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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23. 2022

준비되지 않은 군주라도 제대로 된 신하는 바로잡는다.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보다 사리사욕에 매진하는 자들에게.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子張이 말하였다. “《書經》〈商書 說命〉에 이르기를 ‘高宗이 諒陰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필 高宗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다 그러하였으니, 君主가 죽으면 百官들이 자신의 직책을 총괄하여 冢宰에게 〈명령을〉 듣기를 3년 동안 하였다.”     

이 장은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서경(書經)>을 공부하다가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해 스승 공자에게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였다. 이 장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장(子張)이 묻고 있는 <서경(書經)>의 인용 구절인 ‘高宗이 諒陰에서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아쉽게도 해당 내용은 지금 전하는 <서경(書經)>의 텍스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분서갱유(焚書坑儒) 당시 소실되었다가 복원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일 것이라 추정된다.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넘어간다.     


高宗(고종)은 商王(상왕) 武丁(무정)이다. ‘諒陰(양암)’은 천자가 居喪(거상, 집상)하는 곳의 명칭인데, 그 뜻은 자세하지 않다.     


실제 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거나 고증이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임금이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 그 3년간의 기간 동안 임금이 말하지 않았다는 내용인데,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석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이 공자의 상세한 설명이 원문에 나온 대로 이어진다.      

이 공자의 설명에 대해서는, 이 장의 내용과 똑같은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정론해(正論解)’에 보다 상세하게 사례와 함께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배우는 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옛날에 천자가 죽으면 세자는 모든 정치를 3년 동안 총재(冢宰)에게 위임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은나라의 성탕(成湯)이 죽자 태갑(太甲)은 이윤(伊尹)에게 모든 일을 물어서 행했으며,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죽자 성왕(成王)은 주공에게 모든 일을 물어서 행했으니, 그 뜻이 이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신하인 태갑(太甲)이 이윤(伊尹)에게 물어서 정치를 행했다는 것은, 앞의 용어처럼 정사를 신하들에게 3년간 위임했음을 의미한다. 이 장에서 공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행간의 의미를 길어내기 위해서는 이 상황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조금 상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 간략하게나마 그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은(殷)의 탕왕(湯王)은 이후 훌륭한 재상으로 삼았던 이윤(伊尹)을 신하로 곁에 두어, 하(夏) 왕조의 걸왕(桀王)을 몰아낸 뒤 천자의 자리에 올라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원시 유학에서 명군(名君)과 명재상(名宰相)을 언급할 때 가장 효시(嚆矢)가 되는 사례로 언급되는 파트너 관계이다.     

그렇게 왕도정치를 완성했던 탕왕이 세상을 떠난 뒤 탕왕의 장자(張子) 태정(太丁)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의 동생 외병(外丙)이 즉위하게 된다. 은나라에서는 장차 상속제도와 형제 상속의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형이 죽어 아우가 뒤를 잇는 것을 ‘급(及)’이라 칭한다.) 동생이 즉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외병이 즉위하고 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외병의 동생 중임(中壬)이 즉위하게 되는데 그 역시 4년 만에 죽게 되어 태정의 아들 태갑(太甲)이 즉위하게 된다. 태갑은 탕왕의 嫡孫이었으나 현명하지 못하고 성정이 포악하기 그지없어 조부였던 탕왕의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방탕하게 굴기로 유명했다.      


이러한 태갑(太甲)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에 대해 대대로 군주를 섬겨왔던 이윤(伊尹)은 그의 잘못된 태도를 바꿔보고자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동궁(桐宮)으로 추방시키게 된다. 동궁은 탕왕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그곳에 추방시킨 이유가 조부인 탕왕의 유지를 다시 생각하며 감화를 받아 개과천선(改過遷善)하도록 안배한 것이었다.     

신하 이윤(伊尹)의 절실함이 하늘에 전해졌던 이유였을까, 태갑은 추방된 지 3년 만에 거짓말처럼 개과천선하여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된다. 그 사실을 확인한 이윤(伊尹)은 기꺼이 태갑을 황제로 맞아들여 정치적 대권을 넘겨준다. 이어 황제로 즉위한 태갑이 얼마 뒤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아들 옥정(沃丁)이 즉위하게 되는데 이윤이 세상일 떠나게 된 시기가 바로 그즈음이었다.      




이 장에서 자장(子張)이 스승에 묻고 있는 <서경(書經)>의 상황은 실제로 국상(國喪)을 당한 상황이 아닌 아마도 태갑이 황제에 즉위하기 전, 추방당한 3년간 이윤(伊尹)이 정사를 대행(?)하였던 시기이거나 이후 황제로 즉위하고 나서 매사를 이윤(伊尹)에게 자문하며 정사를 행한 시기를 말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군주가 주도가 되어 정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신하가 국정운영을 대행하는 경우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인용되고 있는 <서경(書經)>의 내용처럼, 국상(國喪)을 치르게 되어 슬픔에 빠져 도저히 군주가 정사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든, 실제 역사적인 사실처럼 군주가 부족함에 추방되어 국정에서 배제되어 3년이나 신하가 정치를 하는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자는 공자의 설명을 문면 그대로 다음과 같이 주석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는데, 아래 주석의 핵심은 그 상황과 그러한 상황에서 신하 된 이가 정사를 위임하여 행한다는 사실관계에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주가 죽으면’이라고 말했으면 제후도 이와 같은 것이다. ‘總己(총기)’는 자신의 직책을 총괄함을 이른다. ‘冢宰(총재)’는 태재이다. 백관들이 총재에게 명령을 들으므로 군주가 3년 동안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태갑(太甲)의 초상화

원시 유학에서 중시하는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그 슬픔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3년상으로 한다는 사실에 방점을 둔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지위는 귀천이 있으나 부모에게서 태어남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삼년상은 천자로부터 〈庶人(서인)까지〉 공통되는 것이다. 子張(자장)이 이것을 의심한 것이 아니요, 군주가 3년 동안 말하지 않으면 신하가 명령을 받을 곳이 없어서 禍亂(화란)이 혹 이로 말미암아 일어날까 의심한 것이다. 孔子(공자)께서 冢宰(총재)에게 〈명령을〉 듣는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그렇다면 화란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국상(國喪)을 당해 3년 동안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때문이든 3년상의 기본적인 예(禮)의 취지를 세우기 위함이든 왕이 정치를 직접 할 수 없다는 사유임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군주가 3년이나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국정의 공백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 시기에 이른바 ‘섭정(攝政)’의 형태로 전문 정치인인 신하가 나서게 되는 것이다.    

 

뜬금없이 ‘헌문(憲問) 편’의 말미 즈음에 와서 군주라 하더라도 부모상에는 충심을 다해 슬퍼해야 한다는 둥, 그 슬픔 때문에 직접 정사를 지휘할 수 없다는 내용을 언급하는 내용이 튀어나왔다면 그저 문면의 글을 읽어 내려갈 것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한 배우는 자의 자세이다.     


결론부터 설명하자면, 이 장에서 이르고자 하는 것은 문면에 나와 있는 3년상이 본질이 아니다. 신하가 주도가 되어 정치를 행할 수 있는 공식적인(?) 사유를 통해 결코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신하도 특별하게 공인받는 특수상황에 근거하여 정치를 운영할 수 있음을 말하는 아주 독특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장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에서 고문(古文)의 문리(文理)가 트이기 위한 학습서로 사용되었던 사서(四書)도 그러하지만, 삼경(三經)이라 지칭되는, <시경(詩經)>과 <주역(周易)>, 그리고 <서경(書經)>은 또 다른 의미에서 문리(文理)가 트이고 난 뒤에도 단계별로 공부해 나아가야 하는 기본교재(?)로 불렸다.      


옛날은 물론이고 이제 제2외국어 수준이 되어버린 고문(古文) 공부를 그렇게 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필수도 아닌데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현재 사용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고문(古文) 공부는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고문(古文)을 공부하는 이유는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한 방법적 도구인 것이다.     


현대인에게 고문(古文)의 문리(文理)가 트일정도의 공부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적당히 현대 용어로 버무린 내용만으로 이해한다면 이 장의 숨은 가르침을 캐내지 못한 수많은 현대 해설서의 그 수준을 따라가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현의 가르침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그 행간의 의미를 오롯이 길어내어 의문이 남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 그 해답을 찾는 능동적인 자세를 갖춰야만 한다.     


이 장에서 자장(子張)이 정말로 <서경(書經)>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읽었는가? 그렇지 않다. 자장(子張)은 그 특수한 상황이 갖는 의미를 물은 것이다. 기존의 군주에게 명령을 받아 그대로 수행하는 신하의 위치에서 신하가 주체가 되어 정사를 펼칠 수 있는 그 상황에 대해 물은 것이고 공자 역시 질문자의 눈높이에 맞춰 그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본질에 대해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 고급자 수준으로 깊이 들어가 논하자면, 공자는 이윤(伊尹)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신하 된 자가 갖춰야 할 준비된 자세와 그 자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 장의 본질이다. 3대에 걸쳐 나라를 세우고 그 아들과 그 손자가 정권을 이양받는 봉건제의 세습 구조에서 이윤(伊尹)은 손자 태갑(太甲)이 준비되지 않고 엉망인 상황에서 과감하게 추방이라는 극약처방을 했고, 3년의 시간에 걸쳐 개과천선하고 돌아온 태갑(太甲)을 다시 황제로 받아들여 충실히 받들었다. 그 황제의 부재 기간, 3년은 역사서에도 공자의 설명에도 나와 있지 않지만 이윤(伊尹)의 섭정이 충실했기에 다시 태갑(太甲)이 성군(聖君)으로 기록될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봉건제에서 신하가 군주를 내치고 자신이 황제로 즉위하는 것은 원시 유학의 근본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伊尹)이 훌륭한 재상으로 역사의 인정을 받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모두 안배하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은 3년의 정치도 정치지만, 3년간의 기간을 지나 다시 주군이 준비가 되었을 때 황제로 받아들여 다시 충실한 조언과 신하 된 도리를 수행함으로써 나라를 바로 잡은 것은 그야말로 신하 된 이의 모범사례 1호로 언급되는 이유에 다름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훔치고 한직에 밀려났다가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중앙지검장으로, 그리고 다시 검찰총장이 된 이가 감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을 봉건제의 시대도 아니고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정말 준비된 이였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한 마음가짐이었다면 몰라도 자신이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라 여겨 이전 정부의 반발에 편승하여 날름 대통령직을 얻어낸 것이라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게다가 이전 정부의 올바른 약진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그들의 지저분한 민낯에 오히려 반발하고 비난하던 이들의 반감에 편승하여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자가, 공정과 상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떠들어대놓고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행보를 보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여, 그가 전혀 국민을 위해 제대로 봉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우려는 ‘이제 이 나라의 국운(國運)이 다 했다’는 말이 근거 없는 비난 공세만으로 받아들일 수만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자. 그들의 농간에 넘어가(?)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권력을 넘겨준 것은 당신이 욕하고 비난에 마지않는 그 오래되어 썩어빠진 정치꾼들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그런 전횡을 저지를 수 있도록 표를 던져 사태를 이렇게 초래한 것은 바로 ‘국민’이라 쓰고 ‘개돼지’라 새긴다는 당신들 아니던가? 왜 자신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남만 욕하려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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