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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2. 2022

윗물이 맑다면, 아랫물이 맑지 않기가 어렵다.

아랫물이 맑지 않다면 윗물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蘧伯玉使人於孔子. 孔子與之坐而問焉, 曰: “夫子何爲?”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 使者出, 子曰: “使乎! 使乎!”    
거백옥(蘧伯玉)이 사람을 孔子께 심부름 보내자, 孔子께서 그와 함께 앉아서 물으시기를 “夫子(蘧伯玉)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하시자, 대답하기를 “夫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지만 아직 능하지 못하십니다.” 하였다. 使者가 나가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使者이구나! 훌륭한 使者이구나!”     


이 장은 공자가 위나라에 있을 당시 거처를 제공했던 거백옥(蘧伯玉)이 다시 노나라로 돌아간 공자에게 사신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과정과 그 당시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주자는 그 상황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한다.      


거백옥(蘧伯玉)은 위(衛) 나라의 대부이니, 이름이 瑗(원)이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실 적에 일찍이 그의 집에 머물러 주인을 삼으셨는데, 이윽고 노나라로 돌아오셨다. 그러므로 거백옥이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거백옥(蘧伯玉)의 초상

거백옥(蘧伯玉)은 위(衛) 나라에서 헌공(獻公), 상공(殤公), 영공(靈公) 등 삼대 국군(國君)을 섬기면서 덕치(德治)를 주장한 인물로 앞서 수차례 언급된 영공(靈公) 때 대부(大夫)를 지낸 인물이다. 겉은 관대하지만 속은 강직한 성품으로, 자신은 바르게 행실 하면서도 남에게 바르게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이 50살에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고 스스로 반성하였다고 할 정도로 행실이 바른 성품을 지녀 공자가 칭찬에 마지않았다.      


본 ‘헌문(憲問) 편’의 12장에서, 공자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는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런 연유로 잘못을 고치는 데 늑장을 부리지 않았던 인물의 대명사로 언급되곤 한다. 오(吳) 나라의 계찰(季札)이 위나라 찬허(贊許)를 지나가면서 군자(君子)라 여겼다는 기록도 전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제자행(弟子行)’에 보면, 공자가 자공(子貢)에게 여러 현자를 언급하던 중에 거백옥(蘧伯玉)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내용이 나와 공자가 거백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했는지 명확하게 확인하게 해 준다.     


“외양은 너그럽고 마음속은 정직하여 무슨 일이라도 총괄하기를 극진히 하며, 자기 몸은 바르게 하면서도 남에게는 바르게 하라고 하지 않으면, 어진 일을 급급히 하여 착한 일을 하다가 끝을 마친 것은 거백옥의 행실이다.”     
거백옥(蘧伯玉)의 초상

거백옥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일화는 <좌전(左傳)>에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느 날 위나라 임금이 밤늦게까지 신하들을 데리고 의논을 하던 중이었다. 이때 밖에서 수레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가 궁문 앞에 이르러 잠시 뚝 그쳤다가 다시 움직이는 소리를 내며 저만치 사라져 갔다. 뭇 신하들은 밤늦게 누가 수레를 타고 출입하는지를 의아해했다. 그러자 임금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과 같이 신하들에게 준엄하게 일러주었다.     


“저 소리가 누구인지를 모른단 말인가? 저건 거백옥(蘧伯玉)의 수레이다. 거백옥은 사람이 보거나 보지 않더라도 이 궁문 앞을 지날 때에는 언제나 수레에서 내려 공손히 절을 하고서 지나간다.”     


신하들이 임금의 설명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이튿날, 과연 간밤에 궁문 앞을 지난 수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더니 과연 그가 거백옥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랐다고 한다.     

모두가 퇴청하여 야심한 밤에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신하 된 도리를 다하는 그의 마음가짐과 실천이 어떠하였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런 거백옥(蘧伯玉)이 위나라에서 조국 노나라로 돌아간 공자에게 문안을 올리기 위해 사신을 보내 인사를 전하자, 공자는 그의 안부를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일 수도 있겠으나 사신의 대답이 공자가 물은 행간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夫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지만 아직 능하지 못하십니다.”    


이 대답을 듣은 공자가 사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이 장은 그대로 끝을 맺는다. 이 부분에 대해 주자는 사신을 거백옥(蘧伯玉)을 대하듯이 대한 공자의 예법까지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와 함께 앉은 것은 그 主人(주인)을 공경하여 그의 使者(사자)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夫子(부자)는 거백옥을 가리킨다. 단지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능치 못하다고 말하였으니, 자신을 성찰하고 사욕을 이겨 항상 미치지 못할 듯이 여기는 뜻을 볼 수 있다. 사자의 말이 더욱 스스로 卑約(비약, 겸손)함에 그 주인의 훌륭함이 더욱 드러났으니, 또한 군자의 마음을 깊이 알고 詞令(사령)을 잘하는 자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두 번 ‘使乎(시호)’라고 말씀하시어 거듭 찬미하신 것이다.


내가 상고해보니, 莊周(장주)가 이르기를 “거백옥은 나이 50세에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 하였고, 또 “나이 60세가 되자 60번 〈기질이〉 변화하였다.” 하였으니, 그 德(덕)을 진전하는 공부가 늙어서도 게을러지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踐履(천리, 실천)가 독실하고 빛나는 덕이 드러나서 오직 사자만 이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부자께서도 또한 믿으신 것이다.     

거백옥(蘧伯玉)의 초상

표면적으로는 그 사신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지만, 결국 그 사신을 보낸 거백옥(蘧伯玉)의 인품을 거슬러 올라가 칭찬한 것이다. 그 사신을 공자에게 보낼 것을 결정한 것도 거백옥이고 그 사신이 공자의 안부가 갖는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내고 자기가 모시는 상관에 대한 가장 주요한 태도에 대한 표현을 겸사로 꺼내놓을 수 있는 수준에 감탄을 표한 것이다.     


앞서 ‘헌문(憲問) 편’을 가로지르는 인재 등용의 키워드는 앞서 공부한 바와 같이 단방향이 아니다. 인재가 있어도 그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써줄 만한 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는 인재라 불리기 어렵다. 또 인재도 아닌 그저 입에 발린 아부만 하는 것으로 기생하는 자들을 인재라고 부르며 부족하기 그지없는 인사권자와 자기들까지 잔치를 벌인다한들 그들의 수준이 갑자기 일취월장하여 인재와 인재를 등용한 현군(賢君)이 되지 못한다.     


발탁되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는 자신이 빛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발탁하여 등용한 주군(主君)을 빛나게 한다.


앞서 공부한 가장 대표적인 예와 같이, 진정한 황제는,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완성한 것이 히어로 형 군주가 아닌, 그저 일반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자신을 도와 대업을 이룰 히어로를 알아보고 그들을 중용할 줄 아는 안목과 아량을 가진 이였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충분히 증명된 바 있다 하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옛말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쉬워 보이는 이 간단한 명제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윗물을 물의 근원으로 해석하여 그 시작이 되는 부분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윗사람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만 아랫사람이 그것을 본보기 삼아 허튼짓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헌문(憲問) 편’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재 등용의 키워드를 적용하게 되면,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군주에게 허술하고 허접하기 그지없는 이가 자리를 보전할 리 없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고 현실이다.      


앞에서 공부하여 예를 들었던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인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가 얕은 자들은 히어로였던 항우(項羽)가 천하를 제패하지 못하고 유방에게 패한 것을 두고, 유방(劉邦)의 능력이 아닌 유방(劉邦)을 보좌했던 한신(韓信)을 필두로 한 신하 어벤저스의 능력을 능력도 없는 비천한 유방(劉邦)이 어쩌다가 행운을 잡은 것처럼 오독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본다.     


유방(劉邦)은 자신이 히어로가 아님을 이미 알았기에 자신을 히어로로 만들어줄, 천하를 제패할 황제로 만들어줄 인재들을 쓸 줄 알았다. 한신(韓信)이 직접 천하를 제패하고 황제가 되지 못할 인물임을 알았기에 자신이 그를 쓴 것이다.


사람을 부리는 능력과 부림을 당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고치로 발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굳이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이, 당장 눈에 보이는 능력치라고 하는 것들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한신(韓信)은 대장군이었고 유방(劉邦)은 그의 군주였다.      


유방(劉邦)이 인정을 받아야 할 부분은 그가 고귀한 왕족이기에 능력이 부족하고 존경하고 따를만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하기 어려운 소인배가 아닌 비천하기 그지없는 신분에서부터 히어로들을 모아 그들을 한데 모아 자신이 부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드러나는 능력을 보이는 히어로 형 인재들과 차원이 다른 능력인 셈이다.


그들을 등용하고 취합하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른바 궁극의 리더십이었던 것이고, 그랬기에 그는 천하를 제패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장에서 알 수 있듯이, 천하 사람들에게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공자가 던진, ‘그대의 주군은 무엇을 하고 계시나?’라는 질문에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나 아직 잘 되지 않는 듯합니다.’라는 대답을 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보통 인물이 아님을 누구라도 감지할 수 있다.     


앞서 ‘술이(述而) 편’의 18장에서 초(楚) 나라 대부,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공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자로(子路)는 머뭇거리며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스승 공자가 웃으며 가르침을 주기는 하였으나 성인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배우는 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됨을 묻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안부를 묻는 것처럼 툭 던진 질문에 그 질문의 격을 공자의 격에 맞춰 올려 대답하되, 예에 갖춰 겸사를 사용하는 형식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에 공자가 늘 일러주었던 가르침에 맞춤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은, 그 사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으나 그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인물을 사신으로 공자에게 보낸 거백옥(蘧伯玉) 역시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등용할 줄 알았던 수준의 경지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을 리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듯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 당시의 당대표가 어리고 건방지다며 하던 말본새 그대로 대통령이 되어 나간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말을 누가 알아들을 거냐는 안일함에 내뱉은 이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그것을 곁에서 들은 자들이나 그를 보좌해야 할 자들이 국민들에게 모국어의 듣기 평가 문제를 내주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실수를 감싸주겠다고 온몸을 날리며 입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왜 이 나라의 국운(國運)이 차차 쇠해져 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가를 실감했다.     

상서로운 기린(麒麟)이 나타나지 않는 사실만으로도 국운(國運)을 걱정하던 공자의 한숨을 생각해보면,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나라를 이끌고 있는 자들의 머리에 개념이나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사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펑펑 터지고 있다.     


대표적인 법비인 검사를 아래로 내려다본다는, 그 대단하신 판사 출신이라는 행안부 장관이 버젓이 대형 참사의 원인규명을 앞두고 공식석상에서 내뱉은 말이, ‘경찰인력이 예년에 비해 적지도 않았으며 혹여 경찰인력이 더 많았다고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라는 사실을 듣고도 믿기 어려웠다.  참고로 지금 그는 경찰국의 총괄책임자이기도 하다.   


다른 의미에서, 나는 그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찰인력의 수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바로 그 부분에 적극 공감한다. 제대로 개념이 있는 경찰인력의 책임자나 리더가 단 한 사람만 있었다면, 일방통행을 지시하는 일에 인해전술까지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근무하게 될 지역에 대한 사전분석까지 하고 대응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가진 경찰간부까지는 바라지도 않더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골목 양쪽에서 일방통행으로 통제하며 소리 지르는 순경 한 명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고 발생지역에서 사고 발생 두 시간 전에 막혀있던 도로에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 정체를 풀었던 일반인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는 영상을 보면서,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눈치는 윗물이라고 하는 이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나 하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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