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정치는 당신의 삶 속에서 매일 이루어진다.

정치꾼을 욕하면서 별반 다르지 않은 민낯을 가진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仁이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함으로써 백성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으며 장엄함으로써 백성에게 임하더라도 백성들을 興動(분발)시키기를 禮로써 하지 않으면 善하지 못하다.”

이 장(章)에서 공자는 세상을 다스려야 할 위정자가 군자로서 지녀야 할 요소로 知, 仁, 莊, 禮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네 가지의 개념은 동일한 위상으로 병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쇄문법으로 맞물려 확장되어 가면서 뒤로 갈수록 그 중요도를 더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특히 원문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之’가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 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키가 된다.


첫 번째로 갖추어야 할 개념으로 제시된 ‘知’는, 배움으로 얻게 되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사태의 본질과 변화에 통달하는 슬기(智)’를 의미한다. 이 덕목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주자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한다.


지혜가 충분히 이 이치를 알 수 있으나 私慾(사욕)이 여기에 끼어들면 그것(理(이))을 자기 몸에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원문의 ‘知能’은 정확하게는 ‘통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음에 미침’을 뜻한다. 때문에 이 문장의 주어는 ‘人君’ 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이 장의 해설을 시작하며 대상이 위정자라 설명한 것이다. ‘守之’는 ‘얻은 지위를 지켜서 잃지 않음’을 의미한다. <주역(周易)>에도 “성인의 큰 보배는 천자의 지위인데, 무엇으로 지위를 지키는가, 仁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장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知’는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면서도 그것을 방해하는 사욕(私慾)으로 인해 그것을 자신에게 담아두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개념을 갖추어야 하는지의 두 번째 덕목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仁’인데, ‘어질어서 남에게 은혜를 끼치는 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仁을 갖추어 지혜로움으로 얻은 이치를 지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장엄함으로써 백성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개인의 수양에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들에게 호응을 받아야 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莊’은 ‘권력을 지닌 자로서의 위엄(威嚴)’을 의미한다.


여기서 언급된 ‘장(莊)’이라는 개념은 앞서 ‘위정(爲政) 편’의 20장에서 공부했던 ‘臨之以莊則敬(백성에게 엄숙하게 대하면 공경한다.)’의 내용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이제까지 자주 언급되어 오지 않았던 ‘莊’에 대한 개념의 설명에 대해 주자는 그 개념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배우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涖(리)’는 임함이니, 백성에게 임함을 이른다. 이 이치를 알고 사욕이 끼어들게 함이 없으면 아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장엄하지 못함이 있는 것은, 기질과 습관의 편벽됨이 (있어) 혹은 내면에는 후하나 외모에 엄숙하지 못한 자가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두려워할만함을 보지 못해서 함부로 하는 것이다. 아래의 句(구, 節(절))도 이와 같다.


‘涖之’는 ‘백성에게 臨하다’라는 의미로, 여기서 之는 백성(民)을 가리킨다. 또, ‘動之’는 백성을 고무(鼓舞)하여 작흥(作興)하게 함‘을 의미한다. 행여 ‘장엄한 위엄’이라는 표현만으로 백성들에게 권위를 강조하며 권력과 지위만을 강조하는 껍데기 개념이 아님을 주자는 명백하게 구분하라고 설명한다.


공자가 강조한 ‘莊’은 전술한 바와 같이 개인의 수양차원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을 역설하기 위한 설명으로 등장한 개념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그 개념이 갖춰지기 위한 목적은 백성들이 위정자에게 진심으로 따르게 할 수 있는 진정한 형태를 갖춰야만 한다는 소통을 전제로 한 통제의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공적인 개념으로 확장된 덕목은, 백성들이 위정자를 존중하며 따르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위정자가 지향하는 바를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따르게 할 수 있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완성됨을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禮’이다. 여기서 ‘禮’는 질서(秩序)와 조리(條理)의 두 가지 개념을 각각 가리키며 애매한 형이상학적인 설명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이기에, 공자는 이 장의 확장된 개념의 마무리에 그것을 ‘禮’로서 완성시키지 못하면 백성들이 결코 선(善)으로 회귀하지도 따르지도 않을 것이라 단정지은 것이다. 그런 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공자는 이제까지 제시된 네 가지 개념 가운데에서도 禮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역설한 것이다.


주자는, 공자가 의미한 백성들을 스스로 발흥(發興)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禮’라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動之(동지)’는 백성을 興動(흥동)시키는 것이니, 고무하여 作興(작흥)하게 한다는 말과 같다. ‘禮(예)’는 義理(의리)의 節文(절문)을 이른다.


여기에서 중급자 단계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이 장의 문법구조가 확장형 연쇄법이라고 설명했던 앞서의 설명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분명히 앞에서 공자가 연쇄구조를 갖춘 이유가 이 장에서 나열된 네 가지 개념들이 병렬적인 수평 개념이 아닌 확장개념이기에 마지막에 ‘禮’가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각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갖춘 눈높이에 따라 깊이가 다른 정수를 읽도록 안배가 공자의 방식을 고려하게 되면, 과연 이것이 점층적 효과를 노리고, ‘禮’를 정점에 올리기 위한 연쇄법이었을까를 다시 한번 재고하게 된다.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면, 앞서 ‘안연(顏淵) 편’의 7장에서 공부했던 바와 같이 오히려 중요성이 덜 강조된 요소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제거하게 되면 역순으로 올라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본이 되는 ‘仁能守之’의 ‘仁’ 임을 알게 된다.


평소 공자의 가르침을 생각해볼 때 ‘仁’이 ‘禮’보다 선행되고 강조된 개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위의 해설방식에는 위화감이 없다. 그렇다면 확장을 위한 연쇄구조는 뭐고, 다시 역순으로 기본을 강조한 방식은 무엇인가?

이러한 고급 수준의 의문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주석으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해 준다.


내가 생각하건대, 학문이 仁에 이르면 善을 자기 몸에 소유해서 大本(대본)이 확립되니, 백성에게 임하기를 장엄하게 하지 못하고, 興動(흥동)시키기를 禮로써 하지 못함은 바로 氣稟(기품)과 학문의 작은 하자일 뿐이다. 그러나 또한 盡善(진선)의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일일이 말씀하셔서 덕이 더욱 완전하면 책임이 더욱 구비되니, 이것을 작은 일이라고 여겨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 장에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따르게 해야 할 위정자가 군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개인의 수양에서부터 백성들과 소통하고 진심 어린 복종과 존경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바로잡아야 할 부분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이유는 뭔가 대단한 개념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위한 설명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확장을 위해 어떤 개념이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되는 형태가 아닌, 자기 개인의 수행을 기본으로 하여 그것이 타인(백성)들에게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확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으로서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덕목을 완성시키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보(相補) 구조임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닌 것이다.


뭔가 굉장히 복잡하고 대단한 정치논리를 형이상학적인 애매모호한 논리로 툭 던져놓은 것이라고 투덜거리고 싶은가? 아니다. 다시 수천번을 강조한 내용을 재차 증명한다. 공자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애매모호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이라고 자신들이 알아듣지 못한 바를 핑계 대는 거짓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말만 그럴싸한 도덕군자가 아니란 말이다.


이 장에서 공자가 강조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현실적인 것이다. 위정자를 질정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설명하였으나 결국은 공자가 말하는 정치행위의 근본은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대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내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쳐 집 밖에 나가서도 자신의 염치를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정치요, 내가 함께 동문수학한 이가 먼저 군주에게 발탁되어 아무리 높은 지위의 관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판단이 들었다면 친구로서 당당히 그의 잘못을 질정하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 정치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지혜로 이치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사욕(私慾)이 자리 잡고 움트는 순간, 인간은 그것을 온전한 형태로 자신의 안에 소유하고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은 공자의 시대에서 수천 년을 지나 최첨단의 과학을 발전시킨 작금의 대한민국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자신도 판사였고 남편도 무려 서울고등법원의 현직 부장판사로 버티고 있는 전직 여자 국회의원이 연일 어퍼컷의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고 모습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빨간당의 당대표를 누구로 삼을 것인가가 그들이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갈라서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 분석하는 것에 모두가 이견이 없어 보였다.


생전 듣보잡이던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부위원장이라는 감투를 그녀에게 하사한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읽어대던 기레기집단들은 그녀가 하사 받은 그 듣보잡 직책을 설명하기 위함인지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그 자리가 ‘장관직’에 해당한다는 친절한 주석을 잊지 않았다.


어차피 국가의 한 부서를 대표하는 장관이라고 해봐야 빨간당 국회의원직까지 겸직하면서 하는 자도 있는데 그게 뭐 대단한 것인가 싶었으나 그 행간의 의미는 그녀가 받은 전리품이 결코 작고 초라한 것이 아님을 애써 강조하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 특별한 부서를 가지고 뉴스에 연일 등장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자리가, 그녀가 당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지지도 조사에서 1위가 나온다는 말이 슬슬 연기를 풍기면서 그녀가 이른바 선빵을 날렸다. 기레기왈 ‘장관급’에 해당한다는 부위원장의 자격으로 신년기자회견을 자처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지위에서 내놓을 수 있는 파격선언을 한 것이었다.


‘저출산의 원인은 젊은 세대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출산을 전제로 그들이 받은 대출을 탕감해줘야만 한다’는 자유당 때도 감히 대놓고 떠들며 선전할 수 없었던 포퓰리즘(populism)을 내놓은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미 그녀는 2021년 연초에 빨간당의 서울시장 경선에서도 그와 비슷한 선전성 공약을 던져 같은 빨간당의 경쟁후보로부터 ‘여자 허경영이냐! 나경원인가? 나경영인가?’라는 비아냥을 들은 바 있다. 당시 그녀는 ”서울에서 독립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으면 총 1억 1700만 원의 보조금 혜택을 주겠다”는 부동산 공약을 냈었다. 당시 필요예산은 무려 5조 원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초 기자회견에서는 더욱 파격적으로 소요예산이 늘어, 그녀의 입에서 과감하게 정부의 예산 12조에서 16조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온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정부와 전혀 조율되지 않았고, 오히려 정부의 정책과 상반된 내용이라며 거센 반격이 더해졌고, 그녀를 사임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급기야 어제 그녀는 잘리기 전에 스스로 그만두는 형태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때맞춰(?) 그녀의 당대표 출마에 앞서 중공의 홍위군도 아니고 빨간당 청년당원이라고 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그녀의 출마를 촉구하는 듯한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만약 대출로 인한 고금리에 허덕이는 젊은 당신에게 아이를 낳으면 대출을 탕감해준다는 어이없는 선심성 공략이 잠시라도 당신을 혹하게 만들었다면, 이미 당신은 이 장에서 말하는 사욕(私慾)으로 인해 사리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의 나락에 떨어진 셈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떨어지는 콩고물을 나눠먹는 게 어떠냐고 말하는 자들의 틈에서 당신은 무어라 그 잘못을 바로잡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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