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오만하게 착각한다, 나는 다를 것이라고.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 政逮於大夫四世矣. 故夫三桓之子孫微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祿이 公室에서 떠난 지가 5世가 되었고 政事가 大夫에게 미친 지가 4世가 되었다. 그러므로 저 三桓의 子孫이 미약한 것이다.”
이 장은 봉건군주제도가 어떻게 참람함의 도미노 붕괴를 겪게 되었는지를 알고서 읽을 때 보다 확실하게 그 의미가 이해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장은 자연스레 바로 앞에 공부했던 장의 의론(議論)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을 내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스레 앞장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고 들어가는 형태를 보여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춘추시대 370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장에서 공자가 지적하는 바가 그저 의견이 아닌 사실이고 진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천자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면 제후의 권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고, 제후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면서 다시 경, 대부들의 권위가 고개를 쳐들게 되며, 경, 대부들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자 그 가신이었던 자들이 일어나 군주를 시해하고 국정을 농락하는 도미노 붕괴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노나라에 한정하여 주자는 구체적인 설명을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노나라는 文公(문공)이 죽자 公子遂(공자수)가 子赤(자적)을 살해하고 宣公(선공)을 세운 뒤로부터 군주가 정권을 잃어 成公(성공) · 襄公(양공) · 昭公(소공) · 定公(정공)을 지나 모두 다섯 公(공)이다. ‘逮(체)’는 미침이다. 季武子(계무자)가 처음 국정을 專擅(전천, 전단)한 뒤로부터 悼子(도자) · 平子(평자) · 桓子(환자)를 거쳐 모두 4대 만에 〈환자가〉 가신인 陽虎(양호)에게 붙잡힘(견제)을 당하였다. 三桓(삼환)은 三家(삼가)이니, 모두 桓公(환공)의 후손이다. 이것은 앞장의 말로 미루어 그 당연함을 아신 것이다.
원문에서 말하고 있는 ‘5世’란 노나라 선공에서부터 정공(定公)에 이르기까지 5대(代)를 의미한다. 실제로 공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정공과 애공(哀公)의 시기였는데, 정공이 즉위했던 해가 B.C.509년(공자의 나이 43세)였고, 정공 5년에 25년간이나 전권을 휘두르던 계평자가 세력 다툼와중에 패해 죽고, 계환자가 대를 잇게 된다. 이듬해 계손씨의 가신인 양호(陽虎)가 계환자를 가두고 정권을 잡는데, 그 정권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호의 정권은 삼환의 세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계손씨는 대부이니 대부의 손에 권력이 넘어간 지 4대가 되었으니 삼환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100여 년의 붕괴조짐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면서 결국 춘추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들어서면 전국(全國) 칠웅(七雄)이라 불리는 제(齊), 초(楚), 연(燕), 조(趙), 한(韓), 위(魏), 진(秦)을 위시로 한 난세(亂世)로 이어진다. 물론 노나라를 비롯한 약소국들 10여 개국도 그 사이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
공자가 그토록 걱정에 마지않던 노나라의 멸망은 B.C. 256년에 초(楚) 나라에 의해서 실행(?)된다. 걱정이라고 쓰지만 예견된 일이었던 사실은, 이 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것과 같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어느 한순간 사고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불현듯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럴 기미를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계속해서 보여주고 경고하고 있음을 어리석은 자들만이 보지 못하고 봐도 무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주석을 남긴다.
이 장은 오로지 노나라 일을 논하였으니, 의심컨대 앞장과 더불어 모두 定公(정공) 때의 말씀인 듯하다.
노나라의 일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천하를 일컫는 것이라는 주석은 그것이 그 시대에 한정된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의 역사에 적용되었고 반복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알지 못하고 무시했음을 경고하는 의미에 다름 아니라고, 나는 읽는다.
그래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의 그 깊은 행간까지 읽어낸 소동파(蘇軾(소식))는 이 장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오면 마땅히 제후가 강성해야 할 터인데 노나라가 정권을 잃었고, 정사가 大夫(대부)에게 미치면 마땅히 대부가 강성해야 할 터인데 삼환이 미약해짐은 어째서인가? 강함은 안정에서 생기고 안정은 상하의 분수가 정해짐에서 생기는데, 지금 제후와 대부가 모두 그 윗사람을 업신여기니 아랫사람들을 명령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모두 오래지 않아서 〈정권을〉 잃은 것이다.”
천자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들의 권력을 전횡하던 삼환 씨가 이렇게 허탈하게 자신들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아래 있던 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똑같은 입장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깨달으라 말한다.
이 장에서 공자의 목소리는, 어찌 보면 그들이 권력을 잃고 자신들이 함부로 대하던 천자의 입장을 느껴보라는 약 올림의 성격이 아니라 그렇게 사회가 붕괴되고 나라를 좀먹은 여기저기의 조짐들이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갈뿐임을 서글퍼하는 서운함이 잔뜩 묻어있다.
공자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익히라고 강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공부의 과정을 통해 과거에 그들이 저질렀던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길다면 긴 그간의 역사를 통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이 권력을 향한 헛된 욕심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망치며 나라를 멸망하게 했던 예는 무수하게 반복되어 왔다.
그들이 과연 역사공부를 게을리하여 그런 실수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공자는 인간의 사리사욕에 정신 못 차리는 그 헛된 욕망이 이성적인 판단을 모두 망쳐버린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도 강조하고, 스스로를 수양해야 할 배우는 자로서의 목표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강조하였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들이 똑같은 실수를 거듭하면서까지 자멸하는 끝을 향해 달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오만함이자 사리사욕으로 인해 멸망할 수 있다는 이성의 알람을 애써 외면하려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무지의 발버둥이었다.
내가 2년이 다되도록 매일 아침 <논어(論語)>공부를 하며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이 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자가 가리키는 말끝은 노나라에 한정되어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은 수천 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천하를 가리켰고, 수천 년이 지난 이 대한민국을 가리키고 있으며 단지 위정자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을 포함한 모든 만백성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침을 내리꽂고 있다.
대통령 하나가 제대로 된 사람일리도 없지만, 그래 보이는 자를 뽑아도 나라의 부정(不正)이 일소(一掃)되고 나라가 한순간에 바로잡히지 않는 것처럼,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다고 하여 나라가 일순간 망하거나 그가 혼자서 다 말아먹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멀쩡한 상식이 통하는 자를 뽑아야 하고, 내 지역을 대표하는 자를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 자로 뽑아야 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가 유일하게 보장하는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최소한 당신의 사회와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져 망해버릴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당신의 투표지를 쥔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단 말이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 밖에 나가서 이런저런 말실수를 해대고, 그런 실수를 하고서도 전혀 반성하거나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 아래에서 일하는 자들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징계하고 책임을 물을 때 똑같이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잘못 들은 거 아니냐고 되묻고 따지고 시장바닥의 개싸움을 벌이게 된다.
실제로 국민들에게 '개돼지'라는 말을 기자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했던 자는 기어코 행정소송까지 거쳐가며 굴욕적인 강등을 당할지언정 연금도 못 받고 짤리는 일은 당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싸워 그 자리를 보존했고, 청와대 수석자리에 장관자리까지 꿰차며 오를 데까지 권세를 누리며 블랙리스트로 다른 이들의 목을 움켜쥐고 흔들던 여인은 구속되어 자신의 화장 없는 초췌한 민낯까지 드러내며 변호사 남편의 눈물을 법정에 뿌리며 기어코 실형을 피한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법꾸라지소리를 듣던 상왕이던 자에서부터 민정수석으로 전 대통령에게 소리를 질러대던 소년급제의 주인공 역시 구속이 되고 포토라인에서 굴욕씬을 찍는 듯 생쇼를 하다가는 스리슬쩍 다들 진짜 감방행은 피해나갔다. 대법원장이라는 작자가 버젓이 판사들에 대한 등급리스트를 만들고 행사했다고 ‘사법농단’이라 비난받으며 법원에 섰지만, 본래 그 자리에 섰던 자들이라 그런 것인지 무려 4년이 가까워지도록 1심이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공판 횟수만도 무려 211회라는 진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미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조차 희미해지게 만들고 나서 1심에서 유죄, 법정구속 등 자극적인 여론재판의 결과로 끝내고 2심에 적당히 흘려버리는 방식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마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되어 새삼스러울 비밀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장악하고 놀던 본래의 나와바리인 법원이기에 그들은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1심조차 아직 결정을 못 내리며 그들은 피고의 신분으로 유유자적 후배 판사들에게 인사까지 꼬박꼬박 받아가며 재판을 받고 계시다.
버젓이 검사장의 신분이던 자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으며 건설업자의 비밀별장에 가서 여자를 벗기고 농락하며 노래를 불러젖히는 장면이 버젓이 증거로 첨부되었음에도 검찰은 사진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뭉갰고, 그렇게 세월을 뭉갠 끝에 공소시효를 넘겼다고 넘기고 정작 돈을 준 건설업자는 여러 가지 괘씸죄로 감옥에 처넣고도 같이 술 먹고 할 짓 못할 짓 함께 했던 그는 카케무샤(대역)까지 써가며 출국하려다가 잡혀 개망신을 당했는데, 그것이 적법한 절차로 진행된 출금금지가 아니라며 오히려 출금금지와 관련된 검사들에게 보복성 기소까지 연이어졌다.
그쯤 되면 검찰이라는 조직이 여의도의 국회보다 얼마나 더 정치적이고 얼마나 더 편당을 지어 끝까지 기소권과 불기소권을, 공복(公僕)으로서의 책무가 아닌 자기 개인들의 무기로 사용하는지 충분히 자백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 조직에서 편당의 우두머리로 꼽히는 자가 대통령이 되고 그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자가 법무부장관이 되고, 그들 조직의 동생들이 과거의 잘못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요직에 박히며 다이아몬드 밥그릇을 움켜쥐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검찰공화국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여기서의 조직이 검찰인지 조폭인지 구분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내가 대단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칭찬해 주마. 나는 도무지 그 조직이 어느 쪽인지 알지 못하겠다.
그런 자들의 입에서 ‘보복을 하는 것은 깡패이지, 검사가 아니다.’라던가 ‘국민들에게 사법부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라’는 등의 멍멍 소리는 도저히 사람의 말소리로 들려오지 않는다.
공자는 이 장을 통해 엄중히 경고하고 예언한다. 네가 했던 꼴대로 네가 당할 것이며 네가 부당하게 움켜쥐려 했던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무너지고 말 것이니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네 자식들 대에까지 이어주고 대대손손 누리고 싶다는 사리사욕이 얼마나 큰 잘못이며 얼마나 큰 구멍을 만들어내서 사회를 지탱하는 방파제를 무너뜨리려고 하는지 깨달으라고 말이다.
지금의 법비들이 판치는 대한민국에는 요원한 일이지만 유럽의 어느 조그만 나라에서는 이미 시범시행이 된 A.I. 판사제도가 어느 순간엔가 우리 사회에 도입되게 되는 그날에는 가장 먼저 전관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역시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에서는 전인류에서 가장 마지막 날에 A.I. 판사제도를 두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죽어가고 아이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절대 정원을 늘려서는 안 된다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협회와 현역 의대생들의 딱한 모습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다. 트럭을 세우고 화물연대 집회를 연 이들이나 장애인 권위를 챙기겠다며 만원 지하철 대란을 촉구한 전장연이나 오십보백보로 사회를, 나라를,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그들이 아주 잠시라고 양심에 손을 얹고 해 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