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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07. 2022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고 활용할 것인가?

둔재(鈍才)를 인재(人材)라며 인재(人災)를 자초하는 자들에게,

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鄭나라에서〉 辭命(외교문서)을 만들 적에 裨諶이 초고를 만들고 世叔이 토론(검토)하고 行人인 子羽가 修飾을 하고 東里의 子産이 潤色을 하였다.”     

이 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命’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외국과의 교섭 때 전달하는 國書로 이른바 ‘외교문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辭命’이라고도 불렸는데, 다산(茶山;정약용)은 辭와 命을 구분했다. <상서(尙書)>의 용례에 따르자면, 일종의 포고문으로서의 성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제후와 다른 아랫사람들에게 군주의 의중을 널리 알리기 위한 문서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 포고문을 만드는 일에 있어 네 사람의 현명한 이들이 참여하여 공을 들였다는 내용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있었던 사실에 대한 진술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을 전달하는 공자의 교육방식을 감안하며 주자가 이 장에 대해 어떻게 해설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비침(裨諶) 이하 네 사람은 모두 정나라의 대부이다. ‘草(초)’는 대략이요 ‘創(창)’은 처음 만드는 것이니, 처음 초고를 만듦을 이른다. 世叔(세숙)은 游吉(유길)이니, <春秋左傳(춘추좌전)>에는 子太叔(자태숙)으로 되어 있다. ‘討(토)’는 찾고 연구함이요, ‘論(논)’은 강론함이다. ‘行人(행인)’은 사신을 맡은 벼슬이고 子羽(자우)는 公孫揮(공손휘)이다 ‘修飾(수식)’은 더하고 줄이는 것이다. 東里(동리)는 지명이니, 子産(자산)이 거주한 곳이다. ‘潤色(윤색)’은 문채를 더함을 이른다.     


정나라에서 사명을 만들 적에 반드시 이 네 현자의 손을 거쳐 이루어져서 자세히 살피고 정밀하여 각기 所長(소장)을 다하였다. 이러므로 제후에게 응대함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으니, 공자께서 이것을 말씀한 것은 좋게 여기신 것이다.     


비침(裨諶; 교정청 본에 의거하여 ‘諶’의 독음을 ‘심’이 아닌 ‘침’으로 읽는다)은 정나라 대부로 이름은 皮(피)다. 世叔(세숙)은 정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유길(游吉). 자태숙(子太叔)이라고도 한다.  文才(문재)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40여 년 동안 정나라를 다스렸는데 외교 수완이 뛰어나 강대국인 진(晉)·초(楚)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도 전란의 피해를 예방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行人子羽는 사절단 일을 총괄하는 子羽로 대부 公孫揮(공손휘)를 가리킨다. 東里子産은 동리에 사는 子産으로, 대부 公孫僑(공손교)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文件(문건)을 작성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먼저 초안을 잡은 뒤 검토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그 내용을 문장으로 꾸미고서 마지막으로 다듬어야 한다. 각각의 단계를 草創(초창), 討論(토론), 脩飾(수식), 潤色(윤색)이라 설명하였는데 그 내용을 각기 조금 자세히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草創(초창)은 대략 만드는 일로 草案 잡는 것을 뜻하는 말로,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려 메모의 형태로 뼈대를 잡는 것이고, 討論(토론)은 그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된 부분은 없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고문(古文)에서는 故事(고사)를 조사하고 典禮(전례)를 궁구하며 義理(의리)의 관점에서 바로잡는 일을 뜻한다. 脩飾(수식)은 그렇게 정리된 초안에 문장을 감감하고 교감하는 것이며, 潤色(윤색)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문채를 빛나도록 다듬고 꾸미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정나라 당시에 제후들과 아랫사람들에게 군주의 명령을 포고하는 문서를 만드는 데 있어 네 명의 뛰어난 인물들이 각기 자신에게 특화된 분야에 개별적으로 투입되어 전문화된 분업화 작업을 통해 그 일을 했다는 사실의 기술은 어떤 부분의 가르침을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문건 작성 작업을 비유로 들어, 인재의 특성을 바로 알고 그 인재의 특성에 맞춰 적재적소에 업무를 분담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자가 몸소 실천하였던 제자들의 특성을 모두 알고 그들의 개별적 특성에 맞게 가르침도 맞춤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실제 정치를 행하고 인재를 등용하고 그를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것은 그들의 스승은 아닐지언정 그들의 특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원문에서는 표출되지 않았지만 인사권자인 위정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덕목을 강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정나라에 네 명의 인재가 이후까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했던 정나라 군주에 대한 인정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뒤에 공부하게 될 이번 ‘헌문(憲問) 편’의 20장에서도 이 장에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위(衛) 나라 영공(靈公)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해당 장을 공부할 때 상술하긴 하겠으나 그 장에서는 중숙어(仲叔圉)와 축타(祝鮀), 왕손가(王孫賈)가 서로 업무 분담을 잘해서 영공이 군주로서의 역량이 모자라고 불민함에도 위나라를 잘 이끌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정(鄭)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해서 조금 정확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본래 춘추 시기 초기 수백의 제후국 중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정(鄭) 나라였다. 후대 역사가들의 언급에 따르자면, 주(周) 나라 왕실이 동천(東遷)하여 명맥을 잇게 된 것도 정나라의 역할이 컸다. 춘추시대가 열리기 시작할 즈음 정(鄭) 나라의 초기 행동은 기민했다. 정나라 장공은 무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초창기의 기억이긴 하지만, 정(鄭) 나라의 당시 국력은 주나라 천자와 인질을 교환할 정도였다. 그러던 정(鄭) 나라는 후계자 문제로 내분을 일으키며 쇠퇴해져 가기 시작하여 결국 일곱 귀족 가문이 권력을 농단하게 된다. 정나라가 귀족들 싸움으로 무너져 가는 사이 중원에는 제환공(齊桓公)을 거쳐 진문공(晉文公)이 등장했다. 이후 진(晉) 나라는 패자(霸者)로 군림하였다.     


그러던 중, 남쪽의 신흥 강국 초(楚) 나라가 부상하여 중원 제후국 전체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었다. 초나라는 정나라를 중원 진출의 교두보로 여겼기에, 자기 세력에 넣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진나라 역시 전략적 요충지인 정나라를 반드시 손에 넣으려고 했다. <춘추(春秋)>를 읽다 보면 정나라에 대한 침략과 회유 기록이 하도 반복되어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춘추시대 처음치고 나오며 기린아로 부상했던 정(鄭) 나라의 영광은 불꽃처럼 짧았다. 자산이 집정한 시기를 빼면 거의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다닌 동네북 신세였다. 내분도 극렬해 진나라에 붙자는 무리와 초나라에 붙자는 무리 간에 갈등이 폭발하여, B.C. 566년에는 초나라 손을 잡으려 한 임금을 반대파가 죽이는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런 혼란한 정(鄭) 나라에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 장에서도 언급되며 공자가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마지않는 자산(子産)이었다. 자산은 위에 언급한 정(鄭) 나라 일곱 귀족 가문중 한 가문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귀족에 대한 반감을 누르고 일반 민중의 마음을 얻었는가를 살펴보면 공자가 왜 그를 인정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좌씨전(左氏傳)>을 보면, 자산이 집권한 초기에는, 백성들이 ‘누가 자산을 죽이겠다면 나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전한다. 그런데 3년의 시간이 흐르자 ‘자산이 죽으면 누가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고 우리 재산을 늘려주겠는가’며 걱정했다고 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하던 춘추전국시대에 법가(法家) 계열 학자들은 유가(儒家)들이 칭송하는 인물에 부정적이기 일쑤임에도 공자가 칭찬에 마지않던 자산에 대해서는 법가의 한비자(韓非子)마저도 현인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산이 중국 최초의 ‘형서(刑書)’를 제정하여 현재로 보면, 일종의 성문법을 반포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 모두에게 인정을 받은 부분은 분명히 그에게 인정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정(鄭) 나라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국력이 더 강했던 제(齊) 나라와 진(晉) 나라 같은 대국 사이에 있던 약소국으로 본래의 ‘명(命)’이 갖는 외교문서로 해석하든 위에서 내가 해석한 방식의 포고문으로 해석하든 큰 나라에 비해 그렇게까지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그 체계와 방식을 제대로 갖추었음을 공자가 인정(허여)하고 훌륭한 사례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그 인재의 특장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등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공자의 당시에도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특장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등용이 되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외교에 특화된 능력을 발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군대를 양성하고 군사를 양성하는 훈련에 특화된 이도 있고, 나라의 재화를 불리는 것에 특화된 능력을 보이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총명하고 능력이 여러모로 출중한 이도 있어 그런 자들을 아울러 제대로 활용하는 재상의 능력을 갖춘 이도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배우는 이들이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이 있다. 인재들 개개인의 능력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일일이 탁월한 통찰력을 통해 그들을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과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를 그 일에 등용해보지 않고서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장은 위정자의 리더십을 언급한 내용으로도 많이 인용되어 경영학과 관련된 강연이나 저술에서도 상당히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장의 본래의 의미를 모두 파악하기보다는 리더십을 강조하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덕목에 대해서 언급할 뿐,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행간의 저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는 작업을 수행한 이들의 저술이나 강연은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       


마치 나라와 회사를 경영함에 있어 훌륭한 능력을 갖추어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쏙 빼놓는 공허한 담론으로 흐를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앞에서 한 가지만 언급하였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공자의 다각론적인 현실적 가르침은 이 장의 구석구석에 감춰져 있다. 예컨대, 이 장은 하나의 완벽한 업무 프로세스를 위한 전문화된 분업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화가 일어나기도 전의 인문학자였던 공자가 전문 분업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 내용에 다름 아니란 것이다. 업무 프로세스의 구축은 기업 효율을 높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프로세스가 전문 분업화로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직원에게 적합한 훈련을 하지 못하면 업무 프로세스는 오히려 발전에 방해가 된다. 부적격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전체 시스템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맞다. 공자는 이 장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은, 단순히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이들을 자판기에서 뽑아서 쓰듯이 미리 군주가 알아서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신(神)의 영역을 애매모호하게 설명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특화된 능력을 갖춰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로 등용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관리 등용되고 경험을 축적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특화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공자는 이 장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위정자의 안배와 교육, 그리고 그가 그 분야의 전문가로 완성되기까지의 기다림까지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관리로 등용할 때 전반적인 문서 작성 능력이라던가 기본적인 공부에 대한 부분을 시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있겠지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수많은 장르 중에서 그가 어디에 특화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그가 이미 등용될 즈음에 그런 능력을 갖추고 특화되어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배정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선임자로부터 일을 익히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위정자가 기다리면서도 그가 그 분야에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검증하는 과정을 현실정치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비속한 언행을 바로 곁에서 들으면서도 그 싸구려 입버릇을 지적하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바로 사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세임을 조언하여 이루지 못하고, 일천한 외교부 경력을 가지고 아직 성과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자에게, 자신을 두둔해준다는 이유만으로 탁월한 능력이 어쩌고를 입에 담는 것은 전문 분업화를 갖추기도 전에 혼자서 자빠지는 슬랙스틱 블랙코미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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