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올바름 사이에 고민이라도 하는 이들에게.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 伯夷·叔齊餓於首陽之下, 民到于今稱之. 其斯之謂與!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齊 景公은 말 千駟를 소유하였으나 죽는 날에 사람들이 德을 칭송함이 없었고, 伯夷와 叔齊는 首陽山 아래에서 굶주렸으나 사람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이 장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왈(子曰;孔子께서 말씀하셨다.)’이라는 글자가 빠져 있어 후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분분한 부분에 해당한다. 바로 이전장의 후반이 떨어진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긴 하지만, 지금 내가 분리해서 논하는 것과 같이 주자의 설을 따라 별도로 독립된 장으로 간주한다.
사실 ‘자왈(子曰)’이 없는 문제 말고도 떨어진 내용이 다른 곳에 붙어 있음을 고증한 학자들의 지적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앞서 우리가 공부했던 ‘안연(顏淵) 편’의 10장과 이 장의 내용이 연결된다는 학설인데, ‘안연(顏淵) 편’의 10장의 마지막 구절이 이 장의 맨 앞에 놓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其斯之謂與(이것을 말함일 것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가리키는 내용이 바로 ‘안연(顏淵) 편’의 10장의 마지막 구절인, “誠不以富, 亦祇以異.(진실로 부유하지도 못하고 또한 다만 이상함만 취할 뿐이다.)”라는 설명이다. 그렇게 두 장의 떨어져 제짝을 찾지 못했던 표현이 붙게 되어서야 비로소 제경공과 백이, 숙제를 비교하는 의미가 명쾌해진다는 것이다.
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설명으로 부자를 지칭한 것과 수양이 다른 의미가 아니라 바로 산의 이름이라는 사전적 설명정도로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으로 갈음한다.
‘駟(사)’는 4 필의 말이다. 수양은 산 이름이다.
앞서 설명했던 착간(錯簡)에 대한 학설에 대해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배우는 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정자(伊川(이천))는 제12편의 錯簡(착간)인 ‘誠不以富 亦祇以異’가 마땅히 이 장의 머리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文勢(문세)를 자세히 살펴보니 마땅히 이 句(구)의 위에 있어야 할 듯하다. 이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이 富(부)에 있지 않고 다만 특이한 행적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설명에 대해 주자는 자신 역시 공감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이 장의 논란을 정리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말이 옳은 듯하다. 그러나 장의 머리에 마땅히 ‘공자왈’이라는 세 글자가 있어야 할 것이니, 아마도 闕文(궐문)일 것이다. 대체로 이 책의 뒤 10편은 빠지고 잘못된 것이 많다.
원문에 어마어마한 부자의 대명사로 언급된 齊나라 景公은, 영공(靈公)의 아들인데 영공이 병으로 죽기 직전 대부(大夫) 최저(崔杼)가 장공(莊公)을 시해하고 옹립한 제후이다. 그의 제위기간은 무려 60년에 이르렀다. 그가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君君, 臣臣, 父父, 子子’의 여덟 자를 일러주어 왕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다.
경공(景公)은 牛山에 노닐다가 도성을 내려다보고 “강물이 질펀히 흐르는 이 고장을 버리고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는데 晏子(안자)는 ‘莊公과 靈公이 죽지 않았다면 임금께서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라고 비웃었다.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시행했으며 첩의 아들을 태자로 세워 훗날 난을 초래했으니, 칭송받을 만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이라 하겠다.
형식상으로 착간(錯簡)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말이 4천 필이나 있었다는 것으로 그 옛날 어마어마한 부자를 표현한 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포브스 부자 순위를 두고 그들을 막연하게 부러워하거나 한국 재벌들과 그 재벌 2세와 3세를 두고 대놓고 부러움을 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내가 이 장을 읽으며 약간이라도 의아함을 갖게 되는 부분은, 백성들이 정말로 돈 많은 부자, 제경공이 아닌 자신의 도를 지키겠다고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를 ‘지금까지’ 칭송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伯夷와 叔齊는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절개의 대명사들이다. 孤竹國의 왕위를 서로 양보하다가 함께 나라를 떠나, 周나라 武王의 은나라 토벌을 不義하다 여겨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는 것으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은 인물들이다. 그래서 공자는 ‘술이(述而) 편’에서 그들이 求仁得仁했기에 아무런 원망조차 없었을 것이라 평한 바 있다.
仁을 구하였고 仁을 얻었으니 그렇게 죽더라도 아무런 후회도 원망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은, 공자의 진심이 그대로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후대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사특한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오히려 그들은 그런 과감한 실천을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소 고지식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들의 고집이 공자의 시대에 당연한 본보기였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그렇게 평가하고 말했던 것은 무조건적인 숭앙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란 뜻이다.
부귀한 자가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덕을 지닌 인물이 칭송받아야 한다는 것은 백성들의 모순적 태도를 지적하는 은미하지만 강한 일갈이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신분이 정해져 있던 공자의 봉건신분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더 위로 올라가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고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도(道)를 포장했다.
부자를 부러워하고 부와 지위를 더 거머쥐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자들일수록 민낯을 가리고 있는 가면이 두꺼웠다는 점은 그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민낯과는 전혀 다른 선량한 듯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가면을 쓰고, 백성들의 앞에서는 伯夷와 叔齊를 숭앙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이 장에서 공자가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바와 같이, 그런 이들의 주장과 연설에 힘입어(?) 백성들이 그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러움과는 별개로 시대가 지나도 이름이 남는 이들은 언제나 伯夷와 叔齊같은 올곧은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새벽 약수터에서 혹은 경로당에서 가짜뉴스로 나이 든 이들의 관심과 킬링타임으로 밥을 먹고사는 가짜뉴스 생산자들을 보면서 나는 늘 불안한 한편으로 궁금했더랬다. 무엇이 옳은지를 과연 국민들이 그리고 공자의 시대 그 백성들이 정말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을까?
백성들을 개돼지로 여기며 간악하게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던 권력자들은 백성들이 마냥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살 이익만 적당히 챙겨주면 생각 없이 자신들을 지지하고 따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민심이란 생각보다 그리 어리석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많은 역사 속의 혁명과 민란이 여실히 증명해 왔다.
노벨이나 록펠러, 카네기를 그 시대의 사람들도 아닌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조차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어마어마한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적인 축구 구단을 가진 중동의 부자들을 세계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지 않는 이유가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伯夷와 叔齊가 수천 년의 시대를 가로질러 지조의 대명사로 불리며 숭앙받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그 절개를 굽히지 않은 것이 그렇지 못한 이들로 가득한 세상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인 것도 세상에 공유할 가치를 창출한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부자가 되어서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부자는 수세기에 걸쳐 전 세계에 몇 명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돈을 버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그렇게 돈을 번 이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의 삶이 갖는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살이같이 당장의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만을 바라며 사는 자들은 자신의 삶이 이후에 다른 이들에게 혹은 후세에 어떻게 기록될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발견되는 후안무치한 정치꾼들의 행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기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부와 권력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젊은 날 아주 잠시 자신의 양심이 민주사회를 갈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이후 그것을 훈장으로 딛고 일어나 정치꾼이 되거나 그 언저리에 운동권 출신이라는 경력을 밑천 삼아 활동(?)하며, 그 옛날 양심인지 양식인지 하는 것은 온데간데없이 두껍기 그지없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선량한 사람인 양 자기 사욕을 채우고 기름진 배를 두들기는 자들로 사회는 더욱 혼탁해졌다.
그 할아버지대부터 나라를 팔아넘기고 그렇게 쌓은 명성은 명문가의 자랑이라며 대를 이어가며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받아한 형제는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아 그 대단한 가문을 지켜나가며 그가 만들어낸 권력의 뒷배로 돈을 긁어모아 또 다른 형제는 기업을 운영하며 검은 돈을 챙기고 세탁하는 것이 당당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버젓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떠들어대며 자기가 뒷돈을 챙기던 기업을 기어코 자신의 기업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감옥을 간 자가 대통령이었던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를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물론 그의 측근이나 그와 이익을 공유한,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그를 훌륭한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이라 기억할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를 이 장에서 공자가 비유한 부질없는 부자, 제경공에 비유하는 것조차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감옥까지 다녀온 그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어차피 부자가 되면, 그리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모두가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라 자위하며 도덕적인 올바름을 챙겨봐야 그게 무슨 먹거리라도 만들어주냐며 코웃음을 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무지하다고 일컫는 백성들부터 먹물깨나 먹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몰라 행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앞서 그 수치스러운 전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그들이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려 할 때는 막무가내였다가도 그들이 어느 정도 부나 권력을 움켜쥐고 더 높은 곳을 갈망할 즈음에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민낯을 충분히 감춰줄 가면을 찾는다.
그들이 그렇게 두꺼운 가면을 찾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국민들의 지지와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이 장에서 주목하라고 행간에 뿌려둔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꽃을 피우고 그 진한 향기를 드러낸다. 그저 자신이 죽고 난 뒤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스스로를 바로잡고 노력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관종은 단 한 명도 없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모두 정치를 할 수 없기에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우리의 뜻과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굳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스타들과의 사진을 억지로 찍어가며 그들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금세 밝혀질 생쇼를 하며 가면처럼 경련이 날듯한 웃는 얼굴을 만들지 않아도 정말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한단 말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당대표 선거가 뭔지도 모르는 이가 자신을 위한 꽃다발을 준비했다며 SNS에 올리는 것은 실수도 아니고 해프닝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그저 주작일 뿐이다. 그것이 가벼운 해프닝이 아닌 그 사람의 밑바닥을 알 수 있는 사건이라 지칭하는 근거는, 이후 그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무리들이 보인 추잡한 기레기 플레이까지를 보아서이다. 당신은 과연 그들과 다르다 자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