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손길을 당당히 뿌리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권력에 빌붙어 콩고물 묻은 물이라도 마시려 입 벌리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而往拜之, 遇諸塗. 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陽貨가 孔子를 만나고자 하였으나(孔子가 찾아와서 자신을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孔子께서 만나주지 않으시자, 陽貨가 孔子에게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내었는데, 孔子께서도 그가 없는 틈을 타서 사례하러 가셨다가 길에서 만나셨다. 陽貨가 孔子에게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내 그대와 말을 하겠소.” 하였다. 〈孔子가 다가가시자〉 “훌륭한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을 仁이라고 할 수 있겠소?” 하니, 孔子께서 “할 수 없소.” 하셨다. 陽貨가 “從事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智라고 할 수 있겠소?” 하니, 孔子께서 “할 수 없소.” 하셨다. 陽貨가 “해와 달(세월)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위하여 기다려 주지 않소.” 하니, 孔子께서 “알았소. 내 장차 벼슬을 할 것이오.” 하셨다.

이 장은 ‘양화(陽貨) 편’의 첫 장이다. 편명이 된 양화(陽貨)는 앞서 공부했던 양호(陽虎)라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보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 즉 이름이 호(虎)이고, 자(字)가 화(貨)라는 설명이다. 앞에서 공부했던 공자가 죽을 위기를 넘겼던 광(匡) 땅에서 있었던 사건의 주범(主犯)이 바로 그 양호(陽虎)였다. 이 내용은 ‘자한(子罕) 편’의 5장과 ‘선진(先進) 편’의 22장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니 여기서 다시 논하지는 않는다.


주자 역시 양화(陽貨)를 양호(陽虎)와 동일인물로 판단하고 설명하였는데, 이 장에서 전문 정치인으로 불려 다니며 이름을 높였던 양화(陽貨)가 공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 끌어들이려고 했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陽貨(양화)는 계씨의 가신이니, 이름이 虎(호)이다. 일찍이 季桓子(계환자)를 가두고 國政(국정)을 전횡하였다. 그는 공자로 하여금 찾아와서 자신을 만나주기를 바랐으나 공자께서 가지 않으셨다. 양화는 禮(예)에 “大夫(대부)가 士(사)에게 선물을 하였는데 사가 자기 집에서 직접 받지 못하였으면 대부의 집에 찾아가 사례하여야 한다.” 하였으므로, 공자가 집에 없으신 것을 엿보고서 삶은 돼지를 선물하여 공자로 하여금 와서 사례하게 하여 공자를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양화(陽貨)를 노나라의 대부였다고도 표현하지만, 좀 더 정확한 고증에 따르자면 그는 바로 앞 편에서 등장했던 계씨 집안의 가신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기어코 실질적으로 노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고 나서 대부자리에 오른 전문 정치인이었다는 설명이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그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정공 원년, 그러니까 공자의 나이 43세 때였다. B.C. 505년에 계환자(季桓子)를 감금시키고 또 다른 가신이던 중량회(仲梁懷) 등의 세력을 축출해 버린 후 스스로 노나라의 독재자로 우뚝(?) 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 권세로 오래지 않아, 정공 8년 그는 실각하여 노나라의 제후 군위의 상직인 보옥과 대궁을 춤혀 제나라로 망명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노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던 제나라의 입장에서는 그를 그대로 둘 수도 없었기에 그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내몰리고 만다.


이후 양호는 송(宋) 나라로 다시 도망갔다가 진(晉) 나라로 가서 결국 조간자(趙簡子)의 심복이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양호가 실각하면서 공자는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가 되었지만, 그 역시 오래지 않아 양호의 전철을 밟듯 고국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게 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노나라에 있던 양호와 닮았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죽을 위기까지 넘기고 끝내 진나라를 찾아 조간자(趙簡子)를 만나려고 할 때에도 양호는 조간자의 곁을 지키고 있다가 공자를 방해한다.


이 장의 상황은 그 양호가 노나라의 전권을 거머쥔 직후였던 B.C. 505년 공자의 나이 47세 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공자는 정계에서는 아직 이름을 알리지도 못했던 처지였는데,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해 주나라의 수도였던 낙음에 유학을 가서 노자와 같은 대사상가의 훈도를 받았고, 다시 제나라까지 유학을 떠나 선진문물을 수용하면서 예악의 전문가로서 기반을 닦은 처지였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장의 대화나 상황은,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던 공자의 인물됨을 이미 파악하고 그를 포섭하려 했던 양화(陽貨) 역시 만만했던 안목의 소유자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가 올곧은 마음가짐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읽어내고 그의 어쭙잖은(?) 스카우트 제안에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의 의사를 밝힌 공자의 생각 역시 이미 당시에 완성된 경지에 올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大夫가 士에게 선물한 것을 士가 자기 집에서 직접 받지 못했다면 大夫의 집으로 찾아가 사례해야 한다고 전한다. 양화는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 삶은 돼지를 선물해서 공자로 하여금 와서 사례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예의를 갖춘 선물까지 보내온 양화(陽貨)의 성의마저 무시해 버릴 수는 없었던 터라 그가 집에 없을 때를 기다려 일부러 그때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고 핑계를 대려던 차에 운나쁘게도(?) 그와 길에서 마주치고 만 것이었다. 수려한 말솜씨로 공자를 포섭하려는 양화(陽貨)와 은미 하지만 단호했던 공자의 대화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으로 그 행간의 의미를 설명한다.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한다.’는 것은 도덕을 품고 감추어 나라의 迷亂(미란, 혼란)을 구원하지 않음을 이른다. ‘亟(극)’은 자주이다. ‘때를 놓친다.’는 것은 일의 기회에 미치지 못함을 이른다. ‘將(장)’은 장차 그렇게 하려고 하나 꼭 기필하지는 않는 말이다. 양화의 말은 모두 공자를 풍자하여 넌지시 공자로 하여금 속히 벼슬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공자는 진실로 일찍이 이와 같지 않으셨고, 또한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다만 양화에게 벼슬하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만 이치에 근거하여 대답하고 다시 그와 변론하지 않으시어 마치 그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처럼 하신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당대의 권력자에게 소위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음에도 결코 자신이 뜻하는 바와 같지 않은 자와 행동을 같지 하지 않았던 공자의 실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부연한다.

양화가 공자를 만나려고 한 것은 비록 좋은 뜻이었으나 공자로 하여금 자신을 도와 亂(난)을 일으키려는 데에 불과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만나주지 않은 것은 義(의)이고 찾아가서 절한 것은 禮(예)이며, 반드시 양화가 없는 틈을 타서 찾아간 것은 양화의 행동에 맞추고자 한 것이고, 길에서 만나 피하지 않은 것은 끝까지 끊지는 않으신 것이며, 질문에 따라서 대답한 것은 이치의 바름이고, 대답만 하고 변론하지 않은 것은 말씀이 공손하였으나 또한 굽히신 바가 없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는 물론이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 권력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빌붙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겠다고 하는 것이 정치를 한다는 변변찮은 인간들의 본성임은 현재에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공자가 양화(陽貨)에게 보인 태도는, 그가 성현의 지칭을 받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확고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의 그러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결코 쉽사리 행할 수 없는 경지임을 깨달은 이들 중 하나였던 양 씨(楊時(양시))는 그 큰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어설픈 의견으로 오독(誤讀)하는 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경계로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揚雄(양웅)이 이르기를 ‘공자가 양화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을 사람을 공경하셨으니, 이는 몸을 굽혀서 도를 펴려고 하신 것이다.’ 하였으니, 공자를 안 자가 아니다. 道(도)밖에 몸이 따로 없고 몸 밖에 도가 따로 없으니, 몸을 굽히고서 도를 펼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파란당에 속해 있으면서 할 말은 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자들이 하나둘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가 잊힐까 싶어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는 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유치원의 비리를 잡아내며 소위 ‘유치원 3 법’으로 존재감을 얻어 대선주자 경선까지 나왔던 이도 그렇고, 검찰출신이면서 청와대 비서관까지 승승장구하다가 잘려나와 열받아 횟집을 차렸다가 방송에 얼굴을 보이며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가 그러하고, 역시 법조인 출신이면서 5선의 다선의원이면서 20여 년이나 되는 동안 제대로 된 좌장역할도 하지 못하고서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떠드는 자가 그러한 부류, 되시겠다.

정치와 관련하여 현역의원이든 전 의원이든 방송에 기어코 얼굴을 들이밀고 정치평론가인지 논객인지의 행세를 하는 자들의 밑천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에서 굳이 논할 의미조차 없겠으나 검찰출신이면서 삐뚤어지고 썩어빠진 검찰에 대한 촌철살인은 호주머니 안에 꼭 움켜쥔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당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어쩌고 떠드는 자의 입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씩씩거리고 정의를 입에 담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국회의원이 되면 최소한 자신과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이 동반될 것이라 모두가 기대했지만 그는 그러한 행보는 눈곱만치도 보여주지 못했다.

법조비리의 본고장 대전에 기반을 둔 5선의 다선의원은 중진 이상의 당내의 어른소리를 들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20여 년이나 되는 시기동안 정치가 이렇게 퇴보하기만 한 사실에 대해 자신부터 반성하고 이제 총선에 불출마하고 훌륭하고 숨어있는 인재를 천거하여 그를 지지하겠다는 선언을 할 생각은 그 쉰 목소리의 끝자락에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유치원 원장들의 말도 안 되는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고 폭탄 전화를 받으면서도 할 일은 해야겠다며 젊은 기수론을 펼쳤던 이 역시 그가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치활동을 하는지를 들여다보았지만 그의 행보나 그 의원실의 보좌진들이 민생에, 혹은 민원에 귀를 기울이며 작지만 의미 있는 민원해결을 위해 움직였다는 근거는 나는 찾지 못하였다.


물론, 그들이, 그나마 썩어있는 것에서 시작된 여당안에서 자정(自淨)을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자들만 있는 빨간당의 무리들보다 조금은 더 낫다고 스스로들 자부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국민들의 공분을 내내 끌어내어 그 존재감이 가볍기로 유명한 대통령실에서마저 국민이 납득하겠냐며 논평을 냈던 50억 퇴직금 사건의 실태를 논하며 소위 여당의 스피커를 당직으로 맡고 있는 판사출신 국회의원이 방송에서 억지 미소를 띄우며 한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검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했다면, 법원에서는 그 부실한 기소내용으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는 입장이 있구요. 증거들을 제대로 증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밀하게 기소하고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검찰의 입장도 잘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다 저마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지요.”

사범대 출신의 학적으로 행시에 겨우 패스해서 교육부 공무원으로 7년이나 일하다가 더 높아 보이는 사시에 도전하여 판사로 임용되고 10여 년이나 판사일을 하다가 정치적인 욕망을 가지고 정치적 이슈를 빙자하여 판사직을 던지며 정치판에 투신하여 빨간당의 국회의원 배지까지 받았으니 이 장의 양화(陽貨)처럼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뤘다고 뿌듯해하며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 나라의 통수권자가 되었고 그 통수권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그들이 더 얻을 것은 없다며 득의양양해하며 자신들이 벌인 실수나 이전의 범범행위에 대해서 자꾸 시비를 걸고 들추려는 이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져 이 장에서의 양화(陽貨)처럼 자신이 뜻대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다 자만할 부부도 있을지 모르겠다.


‘술을 마셨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웃프다고 수년간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주가조작을 한 사실은 맞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형한다.’는 현직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서슬 퍼런 논평조차 하지 않는지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알지 못하겠다.

야당의 당대표든, 대통령의 부인이든 그 장모든, 아니면 그것을 알고 덮어주고 비호한 대통령이든 그들이 죄를 지었다면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누군가 어퍼컷을 쳐올리며 외쳤던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일처리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심복이라는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며, 정작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올곧지 못함을 보면서도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쓴소리와 실행력을 보이지도 않는 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치적인 이슈와 관련하여 자기 당 당대표의 거취에 대해서 ‘만’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독야청청(獨也靑靑) 정치인 코스프레를 하는 꼴을 읽어낼 수 있는 국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그 오만함은 결국은 그들을 자멸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그런 쓰레기 정치인이 아니니 이 비난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다고 착각하는 당신부터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라. 그들에게 배지를 달아준 자, 당신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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