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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28. 2022

하늘은 천하의 도적들을 결코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정말로 하늘이 있긴 하냐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한가운데에서.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원양(原壤)이 걸터앉아서 〈孔子를〉 기다리니,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서 공손하지 않고 장성해서 칭찬할 만한 일이 없고 늙어서 죽지 않는 것이 바로 賊이다.” 하시고,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치셨다.

이 장은 어느 날 공자의 불알친구인 원양(原壤)이 공자와 마주치는 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대개 <논어(論語)>에서 이제까지 보아왔던 형식과도 사뭇 다르거니와 말하는 대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그의 행동에 대해서 공자가 핀잔(?)을 하는 듯한 이 장은 왜 이 내용이 ‘헌문(憲問)편’에 담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장에서 공자가 일깨워주려고 한 바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먼저 원양(原壤)이 누구인지 그리고 주자는 이 장의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그의 해설을 먼저 들어보기로 하자.


原壤(원양)은 공자의 故人(고인, 친구)이니, 어머니가 죽었는데 노래를 불렀다. 이는 老子(노자)의 무리로서 스스로 예법의 밖에 방탕한 자이다. ‘夷(이)’는 걸터앉는 것이고 ‘俟(사)’는 기다림이니, 공자가 오는 것을 보고 걸터앉아서 기다림을 말한다. ‘述(술)’은 稱(칭, 칭찬)과 같다. ‘賊(적)’은 사람을 해치는 것의 명칭이니,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한 가지도 선한 實狀(실상)이 없고, 세상에 오래 살아서 한갓 常道(상도, 인륜)를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히면 이는 바로 적일 뿐인 것이다. ‘脛(경)’은 발의 뼈(정강이)이다. 공자께서 이미 꾸짖으시고 인하여 끄시던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가볍게 쳐서 그로 하여금 걸터앉지 말게 하려는 것처럼 하신 것이다.


주자는 원양(原壤)을 소개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즐거울 때만 불러야 할)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그것이 노자(老子)의 무리들이 보이는 성향으로 예법의 밖에 방탕한 자라고 풀이한다. 즉, 이 장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묘사된 행동과 공자의 핀잔으로 보건대, 불알친구여서가 아니라 워낙 예법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태도로 일생을 살아온 친구의 태도를 공자가 직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자가 이 장에 대해 더 설명을 부연하지 않았기에 일단 주석에 언급되어 있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가 조금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굴절해(屈節解)’를 통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원양(原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서 불알친구 공자가 장례를 위해 관(棺)을 부조하려 하였다. 그때 제자 자로(子路)가 스승을 만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제가 선생님께 듣자오니,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으로 삼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하셨는데 이제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잊어버리시지 않았는가 봅니다. 하신다는 부조는 그만두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자로(子路)가 하는 말의 내용을 근거해서 보더라도 아마 원양(原壤)이 그저 그런 일반인 수준은 아니었던 나름대로 학식이 있고 주변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알려진 정도는 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로(子路)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옛 친구의 정을 생각하여 관(棺)을 만들어 원양(原壤)의 집에 보낸다. 그런데, 원양(原壤)은 그것을 받아서는 관(棺) 위에 올라앉아 노래를 불렀다. 공자가 장례에서 돌아와 장례식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된 자로가 다시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절개를 굽히기가 여기에 이르셨으니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닙니까? 그만두실 수 없으십니까?”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듣기론 친하다는 것은 그 친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옛 친구라는 것은 그 옛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통해 문해력이 떨어지는 자들은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기 식대로 공자를 비난할 수도 있겠다. 눈치챌만도 하다고 생각되는데, 대개 공자의 언행에 대해 의문을 품고 위 일화에서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제자로 자로(子路)가 등장하는 것은 자로(子路)의 시각과 생각이 일반인들 중에서는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이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일부러 없는 일을 자로(子路)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어내어 꾸며댄 것은 아니겠으나 대개 자로(子路)가 등장하는 일화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조금 공부를 했다고 하는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의 시각과 생각 범위에서 그들의 수준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소개한 <공자가어(孔子家語)> ‘굴절해(屈節解)’의 일화는 당연히 이 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당시 사람들에게 원양(原壤)이라는 인물이 그저 공자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불알친구로서만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노자(老子) 학파의 인물이라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위 일화를 통해 아무런 생각 없이 원양(原壤)의 행동이 그저 자유분방한 것이라고 대강 읽고 넘어가서는 이 장에 그가 왜 등장했는지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양(原壤)이라는 공자의 불알친구는 바로 이 ‘헌문(憲問)편’에 등장했던 이름 없는 은자(隱者)들과 같은 수준의 인물에 다름 아니다. 원양(原壤)은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파악하고 그 부조리를 혐오해서 ‘부러’ 禮法(예법)을 무시하고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佯狂(양광)의 행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이유로 당신의 눈에는 생경하고 뜬금없어 보이는 원양(原壤)이 이 장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은 공자가 당시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처럼 그와의 교유를 끊거나 그를 비난하는 스텐스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위에서 공자가 자로(子路)의 의구심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대답했던 것이 그저 표면적으로 옛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옛 친구이기에 그 친구가 왜 저런 행동을 보이며 산림(山林)에 숨지 않고 저자에 숨어 차마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 아닌 다소 비정상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지 그 마음을 이해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설명은 주자의 주석을 포함하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가어(孔子家語)> ‘굴절해(屈節解)’에서 공자는 행간에 그 의미를 포함하여 자로(子路)와 당신에게 설명해주었으나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이 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 속내까지 모두 읽고 아는 사이였던 공자는 원양(原壤)의 배움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자신이 지향하는 것과 다른 것에 대해 매몰차게 질책하고 몰아붙이는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툭 치는 행위로 책선(責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주자의 해석처럼 원양(原壤)이 보이는 노자(老子) 무리의 방식에 대해서 소싯적부터 모든 것을 보았기에 알고 있는 불알친구로서의 우정 어린 책선(責善)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행간을 풀이했던 것처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초야에 숨어 외면하는 대신 노자(老子)의 방식대로 파격적인 행동으로 저자에 묻혀 지내는 방식을 택한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며 그가 원하는 가장(假裝)의 형태대로 위정자들이 그의 본모습을 알아차리지 않도록 핀잔을 툭 던져주는 지음(知音)의 배려 방식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추정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장에서 공자가 한 “어려서 공손하지 않고 장성해서 칭찬할 만한 일이 없고 늙어서 죽지 않는 것이 바로 賊이다.”이라는 혹평(?)은, 공자의 입체적인 가르침이 갖는 특징을 고려해보면, 원양(原壤)에게도 여러 가지 의미로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한편, 그 내용만을 본다면 배우는 이들에게 그런 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지탄받아야 할 삶인지에 대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가르침으로 작용한다.


문자 그대로 공자의 지적을 해석해보면, 어려서는 예(禮)의 기본기를 익히지 못하여 공손하지 못하고, 장성해서는 특별히 소개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는데 나이 먹어 죽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장수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賊(도적)’이라 지탄받을 삶이다. 문면 그대로 보자면 그것을 완곡하거나 애정 어린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그야말로 어폐가 있다.


원양(原壤)이 정말로 그런 평가를 받을만한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과 삶은 그야말로 불알친구이기에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고, 원양(原壤)이 정말로 세상에서 말종이라고 불리는 모습을 연기하며 저자에 숨은 은자(隱者)이고자 했다면 최악을 연기해야지 어중간하게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으로 안되었을 것이지 두 가지 모두 해석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겠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런 인간 말종의 삶을 사는 이들을 공자가 원양(原壤)을 빗대어 제대로 후려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괴팍하기 그지없다는 비판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심지어 자로(子路)에게까지 그런 평가를 받는) 원양(原壤)의 ‘겉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멀쩡한 정신에 세상을 좀먹는 도적(盜賊)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새를 저격한 가르침이라고, 나는 읽는다.

앞서 공부했던 우정의 대명사로 불렸던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진정한 친구였기에 포숙의 배려를 통해 한번 실패했던 관중이 죽음의 길목에서 다시 돌아와 명재상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한편, 우정이 빛을 바래 나라를 말아먹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사례도 있다.

우(虞) 나라의 군주와 재상 궁지기(宮之奇)는 어릴 적부터 궁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다. 우(虞) 나라는 진(晉) 나라의 남쪽에 위치했었는데 진(晉) 나라는 좌우로 높고 긴 산맥과 황하라는 천연의 요새로 둘러싸여 있어 외침으로부터 수비가 용이하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반대로 밖으로 진출하는 데에도 곤란함이 있었다. 


문공의 부친 헌공(獻公) 전까지 진나라는 소국이었기에 지형이 생존에 유리했고, 이제 힘을 비축한 진 헌공이 남쪽을 공략할 때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나라들이 우나라와 괵(虢) 나라였다. 같은 주나라의 희성(姬姓))이고 게다가 괵(虢) 나라는 왕실의 경사로도 활약했지만 국익에 그런 사사로움은 안중에 없었다.


헌공(獻公)의 전략가였던 대부, 순식(荀息)은 우나라에게 보물을 뇌물로 바치고 길을 빌려 더 남쪽에 있던 괵나라를 먼저 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를 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전략을 들은 헌공(獻公)은 ‘우나라에 궁지기(宮之奇) 같은 명재상이 있는데 우리 계획이 과연 먹히겠는가?’라며 의심했다. 그러자 순식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나라 군주와 궁지기(宮之奇)는 죽마고우 사이입니다. 그렇기에 현명한 궁지기(宮之奇)가 아무리 말리려고 해도 멍청한 군주가 듣지 않아 이 계획은 성공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죽마고우가 가질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과 우나라 군주의 성향을 모두 파악한 순식(荀息)의 섬뜩한 예언이었다. 과연 그의 예언대로 우나라는 그렇게 똑똑한 재상 궁지기(宮之奇)가 있었음에도 친구라는 이유로 그 간언을 제대로 듣지 않은 멍청한 군주 때문에 우나라를 역사에서 지우게 된다.

사업이라고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던 자들이 구멍가게 수준의 사업이라고도 부르기 초라한 장사를 할 때 직원으로 가족을 쓴다. 이른바 가족회사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신뢰를 근거로 삼아 가족이 가장 믿을만한다는 전제하에 ‘혈연’으로 측근을 만든다. 동물적인 본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느 일면으로는 이해가 가는 혈연은 확장하면서 같은 고향 출신인 지연(地緣)으로 뭉치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학연으로 뭉치고, 그렇게 본능(?)에 의해 뭉친 이들은 결국 그 본능을 앞서는 절대 본능인 사리사욕(私利私慾) 때문에 등에 칼을 꽂고 꽂힌다.


‘내가 같이 일해봐서 그 친구 잘 알아.’라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공안 검사 출신 인사가 버젓이 중용되고, ‘초등학교 동창인 데다가 전문분야에 통이고, 게다가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지하 목욕탕에서도 만나는 사이야’라면서 외교부 차관에서 대통령실까지 불려 가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심지어 자신이 지청에 있을 때 술자리로 인연을 맺은 자라는 문제투성이의 인물이 보건복지부의 수장으로 임명되려다가 낙마하는 일까지 우리는 생중계를 통해 적나라하게(?) 목도하였다.

위에 있는 자가 그러할진대, 그 밑에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지인 아들 꽂아주고, 데리고 있던 검찰 수사관 꽂아주고 하는 일을 탓할 수 있으랴? 그 줄의 끝자락이라도 서지 못해 안달해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국운(國運)은 모두 퍼버렸으니 어찌 도적(盜賊)이라 욕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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