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Aug 16. 2021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침대에 앓아누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에 맞닿뜨리더라도.

1869년에 프랑스 북쪽의 작은 마을인 카토 캉브레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생활용품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는 법관이 되겠다고 파리로 가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률사무소에 취직한다. 하지만, 병에 걸려 요양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사다주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진로를 바꾼다.


당시 그의 나이 이미 21세.

그의 아버지는 생계가 불확실한 화가가 되는 것에 반대했지만. 끝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림을 배웠다. 1892년 파리의 장식 미술학교에 적을 두고, 미술학교 수험준비를 하면서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부그로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정형화된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어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模寫)를 하며 실력을 키우던 즈음, G. 모로의 눈에 띄어 그의 미술학교 교실로 입학하게 된다. 여기서 루오 마르케 등과 만나게 되면서, 모로의 자유로운 지도 아래 색채화가로서의 천부적 재질이 차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루마니아 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La Blouse roumaine), 1940년작.

야수파의 창시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의 이야기이다.

그가 주도한 야수파(포비슴) 운동은, 미술사에서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으로 설명된다. 원색의 대담한 병렬(竝列)을 강조하여 강렬한 개성적 표현을 기도하였다. 보색 관계를 교묘히 살린 청결한 색면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확고한 마티스 예술을 구축함으로써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지침이 되었다.


마티스는 27살이 되어서야 살롱전에 그림을 출품했고, 그것을 정부에서 구매하면서 그는 화가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그의 미술 세계관은 기존의 것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그의 아내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 그의 미술세계를 잘 설명해준다. 

모자를 쓴 여인(Woman with a Hat), 1905년작.

이 작품은 절제된 붓 터치를 보여준 초기 작업과는 달리, 주관적인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 마티스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부자연스러운 색상과 거친 붓질, 마치 완성 단계가 아닌 것 같은 이 작품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작품의 모델은 마티스의 아내다. 실제 마티스의 아내는 이 작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는데 한껏 꾸민 화사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푸른색 계열로 거칠게 그려졌다며 남편인 마티스를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그의 독특한 미술세계가 예쁘고 화사한 사람을 못생기게 그리는 것이었냐고?

물론 아니다.

그는 통상 그림에서 기본적으로 여겨지는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모조리 무시하고 색으로 그 대비를 묘사하였다. 이 그림에서 어두운 곳은 초록색이 밝은 곳은 붉은색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상상하거나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미술 세계관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주요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었다.

그렇게 시도된 강렬한 붓터치와 색감의 표현방식은 당시 관객들은 물론, 예술가들에게까지 충격으로 여겨져 마치 '야수'와 같다는 표현을 들으며 '야수파'로 불리게 된 것이다.

1933년 건강했을 때의 마티스

말년에 마티스는 지독한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72세가 되던 해에는 암까지 걸려 대수술을 감행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손에 붓을 쥐기조차 힘들어지자 그는 손에다 붓을 묶어가면서 그림을 그렸다. 긴 막대기 끝에 크레용을 묶어 벽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까지 생각해내 그림 그리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것도 쉽지 않은 몸상태가 되자,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붙이는 콜라주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색종이 작업을 하면서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색종이 콜라주 작품 작업을 조각을 하는 미술작업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에 과슈를 바르고 색종이를 잘라 붙이는 행위가 마치 조각의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카루스(icarus), 1946년작.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당시 병원의 침대에서 작업한 색종이 콜라주 작업이다.

미로에 갇힌 이카루스는 동굴을 빠져나와 깃털로 만들어진 날개를 밀랍으로 고정하여 탈출한다. 그러나 비행의 즐거움으로 과욕을 부렸고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에 간 이카루스는 결국 밀랍이 녹아 추락한다. 마티스는 이 추락하는 장면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당시 2차 세계대전중 전사한 공군 비행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이 작품의 파란색 배경은 하늘을,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색은 이카루스를, 가슴의 빨간 점은 동경심을 가진 인간의 심장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란색 별 무늬는 날개의 깃털이다.

프랑스 남부 여행 방스의 로제르 예배당 (Chapelle du Rosaire)

그렇게 그는 병마에 시달리며 제대로 붓을 들고 작업을 할 수 없는 몸상태에서도 위 사진의 로제르 예배당을 꾸며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이 직접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부터, 이제까지 자신이 시도했던 다양한 기법들을 총망라하여 작업을 완성시킨다.
그렇게 그는 10년이 넘도록 새로운 작업을 지속 해내간다.

드디어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프랑스에 마티스 박물관이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축소 모형을 방안에 두고 완공을 기다렸지만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54년 심장마비로 84세에 눈을 감았다. 마티스 박물관은 결국 2년 뒤인 1956년에 개장하였다.


27살에 살롱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던 마티스는 해마다 전람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지만 그의 참신하고 독특한 화풍을 이해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돈을 내고 출품하는 전람회에서도 거절당할 정도였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후배 작가 피카소도 마티스의 대표작 <춤>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춤(Dance), 1910년작.

이에 낙심한 그는 절친했던 친구에게 "그림은 정말 어려워, 힘들기만 할 뿐이야."라고 푸념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의 그림 역시 마티스의 걸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역할을 했고, 그는 마침내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마티스가 얼마나 대단한 미술을 일궈냈는지에 대해서는 앤디 워홀의 일화를 통해 한마디로 정리된다.

앤디 워홀과 인터뷰하던 기자가 마지막 회심의 질문을 한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이에 앤디 워홀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나는 마티스가 되고 싶다."



당신이 어떤 분야로 늦깎이 출발을 했을 수 있다.

우린 흔히 말한다,

예술분야란,

천부적인 기질을 가진 자가,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 수련해야만 대가의 길을 이뤄낼 수 있다고.

이제까지의 체험과 역사를 토대로 한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원칙일 수는 없다.

그것을 마티스는 증명해 보였다.

스물하나가 될 때까지 미술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는 법학도가 미술을 업으로 하는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마티스의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부모들이 기함할 노릇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티스가 세상에 인정을 받는 이유는, 이미 미술의 천부적인 재질을 인정받아 계속해서 비싼 값의 그림을 팔아가며 유명세를 떨친 천재화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늦게 자신의 길을 찾아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결정한 것.

그리고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대중에 부응하는 것으로 바꾸지 않은 것, 그래서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한 것.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의 몸상태가 되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고 구사하면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점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고사하고 회사에서 학교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지금 방황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을지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어떤 편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당신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자신만의 역사를 일궈낸 마티스의 삶을 보고 당신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손을 대면 데일 것 같은 뜨겁고 활활 타오르는 그 무엇이 치솟아 올라오지 않는가?


이미 나이를 먹어버려서

다시 시작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들지도 몰라서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어서

이제까지 온 길을 접으면

실망하실 부모님이 있어서...

핑계는 당신이 굳이 대지 않아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늘어놓을 만큼 쌓이고 쌓여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의지이다.

왜냐면

이 길지 않은 인생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고

그 인생에 대한 책임과 후회역시 오롯이 당신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짧고 소중한 당신만의 인생을 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이전 01화 비디오 렌털 연체료로 40달러를 물고 열 받은 끝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