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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17. 2022

운명은 기도할 게 아니라, 노력하여 만들어나갈 뿐이다.

결과가 안 좋다면 다시 스스로를 돌아볼 뿐, 누굴 원망하랴?

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 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公伯寮)가 계손(季孫)에게 자로(子路)를 참소하자, 자복경백(子服景伯)이 孔子께 아뢰기를 “夫子(季孫)께서 진실로 公伯寮의 말에 의혹하는 마음을 품고 계시니, 내 힘이 그래도 公伯寮의 시신을 市朝(길거리)에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命이며 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命이니, 公伯寮가 그 命에 어쩌겠는가.”     

이 장에서는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처음 언급되는 인물로, 공백료(公伯寮)라는 자가 등장하는데 공백료(公伯寮)가 자로(子路)를 참소했다고 하는데 왜 갑자기 계손씨(季孫氏)에게 참소했다고 하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참소했는지도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시 사건의 전후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뜬금없이 누가 누구를 참소하였고 왜 참소하였는지 맥락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먼저 이 상황에 대해 주자가 간략하게 설명한 주석을 먼저 확인하고 사안의 진실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공백료(公伯寮)는 노(魯) 나라 사람이다. 子服(자복)은 성이고 景(경)은 시호이고 伯(백)은 자이니, 노나라 대부 子服何(자복하)이다. ‘夫子(부자)’는 季孫(계손)을 가리키니, 그가 공백료의 말에 (자로를) 의심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肆(사)’는 시신을 늘어놓는 것이니, 공백료를 죽이고자 함을 말한다.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공백료(公伯寮)와 자로(子路)는 당시 계손씨(季孫氏)의 가신(家臣)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로(子路)가 무언가를 제안하였고, 그것을 저격(?)하는 말을 공백료(公伯寮)가 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당시 노나라 대부였던 자복하(子服何)가 그 진실을 명확히 파악하고서 공백료(公伯寮) 때문에 계손씨가 자로(子路)의 간언을 의심한다고 여겨 간신배 같은 공백료(公伯寮)를 자신의 권력으로 응징하겠다고 공자에게 의견을 묻는 상황이다.    

 

그저 주자의 짧게 축약된 주석만에 의존하여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가?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이상한 위화감이 들지 않는가? 왜 자복하(子服何)가 굳이 공자에게 와서 자신이 공백료(公伯寮)를 응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혼쭐을 내겠다고 의견을 묻는 것인지 의아하지 않은가? 이것은 공자가 의도하여 만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까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묘한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궁금해서 역사적인 사실을 찾아보지는 못할지언정 문면에 모두 보이지 않는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고 상황의 진실을 먼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부를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은 대개 실제 생활에 있어 진위여부 시시비비를 가릴 때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사실관계 파악을 대강 처리하고 자신의 편의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버리는 우를 아주 쉽게 범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발생 시기는 노나라 정공(定公) 12년, 그러니까 공자가 54세의 나이였을 때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 현대의 법무부 장관 정도의 직위)로 임명되어 제대로 노나라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던 시기였다.     


당시 대사구(大司寇)였던 공자는 정공에게 건의하여 신하들이 자기 집에 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하고, 대부들이 자기 식읍(食邑)에 거대한 규모로 성을 축조하는 일을 벌이도록 해서는 안된다며 삼환(三桓)의 전횡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때까지 참람된 전횡을 일삼던 삼환(三桓)의 손발을 잘라버리는 극단적인 개혁방식을 통해 올바른 예가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의 주군이 누구인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두 가지 효과를 일거에 노린 특단의 조치였다.     


당시 맹손씨(孟孫氏)는 성(郕) 땅에, 숙손씨(叔孫氏)는 후(郈) 땅에, 계손씨(季孫氏)는 비(費) 땅에 각각 자신들의 도성(都城)을 쌓았는데 왕이 아닌 자로서 취하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친 행위들이었다. 예법도 예법이지만 사병을 갖추고 군사적 형태를 사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은 권력의 전횡이 만연되어 당연히 왕권을 약화시키고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공자는 그것부터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공자는, 말로만 예를 높이고 군주에 대한 충성을 떠든다한들 백성들이 그리고 전횡을 일삼으며 자신들이 왕과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자만하는 삼환(三桓)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엄중한 개혁정책으로 실질적으로 성의 축조를 금하고 집안에 무기를 갖춘 사병권력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전횡을 억제하는 효과는 즉각적으로 발휘될 터였다.          


그래서 공자는 정공에게 이와 같은 개혁책을 건의하고 난 뒤,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자로(子路)에게 명하여 계손씨(季孫氏)의 가신(家臣)으로 들어가 있게 배치한 것이다. 그렇게 세 권력자 가문이 지은 도성을 헐 계획에 대해 자로(子路)에게도 숙지를 시켰던 것인데, 성격 급한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자로(子路)가 스승의 의도를 알고 돕기 위해 당연히 계손씨(季孫氏)에게 여러 간언을 했다. 이에  공백료(公伯寮)가 자로(子路)를 무고함으로서 공자의 계획에 타격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자의 개혁정책이 막 시작도 되기 전에 공백료(公伯寮)라는 자가 그 계획의 이면에 삼환(三桓)의 손발을 모두 잘라버리려는 의도임을 계손씨(季孫氏)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여기서 반전은 <논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이 공백료(公伯寮)라는 자 역시 공자의 제자였다는 점이다. 즉, 같은 문도에서 공부했던 자로(子路)와 스승을 모함하여 자신의 주군이던 계손씨(季孫氏)에게 인정받겠답시고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당시 노나라 대부였던 자복경백(子服景伯)이 평소 존경에 마지않던 공자를 찾아 공자의 제자이기도 한 그 박쥐 같은 공백료(公伯寮)를 자신의 권력으로 죽여버리겠다고 허락을 빙자한 상의를 해온 것이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은 실상 자신 역시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숙손씨(叔孫氏)의 후예로 대부의 직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공자의 지지자였던 인물이었다.     


참고로, 자복경백(子服景伯)은 뒤에 공부하게 될 ‘자장(子張) 편’의 23장에도 등장하는데, 나쁜 행실을 저지르는 악인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인격을 가진 진중한 언행을 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불의를 파악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찾아와서 그 진상에 대해서 일러바치는(?) 전형적인 일반 수준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공자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벼슬을 하게 된 공백료(公伯寮)라는 간악한 자의 만행(?)을 알게 되어 그것을 참지 못해 대사(大事)를 위해 그를 죽여버려도 되겠느냐고 묻는 자복경백(子服景伯)의 흥분된 태도에 공자는 전혀 미동도 없이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그와 우리에게 가르침을 안겨준다.       

“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命이며 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命이니, 공백료(公伯寮)가 그 命에 어쩌겠는가.”     


공자다운 답변인 것은 사실이나, 이 대답은 어찌 보면 이미 새어나간 비밀에 대해서 뭘 어쩌겠느냐는 케세라세라(queserasera; 어떻게든 되겠지)식의 무책임한 답변으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      

그래서 행여 그렇게 오독할 초심자들에게 바보 같은 오해를 하지 말라며 사씨(謝良佐(사양좌))가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비록 공백료의 참소가 행해지더라도 또한 命(명)이니, 그 실제는 공백료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파악한 이라면 바로 이해했겠으나 그렇지 못한 초심자들은 다시 명(命)이 왕의 어명(御命)이라는 것인지, 운명(運命)이니 그렇게 될 것이라면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라는 설명인 것인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다. 

     

그것을 우려한 주자는 다시 한번 이 장의 말미에 공자가 던진 가르침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를 말씀하여 景伯(경백)을 깨우치고 자로를 안심시키고 공백료를 경계하신 것일 뿐이니, 성인이 利害(이해)의 사이에 있어 命(명)에 결단하기를 기다린 뒤에 태연한 것은 아니다.     


주자는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 어차피 개혁정책이 성공할 운명이라면 공백료(公伯寮) 따위가 중간에 그런 설레발(?)을 치고 별짓을 다해도 개혁정책은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하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찾아온 자복경백(子服景伯)이나 다혈질의 자로(子路)를 안심시킨 것이라 풀이하였다.      

결과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다 느낄 초심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운(天運)을 언급하는 운명론자이기를 거부한 공자가, 뜬금없이 ‘어차피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그런 피라미가 설친다고 해도 일은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읽힐 테니 말이다.    

 

그런데, 분명히 다르다. 공자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이다. 현실주의자는 뜬금없이 자신의 일에 하늘에 뜻에 맡긴다는 식의 운명론을 읊조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객관적으로 일의 성공률을 높여줄 실질적인 노력을 근거로 마련할 뿐이다. 맞다. 공자는 자신이 그저 마음만 앞서 섣불리 일을 실행해놓고 그저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터무니없는 운명론자가 아니었다. 즉, 공자는 숙명적이라며 기도하는 대신 자신이 차곡차곡 준비해온 일이 진행됨에 그 정도의 불협화음과 방해 요소는 이미 감안해 넣고 있었다고 자신감을 보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 묻고 싶은가? 이미 수천 년 전에 벌어진 일이니 역사적인 결론을 보면 알 것 아닌가?      


공자의 구체적인 개혁안이 왕명으로 발표되자 숙손씨는 가장 먼저 자신의 도성을 헐어버렸다. 그리고 공자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명하여 계손씨의 도성도 헐어버리는 상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삼아있던 맹손씨(孟孫氏)는 강하게 저항하여 결국 그의 도성을 헐어버리는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완벽한 개혁은 아니었지만, 두 가문의 도성을 헐어버리자 실제로 공자의 계획대로 삼환(三桓)의 전횡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축소되었고 더 이상 선을 넘는 참람된 행위들은 왕인 정공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으로 정리되어 왕권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회복된 양상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개혁정책이 빌미가 되어 공자는 계손씨(季孫氏)등의 적극적인 견제를 받고, 노 나라가 제대로 정비될 것을 우려한 제(齊) 나라의 견제까지 받게 되는 등 부침이 심해지면서 조국을 떠나 무려 14년에 걸친 천하 주유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이라는 표현은, 그 사람의 성과를 언급함에 있어 그가 일생을 마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 언급된 공자의 개혁정책은 결국 그 이전에 비해 충분히 삼환(三桓)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였고 왕권을 바로잡기 위한 소기(所己)의 목적을 70%가량 완수하였다.     


‘헌문(憲問) 편’을 가로지르는 인재 등용의 주제와 연관해서 보자면, 공자가 일생에 걸쳐 가장 높은 실제 벼슬직이었던 대사구(大司寇)는, 정공(定公)에게 있어 절호의 한 수(手)였고 공자는 나름 실제 정치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 보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이 장에서 공자가 보여주는 자신감과 리더로서의 태도는, 그저 막연한 운명론자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를 보인다. 그렇게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준비하고 안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자 역시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일이 얼마나 사람 마음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재를 알아보고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회심의 한 수를 던진 심약했던 정공(定公) 정도의 인물조차 없이 그저 자기 아버지의 국회의원 배지를 대대로 이어온 부패하고 그저 권력만 탐내는 다선만이 가득한 이 나라는 어찌할 셈인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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