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은 과연 자기 자식에게만 특별한 가르침을 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들이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by 발검무적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陳亢(진항)이 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역시 특이한 들음이 있는가?” (伯魚가) 대답하였다. “없었다. 일찍이 홀로 서 계실 적에 내(鯉)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詩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하시므로 내가 물러나와 詩를 배웠노라. 다른 날에 또 홀로 서 계실 적에 내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禮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 하시므로 내가 물러나와 禮를 배웠노라. 이 두 가지를 들었노라.” 陳亢이 물러나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를 물어서 세 가지를 얻었으니, 詩를 듣고 禮를 듣고 또 君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을 들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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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공자의 말씀으로 전해온 것이 아닌, 이후 제(齊) 나라에서 기록된 내용이 다시 <논어(論語)>를 편집할 때 수집된 내용으로, 공자가 그 친자식에게 어떤 특별한(?) 가르침을 남겼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현실에서의 생활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자가 제자들과는 달리, 친자식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남겼을 것이라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을 했던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伯魚을 만나 특별한 가르침을 자신이 물어서 알아내겠다고 시도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한심한 마음가짐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진항(陳亢)이 사사로운 뜻으로 성인을 엿보아 반드시 그 아들에게 몰래 후하게 하셨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진항(陳亢)은 <논어(論語)>에 총 3번 등장하는데 이번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등장할 때마다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아 제대로 그 행간을 읽은 이들에게는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기분 나쁜 인물로 기억되는 자이다. 이 장의 말투에서도 느껴지지만, 실제로 백어(伯魚)가 자신보다 21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고증상 이 대화가 이루어졌을 당시가 그가 20대였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 묘한 불손함의 근거는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학이(學而) 편’의 10장에서 공자가 가는 나라마다 정사를 묻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이유냐고 자공(子貢)에게 아주 불손하게 물었던 것이 이 장에서의 삐뚤어진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뒤에 공부하게 될 ‘자장(子張) 편’의 25장에서는 자공에게 대놓고 스승인 공자보다 그대가 더 낫지 않냐고 묻는 참람함을 보이기까지 한다.(혹자는 그가 자공의 제자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조(師祖)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안다면 그것은 역시 용납하기 어려운 참람된 언행임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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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질서의식과 예에 대한 진정한 인지를 주제의식으로 삼는 이 ‘계씨(季氏) 편’에 왜 이러한 참람함이 드러나는 자가 등장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그의 참람된 마음가짐에 불쾌함이 없을 리 없었지만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는 그에게 아버지라고 하여 자신에게 특별한 가르침이랄 것은 없었다면서 평상시에 아버지와 나눴던 일화를 일러준다. 이것이 저 유명한 시(詩)와 예(禮)에 대한 공자의 평상시 가르침이다.


이 장의 일화에서 ‘過庭(뜰을 가로지른다)’이란 의미가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뜻으로 전성되어 조선시대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작가로 유명한 실학파의 거두 연암 박지원이 아들 박종채에게 일러주기 위한 책을 엮어 <過庭錄>이라 이름 붙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 공자가 시(詩)를 기본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라 강조하며, ‘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라고 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곁들인다.


(시를 배우면) 사리가 통달해지고 심기가 화평해진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詩)는 그저 일반명사가 아닌 <시경(詩經)>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시경(詩經)>은 완곡한 표현 속에 화자의 의지를 담아내는 수사법이 뛰어나므로 대화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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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예를 배우면) 품절에 자세하고 밝아지며 덕성이 굳게 정해진다. 그러므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이 두 가지만 들었다고 강조하는 백어(伯魚)의 말에는 진항(陳亢), 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은미한 꾸짖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주자는 이 마지막 단언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홀로 서 계실 때를 당하여 들은 것이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았으니, 특이한 들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미한 꾸짖음의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진항(陳亢)은 하나를 물었는데 세 가지나 얻었다며 득의양양해한다. 그나마 마지막 한 가지에 해당하는 ‘君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의 서툰 생각에 대한 반성이 약간이라고 들어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들이 태어났는데 잉어를 선물로 받았으니 아들의 이름을 ‘리(鯉)’라 작명하였던 것만으로도 성인의 풍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던 공자의 아들이 바로 이 장에 등장한 백어(伯魚)이다. 그는 공자가 결혼하고 나서 1년이 지난 공자의 나이 스무 살에 얻은 자식으로 공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 50세의 나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공자의 나이 일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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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어(伯魚)는 불행하게도 아버지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며 학문을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아들, 그러니까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학문의 완성을 이루며 대성하여 나이 62세에 송나라에서 <중용(中庸)>이라는 명저를 남기게 된다. 가슴 아픈 여담이긴 하지만, 자사(子思)의 어머니는 그의 남편인 백어(伯魚)가 죽은 뒤에, 위(衛) 나라의 서 씨(庶氏) 집안으로 개가하여 자사(子思)와는 함께 지내지 않다가 위나라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배움이 얕은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진항(陳亢)과 같이 성인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각별하게 무언가를 특별히 전해주었을 것이라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자가 그의 눈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평생에 걸쳐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궁행해온 성현이라면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임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 당연하면서도, 일반인에게는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성현의 실천에 대해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이 장의 본질을 정리한다.


“공자께서 아들을 가르침에 문인과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진항이 〈공자께서〉 그 아들을 멀리한다고 말한 것이다.”


진항(陳亢)이 백어(伯魚)의 대답을 듣고 난 뒤, 자신이 깨달은 하나를 더해 세 가지 가르침을 얻었다고 말한 의미 속에, 그의 부끄러움이 담겨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그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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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모 여고에서 있었던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사건이 세간을 뒤흔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쌍둥이의 아버지인 교무부장에 대한 판결이 3심까지 3번이나 있었고, 쌍둥이 딸들에 대한 판결이 2심까지 두 번이나 있었다.


쌍둥이 딸들의 2심 판결당시 법원에서 아버지인 교무부장은 이렇게 외쳤다고 보도된 바 있다.

“상상으로 (죄를) 만들 수 있습니까? 아무리 (법이) 모순적이라도 양심만은 지켜야 합니다!”


물론 모든 정황을 직접 조사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사건에 대해 논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쌍둥이의 집에서 발견된 시험에 대한 모범답안에 대한 메모나 심지어 틀린 답안까지도 모범답안지에 있던 그대로 딸들이 적었다는 점은 물증이나 증언, 자백 등 직접 증거 없이 유죄를 선고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넘어설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슴 아팠던 것은 끝까지 그 아버지나 딸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재판부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경찰에 압수된 물품 중에서 문제의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 정답’의 메모가 그들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 관련 재판의 다섯 번 판결에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를 선고하는 가장 큰 증거로 인용되었다.


만약, 아버지나 딸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그것이 억울한 누명이라고 소명하려면 그 메모가 왜 그들의 집에서 발견되었는지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수사과정부터 재판 내내 주장했던 것은 시험 정답을 유출한 ‘직접적인’ 증거, 즉 빼돌린 답안지 자체나 답안지를 찍은 휴대전화 사진, 답을 적은 메모지 같은 물증이 없다고 항변하였다. 답안지를 어떤 방법으로 언제 뺴돌렸는지 특정이 안 됐기에 정황만으로 유출을 기정사실화하여 억울하다는 식의 항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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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위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법복을 입은 재판부의 판사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쌍둥이 언니의 경우 1학년 1학기에 459명 중 121등을 했던 성적에서 2학년 1학기에 인문계열 1등으로 올라섰고, 동생 역시 59등에서 자연계열 1등으로 올라섰다. 한 과목도 아니고 전 과목에서 고르게 이와 같은 극적인 성적 향상에는 그에 합당한 설명이 필요했다.


학교에 정답이 오지 않는 전국 단위 모의고사나, 학원에서의 평가가 그들이 2학년 1학기에 얻은 성적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의 갭이 컸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모범답안이 정정된 경우가 10여 차례나 있었음에도 쌍둥이들은 정정되기 전 정답을 써냈다. 심지어 객관식 문제에 ‘모음조화’와 관련된 문제를 맞혔던 동생의 경우, 그와 연관된 문제로 틀릴 수가 없는 서술형 문제에는 정정되기 전의 정답을 써서 내는 실수를 증거로 남기고 말았다.


이 정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재판부에 억울하다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쌍둥이들이 갑작스러운 범죄에 대한 인정이나 반성이 나올 리 만무했다. 쌍둥이의 2심 재판부가 판결문에 판시한 바와 같이, 부녀간의 공범관계는 인정되지 않았다. 미성년자인 딸들이 아버지와 공범관계까지 맺어가며 범죄에 적극 가담했다고 본 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해서는 선을 그은 것이다.


맞다. 자식의 잘못, 특히, 미성년자의 잘못은 그들에게 죄를 묻기 전에 그들을 제대로 인도했어야 할 책무를 가진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하물며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벌인 범죄도 아니고 부모가 그것을 조장하여 벌인 범죄라며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비 된 이는 법원에서 ‘법원의 양심’까지 들먹이며 항변하였다. 사립학교라는 이유로 무려 25년이나 전근 없이 일선 교사들에 대한 인사 평가권까지 가진 서열 2위인 교감으로 승진이 내정되어 있던 부동의 학교 서열 3위인 교무부장이 벌인 일에 다른 교사들이 과연 알았다거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뭐라 지적할 수 있었겠는가?


사건이 터지게 된 결정적인 빌미는 결코 최상위권의 성적일 수 없다는 쌍둥이들이 성적우수 상장을 받는 것에 속이 부글부글 끓던 동급생 아이들의 분노 섞인 토로가 그 엄마들에게 전달되었고, 기어코 총대를 멘 엄마가 서울시교육청에 투서를 넣으며 시작된 일이었다. 진항(陳亢)의 눈높이에 딱 맞는 수준의 사람들 생각이었고, 그것은 공자와 다르게 사실로 밝혀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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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일화가 진항(陳亢)에게나 이 장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은 이에서 성현, 공자가 보여준 자기 자식에 가르침에 의하면, 부모로서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던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는 아버지나 다선 국회의원을 하는 어머니나 지방대 의대에서 제왕노릇을 하는 아버지나 그 자식들이 그만한 능력이 안된다고 그것을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뭉갤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관례이고 누구나 그러는 짓이라며 떠들어대는 순간, 이 사회의 미래는 지탱할 기둥 없이 붕괴하고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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