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확고한 단언이나 선입견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러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나왔던 경찰들 중에서 어느 한 명 공정하다거나 정의를 진실로 구현하는 이를 만나지 못한 불운(?)이 내게 그런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근거로 작용했다.
여경이 칼부림을 벌이는 범인을 피해 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건이 터졌을 때도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지만 어쩌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 듯 경찰을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경찰도 직장인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경찰도 직업의 하나이니 월급 받고 일하는데 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일해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이 당연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다른 직업과는 분명히 다른 사명감과 정의감이 있어야만 한다고 나를 포함한 평범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 바라고 기대한다.
거기에 조금 더 부언하자면, 나는 그들이 총칼 앞에서 슈퍼맨처럼 자신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지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자신의 귀찮음이나 자신의 소소한 이익을 위해 정의를 짓뭉개거나 부정을 행한 자들과 결탁하여 사리사욕을 채워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작년 가을 즈음, 해외선물로 피해를 입었다는 이에게서 SOS가 왔다.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치게 되자 수많았던 이른바 리딩방에서는 자연스럽게 금융사기 단체와 손을 잡고 해외선물방이라는 것이 기승을 부렸더랬다. 모 여자 연예인의 남편이 200억대 선물 사기로 감방에 들어가고 이혼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대놓고 그들의 악랄한 사기 수법이 일반에 이미 침투해 버렸다는 르포 보도까지 이어져 어지간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이슈였다.
그래서 나온 무서운 격언이 바로 '싫어하는 사람에는 주식을 알려주고, 원수에게는 선물을 알려주라'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터였다.
사설 해외선물방에 오픈카톡의 리딩방으로 포장된 사기업체들은 마치 주식으로 손해 본 이들이 해외선물로 모든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듯이 끌어들여 그들의 고혈을 빨아들이고 먹튀를 해버리는 수법으로 서민들의 등을 처먹는 고등 사기 집단들이 점조직처럼 기업화하여 여기저기서 활약 중이었다.
그런데 주식리딩방에서부터 회사이름과 명함 그리고 심지어 그의 얼굴 사진 카톡프로필까지 확인하고 전화통화를 했던 피라미에게 속아 해외선물방에서 수천을 날린 이가 내게 도움을 청해온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통장에 입금한 내역이 있으니 그가 가진 정보를 토대로 형사고소를 하도록 여러 가지를 도와주었더랬다. 이미 공중파의 사회고발 프로그램에 금감원을 비롯하여 사이버 수사대에서 대거 검거하는 작전이 벌어졌다고 몇 번이나 보도가 되었음에도 강남 한복판에 있는 경찰서에서는 그것이 경제범죄팀으로 보낼 일인지 사이버 수사팀으로 보낼 사안인지로 서로 미루기를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여지없이 경찰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치솟았다.
법리를 논하고 경찰간부에게 호통을 치고 나서야 사건은 정식으로 접수되었고 입금을 했던 통장외에도 당시 버젓이 중단하지 않고 이루어지던 사설 시스템에 나오는 불법 통장들의 계좌번호를 계속해서 보내주었더니 담당 수사관이라는 작자는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송금하신 계좌만 영장 쳐서 보면 되지, 지금 입금하지 않은 통장을 보는 건 영장 치기도 그렇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꿔서 생각해 보라. 지금 보이스 피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들이 아직 사용하지 않은 대포통장을 확인했다고 신고하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통장이니 수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찰을 제정신이라고 판단할 것인가?
더 기가 막힌 일은 그렇게 겨우 수사가 시작되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수사관의 허망한 약속은 해를 넘기고 봄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피해자에게 경찰명의의 통보가 도착했다.
피의자를 특정할 수가 없어 수사를 중지합니다. 언제고 다른 지역의 경찰서에서 신고가 들어오거나 피해자의 신원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언제든 수사는 다시 재개될 수 있습니다...
이 무슨 신박한 개소리이냐고 피해자가 내게 다시 보고와 함께 조언을 구해온 것이다.
자신이 처음 해외선물 프로그램을 접하게 만든, 시초가 되었던 주식 리딩방의 부장이라는 작자의 이름과 명함과 회사 이름과 심지어 그의 얼굴 사진까지 제공하고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범인이라고 고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한다니 그 말을 어떻게 내가 해석해줘야 할 것인가 어이가 없었다.
피해자의 손을 잡고 경찰서로 바로 쳐들어갔다. 담당 수사관에게 물었다.
"피의자에 대한 사진, 이름, 명함, 회사 이름, 핸드폰 번호, 회사 번호까지 모두 제공했는데, 피의자 불상이라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 그게.... 그 사람의 실명인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그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 확인을 해보셨나요?"
"네?"
"피의자에 대한 신원을 확인하는 탐문수사라도 해보셨냐고 묻는 겁니다."
"아, 그게, 그 명함의 회사에 전화해서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서요."
"뭐라구요?"
정말로 어이가 없다 못해 그의 얼굴에 욕지거리를 내뱉어버릴 지경으로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핸드폰 번호는 추적해 보셨습니까?"
"그게...."
"그 회사라는 곳은 직접 가서 탐문수사를 해보셨나요?"
"아니요, 그게...."
"당신이 말하는 최선의 수사가 도대체 뭡니까? 혹시 그 해외선물업체와 무슨 결탁이라도 있어서 수사를 막아주는 겁니까?"
"네? 아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데...."
"그러면 이름하고 회사 이름에 얼굴 사진에 핸드폰 번호와 회사 번호에 주소까지 다 줬습니다. 그런데 탐문수사 한번 안 하고 행여 그 회사라는 곳이 어떤 소굴인 줄 알고 거기 전화해서 그 사람 이름대로 물어봤더니 그런 사람 없다고 대답해서 그냥 끝내는 게 대한민국 경찰의 범인 검거 수사방식입니까?"
"......"
그도 양심은 있었는지 마지막 추궁에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마지못해 내놓은 것은 정식으로 다시 수사를 재개하려면 수사이의신청을 서류로 제출해야 하니 서류를 작성해 달라는 거였다.
강남 한복판의 사이버 수사팀의 수사관이 수백억 원 피해금액의 금융사기 사건을 수사하는데 고작 혼자서 6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고 시간만 때운 채,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헛소리를 해대다가 다시 수사를 재개하려면 정식으로 수사이의제기를 해줘야 한다고 서류를 작성해 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화가 치솟는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내가 이 매거진에서 다루었던 몇몇 전통 사기사건들(예컨대,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고 광고를 내놓고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지만 원본 파일은 주지 않는다고 하는 방식으로 고액의 액자를 사는 조건으로 원본 파일을 팔아먹는 사진 사기)을 비롯해서 A.I. 신기술로 로또 번호를 추천해 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신종사기에 이르기까지 경찰에서 철퇴를 가하지 않아서 슬금거리며 여전히 운영(?) 중인 사기업체들은 여전히 그렇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던지려고 한 현역목사에 대해 신고했더니 협박죄로 고소하여 아동학대 혐의를 알 수 없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 경찰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그것이 사람인가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부모에게 욕을 했다고 회초리를 든 엄마를 홧김에 신고한 건에 대해서는 바로 아동학대로 검찰에 송치하는 여성청소년과의 짭새를 보면서 어떻게 그들이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어줄 수 있단 말인가?
경찰도 직업이다. 맞다. 그런데, 최소한 직업에는 그에 맞는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다. 이익을 위해 별짓을 다하는 장사꾼은 장사꾼이라 그럴 수 있다고 넘겨주는 부분이 있지만, 경찰도 먹고살아야 하니 뒷돈을 받고 진실을 뭉개고 사실을 조작하는 것으로 제 호주머니를 채우고, 힘들고 품이 많이 드는 수사는 하지 않는 식으로 농땡이를 치는 것을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는 없다.
민중의 지팡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경찰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지키는 게 어렵다면 그냥 돈 많이 버는 다른 직업으로 얼른 전직하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