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는 자들에게.
子曰: “君子謀道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道를 도모하되 먹을 것(부유함)을 도모하지 않는다. 밭을 갊에 굶주림이 이 가운데에 있지만 학문을 함에는 祿이 이 가운데에 있으니, 君子는 道를 걱정하되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 장은 바로 어제 공부했던 학문의 본질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이 편의 첫 장에서 강조했던 ‘군자고궁(君子固窮)’의 진의(眞意)에 맞물려 하나로 메시지로 이어져 강조된다. 뒤에 공부하게 될 37장의 대의(大意)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경과 道를 닦는 학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유하는 듯 하지만 농경으로 대비되는 먹고사는 실질적인 문제와 대비시켜, 먹고사는 일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더 우위에 놓고 더 치력을 다 해야 하는 일로, 왜 道를 추구하며 수양하고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한 설명을 부연하고 있다.
먼저 주자는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주석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밭을 가는 일’은 밥을 도모하는 것이나 반드시 밥을 얻지는 못하고, ‘배움’은 道(도)를 도모하는 것이나 祿(녹)이 이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 배움은 도를 얻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요, 가난을 걱정하는 이유 때문에 이것(배움)을 하여 녹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주석의 해설을 잘못 읽게 되면, 자칫 공자가 농사를 포함한 노동을 중시하지 않고 관념적인 공부만 중시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자가 이 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강조하려고 한 본질은 자신을 완성하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이상을 지닌 군자라면 枝葉(지엽)을 걱정하지 말고 根本(근본)을 다스려야 한다는 진리이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죽비를 내려치는 일갈(一喝)로, 소위 ‘배우는 자들’에게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유혹에 쉽게 져버리는 결정을 하지 말라고 강조한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부분을 전면에 대고 외치고 있다.
원문에서나 주자의 주석을 통해서도, 선뜻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왜 먹고사는 일의 대명사로 표방된 농경을 하면서도 굶주림이 있다고 한 것인지, 그리고 배우고 익혀 도를 수양하게 되면 녹봉을 얻는 것 이외에 다른 부작용은 없는 듯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 공자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그런 표현을 썼으면 그 표현이 갖는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서로 비교대조하여 이해하면 그런 오독(誤讀)의 여지는 확연히 줄어든다.
밭을 가는 일에 종사하더라도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에 열과 성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농부가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가뭄이나 수해, 한발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농사를 망쳐 굶주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농사가 잘 되고 먹고사는 일이 모두 해결되는 정비례의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다는 명확한 선을 그은 것이다.
한편 ‘學’으로 대비되는 도를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학문을 하면 늘 녹봉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행위의 목적은 늘 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향해 있되,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녹봉까지 얻는 경우가 생긴다는 주(主)와 부(副)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녹봉을 얻는 것이 주목적이 아님을 역설한 표현이다. 혹 몇몇 현대 해설서에서 도를 추구하는 학문은 오로지 얻는 것이 녹봉만이라는 식으로 강조하여 도를 닦는 것이 무익함이 없음을 강조했다고 괴상한(?) 해석을 한 경우도 볼 수 있는데, 나는 공자의 가르침이 그렇게 경박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근거로, 공자의 일관된 가르침은 앞서 ‘위정(爲政) 편’에서 자장(子張)이 녹봉 구하는 방도를 물었을 때에도 명확하게 확인한 바 있다. 공자는 자장(子張)에게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녹봉은 그 가운데 있다.”라고 일러준 바 있다. 즉, 녹봉 자체를 목표로 삼아 학문을 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것이며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덕행을 우선적으로 닦으라고 권계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장의 마무리를 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공자는 진정한 군자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道가 완성되지 못할까에 대한 부분에 치중할 뿐, 결코 현실적인 가난함과 굶주림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비판을 받은 ‘매국노(賣國奴)’라는 표현을 받은 자중에서도 대표적인 친일파로 꼽히는 이완용(李完用)은 자기 자식에게 유언을 전하며, 이제 미국이 실권을 잡게 될 것이니 일본이 아닌 미국에 붙어 그들에게 기생하라고 절절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지식을 전했다.
이완용을 비롯한 당시 친일파들은 영화 <암살>에서 동지들을 변절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던 염석진(이정재 분)이 세상이 바뀌고서도 그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죽음을 앞두고 속내를 밝혔던 것처럼 일본이 그렇게 패망할 줄 몰랐다는 둥, 자신은 그저 그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둥 추악하기 그지없는 민낯을 드러냈다.
공자는 이 장의 가르침을 통해 공자의 시대에도 만연했던 기회주의자들의 변명을 내뱉는 주둥아리에 지옥의 불덩이를 가차 없이 쑤셔 박는다. 부와 명예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땅을 일궈 땀 흘린 만큼 하루하루 노력했던 농부들조차 자신의 노력만으로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도출할 수 없는데, 그나마 자신을 수양하는 것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도를 닦는 학문은 자신의 노력만큼 그대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대조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설명을 명확히 하려는 대조의 효과를 뛰어넘어, 조금만 더 심도 있게 살펴보고 분석하게 되면, 공자의 치밀하게 안배된 행간의 의미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수면으로 올라옴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알량한 지식을 이용하는 자들이 모럴해저드를 드러내며 나락으로 떨어져 궁지에 몰려 비명처럼 내뱉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 궁색한 변명은 이미 수천 년 전의 공자의 시대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었음을 공자는 일찌감치 지적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의 본질을 이해한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정리한다.
“군자는 근본을 다스리고 지엽을 걱정하지 않으니, 어찌 밖으로부터 이른 것을 가지고 근심하고 즐거워하겠는가.”
이 주석을 읽으며 과연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지엽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라. 공자의 시대는 물론이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농사처럼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인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일을 선호한다. 그러한 풍조는 이른바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고, 이제는 입시 시스템에서는 물론 대학의 학제 시스템에까지 그 실질적인 영향력이 발휘되어 죄송수준이 아닌 붕괴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다.
기초학문을 양성한다고 하고, 인문학을 양성한다고 국가차원에서 지원을 하네 뭐네 하지만 결국 현실에서 회사들이 문과졸업생들보다는 당장 현장에서 그나마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는 이공계학생들을 선호하는 상황들은 언발에 오줌 누는 정도에 그쳐, 늘 정부의 눈먼 돈을 챙겨 받아가는 몇몇 대학 교수나 연구자들의 뒷주머니를 채워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정책을 만들어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한다는 여의도의 정치꾼, 국회의원들이 어떤 전공이었는지를 살펴보게 되면 그들의 전공은 과반수 이상이 문과이다. 좀 더 파고들어 가게 되면 그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문과계열의 학생들은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목을 메지만 지방대 로스쿨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절반이상을 넘기기 어려운 비참한 성적표를 드러낸다.
상대적으로 취업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이공계의 학생들마저도 성적이 꽤 좋은 학생들은 가장 안정적이라는 선호도에 밀려, 의전원, 치전원, 하다못해 약대에 이르기까지 당장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전문직으로 신분상승을 하겠다고 목을 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과계열에서 공부 잘하고 머리가 총명하다는 인재들은 모두 로스쿨에 쏠리고, 이공계열에서 공부 좀 하고, 성적이 좋다는 기민한 학생들은 모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를 하겠다고 하는 판이니, 그 1열에서 밀려내려온 2군들은 겨우 마지못해 문과이면서도 이공계를 복수 전공하거나 졸업을 앞두고 뜬금없는 코딩을 배우거나 이공계열의 기술을 배워 취업시장에서 어떻게 해서든 간택(?) 받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현실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대단한 기초학문의 양성이 이루어질 것이며, 인문학의 부흥을 통한 기본기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란 말인가? 4차 혁명이니 인공지능(A.I)이니 하는 현실적인 유행에 정책이 힘을 실어주고 그쪽에 돈을 몰아주는 현실을 배경으로 아무리 생색내기로 기초학문 양성이니 인문학 부흥이니 지원이니 떠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 외국어를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하고 문학을 공부하며 철학을 공부해서 먹고사는 것이 어렵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원래 그 공부는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공계의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불가피한(?) 이유’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학문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을 합리화하려 든다. 이완용이 그랬던 것처럼 법비가 된 자들은 자기 자식이 법조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편안하게 세상을 누리라며 능력도 안 되는 자식의 스펙을 만들어주고 현대판 음서제라는 로스쿨에 끼워 넣어버린다. 의사들은 무엇이 다른가? 뭐니 뭐니 해도 의사가 가장 편하고 인정받는 직업이라면서 능력 안 되는 자식이 아버지의 모교 의대는 고사하고 이공계 가장 점수가 낮은 대학에 들어가게라고 하여 이후 편입이든 특별입학이든 어떤 식으로든 다시 그 지저분한 대물림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군국주의를 노리다가 결국에는 어이없이 총기에 의해 세상을 떠난 일본의 전 총리집안처럼 대대로 정치가 집안 입네라고 떠들어대며 뭐니 뭐니 해도 모든 부와 명예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권력뿐이라며 정치적 자산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려운 자식에게 선거구를 물려주는 지저분한 짓거리를 마치 1세대 재벌들이 재벌 2세와 3세에게 승계하듯이 해왔던 것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그 기반이 썩어 들어간 상태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로 탑을 쌓아 올리고 또 쌓아 올리면서도 안전장치라고는 할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재벌가의 자식들 중에서 단 한 명의 자식들도 명문대를 나와 법비가 되거나 의사가 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가진 부로 법비와 의사를 부릴 수 있기에 굳이 부릴 수 있는 자의 직업을 자신의 직업으로 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회사에 잘 팔리는 이공계열을 선택할 이유도 자연히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 회사에 당장 필요한 볼트와 너트 역할을 해줄 법비와 의사, 그리고 저 아래에서 직접 일할 이공계열의 엔지니어가 필요할 뿐, 자신들이 그것을 직접 할 필요나 의사는 전혀 없는 것이다.
국제 정치 무대에 나가서 평상시 하던 대로 말실수를 한 것에 대해,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기며 그 곁에서 사과하라는 직언(直言)조차 하지 못하는 참모와 끝까지 자백은 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딸딸이’라며 비속어를 쓴 자가 처벌을 피하겠다고 ‘짤짤이’라고 한 것을 오해한 것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하거나 기레기 출신이라며 제대로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술자리 카더라설을 버젓이 국회에서 녹취를 틀면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후안무치하게 당을 대변하는 자들이 정의를 입에 담는 것은 개돼지가 들어도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장에서 뾰족하고 쩻빗하게 강조하는 군자가 갖춰야 할 수양의 본질은 이 편 내내 강조했던 바와 같이 내가 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자성(自省) 일뿐, 가난해지지 않을까 내 지위를 잃지 않을까 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