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보아도 사람됨을 알 수 있다.

by 발검무적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損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좋아함이 세 가지이고 손해 되는 좋아함이 세 가지이니, 禮樂의 절도를 분별하기를 좋아하며 사람의 善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함을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잔치를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하면 손해가 된다.”
익자삼요손자삼요.jpg

이 장은 바로 앞장에서 공부한 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서 유익한 좋아함과 손해가 되는 좋아함을 세 가지씩 나열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원문의 ‘樂’은 통상 읽듯이 ‘즐거울 락’이 아닌 ‘좋아할 요’라고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통상 사용하던 단어의 의미를 약간 변용하여 ‘즐길 락’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오규 소라이나 우리나라의 다산(茶山; 정약용)이 다른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禮樂의 절도를 분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초심자들을 위해 그 의미를 풀어주며 앞의 장과 마찬가지로 왜 그 행동들이 유익하며 또 손해가 되는지를 주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해 준다.


‘節(절)’은 〈예의〉 제도와 〈악의〉 성용(聲容)의 절도를 분변함을 이른다. 교만하고 즐거워하면 잘난 체하고 방자해서 절도를 알지 못하고, 편안히 놀면 태만해져서 선을 듣기를 싫어하고, 잔치를 즐거워하면 음탕하여 소인을 가까이 하니, 세 가지의 손해 됨과 유익함이 또한 서로 반대가 된다.


유익한 좋아함에 가장 먼저 예악에서 절도를 얻은 것을 강조한 것은 그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 가르침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지식 교육보다도 예악의 절도를 먼저 익혀야만 한다는 공자의 인성교육에 대한 강조가 고스란히 묻어난 배치라 할 것이다.


타인의 착함을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앞서 ‘학이(學而) 편’에서 공부했던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라는 가르침과, ‘옹야(雍也) 편’에서 자공(子貢)이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려고 하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면 남을 먼저 도달시켜 준다”라고 말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한다는 것은, ‘위령공(衛靈公) 편’에서, 子貢이 仁의 실천 방법을 묻자 공자가,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 가운데 현명한 자를 섬기고 선비 가운데 어진 자를 벗 삼아야 한다.”라고 답해주었던 가르침과 그 의미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한편, 손해가 되는 즐거움의 세 가지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외형적인 부와 명예를 가지지 못한 자는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즉, 그릇된 사리사욕으로 자신의 부와 지위를 움켜쥐고 있는 자들이 범하는 실수와 잘못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download.jpg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살펴보면, 그것이 어쭙잖은 자신의 부와 명예로 인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고 오만해지거나 안일해지고 그러한 이들과 어울리며 주색에 주색에 빠져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총망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장을 가만히 다시 읽어보면 유익함을 좋아한다는 주체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상세히 살펴보게 되면 유익함을 좋아하는 자가 결국 군자이고 손해가 되는 좋아함을 가진 자들은 소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이 장의 구조는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바가 있는데, 그 좋아하는 바를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수양을 쌓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인간 분류 설명서의 기준 중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좋아하는 색깔이 있으며, 좋아하는 과일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옷이 있다. 좋아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호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 좋아함이고 어떤 것이 옳지 못한 좋아함이라고 구분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download.jpg

그 개인의 선호를 가지고 공자는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평상시 공부와 인격수양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이 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은 계속하고 싶은 것이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조금 힘들거나 어려운, 혹은 하기 싫은 일도 감수한다는 점에서 공자의 설명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앞서 공부한 바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이성을 앞서게 되면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맛있는 것, 비싼 것, 다른 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고 자신만 특별하다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등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당당히 말하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정확한 인생 성적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제시한 그 의미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했던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은 경계의 말로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군자가 좋아함에 있어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고 수양한 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위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지고 난 후, 그가 함께 일하겠다고 선택한 사람, 혹은 믿고서 중임을 맡긴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와 전횡으로 인해 자신이 쌓은 모든 신망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고 마는 허망한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많이 목도해 왔다.


page126-1024px-Sibu_Congkan0038-何晏-論語-2-2.djvu.jpg

그것이 바로 그가 좋아한다고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고 그렇게 가까워지면서 서로 간에 영향력을 알게 모르게 주고받게 된 것의 그들을 같은 무리로 만들게 된다.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친구를 보라는 말은 바로 이 장의 가르침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출발점과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다시 공자가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강조한 사상적 바탕으로도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진다. 자신을 바로 세우는 공부의 기본을 마친 후 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이고 가족이다. 매일같이 보고 같이 먹고 같이 지내는 자기 배우자, 자기 자식을 올바른 영향력으로 선도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 올곧게 수양하는 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이들이 많이 있다고들 착각한다. 자기 공부를 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자기 가족 먹고 살리겠다고 밖에 나가 자신의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은 뼈 빠지게 노력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자기 자식이 사고를 치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일진노릇을 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며 눈물을 짓는 불쌍한 가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의 눈물은 동정받을 가치조차 없다. 수신(修身) 이후 바로 제가(齊家)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그 단위가 개인적인 것으로 작은 것일수록 다른 외적 요인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노력과 수양으로 올바른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천하를 제패하고 정치를 합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것이 가장 커 보이고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 천하를 움직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 거대해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가족을 올바름으로 나아가게 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search.pstatic.jpg

자기 가족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 올바름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고 본능을 이성과 수양으로 절제하고 제어하여 올바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실천하지 않고서 뜬금없이 밖으로 나서 천하를 제패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똑바로 머리와 가슴에 새기라는 것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속뜻이다.


가진 부가 많아질수록 자신이 처한 지위가 높아질수록 군자로서의 처신이 어려워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이 훨씬 더 커지고, 자신이 관리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자신이 모두 챙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조직관리이론에서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부하를 키우라고 한다. 그것은 현대 경영학 이론이 아니다. 공자가 말년에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장 힘을 기울였던 제자 양성의 목적을 경영학에 적용한 것뿐이다. 그것이 앞장에서 공부했던 교유(交遊)로 지칭되는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가족을 올바름으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혼자서 일일이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통해, 그리고 장자를 통해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추게 되는 것이 한 개인에서 시작된 변화가 가족을 통해 확산되고 지인에게 확산되며 마을로 퍼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올바른 길로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관리해야 할 조직이 비대해지고 업무가 복잡다단해져 가면서 한 사람이 그 모든 것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이를 배치하여 그들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정치를 비롯한 비즈니스 등의 조직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리더의 부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 조직의 색깔을 부여하게 된다.

search.pstatic.jpg

‘내가 같이 일하고, 늘 같이 밥 먹으러 다니고 술도 마시고 같이 나쁜 짓(?)도 했다며 공범의식까지 공유했으니까 얘는 믿을만한 애야.’라고 말하는 무식한 자가 만약 경찰이나 검사라면, 의사이거나 교수라면 당신은 그들만의 리그를 인정하고 존경심을 표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부와 지위를 거머쥔 자들은 오직 검사만이 가장 총명하고 가장 일 잘하고 가장 능력 있는 직업이라고 표방하듯 이 나라를 검찰공화국으로 만들어갔다. 다시 원문에서 말하는 위험한(?) 좋아함의 세 가지를 살펴보라. 그런 자들이 무리 지어 같은 편이라는 것이라는 무리를 만들어 무엇을 하던가? 다른 이들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섰다는 우월의식을 가지며 교만함으로 즐거워하며 그 상황을 누리고 즐길 생각만 할 뿐,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개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것을 표현할 때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이다. 위에 있는 자들이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니 현장에서 실무를 해야 할 이들이 윗사람들의 나쁜 것을 가장 먼저 배워 즐기고 놀 생각만을 할 뿐, 복잡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잔치를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 ‘잔치’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결코 말 그대로 모두가 즐거워하는 잔치가 아님을 시사한다.


물가가 올라 국민들이 힘겹다고 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빚더미를 짊어지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국가의 보조를 갈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 일상으로 회복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비들이, 고위공직자들이, 국회의원들의 생활이 빡빡해졌다는 뉴스 보도를 접한 적이 있는가? 코로나 사태라 비대면행사를 진행하다면서도, 눈먼 나랏돈으로 벌인 사업의 성과를 과시하는 행사를 해야 한다며, 사람이 모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5성급 호텔에 고급 호텔 도시락을 제공하며 아름아름 그들과 관련된 교수들을 통해 그 대학 학과 학생들, 혹은 그 지인들을 불러 출석비까지 지급하며 사람을 모아, 성황리에 행사를 끝냈다는 인증 사진을 찍기에 급급한 공무원들을 보았더랬다.

search.pstatic.jpg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 수많은 어이없는 눈먼 돈 잔치를 보면서, 도대체 지원할 돈이 없어 난방을 하지 못하고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후안무치하게 입을 놀리는 고위공직자라는 것들과 그것을 정치적 논쟁화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이 언밸런스한 상황을 정말로 몰라서 저 발연기를 하는 것일까? 의문이 갔다.


아니, 눈먼 나랏돈으로 준비된 행사라고 키득거리며 호텔 간식을 축내고 스마트폰을 보며 출석수당을 받겠다고 자리를 버틴 일없이 행사장을 찾은 대학생 딸과 푸짐하게 받은 경품을 만지작거리는 나이 든 그녀의 아버지를 보며, 나는 문득 이 사회의 끝이 두려워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