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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1. 2022

인재는 뽑히는 것이 아니라 가다듬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알아봐 주는 이도 필요하나 그에 부응하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

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子貢이 말하였다. “管仲은 仁者가 아닐 것입니다. 桓公이 公子 糾를 죽였는데, 죽지 못하고 또 桓公을 도와주었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管仲이 桓公을 도와 諸侯의 霸者가 되게 하여 한 번 天下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管仲이 없었다면 나(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匹夫 · 匹婦들이 작은 信義를 행하여 스스로 목매 죽어서 시신이 도랑에 뒹굴어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
         

이 장에서는 바로 앞에 자로(子路)가 평가하며 언급되었던 관중(管仲)에 대해 자공(子貢)이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비판적인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핵심 내용은 역시 앞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자신이 따르던 왕자 규(糾)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음에도 다른 이들처럼 따라서 죽지는 않았을지언정 오히려 제나라 환공에게 재상으로 중용되어 그를 도와 천하를 제패하는데 자신의 공력을 기울인 행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자공(子貢)이 왜 그렇게 비판적으로 평가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자공은 관중이 스스로 절개를 지키겠다고 자살하지 않은 것까지는 괜찮지만 이후 환공을 도운 것은 자신의 절개를 저버렸으니 너무 심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 자공(子貢)의 의견에 대해 앞서 자로(子路)의 생각이 단편적이었던 것을 우회적으로 일깨워준 것처럼 공자는 왜 관중의 행위가 지탄받아야 할 것이 아닌 숭상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앞서 자로(子路)에게 설명할 때 다소 포괄적으로 설명했다면 이번 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백성들이 받은 혜택으로 오랑캐가 되는 것을 면하였음을 제시하며 관중(管仲)이 40여 년간을 재상을 하면서 어떤 성과를 이뤘기에 인정을 받을만한 것인지를 설명한다.     

풍속을 바로잡은 것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 공자의 설명에 대해 주자는 배우는 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하고 있다.     


‘霸(패)’는 伯(패)과 같으니 우두머리이다. ‘匡(광)’은 바로잡는 것이니,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이적을 물리침은 모두 천하를 바로잡는 것이다. ‘微(미)’는 없음이다. ‘袵(임)’은 상의의 옷깃이니,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것은 이적의 풍속이다.     


공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하를 제패하는데 결정적인 책사 역할을 했던 관중(管仲)의 업적이 단순히 풍속을 바로잡는 작은(?) 것에 그치지 않았음에도 공자가 굳이 이 부분을 구체적인 사례로 강조한 이유에 대해 주자는 적통(嫡統)이라고 할 수 있는 주(周) 나라의 왕실의 존엄함을 높이는 대의명분을 이적(夷狄; 오랑캐)의 풍속을 물리치고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쇄소응대(灑掃應對)의 논리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이전 장의 자로(子路)에 이어 학문이나 수행의 정도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는 자공(子貢)마저 관중(管仲)의 행실에 대해 도의(道義)를 지키지 못했다는 절개를 비판하는 부분이 동일하게 나오는 것은 당시 공부하는 이들의 생각이 대개 비슷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들의 시각이 좁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공자는 왜 관중(管仲)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는 핵심으로 절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보가 있었음을 역설한다.  

   

공자가 원문에서 표현한 대로 자신이 모시던 군주의 실패에 절개를 위한다고 죽음으로 따르는 것은 ‘匹夫 · 匹婦들의 작은 信義’라는 것으로, 절개를 지킨다고 죽음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대의명분이 아무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치가 없는 개죽음(?)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였다.     


‘諒(양)’은 작은 信(신)이다. ‘經(경)’은 목매는 것이다. ‘莫之知(막지지)’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後漢書(후한서)》〈應劭列傳(응소열전)〉에 이 글을 인용하였는데, ‘莫(막)’ 자 위에 ‘人(인)’ 자가 있다.    

 

공자가 힘주어 강조한 이 마지막 문장의 의미에 대해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논평과 해설을 통해 배우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환공은 형이고 자규(왕자 糾)는 아우였다. 관중이 자신이 섬기던 자에게 사사로이 하여 그를 도와 나라를 다툰 것은 義(의)가 아니니, 환공이 자규를 죽인 것은 비록 지나쳤으나 자규의 죽음은 실로 마땅하다. 관중이 처음에 자규와 함께 모의하였으니, 마침내 그와 함께 죽는 것도 괜찮고, 아우(왕자 糾)를 도와 나라를 다툰 것이 불의가 됨을 알고 스스로 죽음을 면하여 후일의 功(공)을 도모하는 것도 또한 괜찮다. 그러므로 성인이 그의 죽음을 책하지 않고 그의 공을 칭찬하신 것이다. 만일 환공이 아우이고 자규가 형이어서 관중이 도운 것이 정당하였는데, 환공이 그 나라를 빼앗고 죽였다면 관중에게 있어 환공은 한 세상에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다. 만일 〈공자께서〉 후일의 공을 계산하여 환공을 섬긴 것을 허여 하셨다면 성인의 말씀이 매우 義(의)를 해쳐 만세에 反覆不忠(반복불충)하는 亂(난)을 열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당나라의 王珪(왕규)와 魏徵(위징)은 李建成(이건성)의 난리에 죽지 않고 태종을 따랐으니, 의를 해쳤다고 이를 만하다. 뒤에 비록 공이 있었으나 어찌 속죄할 수 있겠는가.”     


정자(伊川(이천))의 해설에 의하면,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형제간의 권력투쟁에서 이루어진 죽고 죽이는 쟁탈전에 전통적인 유가(儒家)의 기준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먼저 형제관계에서 동생이 형에게 반기를 든 것 자체를 응징한 것이라고 사실을 환기한다. 묘한 논리의 전환이지만 그렇기에 잘못된 줄 서기를 해서 왕자 규를 따랐던 관중이 그 잘못에서 목숨을 건져 제대로 된 환공에게 중용된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정자(伊川(이천))의 해석은 형과 아우의 위계를 고려할 때 권력싸움을 위해 형에게 칼끝을 겨눈 왕자 규와 그를 도왔던 관중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를 명확하게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불의를 도왔던 것에 절개를 적용하여 죽는 것이 더 부당한 일이었고 자신의 잘못을 고쳐, 정당한 권력을 승계한 제나라 환공을 도운 점에서 공자가 높게 평가한 근거를 찾는다.     

제 환공과 관중

이 의견에 대해 주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내(주자)가 생각하건대, 관중은 공이 있고 죄가 없으므로 聖人(성인)이 홀로 그 공을 칭찬하신 것이며, 왕규와 위징은 먼저 죄가 있고 뒤에 공이 있었으니, 공을 가지고 죄를 덮어주지 않는 것이 옳다.     


앞선 주석들의 내용을 정리하며 주자는 관중은 죄가 없고 공이 있을 뿐이기에 공자가 칭찬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주자의 마지막 주석은 그저 관중을 찬양하는데 동의하는 뜻을 더하는 의도가 아니다. 가장 마지막 문장의 내용, 즉, 공이 있다고 해서 죄가 덮이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데 방점이 있다.     


이 장에 쉽게 간파되지 않는 조금 깊이 감춰진 메시지의 핵심은, ‘절의(節義)’라는 사회적 개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과연 무엇을 ‘절의(節義)’라고 할 것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에서부터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절의(節義)’라는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억울함이나 의지를 표명하는 행위이다. 한번 죽으면 존재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죽음은 단순히 결정하고 쉽게 행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게다가 그 결단을 내린 사람의 의도대로 죽음이 존엄한 가치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지도 않다. 예컨대, 누명을 쓰고 억울함에 죽음을 선택하여 자신의 결백을 보이고자 하였어도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그가 실제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매도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장에서 義理에 부합하지 않는 節義는 구독지량(溝瀆之諒)일 따름이라고 말하면서 관중(管仲)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제나라 환공에게 다시 한번 제2의 인생을 부여받고 업적을 이룬 것에 더 큰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관중(官中)이라는 특별한 케이스를 통해 한 개인에 대해 평가하는 방식을 넘어 당시 세태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는다.      

제 환공을 묘사한 그림

이 장에서 공자가 표현한 ‘일광천하(一匡天下)’라는 의미는 ‘천자의 권위를 바로 세운 것’으로 설명된다. 바로 앞장에서 관중(管仲)을 언급하며 제나라 환공을 설명한 부분이, 제대로 된 인재 등용이라는 키워드를 표방한 ‘헌문(憲問) 편’의 주제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이 장에서는 왜 관중(管仲)이라는 인물이 재평가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반론을 명확히 제시한다.     


인재가 진정한 인재였음이 확인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본래 주변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받던 인재가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는 안목을 가진 주군을 만나 발탁되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발탁되어 이전까지 등용되지 못하고 아무도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빛냄과 동시에 자신을 발탁한 주군의 안목까지 인정받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죽마고우였던 포숙아(鮑叔牙)의 극적인 개입과 통 큰 추천으로 처형의 위기에서 벗어나 재상의 위치로까지 오르게 된 관중(管仲)의 능력이 세간에 인정받지 못했던 것에 대해 공자는 단호하게 필부(匹夫)의 시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판단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근거로 공자는 그가 이후 40여 년간의 제2의 인생에서 펼친 공적을 말한다. 혹여 그 말만으로 공이 죄를 덮을 수 있을 것이라 해석할 것을 우려하여 주자는 관중은 죄가 없고 공만 있기에 공자의 허여(인정)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부연까지 하였다.     


다시 말해, 이전의 행위가 죄라고 비판받을만한 것이 아닌 이유가 뒤에 세운 공 때문이 아니라는 변호인 셈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다양한 언급을 통해 공자가 관중(管仲)의 인간됨에 대해 인(仁)을 완성한 군자로서 칭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룬 평생을 거쳐 이룬 성과에 대해 전반적으로 그 공적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삼국지>로 불리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보면, 조조(曹操)는 천하의 악당으로 나온다. 민중들이 소설을 통해 접한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그 이미지는 아주 오래 이어졌다. 그러던 중 어느 사이엔가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는 조조(曹操)를 천하를 제패한 인물로 묘사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조조(曹操)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조조(曹操)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문화계에서 일제히 운동을 벌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사(正史)로 보자면, 조조(曹操)가 천하를 제패한 영웅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저 소설을 통해 그를 간웅으로 보는 것이 일반 백성들에게 자연스러워진 것뿐이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사실과 관계없는 롤러코스터 평가를 받는 것은 조조(曹操)에 한정된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진시황(秦始皇)이 그러했고, 그 외의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를 거듭하며 재평가되거나 재조정되어왔다.      

그렇게 보면, 흔히 말하는 세간의 평이 언제나 정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짜 뉴스에 휘둘리고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대중심리를 감안한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없는 말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활보하는 작금의 시대는 더더욱 그러하다.      


공자의 시대로부터 수천 년의 시대가 지났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최첨단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진보하기는커녕 더욱 쇠퇴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이 사실인 양 퍼트리고 감정적으로 쉽게 팔랑귀를 내흔들며 죽창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이라는 형태로 찔러댄다. 그리고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다. 

인재로 발탁될 수준은 아닐지라도 인재를 거짓 폄하하고 짓밟는데 신나서 자판을 두드리는 자가 당신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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