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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19. 2022

대의를 먼저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대의만 생각할 수 없을지라도 권모술수가 우선일 수는 없다.

子曰: “晋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晉 文公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으며, 齊 桓公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이 장에서는 두 나라의 군주에 대해서 비교 평가를 하고 있다. 晉나라 文公은 속이고 바르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반대로 齊나라 桓公은 바르고 속임이 없었다고 180도 판이하게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원문의 해석에서, 속이면서 바르지 않았다고 했으니 당연히 晉나라 文公이 천하에 나쁜 악당이고 齊나라 桓公이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이해될 수 있겠으나 이 부분에 대한 해석도 청나라에 고증학이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서 그렇게 단순한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먼저 주자가 그 부분을 어떻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晉 文公은 이름이 重耳(중이)이고, 齊 桓公은 이름이 小白(소백)이다. ‘譎(휼)’은 속임이다. 이들 두 公(공)은 모두 제후의 맹주이니, 이적을 물리치고 周(주)나라 왕실을 높인 자들이다. 비록 무력으로써 仁(인)을 빌려 마음이 모두 바르지 못하였으나 환공은 초나라를 칠 때에 대의를 가지고 말하여 속이는 방법을 따르지 않았으니 그래도 저것(환공)이 이것(문공)보다 나음이 되며, 문공은 위나라를 쳐서 초나라를 끌어들이고 음모로써 승리를 취하였으니 그 속임이 매우 심하다. 두 임금의 다른 일도 이와 같은 것이 많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이를 말씀하여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신 것이다.     

바로 주자의 이 주석 때문에 원문에서와 같이 ‘譎(휼)’을 ‘속이다’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바르다’라고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의에 따른 방법을 사용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자(朱子)는 배우는 자들이 혹여 이 원문을 흑백논리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하여 환공도 문공도 무력을 쓰면서 仁을 빌려왔으므로 마음이 본래 不正하다고 규정하는 것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다만 환공은 楚(초)나라를 칠 때 의리를 따르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나 문공은 衛(위)나라를 치면서 초나라를 빼앗아 음모로 승리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 주석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은, ‘공자는 환공이 마음 씀씀이나 행사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도를 지켰기에 문공과 다르다’라고 표면적인 선을 확실하게 긋고자 했다.   

  

앞서 예고했던 청나라 고증학자들이 새롭게 풀이한 이 장의 의미를 먼저 소개하자면, ‘譎(휼)’을 ‘속이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권도(權道)의 의미로 풀이하였고, 앞서 ‘바르다’는 대의에 따라 원칙을 지켜가는 방식을 의미하는 정도(正道)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너무도 명확한 흑백논리로 분류될 수 없음을 시사하였다.  이후 맹자(孟子)는 이 장에 대해 “仲尼(중니·공자)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장에서 언급된 두 군주의 역사적 사실은 공자가 태어나기 150여 년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자 역시 역사서를 통해 공부를 하여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평가한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두 군주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대강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을 테니 두 사람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간략하게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듯싶어 설명하기로 한다.     


두 군주는 모두 춘추오패(春秋五霸)로 불렸던 나라의 수장이었다. 주(周) 나라 13대 평왕(平王)이 낙양(洛陽)으로 도움을 옮긴 이후부터를 동주(東周) 시대라 하고 동주시대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게 된다.     

춘추시대라 일컬음은,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천자(天子)로서의 권위가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제후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 주나라 초기에 1천 여국이나 되던 제후의 수가 힘의 논리를 앞세워 10여 개의 나라로 압축이 된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패권을 잡은 제후를 일러 춘추오패(春秋五霸)라 하였는데 오패(五霸)는 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楚)의 장왕(莊王), 오왕(吳王) 부차(夫差), 월왕(越王) 구천(勾踐)이라는 일설과 오월동주(吳越同舟)의 마지막 두 왕 대신에 송(宋)의 양공(襄公)과 진(秦)의 목공(穆公)이라는 일설이 모두 중국사에서 주장되고 있다.     

제(齊) 나라 환공(桓公)은 B.C. 685년에 군주로 등극했다. 강태공(薑太公) 여상(呂尚)의 12대 손이고, 제희공(齊僖公) 녹보(祿甫)의 셋째 아들이다. 모친은 위국(衛國) 사람이다.  재위 중에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고 개혁을 추진했다. 군정(軍政) 합일과 병민(兵民) 합일 제도를 만들어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B.C. 681년에 견(甄)에서 송(宋), 진(陳) 나라 등 4개국의 제후회맹(諸侯會盟)을 주도했다. 


당시 중원(中原) 화하(華夏) 각 제후국들은 융적(戎狄) 부락 등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 제환공은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실은 높이고 오랑캐는 물리친다)’의 기치를 내걸고,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공격하고, 남쪽으로 초(楚) 나라를 정벌하여 중원에서 첫 번째 패주(霸主)가 되었다. 그러나 만년에 관중이 죽고, 역아(易牙), 수초(豎貂) 등의 소인(小人)들을 등용시키는 바람에 끝내는 내란 중에 아사(餓死, 굶어 죽음)했다.     

진(晉) 나라 문공(文公)은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중이(重耳)이다. 춘추(春秋) 시대 진(晉) 나라의 22대 군주로 진헌공(晉獻公; ~BC 651)의 아들이고, 모친은 호의(狐姬)이다. 여희(驪姬; 진헌공의 비)의 난으로 국외로 도피하여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BC 636년에 진목공(秦穆公)의 지지하에 진나라로 돌아와 진회공(晉懷公)을 죽이고, 자립하여 군주가 되었다. 재임 중에 어진 인사를 임용하여 진나라를 발전시켰고,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제(齊)나라에 대항했으며, 송(宋)나라를 보호하고 정(鄭)나라를 견제했다. 그리고 주왕(周王)을 보필하고 초(楚)나라를 물리쳐서 춘추(春秋) 시대에 패주(霸主)가 되었다. 시호는 문(文)이다.     


업적을 놓고 보면 같은 패자(霸者)라 불린 군주였지만 제나라 환공이 초나라를 공략할 때 내세웠던 명분은 천자였던 주(周) 나라 소왕(昭王)이 남정(南征)에서 돌아오지 못한 책임과 초나라에서 주나라 왕실에 공물을 바치지 않은 죄를 문책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진나라 문공은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여 포위했을 때, 초나라와 깊은 교분이 있는 조(曹)와 위(衛), 두 나라를 공격했다. 문공이 그 두 나라를 공격한 배경과 목적에는 정치적인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문공은 초나라의 공세를 늦추게 한 다음 송나라를 포위하고 있는 초의 군대가 철수하는 것과 조, 위 두 나라를 침공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암암리에 조, 위 두 나라를 속여 초나라와 절교하게 만든 다음 송, 제, 진(秦) 등 중원의 유력한 제후국들과 연합하여 성복(城濮)에서의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패자가 된 것이다.     


올해 최고의 히트 드라마로 불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도 익숙해진 '권모술수(權謀術數)'에서의 '권(權)'이 바로 이 장의 원문에서 ‘속이다’라고 내가 해석한 ‘譎(휼)’의 의미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패자라고 할지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움직여 패자가 된 제나라 환공과 권모술수(權謀術數)를 통해 패자가 된 진나라 문공은 같은 레벨의 경지일 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공자의 의도가 단순히 흑백논리로 명확하게 나뉘어져 진나라 문공을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공자의 원시 유학에서 보여주는 가르침이 늘 그렇듯이 배움에 단계가 있듯이 군자에도 군주에게도 그 경지의 단계가 각기 다르다.     


그것은 배우고 수양하는 단계에 따라 올라가는 것이 다르고 사람마다 가진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 장에 등장하여 비교된 두 군주만 하더라도 그렇다. 환공(桓公)은 이후 천자의 명령을 공손하게 받들었으나 문공(文公)은 당돌하게 천자의 의례인 墓道(묘도) 제도를 청하는 모습을 보인 것만 하더라도 그 둘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또 환공은 관중(管仲)과 원수였지만 그를 사면하고 등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문공은 호언(狐偃)의 은혜를 입고도 그를 내쳐버리는 잔혹함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만 종합하여 보더라도 환공과 문공은 사람됨이 달랐다. 어떻게 천하를 제패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실 정치와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냉철한 분석의 공자에게 있어서는 그 차이가 군자를 향한 단계별 차이로 구분되어 환치된 것이다. 주자가 간략하게 해석한 것처럼 환공의 대의명분도 결국 표면상의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공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무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도 포함하여 눈만 깜박해도 세상이 휙휙 변해가는 작금의 시대에 어차피 꿍꿍이는 따로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의미로 대의명분을 꾸며대는 것은 역시 군자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대의명분이 진나라 문공보다 더 우위에 있는 단계라고 표면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은 사실이다. 권모술수를 사용해서 자신의 계획대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보다는 ‘표면적으로’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행동을 도모하게 된다면 자신의 행동이 갖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신이 부모님이 가진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매주 주말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를 드리러 가거나 매일 전화를 챙기는 것은, 단순히 부모님의 막대한 유산을 노려서가 아니라 자식이기에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부모님에게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하면서 자식들에게 그 모범을 보이게 되는 여러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삐딱한 주변 이들이나 형제들이 봤을 때 설사 그것이 부모님의 막대한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물려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여 비아냥거린다 할지라도, 당신의 행동이 스스로 우러나와 부모님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효도의 근본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어떤 바보도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며 매일같이 전화로 안부를 묻고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아가는 것이 부모님의 유산을 바라고 하는 행동으로 오인될까 봐하지 않겠다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평상시에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해하지 않고 안부전화조차 하지 않다가 부모님이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거나 부모님이 변호사를 통해 유언장을 작성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자들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효의 정신조차도 그렇게 혼탁해져 대의명분과 권모술수가 양립할진대, 나아가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의 투표를 받아 지지를 받는 것으로 정치인의 생명을 영위하는 것들은 어떠한가?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는 모든 국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기에 지역구를 나누어 그 지역민들의 이익을 위해 대신 뛰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당신들이 사는 그 지역에 기생하는 국회의원들이 정말로 당신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지역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뛰며 당신이 민원사항이 있을 때 정말로 적극적으로 뛰어주던가? 더 많은 뒷돈으로 후원을 해주는 이들의 이익을 위한답시고 서로 이익을 공유하는데 정신이 없고, 정작 선거철이 되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고 동네 사거리에 명절 때마다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얼굴 한번 보기 힘든데, 그들의 블로그나 보고서에는 어쩜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사진을 잘만 찍고 다니는지 이상하지 않던가?      


당신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 주변의 사회 부조리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을 가졌을 때 그 문제를 당신이 사는 지역구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연락해서 시정해달라고 연락을 취해보라 십중팔구 그들은 당신의 전화 내용조차 국회의원이라는 자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그를 수행하는 비서 역할을 하는 보좌관에게조차 보고하지 않고 그들만의 메모로 그저 끝나버리고 만다.           

차라리 눌러서 시키는 것만 나오기라도 하면...

국정감사 철인 요즘의 뉴스를 보면, 저마다 나중에 선거철에 사용하고 싶어 자신들이 새로운 감사거리를 찾아 발견하고 지적했다며 기레기들과 공조하여 그들이 내는 홍보성 기사로 단발성 뉴스는 국회의원의 인터뷰로 끝나는 취재가 퍼레이드처럼 펼쳐진다. 악어와 악어새라고는 하지만 이미 기레기들은 자신들이 나중에 의원실의 공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따로 기사거리를 찾기보다는 국회의원실 홍보자료 기사를 만들어주며 공존 기생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했던 다양한 층위의 가르침과 죽비 중에서, 초급자 수준에서도 읽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필요에 따라 권도(權道)를 구사할 수도 있겠으나, 대의명분을 고려하지 않고 취하는 권모술수는 언제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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