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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3. 2022

진정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에게.

曾子曰: “君子思不出其位.”
曾子가 말씀하였다. “君子는 생각함이 그 지위(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장에서는 갑자기 증자의 말이 나와 맥락이 뜬금없다고 오해할 여지가 크다. 실제로 이 장과 이전 장의 사이에 한 문장이 빠졌다고 손을 들고 책상 위로 올라갈 맹구가 있을까 싶어 노파심에 설명해두자면, 그 장은 앞서 ‘태백(泰伯) 편’의 14장에 나온 내용이 편집 과정에서 중출(重出;중복하여 나옴)된 것이라서 생략하고 넘어온 것이다.     


그런데, 중출(重出)이 단순히 편집상의 잘못이 아니라 이 장의 내용이 그 중복된 내용과 한쌍을 이루어 앞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들은 증자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후대 학자들의 결론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장에서 뜬금없이(?) 증자가 튀어나오게 된 이유이다. 


몇몇 현대 해설서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아는 척하느라 <논어(論語)>를 편집한 제자들이 증자(曾子)의 직통 계열이라서 증자(曾子)가 자주 이유 없이 등장한다는 식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논어(論語)>의 품격은 그렇게 싼값으로 후려치는 저렴한(?) 추정은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릴지도 모를 몇몇 초심자들을 위해서라도 경계하라고, 정신이 번쩍 나도록 죽비를 내려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중출(重出)이라 생략한, 앞서 우리가 ‘태백(泰伯) 편’ 14장에서 공부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     


이 내용에 대한 복습은 앞서 공부한 태백(泰伯) 편을 참고하도록 하고, 주석처럼 달린 증자의 의견이 왜 이 ‘헌문(憲問) 편’에 등장했는지, 그리고 그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자고로 군자라면, 생각함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라 함은 먼저 자신의 지위가 명확하게 어디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이 나서도 되는지에 대한 범위와 경계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렵기 그지없고 군자의 수준이 되어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그리고 내가 펼칠 수 있는 범위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변별하고 있는 수준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싱을 배움에 자신의 리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팔이 뻗은 거리를 아는 것을 넘어, 그 리치의 변화를 주기 위해 위빙이나 풋워크를 통해 공격의 궤도를 활용할 줄 아는 수준이라는 말이다. 수영을 하면서 자신의 심폐량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산소통이 없을 경우 심해 몇 미터까지가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일인 것과 같은 것이다.     

주자는 증자의 이 심오하기 그지없는 해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인용 구절의 원전(元典)을 밝혀 부연하여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것은 <周易(주역)> ‘艮卦(간괘)’의 象辭(상사)이다. 증자가 아마도 일찍이 이것을 말씀하셨는데, 기록하는 자가 윗장의 말을 인하여 같은 類(류)끼리 기록한 듯하다.     


증자의 설명은 증자의 의견이 아니라 <주역(周易)>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간괘 상전(艮卦象傳)’의 원문을 살펴보면, “산이 겹쳐 있음에 그치게 되니 군자가 이로써 분수 넘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됨이라(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이라 하여 증자가 인용한 구절의 앞에 ‘兼山艮’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증자는 인용함에 있어 그 내용이 <주역(周易)>에 나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의미를 되새기라는 의도로 가져와 공자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다.    

 

내가 굳이 원문의 해석과 똑같지 않게 ‘간괘 상전(艮卦象傳)’의 원문을 해석할 때 ‘분수 넘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로 해석한 것도 본래 증자(曾子)가 <주역(周易)>에서 취하려고 했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배우는 자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그 힌트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한 범씨(范祖禹(범조우))는 행여 또 오독하고 헤맬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증자의 설명을 명쾌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     


“물건이 각자 제자리에 있으면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게(맞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의 생각하는 바가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음에 君臣(군신)과 上下(상하)와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그 직분을 얻는 것이다.”     


앞서 잠깐 복싱과 수영으로도 설명했지만, 자신의 깜냥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배움을 모두 체득화한 수준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얼마나 부족한 지에 대해서나 지금 자신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깨닫는 수준이어야만 한다.      


행여 원문의 ‘지위’라는 표현과 연계하여 위 마지막 주석을 오독(誤讀)하여 이미 정해진 신분에서 넘보지 말아야 할 자기 주제와 신분을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할 이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에 다시 정리한다.      


공자가 본래 일깨워준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그 의미를 명확히 하겠다고 설명한 이 장의 증자가 말하고자 하는 ‘직분(職分)’이라 함은, 사람들이 정해놓은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자기의 지위와 본분을 벗어나는 일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 일의 마땅함을 얻으라고 가르쳤다. 지금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관리가 된 이들을 위한 권계의 내용에서도, ‘직장(職掌)을 지켜야지 침관(侵官)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침관(侵官)’이란, 이른바 ‘월권(越權) 행위'를 의미하는 말로, 남의 직무를 침범하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마지막 주석에서 군신 관계와 부자 관계에서 각자가 차지하는 위치를 언급한 이유는, 원문에서 가리키는 ’不出其位‘의 ’位‘가 단순한 ’ 관위(官位)‘만을 가리키는 의미가 아닌 모든 관계에 해당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것일 뿐 신분의 지위를 부연하기 위함이 아니다.      


늘 그렇지만 초심자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현대 해설서를 통해 해석만 쓰윽 읽고 지나쳐버리느라 놓치게 되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이 장에도 등장한다. 단 한 글자, 바로 ‘思不出其位’의 ‘思’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思’의 의미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본래의 의미로서의 ‘생각하다’를 넘어 ‘무언가를 행동하기 이전’이라는 시간의 순서를 강조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풀이하자면, <중용(中庸)>에서 ‘素其位而行(현재의 위치에 따라 행하라.)’이라고 하는 내용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단순하게 지금 자신이 맡고 있는 의무나 제대로 잘하는 뜻이 아니다. 최근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업무분장(그것은 내 업무분야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정말로 열심히 일하기 싫다’라고 해석하는 그 핑곗거리의 근거로 삼을 내용이 아니란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의 어리석은 이들의 조상이 알알이 박혀 있었던 탓인지 박세당(朴世堂)은 이 구절이 단순히 월분(越分)만을 경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다하라고 가르친 것이라고 풀이했다. 자기 직분을 다하려 하는 사람은 늘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할까 우려하여 노력하여 집중하므로 그 지위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모든 가르침이 그렇지만 그 본연의 의미를 제대로 구현하고 중도(中道)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일에 함부로 나서서 참견하지 말라는 의미로 게이지를 약간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자신의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일은 엉망인 것을 돌보지도 않은 채 다른 사람을 탓하는데 열중하여 나대는 이들에 대한 권계로도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의 본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질되거나 변함이 없다. ‘군자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의무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직분과 소명을 충실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같은 내용이지 않냐고 구시렁거릴, 복지부동하며 업무분장을 노래하는 한심한 공무원들을 보면, 자신이 맡은 업무를 충실히 집중하여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되묻고 싶다.     



이른바 ‘k-wave(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그 폭발적인 인기의 흐름이 코로나 정국의 파고를 헤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시점에 해외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못 볼 꼴을 목도하게 되었다. 외교부의 이름으로 국민의 혈세를 펑펑 뿌려가며 자신들의 배에 기름을 채우는 재단의 채용비리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공공기관이 늘 그러하듯이 해당 기관에도 버젓이 감사실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감사실장을 찾았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수년 전 그녀가 다른 사업부서의 책임자로 있을 당시 고의적인 행정 실수를 저질러 놓고서도 시정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적발(?)했던 악연의 당사자였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세월의 짠밥이 쌓였다고 그녀는 어느새 감사실장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수년 전 실무자였을 당시 감히(?) 자신의 행정상 실수를 지적한 인물이던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수억이 나가는 사업을 집행하며 전문학자를 채용하는 사업에서 모집공고에 해당 전공 박사학위자가 지원할 수 있다고 조건을 걸어놓고 정작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이를 채용하는 일이 수년간 벌어진 것에 대해 제대로 감사하고 바로잡을 수 있겠는지를 묻고 따졌다.     


그녀의 답변은 아주 당당하게 노타임으로 튀어나왔다. 그 채용의 기본 조건이라 명기된 것은 ‘60세 이하의 신체 건강한 자’라고 적은 것처럼 그저 수많은 조건 중의 하나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할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 바로 되물었다.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이라는 기본 조건이 달린 채용공고에 전문대 졸업한 사람이 지원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 사람이 당당히 최종 면접에 올라 심지어 합격까지 꿰차는 일이 수년간 조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녀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하려고 목소리까지 내리까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요즘은 ‘4년제 대학 졸 이상’이라는 표현을 공고에 쓰지 않구요. 전문대 졸업한 사람도 지원할 수는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부 심사위원들에게 일임하게 때문에 아주 공정하게 선발이 이루어졌고,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외부 심사위원이 하는 건 최종 면접에 해당하고, 1차 서류심사에서 기본 조건에도 부합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걸러내야 하는 것은 당신네 기관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부인합니까?”     


그녀는 마지막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문제라면 외교부에 정식 감찰을 요구하라며 도리어 후안무치하게 맞섰다. 외교부 본부 감찰실에 해당 자료들을 구체적으로 증거와 함께 정리하여 감찰을 요구하며 몇 시간의 통화까지 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의 외교통상위원회의 국회의원실에도 사실을 알리고 사실 확인을 하고 바로잡아달라고 조력을 요청했다.  

10여 년 전 외교부 장관이라는 자가 자신의 딸을 외교부 공무원으로 부정 채용하려는 일이 터지며 언론에 터진 지 불과 일주일도 안되어 전수조사가 이루어졌고, 외교부 고위 공무원들의 자녀들이 부정 채용된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지금이라면 형사처벌이 이루어졌을 텐데,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 대단한 외교부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딸의 채용을 없던 일로 하면서 사안은 덮어졌고, 자기 자식들을 음서제로 박아 넣으려던 그 아래 고위공직자과 이미 채용된 그 자식들에 대한 문제는 유야무야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도 모르게 끝이 나버렸다.       

외교부 감찰부서는 제보를 받고도 100일이 넘도록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 변호사가 국민권익위에 익명 내부고발을 했더니 국민권익위 담당자가 그 신고를 튕겨내며 ‘외교부 감찰실에 감찰 요구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없다’라고 답변했단다. 이게 지금 당신들이 낸 세금을 갉아먹는 이들이 벌이는 행태이다. 그 공무원들이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아니,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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