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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01. 2022

일관성을 갖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헤아림이다.

어느 하나로 일관할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賜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느냐?” 하시자, 子貢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관통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저 유명한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명구절이 등장한다. 공자는 학문적인 지식이나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 도덕적 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쳐왔기에 一以貫之를 중시했다. 간혹 줄여서 그냥 ‘一貫’이라고도 표현한다. 물론 이 개념이 이번 장에서만 나온 개념은 아니지만, 언제 누구에게 어떤 의도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같은 개념임에도 미묘한 행간의 의미가 색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도 주의해서 살펴야 할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먼저 제자 자공(子貢)에게 유도신문(?)처럼 낚싯줄을 드리운다. 공자가 성현이라 칭송받는 이유에 대해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은 것이다. 굳이 질문을 먼저 받지 않았음에도 공자가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진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발견하는데 가장 큰 힌트는 늘 그렇듯이 공자가 가르침을 주고자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에게 맞춤형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는 이들이 그 점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하며 주자는 주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공(子貢)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그것을 잘 기억하였으니, 夫子(부자)께서 〈자공으로 하여금〉 그 근본이 되는 바를 알게 하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물어서 〈의문을〉 유발하신 것이다.    

 

그랬다. 표현은 일반인들이 칭송하는 공자 자신에 대한 설명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표현은 많이 배웠고 그것을 잘 기억하는 것이 특기였던 자공(子貢)을 빗댄 말이었다. 물론 스승의 측근으로서 배움을 익히고 실천을 수행하라 배우고 있었기에 자공(子貢)은 스승을 롤모델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의 질문이 갖는 두 가지 의미(스승에 대한 일반인들의 칭송 이유와 자신이 그것을 따르고자 했던 특성)에서 스승이 왜 그렇게 질문하는지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렇지 않으냐고 의아해하면서도 스승이 뭔가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고 스승이 꺼낸 화두의 설명을 기다린다. 그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막 믿다가 갑자기 의심하였으니, 학문을 쌓은 공부가 지극하여 또한 장차 터득함이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승 孔子는 이 장의 핵심이자 저 유명한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로 자공이 목표로 삼아야 할 명확한 지향점을 설명한다. 주자는 이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한다.    

 

(‘一以貫之(일이관지)’는) 해설이 제4편(〈里仁(이인)〉)에 보인다. 그러나 거기서는 행동으로써 말씀하였고, 여기서는 지식으로써 말씀하였다.     


주자가 위 주석에서 설명한 내용은 오늘 공부를 시작하며 내가 말했던 똑같은 개념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누구에게 설명하는가에 따라 그 개념의 속뜻이 색을 달리 할 수 있음을 다른 출처의 내용과 비교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 장과 뒤의 23장에도 나오는 ‘一以貫之(일이관지)’는 사실 위 주석에서 비교하고 있는 ‘이인(里仁)편’에 언급된 상황보다 공자가 훨씬 젊었을 시기에 이루어진 대화이다. ‘이인(里仁)편’에서 대화의 상대로 등장하는 인물은 증자(曾子)이다. 증자는 공자가 역책(易簀)했을 때 불과 27세의 청년이었다. 말년의 공자가 고작 27살을 먹은 제자에게 ‘一以貫之(일이관지)’를 논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고 무엇보다 그 상황이 공자가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다른 문인에게 그 가르침을 설명까지 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추론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즉, 편집 순서상 ‘이인(里仁) 편’이 앞에 있지만, 논리적인 고증을 해보자면 이 편에서 등장한 ‘一以貫之(일이관지)’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상황이 먼저이고 ‘이인(里仁) 편’의 내용은 이후 편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뒤의 23장에서 다시 언급되니 그때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一以貫之(일이관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새겨야 할 내용은 바로 ‘일(一)’, ‘그 하나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이다.      


유명하다고 하고 많이 듣고 본 것 같아서 그저 그러려니 하겠으나 실제로 고문을 가르치다 보면 제대로 ‘一以貫之(일이관지)’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학도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 장에 그 개념이 나온 김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一以貫之(일이관지)’의 ‘일(一)’은 ‘서(恕)’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위 주석에서 보았듯이 ‘이인(里仁) 편’에서는 도덕적 행위가 忠恕(충서)의 이념에 따라 一貫되어야 한다고 공자는 증자(曾子)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주자는 같은 개념인 듯 하지만 약간의 색이 다를 수 있다고 비교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산(茶山; 정약용)은 주자가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두 곳의 一貫이 모두 忠恕, 즉, 恕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知와 行이 분리될 수 없다고 여겨, 두 곳의 一貫이 서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나 역시 다산(茶山)의 의견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공자의 가르침에 있어 학문적인 지식이 도덕적인 행위와 연결되어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하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로 보면, 배우고 익히는 것과 그것을 체행하는 것은 분리된 개념일 수 있겠으나 최소한 공자의 가르침과 교육관에서 보면, 시작부터 끝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배우고 익히기만 하고 그것을 도덕적인 행위를 통해 실천으로 구현하지 않는다면 배우고 익힌 지식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까지 <논어(論語)>를 풀어 읽어주면서 부족하기 그지없는 안목으로 세평(世評)을 더해 공부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실생활에서의 실천이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해마지 않았던 근거가 바로 이 일이관지(一以貫之)의 가르침에 있다.     


다소 뻔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이 가르침은 그리 간단한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라는 단순 명료한 내용이 아니다. 왜냐하면 배우고 익힌 내용이 언제나 한 가지가 아니고 그것을 적용해야 하는 실생활에서의 상황이 하나가 아니며 그것을 받아들일 상대가 늘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그저 실천할 수만도 없는 것이 배우고 익힌 것을 어떻게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구현할 것인가는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는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예컨대, 그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일에 있어, 도면을 설명하고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이론만을 달달 외워 그저 앵무새처럼 떠들어댈 수는 있지만 어떤 나무를 쓰는지에 따라 그리고 습도가 높은지 낮은지 그리고 못은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등의 세부적인 사안들은 실제로 수십수백 번을 다양한 상황에서 만들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최한기(崔漢綺)는 ‘推測(추측)을 거치지 않는다면 앎이 근거를 지닐 수 없다’라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추측’이란, 현대어에서 말하는 막연한 어림짐작이 아니라, ‘推論과 實測’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즉 검증을 거치지 않은 통념을 온전한 지식이라 일컬을 수 없다는 것은 공부가 단단했던 학자들이라면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의 진실로 일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식은 일정한 체계를 지녀야 하며, 그 체계는 현실사회의 발전에 유효한 이념에 따라 구축되어야만 한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설명을 슬쩍 스쳐지나온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앞서 ‘一以貫之(일이관지)’의 ‘일(一)’이 서(恕)라고 설명하면서 정작 왜 그러한 것인지 그리고 뜬금없이 등장한 ‘서(恕)’라는 개념은 정확하게 어떤 의미에서 그 하나라고 확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서(恕)’란, 본래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서이행지(恕而行之)라고 하여 ‘남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는 마음으로서 일을 행하라’라는 가르침에 적용된다. 다른 어떤 설명보다 ‘서(恕)’의 헤아림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때 가장 적실한 설명은 공자의 핵심 사상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이다.     

행여 헤아림을 ‘동정한다’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내가 굳이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현대어로 이해하게 되면 ‘동정’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적인 것이고, 헤아린다는 것은, 내가 상대의 처지가 되어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기에 오해의 여지를 없애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그 한 가지 가르침이 갖는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 사씨(謝良佐(사양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인의 도가 커서 사람들이 두루 보고 다 알지 못하니, 당연히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하기를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하늘이 여러 형상에 대해 물건마다 조각하여 만든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詩經(시경)》에 ‘덕은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고 하였는데, 터럭은 오히려 비교할 데가 있으니, 《시경》에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한 말이어야 지극한 것이다.”     

그래서 윤씨(尹焞(윤돈))는 증자와 달리 자공의 반응이 부족했음을 다음과 같이 비교 설명한다. 

    

“공자께서 증자에 대해서는 그가 질문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일이관지))으로써 말씀하셨는데, 증자는 다시 이것을 깊이 깨닫고는 ‘예’ 하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자공으로 말하면 먼저 의문을 유발한 뒤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처럼 ‘예’ 하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분의 배움의 깊고 얕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자는 공자가 궁극의 목표점으로 삼은 이 가르침이 갖는 무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夫子(부자)가 자공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씀해 주심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은 여기에 참예하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안자 · 증자 이하 여러 제자들이 배운 바의 깊고 얕음을 또한 볼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명과 동시에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knowhow의 시대는 이미 knowwhere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모든 지식을 머리에 담고 다닐 수 없기에 그 정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 주효한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대선 토론회장에서 대통령이 될만한 자질을 논하며 ‘RE100’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갑분싸 장학퀴즈도 아니고 대통령이 그런 개념들을 일일이 알아야만 하냐는 사시 9 수생 출신의 후보와 그를 감싸는 빨간당 무리들을 보면서 개탄스러운 탄식조차 기가 막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모든 용어나 개념들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이거나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차피 전문가들에게 모두 물어보고 자문을 구해서 집단지성(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님을 그들이 정말 모를까 싶기도 했다)을 통해 통치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에 있다. 그렇게 정권을 손에 넣은 그들의 그러한 안일함은 이제 이 나라를 ‘국운(國運)이 다해 기울어가는 나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누구나 이사를 하지만, 견적에서부터 이사의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는 것과 동시에 배려하는 집주인의 이사와 어차피 전문가들한테 맡기면 알아서 할 텐데 뭘 돕고 배려하냐며 업체에 맡기고 출근했다가 이사한 집으로 퇴근하는 이의 차이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짐 정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손실된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후회로 이어진다. 물론 그 물건을 잃어버린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일러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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