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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06. 2023

언제까지 엑스트라로만 살 것인가?

진정한 정치가 탄생하는 순간...

지난 주말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를 찾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강남 한복판의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은 한 집당 최소 2대 이상의 차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차난에 강북의 산동네 골목을 뺨치는 수준의 주차난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차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면주차도 아니고 버젓이 사람들이 걸어 다녀야 하는 아파트 출입구를 막고  있는 차를 발견했다. 물론 그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의 경비가 그 모습을 보고 계도하거나 주차 라인이 그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는 아파트 입구에는 차를 대서는 안된다는 안내를 해주는 것이 맞는 일이었지만 그 차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는지 그대로 차를 세워두고 반나절을 넘겼다.


그 차가 오후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보며 마음이 썩 편치 않았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먼저 기다리며 서 있던 노부부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아니,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에 버젓이 차를 어젯밤부터 저러고 대놓고 있는 것 같던데 하루종일 그것도 주말에 이렇게 대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아내는 푸념에 반평생을 함께 하며 익숙해진 것 같은 남편이 괜스레 미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러자 아내는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니. 사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기 조금 편하자고 이 따위로 차를 대서는 안 되는 자리에 차를 버젓이 대놓고 그러면 쓰나?"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해주었다.


"몰상식해서 그런 거지요."


"네?"


노부부가 흠칫 놀라 뒤에 서 있던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마스크 안으로 빙긋이 웃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틀린 말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상식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 거지요." 


"어머! 저희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분도 계시네요?"


여자가 반가운 듯이 대답했다. 아주 잠시 엘리베이터의 공간을 공유한 것이 다였지만 나이가 지긋한 그 노부부와의 공감은, 내게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비싸게 새로 뽑은 신차를 이면주차했다가 상할까 싶었는지 주차라인도 그려져 있지 않은 아파트 입구에 버젓이 대놓고 하루종일 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몰상식한 자도 그렇지만, 경비 업무를 하면서 그런 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차를 얼른 빼라고 말하지 않았던 아파트 경비원도 결국 자신들이 싫은 소리를 듣기가 싫었거나 아예 전화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을 수도 있다.


정작 아무런 문제가 생길 일이 없을 거라며 안일하게 자기 편하자고 댄 주차가, 행여 갑작스러운 화재나 강남 재건축 단지에 사시는 하우스 푸어 노인들의 갑작스러운 앰뷸런스 행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배려 따위는 그들의 뇌에 탑재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아파트 경비가 전화를 했다면, 그는 굉장히 불쾌해하지 않았을까 예상된다. 정작 그 때문에 불쾌해했을 노부부를 비롯한 미처 감정을 그의 면전에 쏟아내지 않았던 다른 주민들의 불쾌감은 그에게 전달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잘 안다.

그런 자들일수록 자신의 차의 뒤에 이면주차를 누군가 해놓아 자신이 당장 차를 뺄 상황에 곤란해져 있거나 하면 아파트 경비를 드잡거나 온갖 난리법석을 다 피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치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나대는 것이 정치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정치는 정작 이러한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

모든 주민들이 그 개념 없는 운전자를 직접 탓하거나 전화를 걸어 차를 빼라는 위험한(?) 시비를 걸지 않는다. 괜한 아파트 경비에게 밥값도 못하고 제 일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오지랖 넓은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모두가 한다면 달라진다.


모두에게 비난받을만한 짓이라고 한 번의 쓴 경험을 당하게 되면 그 어느 누구도 뻔뻔하고 버젓이 차를 그따위로 주차하고 하루종일 편하게 집에서 널브러져 쉬지 못할 것이다. 이면주차를 하면서 당당하게 자기 차 조금이라도 굴러가서 상할까 싶어 핸드 브레이크를 꽉 잡아 올려놓고 심지어 전화번호마저 남겨놓지 않거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개념 없는 자들이 도저히 굴러다니는 현실은 그들이 그 후안무치함으로 인해 지적을 호되게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결코 체벌이 아니지만, 호된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아야만 비상식적인 짓을 멈추는 자들이 더더욱 많아지는 요즘이라면 올바른 교육은 학교만이 아닌 도처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실제 이러한 상식과 사회적 배려는 이미 가정교육을 통해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고 부모가 부모답지 못한데 하물며 권력의 사리사욕에 눈이 충혈된 자들이 대의의 정치는 고사하고 말뿐인 공정과 상식을 국민의 표를 얻을 때만 사탕발림으로 떠들어대고 부정을 싸질러대는 이 현실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별것 아닌 아파트 입구에 세워둔 몰지각한 차를 보면서 생면부지의 노부부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올바른 정치는 정치꾼들이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한 명 한 명이 해야 할 것이라는 지극히 간명한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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