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배웠다고 똑같아질 수 없는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子曰: “有敎無類.”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이 있으면 종류가 없다.”
이 장은 교육자로서의 공자의 교육관에 대해서 가장 잘 표현한 대표적인 가르침으로 손꼽히는 장이다. 겨우 단 네 글자 안에 공자의 교육관을 함축적으로 모두 담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다양한 공자의 교육관 중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침에 있어 그 어떠한 신분이나 지위의 구분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일침은 공자가 왜 자신의 마지막 노력으로 교육을 선택하고 저술에 힘을 쏟았는가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문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자의 교육관에 대해 주자는 어떻게 이해하고 해설하였는지 주석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의 性(성)은 다 선하나 그 종류에 선과 악의 다름이 있는 것은 기질과 습관에 물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가르침이 있으면 사람이 모두 선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다시 그 종류의 악함을 논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의 학자 마융(馬融)은 無類의 ‘類’에 대해 종족(種族)의 부류로 보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기반으로 보면, 결국 공자가 말하는 가르침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이 사회라는 조직에 속하게 되면서 나쁜 기질과 습관에 물들어 악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방법론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그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여 부끄러움을 알게 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과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본래 선한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고 나쁜 악행의 기질과 습관을 덧쓰게 된 이들을 계도하기 위한 가르침의 훨씬 더 근본적인 방식은, 곁에서 단순히 그것을 지적하는 것보다 그들이 스스로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그런 일 자체를 벌이지 않도록 순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한편, 다산(茶山; 정약용)은 이 장에 대한 공자의 의도에 대해, 인간을 선악으로 양분하는 것은 인성의 특성상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중화(中華)니 이적(夷狄;오랑캐)니 하는 種族의 부류나 百官과 萬民이라는 귀천(貴賤)의 구별로 보았다.
실제로 앞서 공부했던 ‘술이(述而) 편’에서 공자는 ‘自行束脩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다.(포 한 속 이상을 가지고 와서 執贄(집지)의 예를 갖춘 자에게는 내가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한 바 있다. 실제로 배우겠다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춰 자신을 찾아온 이들의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는 물론이고, 기질(氣質)의 고하(高下)도 따지지 않고 호혜평등하게 가르침을 베풀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장이 공자의 평등교육에 대한 평소 가르침을 대표한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장의 내용은 단순히 교육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전하는 것에 그치는 단순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고 깊다.
표면상으로는 가르치는 이가 배움이 필요한 이들을 일깨우는 데 있어 그들을 어떠한 기준으로도 가리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에는 교육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병폐를 지적하고, 그것이 근본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자들이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게 해 준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교육자가 그래야 할 것이고, 위정자가 제도적으로 그러한 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배움을 찾으려는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갈증을 가지고 선생을 찾아야만 하고 그렇게 배울 마음의 자세를 갖춰야만 한다. 그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자리에서 그러한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회를 부조리에서 올바름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최선의 방식임을 공자는 이 장의 짧은 네 글자를 통해 말하고 있다.
교육은 흔히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말한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겠지만, 교육은 특히나 미래를 보고 계획을 설계해야 할 분야임에 공자의 시대부터 작금에 이르기까지 그 중요성은 어느 한 사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교육정책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되짚어보면, 공자의 시대에서부터 작금에 이르기까지 교육자는 물론이거니와 위정자의 정책 마련에 대한 부분이나 실제 배우고자 하는 서민들의 마음자세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라도 안정적으로 조건을 충족한 사실이 없음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진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제상 행정부의 조직서열을 보게 되면, 겉으로는 이 장에서 공자가 강조한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교육부의 위상이 행정부서 내에서도 결코 가벼이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재 교육부의 부처 서열 1위인 기획재정부 다음의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나, 교육부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 무게를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음이 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사실과 그것을 현재에까지 인정하고 반영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장에서 설명하는 본래의 취지와 같이 가르침이 사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모르던 것을 알려주는 행위가 얼마나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교육의 본질적 개념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인류를 진화시키고 발전시켜 온 역사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일본 우익들이 자신들의 식민지 침략행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유도하고 전범들에 대해 미화하거나 심지어 찬양하는 식으로 교과서를 집필하고 교육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는 학자들이나 사람들이 있지만, 그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린 세대들은 교과서만으로 그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이제 학교에서 배운 공식적인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실도 알지 못하고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이들에게 가장 처음 정보를 줄 때 그것이 위장된 정보인지 거짓 정보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게 하고 주입하게 되면 그러한 교육은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행동을 바꾼다. 이미 확고하게 알고 있는 사람마저도 흔들고 바꾸고 배신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다.
며칠 전 한국의 교과서에도 5,18 관련된 내용이 자연스럽게 삭제되었다는 것이 뒤늦게 적발(?)된 사실이 밝혀져 또 한 번 시끄러웠다. 은근슬쩍 기존 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을 어린 후속세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강한 누군가의 영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부장관에게 사회부총리의 또 하나 중직까지 주었다고 해서, 혹은 정부부처의 서열 2위의 부처라고 표방하는, 그러한 표면적인 차이나 서열만으로 위정자로서 정부가 그런 의미에서 무게를 실어주었다고, 그것이 실질적인 면에서도 충분히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여러 나라의 위정자라고 하는 자들과 그들의 권력을 둘러싼 수많은 학자를 가장한 관리들을 만났다. 그들은 최소한 이른바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배운 자들이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지위와 부를 차지하고 누리던 자들이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정규 교육기관이 따로 있어 의무교육을 시켜준 것도 아니었기에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는 것은 상당한 호사였고 선택받은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만나고 설득하고자 했던 그 수많은 이들 중에서 백성들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력했던 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결정되어 있던 중세 봉건제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특혜를 다른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에 인색했고, 무엇보다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것에 있어 교육이 갖는 힘을 무시하거나 부러 외면하려는 선택을 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들이 학문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한 교육을 통해 무지한 백성을 일깨우고 인성이나 기질이 악한 것에 물들어 본래의 선한 심성을 오염시키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그저 이론일 뿐 현실적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줄 수 없을 것이라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눈으로 보더라도 어려운 이 장의 가르침은 공자의 시대에는 더더욱 시대를 앞서가는 선견지명이었고, 무엇보다 그것을 몸소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인 공자의 솔선수범이야말로 사회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의 표본이었던 셈이다.
늘 강조하는 가르침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이 고리타분하게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며 외면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못하는 어설픈 인문학 마니아들에게는 공자의 가르침이 주는 필수 핵심 요소가 전달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알고만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교육부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임하는 것이 제도로 마련되어 있으면 무엇하나? 학자랍시고 음주운전을 하고서 벌금이 과다하다며 당당하게 법비를 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모든 것을 백지로 만들어버리는 탁월한 테크닉을 가진 여성을 그 자리에 앉히겠다고 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졌던 것을.
대통령의 몽니로 밀어붙여 어거지로 기어코 그녀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올려놓는 인사를 강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는 만 5세 입학을 추진하겠다고 하다가 그 논란을 계기로 결국 사퇴하는 수순을 밟고야 말았다. 애초 교육이 아닌 행정전문가(어떤 부분의 전문가인지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하겠다만)인 데다 후보 지명 직후부터 논문표절 및 만취운전 사실로 자격 논란이 일었던 것은 국민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교육부장관이 사회부총리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에 교육을 담당하는 수석비서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실에 교육문화수석이 존재했고 산하 교육비서관, 문화체육비서관, 관광진흥비서관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들어 교육수석이 사라지고 사회수석 산하 교육문화비서관이 교육과 문화를 함께 담당했다.
이 정부도 그대로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대통령실 과학교육수석 신설을 요청했었지만 대통령은 조직 간소화를 명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긴 하다. 어차피 그것이 있었던 시절에도 없던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국민들을 느낄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교육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얘기는 그러한 사실적 맥락에서 지적된 것이기도 하다.
교육감마저도 진보니 보수니 색을 나누어 가리니 정책의 변화에 정치적인 색이 들어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정치 놀음에 물든 교육정책이 백년지대계의 내실을 기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공자가 말한 가르침을 주어야 할 대상에 그 어떤 차별을 주는 요소가 개입해서 안된다는 사실은 현재 대한민국 강남 한복판에서 봉건신분제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체계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했다고 함에도 그 차별은 전혀 달라진 바 없이 오히려 강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부모의 직업이나 부(富)를 기준으로 출발점부터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사는 지역에 따라 극심한 교육의 편차는 세월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하고 더욱 공고해져 갈 뿐이다.
그나마 개천용이 나올 수 있었던 사법고시는 폐지되어 현대판 음서제라는 오명으로 포장된 로스쿨을 만들어냈다. 그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이유는, 같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오기만 해도 그나마 신분상승의 한발 역전이 가능한 기회가 주어지던 사법고시 대신에 수천만 원의 학비를 낼 수 있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게 구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입학을 선발하는 방식에 그놈의 ‘스펙’을 본다는 이유로 결국 부모가 돈이 많고 지위가 있어도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해서 족집게 과외를 붙여도 사법고시조차 패스하지 못하는 찌질한 귀족자식(?)들을 뒷구멍으로 넣어주는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돈 많고 지위가 높은 부모도 없고 그 어느 것도 없다고 이번 생에서는 글렀다고 말하는 흙수저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공자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의무교육으로 문맹률을 제로까지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결국 위로 올라갈수록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려 중세봉건제때보다 훨씬 더 심한, 결코 넘보지 못할 신분차이의 벽을 만들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