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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13. 2022

사람은 좋은데 일은 못한다면 그에 맞는 자리만 앉혀라.

그릇에 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 곧 제대로 된 인재 등용이다.

子曰: “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孟公綽이 趙氏와 魏氏의 家老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滕나라와 薛나라의 大夫는 될 수 없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맹공작(孟公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평가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일단 맹공작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장에서 보여주는 공자의 평가 방식에서 핵심 용어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가로(家老)라고 번역한 ‘老’의 의미와 그에 대비되어 사용된 대부(大夫)라고 하는 의미의 차이이다.      


무엇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파악하였으니, 먼저 주자가 개략적으로 이 장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公綽(공작)은 노나라 대부이다. 趙(조)씨와 魏(위)씨는 晉(진) 나라 卿(경)의 집안이고 ‘老(노)’는 가신의 우두머리이다. 大家(대가)는 권세가 중하나 제후의 일이 없고, 家老(가노)는 명망이 높으나 관직을 맡은 책임이 없다. ‘優(우)’는 유여함이다. 騰(등)과 薛(설)은 두 나라의 이름이고 ‘大夫(대부)’는 국정을 맡은 자이다. 등과 설은 나라가 작으나 정사가 번거롭고, 대부는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하니, 그렇다면 공작은 아마도 청렴하고 고요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에 부족한 자인 듯하다.     


주석의 첫 문장에서부터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미 노나라의 大夫라고 소개한 자에 대해 공자가 평가하기를 滕나라와 薛나라의 大夫가 될 재목은 아니라고 한 부분이 서로 배치되는 구조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大夫와 가로(家老)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滕나라와 薛나라’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에 차이가 있는지를 면밀히 나눠 살펴보아야만 한다.     

 

한편, 문제의 용어 ‘老(노)’에 대해 주자는 ‘가신(家臣)들의 우두머리’라 해설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가신(家臣)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부(大夫)와 대비하여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생겼다. 가신(家臣)이란, 문자 그대로 한 가문을 위해 일하는 신하를 말한다. 대부(大夫)는 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신하를 말한다. 우두머리라고는 하지만 가신은 가신이다. 즉, 가신(家臣)과 대부(大夫)의 가장 큰 차이는 규모의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가신(家臣)은 한 가문에만 충성하고 일할 뿐 그 범위를 넓혀 정식 관직을 가지고 있는 지위가 아니라서 나라를 위해 일할 수도 없는, 일종의 하위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고, 대부(大夫)는 한 나라를 위해 국정업무에 정식으로 임무를 맡고 있는 자로, 좀 더 큰 범위에서 일하는 상위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구분된다.     

주자의 설명에 따르면, ‘滕나라와 薛나라’를 언급한 것은 지극히 작은 나라의 대표로 언급된 것으로 나라는 작지만, 정사가 번거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주자는 이 장에서 공작에 대해 내린 공자의 평가를 통해, 공작이라는 인물이 청렴하고 고요하고 욕심이 적기는 하지만, 재능이 부족하여 그 그릇이 대부 노릇을 할만한 자가 아니라고 한계 지은 것이라 추측하였다.     


다시 말해, 자신의 조국 노나라의 대부로 임명된 맹공작에 대해 그 인물됨이나 그릇이 노나라 대부로 임명되어서는 안 될만한 인물이라 단정지은 것이다.      


조금 복잡한 듯 하지만 하나씩 풀어서 보면, 가신(家臣)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일종의 고문 역할이기에 정해진 관직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한 가문에 한정된 범위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나라의 정사에 영향을 끼칠 일이 없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볼 여지가 크다. 거기서 언급된 인물인 趙(조)씨와 魏(위)씨는 진(晉) 나라의 대부(大夫)였던 인물들이다. 즉, 대부(大夫)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집안을 건사하기 이해 두는 가신급까지는 할 수 있는 인물일지 몰라도 대부(大夫)의 그릇은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대비하기 위해 趙(조)씨와 魏(위)씨를 비유의 대상으로 끌고 온 것이다.     


참고로 진(晉) 나라는 춘추시대의 제후국 중에서도 가장 큰 나라였는데, 이후 趙(조)씨와 魏(위)씨, 그리고 韓(한)씨의 세 가문에 의하여 세 나라로 쪼개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공자가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참람한 세 대부 가문에 대해서 그렇게 비난했던 것과도 비유의 궤도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해서 정리하면, 趙氏와 魏氏는 아주 큰 나라의 대부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대명사로 등장한 것이고 滕나라와 薛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나라 내부의 사정이 복잡하고 처리해야 할 중대 사안들이 많아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에 대부(大夫)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을 설명하여, 일개 나라보다도 더 클 수 있는 대부의 집안에서 가신들의 우두머리를 맡을 만한 그릇은 될 수 있을지언정 나라는 작지만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대부(大夫)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맹공작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나 해당 인물들의 역사적 지위와 환경에 대해서 모두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비유지만, 언급된 인물들이나 나라에 대한 정황과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비유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공자의 의미를 이해한 양 씨(楊時(양시))는 이 장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람의 재능을) 미리 알지 못하여 그 재능을 굽혀 사용하면 인재를 버리는 것이 되니, 이는 군자가 사람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말씀하였으면 공자의 사람 등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위 주석은 당신이 잠시 잊고 있던 이 헌문편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되짚어 환기시켜준 것이다. 앞에서 인재의 등용을 적재적소를 해야 한다는 논리적 흐름은 오히려 뜬금없이 등장한 맹공작이 왜 이 흐름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부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맹공작에 대해서는 옛 주석에서 공안국(孔安國)이 평가했던 내용을 살펴보면, 사리사욕이 없었던 인물로 공자 역시 높게 평가했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 공자가 보인 평가 내용만을 본다면, 사리사욕이 없는 것만으로 그를 중용하여 대부(大夫)의 자리에 놓을 수 없다는 공자의 인재 등용관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위 양 씨의 주석은 바로 그러한 공자의 생각과 인재 등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앞에서 공부했던 바와 같이 인재를 등용하는 일에 있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그가 인재인지를 평가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어떤 부분에 특화된 인물인가를 통찰해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장에서 다소 뜬금없는 맹공작이 등장한 것이 뜬금없는 일이 아닌 아주 적확한 사례와 비유일 수 있다. 그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사리사욕이 없는 인물로 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평가는 그의 기본적인 인물됨과 상관없이 그의 재능과 그가 가진 종합적인 능력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부(大夫)의 그릇이 아님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공자의 그러한 설명은 그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노나라 대부가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것을 넘어 그가 가진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를 대부로 임명한 노나라 군주의 부족함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더 중요한 부분은 능력이 부족한 이를 임명하는 초급 실수에 해당하는 것 말고도 더한 능력을 되는 인물을 반대로 더 작고 좁은 자리에 배치하는 실수가 더 클 수 있음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능력이 안 되는 이를 그의 깜냥이 커버할 수 없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능력이 훨씬 출중한 인물을 작은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 어차피 그가 능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처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일반적인 발상에 대해서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이는 그 자리에서 그 일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능력이 훨씬 월등한 이에게 맞지 않는 좁고 작은 자리를 배치하게 되면 그는 영영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떠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인재를 놓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쟁국에 인재를 보내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 시대의 훨씬 이전부터 정치행위의 가장 기본은 인재의 등용이었다. 이것은 이후 조선시대의 왕에게도 제왕학의 근본으로 꼽히는 덕목 중에 하나로 인재를 발굴하는 것에서부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인사(人事)와 관련된 일에 위정자가 직접 관여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해야만 한다는 이론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위정자라고 하면 당연히 자신의 수족이 되어줄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것에 진심이었다. 제대로 된 한 명의 인재를 등용하는 것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위정자들은 대개 그 자신이 출중한 영웅형 인물이 아니었다. 반면에, 자신의 능력을 자부하고 모든 것을 자신이 모두 처리하겠다고 했던 영웅형 인물들은 대개 측근이나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등용하여 배치하지 못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일쑤였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그대로 자신의 능력과 그릇을 인정받는 수학공식 같은 투명한 사회라면 몰라도 공자의 시대 훨씬 이전부터 작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그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높이 등용되는 일이 오히려 드문 상황에서 공자의 이러한 탄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재란, 그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인사권자에 의해서만 등용된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친지라는 혈연을 강조하는 구시대적인 가족회사의 운영방식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입지를 다져줄 딸랑이를 필요로 하는 학계나 법조계의 채용 승진 발탁 방식이 ‘인재’라는 용어 자체를 한껏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입으로는 인재라고 늘 떠들고는 하지만, 정작 인재가 자신의 사리사욕에 맞춤인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피부로 절실하게 절감하곤 한다.   

    

해당 학계 분야의 최고 권위의 학자가 하버드와 서울대학교에 가득 차 있지 않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은 그 세계에서조차 능력과 자질 등의 객관적인 부분들조차 냉정하게 평가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을 뽑아 더 높은 곳을 향해 나가 가겠다고 하는 최고경영자나 인사 통수권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언제나 인재에 목마르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인재를 만나지 못할까? 이른바 그들의 ‘미스매칭 현상’을 보면서 나는 늘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신기해왔다.      

영리 추구가 최우선이라고 하는 기업에서조차 최고경영자들을 만나면 쓸만한 인재가 늘 부족하다고 한탄하고 토로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월급을 받으며 전문적으로 사람을 뽑는 인사관리자는 회사의 규정에 맞게 정기적으로 사람을 잘 뽑고 있다고 인재 등용을 최고 경영자의 입장에서처럼 갈급해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최고경영자나 인사 통수권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인재를 파격적으로 발탁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실제로 그들은 나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월급을 받으며 인사를 진행한 자들이 잘못 뽑은 인물들이 사고를 치거나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을 때 그들의 거취를 빠르게 정리해줘야만 하는데도 최고경영자나 인사 통수권자는 어느 사이엔가 그것을 조직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처리해버리고 만다.     


공자 이전의 시대에서부터 복잡다단해진 글로벌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인재 쟁탈전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앞서가는 기업이나 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진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인재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이들이 인재라고 판단된 이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서구의 선진 정치문화에서는 고위 정치인들의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물론 장로급 정치인들의 존재는 그 나름대로 정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치를 일선에서 이끌어나가야 하는 이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점점 어려지는 것이 아니라 연륜과 젊음의 추진력이 최적의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인재 등용의 방식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십수 년이나 있으면서도 변화와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다선의원이라는 자들이 밥값을 축내기만 한다는 현실은, 말 그대로 변함없는 ‘사실’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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