     


기본은 갖추었지만 그것을 발현시켜 그 지역을 넘어서서 평판이나 인정받음이 부족한 것이 재주의 부족이라고 설명한다. 재주를 갖추고 있는 자공에게 있어 공자가 어느 정도 위로의 의미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공의 입장에서는 스승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 또 그다음을 묻는다.     

3단계까지 갔으니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인지 공자는 드디어 소인(小人)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커트라인을 긋는다. ‘말을 반드시 미덥게 하고 행실을 반드시 과단성 있게 하는 것’도 그것만 들으며 상당히 수양이 된 것이라 생각할 만도 한데, 그것을 ‘국량이 좁은 小人’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세간의 평가가 그 수준의 사람의 행실을 보고 소인이라고 비난할 여지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果(과)’는 반드시 행하는 것이다. ‘硜(갱)’은 작은 돌로 단단한 것이다. ‘小人(소인)’은 그 식견과 도량이 얕고 좁음을 말한다. 이것은 그 근본(지조)과 지엽(재주)이 모두 볼 만한 것이 없으나 또한 자신을 지킴이 됨에는 무방하다. 그러므로 聖人(성인)이 그래도 취함이 있었던 것이고, 이보다 더 내려가면 市井(시정)의 무리이니, 더는 선비라 할 수 없다.     


공자가 소인(小人)이라는 커트라인까지 쳐가며 이 부분을 강조한 것에 어떤 기준이 적용된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경지에 군주를 욕되게 하지 않을 정도의 재주와 덕성을 갖춘 자가 진정한 선비였다면,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 한정되어서라도 효성스럽고 공손하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자여야 하여 재주보다는 그래도 기본적인 덕성을 갖추게 된다면 선비라고 이를 만하다고 설명했다. 이제 마지막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정말로 이것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고 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기준은 바로 자기 한 몸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부분이다. 앞서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모든 일이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지만 기본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돌이켜봄에 있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실을 흐트러뜨리지 않고서 유지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선 설명에 이어서 표현하자면 이 내용은 스스로 망령되이 행실을 하고 다녀 스스로가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을 말한다.     

만약 여기서 문답이 끝났다면 선비의 개념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저 선비에 대한 개념을 묻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듯 자공(子貢)은 스승의 가르침이 늘 그러하듯 그 이론을 실제에 대입하여 당대에 정치하는 이들이 선비라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관련지어 묻는다. 이에 노타임으로 한심스러움을 고스란히 한 마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일갈로 내뱉는 공자의 사이다 발언이 이 장을 마무리한다.      


“아! 비루하고 자잘한 사람들을 어찌 따질 것이 있겠는가.”     


평가자체에 대한 거부. 평가 대상으로서의 자질 부족으로 인해 평가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니 논외로 한다. 이보다 더한 뼈 때리는 비판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의미를 파악한 주자는 공자의 마지막 대답에 다음과 같이 행간의 의미를 풀이한다.     


‘지금 정사에 종사하는 자’란 노나라의 三家(삼가)와 같은 따위이다. ‘噫(희)’는 마음에 불평하는 소리이다. ‘斗(두)’는 量(량, 도량형의 단위)의 명칭이니 10升(승)이 들어가고, ‘筲(소)’는 대그릇이니 1두 2승이 들어간다. ‘斗筲之人(두소지인)’은 비루하고 자잘함을 말한다. ‘算(산)’은 헤아림이다. 자공의 물음이 매번 내려갔기 때문에 夫子(부자)께서 이 말씀으로 경계하신 것이다.     


앞서 단계별로 내려가던 설명에서 소인(小人)으로까지 세간의 오해를 받아 비판받을 수 있는 지경을 넘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망령 된 행동의 그 밑이라 평가 기준대에 오를 수도 없는 자들이라는 매섭기 그지없는 죽비에 다름 아니다.


궁극적으로 자공(子貢)이 왜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단계를 낮춰가면서까지 세분화하여 스승에게 질문을 이어나갔는지 그리고 그 기준을 확인하기 위해 현재 정치하는 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으나 스승의 기준이 얼마나 명확하고 엄정한 것이었는지를 이해한 정자(伊川(이천))는 이 장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자공의 뜻은 〈남들이 알아주는〉 깨끗한 행동을 하여 남에게 알려지려 하는 것이었고, 부자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독실하여 스스로 만족해하는 일이었다.”     


자공(子貢)이 함부로 자신에 대해 일정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했거나 오만한 성향을 가진 정도는 아니었으나 스승을 측근에서 모시고 짧지 않은 시간을 공부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면서 자기 스스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승 공자의 눈에 자공(子貢)이 어떤 마음에서 그런 질문을 하고 어떤 마음에서 지금의 언행을 하는지 세심하고 날카롭기 그지없던 공자가 읽어내지 못했을 리 없다.      

공자의 가르침에 갖는 특징이 늘 그렇지만, 이 장에서 알 수 있듯이 스승 공자는 제자 자공(子貢)이 보는 것보다 조금 더 멀리 그리고 더 넓게 높은 곳을 바라보고 지향하도록 일깨워주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구사하지도 않을 눈높이 교육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자공(子貢)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수천 년이 지난 우리들은 공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의미가 저 끝에 가 닿아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장의 해제를 하기에 앞서, <공자가어>에서 공자가 설명한 선비의 개념을 두 가지나 설명한 것과 이 장에서 선비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핵심 기준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라는 안배였다. 이 장에서 공자가 설명하는 선비의 단계를 판단하는 것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된 기준이 있다. 바로 세간의 평가이다. 이것을 현재 대한민국의 용어로 환치하여 표현하자면 ‘국민 눈높이’ 혹은 ‘국민감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를 직업으로 여기는 작자들이나 공무원의 신분이면서 자신들이 이미 정치꾼이 다된 이들보다 더 심하게 사리사욕을 차리는 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제 세간의 눈높이도 그에 맞춰 점점 낮춰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위장전입이니 논문 표절이니 하는 것들이 도저히 국민 눈높이에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청문회의 평가대에 오르는 자들은 그 정도는 ‘국민정서상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도의 외계어로 사과도 아닌 모호한 말로 당당하게(?) 넘어가버린다.     

질병청장에 지목된 이가 버젓이 업무와 매우 밀접한(관련 백신의 허가를 내주는 부서가 질병청) 회사의 주식을 상장도 되기 전에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임명되기 전에 처분해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지경까지 대한민국의 도덕적 눈높이는 바닥을 뚫고 끝 모를 지하까지 파고 내려가고 있다.     

‘법조인’이라 쓰고 ‘법비’라고 읽는 자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로펌에 전관으로 검찰총장이니 검사장이니 하는 자들이 들어가 불과 수개월 혹은 몇 년 만에 수십억 수백억의 재부(財富)를 쌓는 것은 이제 국민 상식(?)이 되어버렸다지만, 법조인이 아닌 고위 공직자의 신분이었던 자들이 전관이라는 이유로 스카우트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선 재물을 취득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다시 그 작자들이 총리니 장관이니 하며 회전문 인사를 거듭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이 나라가 바로잡힐 일은 결코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정과 상식이 뭐가 어떻다고? 개도 웃을 소리, 그리 수시로 내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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