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락을 했던 의원실은 다선 중진의원에 파란당에서 어른 소리를 들으며 현 당대표에게 연일 바른 소리를 한다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던 이의 방이었다.
담당이라며 전화를 받은 여자 비서관은 바쁜 와중에도 저간의 상황을 모두 듣고 경악에 마지않았다.
“아니 지금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걸 본부의 담당 과장들이 폭탄 던지기를 하면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건데, 실명 증거자료까지 있으시다고 하니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정리되어 있던 문건을 이메일로 보내고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열흘이 지났다.
다시 전화를 걸어 연결되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그녀는 본부 측에 요청을 했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식의 안일한 답변만을 받았다며 제대로 챙겨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의 의원님이 정말 바쁘시거든요.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원래 저희 상임위 하시던 분이 거기 장관으로 가셨고, 대통령과도 계속 동행해서 해외순방 다니시고 한데, 그분도 아직 국회의원직을 겸직하고 계시고, 게다가 변호사 출신의 파이팅 있는 여자 국회의원이 간사로 계신데, 여러 의원실에 접촉을 해보시고 도움을 청하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 어떠세요?”
누가 들어도 자기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싫으니 다른 쪽으로 가라는 말의 완곡한(?) 멍멍 소리였다. 굳이 그녀에게 매달리거나 그녀의 안일함에 일갈을 내지르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싶어 그녀의 지침(?)대로 민변 출신의 파이팅이 넘친다는 외통위의 파란당 간사 여자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임비서관이나 비서관은 어차피 위에 또 보고를 해야 할 테니 두 명의 보좌관중에서 한 명을 찾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들은 보좌관의 이름까지 대면서 찾는 다소 고압적인(?) 사람에게는 잔뜩 쫄아서 묻는다.
“실례지만 저희 보좌관님이나 의원님과 친분이 있으신 분이신가요?”
그게 여의도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실의 방 전화를 1차적으로 받는 전화상담원에 해당하는 비서관들이 취해는 조건반사 같은 행위이다. 나는 늘 내 소속과 이름, 그리고 번호를 그대로 말할 뿐이지만, 그렇게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당당하게 전화하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그들은 그 태도에 알아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보좌관을 바꿔주었다.
대개의 보좌관들은 통화 중 자신이 만났던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모시는 의원과 막역한(?)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치 당했다는 떨떠름한 말투를 잊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의원실의 보좌관조차도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똑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이 외통위 소속 의원실에 있으면서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 기관을 감시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게 본분이 아니냐고 날 선 반응을 보이면 그제야 그건 맞다면서 마지못해 알아보겠다며 꾸역꾸역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서너 명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자기 사업을 하는 제자 녀석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상황에 대해서 대강 듣고 난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이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도 전혀 모르시지 않잖아요? 걔들은 세 가지의 경우에만 움직입니다. 첫째, 자기 의원이 방송을 통해 그 이슈로 주목을 받아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경우, 둘째, 자기 의원 혹은 자신의 네트워크에 직접 연관이 있어서 도와줘야 하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이 잇권이 연결이 되어 후원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거나 잇권을 공유하고 있어 청탁을 거절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선생님처럼 너무도 당당하게 그저 국민이니까.라고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 반박은 못하겠지만 걔들은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면서 튕겨낼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당연하니 나보고 연줄을 이용해서 타고 내려가거나 누르는 방식을 택하라고 권하는 거냐?”
“아니요. 뭐 당연히 그렇게 안 하시고 원칙대로 하시려고 하는 스타일은 압니다만, 결국 그 여의도에서 일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시면서 그 일을 반복하시는 게 제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비효율적인 듯해서요.”
녀석의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안다. 내가 고지식하고 바보 같아서 원칙을 강조하고 계속 소위 말하는 뻘짓을 하겠다고 작정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그런 짓을 한다고, 그리고 그 곁을 보좌하며 역시 국세로 월급을 받고 별정직 공무원이랍시고 다니는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이 그따위로 자기네 편한 대로 하는 것이 관행인 양 당연히 그들의 방식을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군가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제대로 똑바로 일하라고 보여주고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답해하는 전직 보좌관 출신의 제자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이고 일침일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진정을 제기해서 그들이 본래대로 특별한 뒷선을 이용하거나 잇권이 달려 있거나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청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썩어빠진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는 생각을 나까지 바꾸고 싶지 않았다.
사실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 당시 아나운서 출신에 청와대 대변인까지 했다면서 SNS에 아이의 엄마로서 눈물을 흘리네 뭐네 쇼를 했던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이 당당하게 ‘그런 건 경찰에 신고하세요. 경찰에서 덮은 걸 국회의원실에서 뭘 대단한 힘이 있다고 아동학대의 진상을 밝힙니까?’라고 했던 경험이나 역시 같은 파란당에서 소방관 출신으로 국민을 위해 뛰겠다며 어쩌고 했던 이의 소방관 시절 상관이던 보좌관이 경찰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가 ‘개인적인 다툼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실의 정보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라는 궤변을 끄덕이며 넘어가는 해프닝까지 벌이고 자신의 미숙함을 지적하자 그저 연락을 두절시켜버린 경험도 있었던 터라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같은 강남에 살며 지역구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직에 오른 이의 보좌관과는 직접 만나기까지 하였다. 그는 강남 지역구를 지키는 보좌관이었는데 이전에 다른 일로 마주칠 일이 있었던 터라 면식이 있어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초대를 하여 지역구 사무실까지 자료들을 들고 찾아갔더랬다.
보좌관은 자료를 검토하더니 놀라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세계적으로 한국문화니 한국학이 주목받는 이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답니까?”
“지금 장관님이 계신 본부 감사실에 감찰 의뢰를 했는데 몇 달째 시간을 뭉개고 있습니다.”
“하아! 이거 장관님이 아시면 난리 날 텐데...”
그의 호들갑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었다.
“교수님. 그러면 우리 장관님이 긴 문서를 읽기 싫어하시고 글자가 작으면 또 안 읽으세요. 그러니까 최대한 요약본으로 축약하시되 글자 폰트도 큼직하게 해서 첫 페이지에 모든 내용 다 들어가게 작성하셔서 저에게 보내주시면 제가 장관님에게 보내드리고 본부일 보좌하는 특별보좌관에게도 연락 취해두겠습니다.”
자신이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강남의 의원직까지 겸직하고 유지하고 있는 그가 대통령을 보좌하며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해임안까지 직격으로 맞은 터에 이런 문제가 터지는 것이 당연히 호재일리는 없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장관 특별 보좌관에게 전화까지 넣었다는 지역 보좌관의 약속과는 달리 이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후 이태원 참사가 터져 나라가 들썩거리며 난리가 났고 마침 외통위 소속 위원이자 파란당에서 서울시장까지 나오겠다고 쇼를 했던 국회의원실에도 연통을 넣었다.
그의 보좌관은 내용을 듣고 멋지게 ‘먼저 간략하게 정리된 문건을 보내주시면 검토한 뒤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겨왔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역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해당 기관에 대해 연속적으로 외통위 위원으로, 그리고 탈북하여 한국으로 건너온 북한 고위 외교관 출신의 강남 빨간당 의원실에 연락을 취했다. 대략 내용을 듣고 통화를 한 뒤 메일로 문건을 확인한 보좌관이 이렇게 말했다.
“아, 교수님. 알아보니까 다른 외통위 위원실에도 많이 연락을 취하셨던데요. 저희가 야당이던 시절에 그 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비리에 대해서 지적했던 것은 사실인데. 지금 이 건을 여당이 되어서도 문제를 삼는다는 게, 같은 당 의원님이 본부 장관으로도 계시고 말이죠...”
“문제가 되는 걸 알고도 덮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사실 파란당 쪽에 많이 연락하셨는지만 그쪽에서 도움을 못 받으신 거잖아요?”
“네. 그런데요? 그들이 해이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제 생각에 이건 교수님의 개인적인 문제고 교수님의 이권이 결탁된 문제 아닌가요?”
“뭐요? 이권이요? 지금 이게 내 사익을 위한 문제라는 말인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아니요. 정말로 문제가 된다고 여겼다면 파란당의 간사나 그 잘 나가는 의원실에서 왜 덮었을까요? 별 문제가 안되기 때문 아닐까요?”
그의 이죽거리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문제도 안 되는 걸 내가 지금 실명이 담긴 증거자료까지 제시하면서 문제를 삼고 있다는 건가요?”
“아니요. 본부에도 그렇고, 해당 기관에도 알아봤지만 크게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없다는 해명을 들어서요.”
“이것 보세요.”
“저희가 이런 일을 해드리는 곳도 아니고요. 정 위법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시면 개인적으로 고발을 하시던가 법적으로 해결하시면 될 거 아닙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의 태도는 아예 막가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위치가, 국민이 모두 정치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일을, 그리고 국가기관이 비리 없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감시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상임위까지 나눠서 살피는 거 아닙니까?”
“허참!”
그는 대꾸도 못하고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말했다.
“다 맞는 말씀인데요. 파란당에도 한두 명도 아니고 그렇게 하셨고 그쪽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저희 쪽에만 이렇게 연락하셔서 뭐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요. 정작 본부 감사실에서도 그렇고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인데 저희가 무슨 수사기관도 아니고 뭘 어쩝니까? 안 그렇습니까? 지금 전화 다 녹취 중이시지요? 저도 녹취 중입니다. 허허. 그럼 전화 끊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린 그를 비롯해서 한 달 여가 지나고 채근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참고 있던 전화를 돌렸지만 아예 전화를 기피하거나 바쁘니 다음에 연락을 드린다는 말로 그들은 꼬리를 감췄다.
파란당의 당대표이자 대선 후보였던 이의 사무실에 전화를 했음에도 전화받은 비서관이 다시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화룡점정(?)이었다.
내가 일주일에 걸쳐 이 어이없는 국가기관의 채용비리와 횡령 혐의에 대한 내부고발이 어떤 끝을 맞게 되는지를 각 분야별로 나누어 상세히 리포팅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매일 아침 <논어 읽기>를 연재하며 수천 년 전에 이미 완성된 성인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느 하나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를 거듭하여 악랄한 쪽으로 진화해버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국가고시도 아닌데 언론‘고시’라는 같잖은 포장지를 씌워 권력에 기탁하여 기생하는 기레기들부터 공무원이랍시고 분명히 비리임을 알면서도 동조하고 공조하며 묵과하는 작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감찰부서에 있다고 하면서 결국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볼멘소리를 내는 그 현장 직원들이 모두 당신이고, 당신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고, 아들딸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를 좀먹고 나라의 국운(國運)을 모두 소진시켜버린 것이 결국 당신이 그토록 쓰레기라고 욕하는 정치인들에 한한 문제가 아닌 바로 당신의 지인, 친구, 가족이라는 점을 당신이 명확하게 인지하라고 얼굴 앞에 들이밀고 싶었다.
국민혈세라 부르고 눈먼돈이라고 읽는 국가예산을 무려 1년에 2000억이나 소비하며 펑펑 써대는, 일반인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그 국가기관은 그렇게 버젓이 전직 고위 낙하산들의 돈 세탁소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이제까지 이 매거진을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이대로 이 건을 덮고 끝낼 거라는 씁쓸함은 갖지 않기를 바란다. 경찰, 검찰, 법원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나는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혈투를 끝마칠 생각이 없다.
당신도 그저 라이킷 하나 누르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것을 넘어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는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움직임이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생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