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대로 막 나가며 정교함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子曰: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오히려 史官들이 글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음과 말을 소유한 자가 남에게 빌려주어 타게 함을 미쳐 보았는데, 지금에는 이것도 없어졌구나!”
이 장에서 공자가 설명하는 두 가지 경우는, 현대인들이 한번 읽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라고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대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사례도 아니거니와 공자의 서술방식이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상세하게 다시 풀이해주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까 때문에 다소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기존 해설서들은 이 장에 대해 이 장을 직역으로 풀어서 자신조차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티를 내는 모습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위에서 원문을 의역까지 하면서 풀이하지 않고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공자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그렇다면 조금 자세히 이 의아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史官들이 글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례이고, 두 번째 사례는 말을 소유한 자가 남에게 빌려주어 타게 하는 것에 대한 사례이다. 이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한 공자는 이것이 지금에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탄식한다.
사례라는 것은 본래 설명하려는 취지를 좀 더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원문에는 물론이고 주자마저 따로 주석을 달지 않았다. 그만큼 원문의 두 사례는 당시 배우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이해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주석에도 해설이 상세히 풀어져 있지 않으니 그 의미를 천천히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보자.
첫 번째 사례는, 모든 사실에 대해 빼놓지 않고 기록해야만 하는 소명을 가진 사관(史官)들이 그 기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입장에서 도저히 의아하게 생각되어 기록하지 않고 비워두는 행위를 의미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은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조금의 보탬이나 덜어내는 조작이 없이 기록하는 정직성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만 한다면, 그것은 비디오로 찍어 기록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현대의 사진기자나 비디오로 찍는 기자들이 그저 카메라로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것은 피사체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대한 자기만의 의식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글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에게 있어 그저 사람들의 말을 녹취록처럼 기록하기만 하는 것은 속기사의 일이지 사관(史官)의 일은 분명히 그것과 다르다.
그래서 공자가 첫 번째 사례로 제시한 사관이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잘 몰라서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판단했거나 도무지 의문이 가서 그것을 기록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놔두는 것이 상식이었다. 빈 공간을 굳이 두는 이유는, 나중에라도 그것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확인하고 난 뒤에 명확해지고 나서 적겠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누군가에 의한 규율이나 법제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관(史官)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소임을 직도(直道)에 맞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그런 행동을 결단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례에서 설명한, 말을 소유한 자가 뜬금없이 남에게 빌려주어 타게 한다는 경우는 거친 말을 소유한 이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무리하게 다루거나 길들이려 하지 않고 반드시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을 기다려 그에게 빌려주어 길들인다는 신중함을 강조한 이야기이다.
혹 몇몇 현대 해설서에서는 전공자라고 밝힌 저자가 버젓이, ‘말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빌려주어서 타게 하는 인정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여 그런 따스한 인정이 없어졌네 어쩌고 풀이하는 경우도 보았다. 과연 뜬금없이 예전의 따스한 인정이 없어진 각박한 현실을 말하겠다고 앞의 내용과 상관도 없는 사례를 공자가 들었을까?
두 사례가 한 장에 인용된 것은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서는 하나의 문장에 엮일 필요가 없다. 앞서 역사서를 기록하는 사관의 그 정직함을 기반으로 나중에 정확한 내용으로 기록을 채워 넣으려는 신중함에 내 말이라고 마구잡이로 길들이기보다는 최선을 위해 전문가를 기다려 그에게 빌려주는 신중함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설이 훨씬 더 공자의 기존 가르침의 방식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인정이 없어졌네 뭐 하네 하는 오독이 나온 데에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자가 직접 주석을 다는 대신 가져온 양씨(楊時(양시))의 아래 주석을 보면 그들이 어떤 근거에서 그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史官(사관)이 글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음과 말을 남에게 빌려주는 이 두 가지 일을 공자께서도 오히려 미쳐 보셨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하셨으니, 시대가 더욱 야박해짐을 서글퍼하신 것이다.”
시대가 야박해졌다는 표현을 현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공자의 말씀을 끼워 맞추고 싶어 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나올 것이 걱정스러웠는지 주자가 드디어 한 마디를 보태고야 만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어서 하신 말씀일 것이니, 비록 하찮은 문제(연고)이나 時變(시변)의 큼을 알 수 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마치 공자의 행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자기 멋대로 해석을 끼워 붙이거나 멋대로 오독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래서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신중하고도 신중한 해석을 강조한다.
“이 장의 뜻이 의심스러운 것은 억지로 해석할 수 없다.”
문면 그대로 읽으면 뜻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해석하지 말라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이 장의 본의를 해석하고 이해한 후 다시 살펴보면, 공자가 이 장에서 일깨워주려고 했던, 지금은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옛날의 신중함을 완곡하게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의 명예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문집에 실리는 것도 아니고 그의 업적에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작업이 갖는 중요함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사관(史官)은 굳이 자신이 잘 알지 못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기록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확인하려고 들 필요(?)는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앞서 강조한 방점이 누가 시켜서 하거나 법제적 규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관(史官) 개인의 판단과 결단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것은 누가 보기 때문에 혹은 자신의 이름이 남기 때문에, 때때로 잘못하면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등등의 지저분한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사관(史官)이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소명이다. 굳이 공자가 이 장에서 사관(史官)을 사례로 든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 중에서도 굳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신중함을 든 것은, 그 자리가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이나 첨삭을 강요받거나 여러 가지 유혹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도 더더욱 공자가 가리키는 의도가 하나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굳이 공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자리든 그 자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무와 행해야 할 직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익만을 최고로 여긴다고 알려진 장사꾼조차도 더 큰 이문을 남기기 위해 이익만을 추구하여 사람을 버리게 되면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자 가르침이다. 하물며 백성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소명의식이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공자는 세상에 나가겠다는 뜻을 세운 배우는 자들에게 그러한 기본을 다시금 일깨우고자 다각적인 설법을 안배한 것이다.
원래 받는 녹에 특별히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사관(史官)이라는 소명의식까지 갖춰가며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정직하게 이해가 안 가거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확인하고 제대로 적기 위한 신중함을 갖춰 기록을 빈칸으로 놔두는 자세는, 그렇기에 배우는 자들은 물론, 당시 녹을 먹고 있는 자들에게 매서운 죽비로 작용하는 가르침일 수밖에 없다.
해석함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던 말을 빌려주는 일에 대한 사례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소유의 말을 굳이 말 전문가를 기다려서 그에게 빌려주고 손보이는 것은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말을 포함하여 짐승은 길을 들이게 되는 이를 진정한 주인으로 여기게 된다는 점에서 내가 소유한 말을 나보다 더 세련된 기술을 가진 전문가에게 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분히 들 수 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를 기다려 말이 최상의 상태로 길들여져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이다. 전문가를 찾아 기다리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을 타게 하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이 사례에서 다시금 강조하려는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닌 말이 가진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선택을 위해 자신의 소유욕을 양보하는 마음가짐이다.
삼류대학에서 대학교수를 선발함에 있어 삼류대학 출신의 자기 제자를 선발하면서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같잖은 변명이 있다.
“대학교수라는 게 그래. 누가 들어오든 어차피 우리 대학이 일류대학도 아닌데 얘들이 저 지경인데 무슨 최고를 뽑아. 그냥 여기서도 열심히 공부한 선배들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줘야지.”
정말로 그런가? 당신이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당신의 후임을 뽑을 때, 정말로 그 일에 최대치의 능력을 뽑을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것과 ‘어차피 이런 구멍가게 회사 누가 들어오든지 간에 그냥 월급도둑되기는 마찬가지지 뭐 그렇게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인재를 뽑네마네하냐’라고 여기고 당신에게 넙죽 엎드려 아부하는 이를 끌어올리는 것과 정말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의외로 아주 큰 결정에 의해 움직이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이 생각할 때 별것 아니라고 쉽게 지나쳐버렸던, 당신이 승진시킬 후임을 결정하거나 당신이 일하는 삼류대학의 교수를 새로 임용하는 일 등이 쌓이고 연결되면서 나비효과를 일으켜 당신이 속한 회사나 학교를 변혁시켜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하고, 혹은 어차피 크게 변할 것이 없다며 내린 안일한 결정과 편협함으로 인해 사회는 좀먹기 시작하고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새해를 열며 첫 가르침으로 이 장을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는 미리 계산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의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그 뜻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대강 넘어가버리는 이 장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공자가 탄식했던 당대의 현실이 수천 년이 지난 작금에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공자가, 옛사람이 지니고 보여주었던 그 신중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사례까지 들어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말라며 강조한 이 장의 일침은, ‘위령공(衛靈公) 편’을 가로지르는 일관된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사람들 간의 교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전제로 사(私)를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나 아닌 다른 이들, 공(公)을 우선시하려는 마음가짐이 스스로를 마음가짐을 단속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새해 첫 출근을 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발검스쿨의 학도들이 새로운 시작을 다지며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품는 이 시간, 이 장의 가르침이 자신을 가다듬는데 자양분이 되고 밀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