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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은 결코 본캐일 수 없다. 당신의 본캐는 무엇인가?

도둑을 부캐가 아닌 본캐로 알고 사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은 유약한 것을 小人에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좀도둑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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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겉으로만 엄격한 성인군자인척 하면서 그 내실은 허술하기 그지없이 사리사욕만으로 가득 찬 도둑놈과 같은 소인들에 대한 호된 공자의 일갈이 담겨 있다. 언뜻 읽으면 직설적인 호통으로만 읽힐 수도 있겠으나 이 일갈의 행간에 녹아들어가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자 특유의 신랄한 비유가 갖는 의도를 먼저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원문에서는 그저 ‘도둑(盜)’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왜 내가 해석하면서 ‘좀도둑’이라고 풀이했는지, 그리고 마음이 유약하다는 완곡한 표현이 왜 소인으로 비난하고 풍자한 의미로 풀이되었는지도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먼저 이 장에 대해 주자가 어떤 풀이를 내놓고 있는지 주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厲(여)’는 위엄스러움이고, ‘荏(임)’은 유약함이다. ‘小人(소인)’은 細民(세민, 평민)이다. ‘穿(천)’은 벽을 뚫는 것이고, ‘窬(유)’는 담을 넘는 것이니, 실상이 없이 이름만 도둑질하여 항상 남이 알까 두려워함을 말씀한 것이다.


이 주석에서 눈여겨봐야 할 방점은 바로 ‘실상이 없어 이름만 도둑질한다’는 풀이에 있다. 즉, 도둑의 비유는 무언가를 훔치는 자인 것인데, 공자가 말한 원문에는 무엇을 훔치는 자인지가 나와있지 않다. 도둑에 대도(大盜)가 있고, 좀도둑이 따로 있다는 설명도 어패가 있긴 하지만, 굳이 ‘좀도둑’이라는 해석을 붙인 것은 그들이 훔치고자 한 것이 실상도 아닌 그저 이름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훔치기 위한 이유가 ‘고작(?)’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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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비난의 의미만을 담고 있을 것 같은 ‘도둑질’이라는 비유는 공자의 입을 거쳐 나오며 다각적인 비유의 스펙트럼을 타고 다양한 의미를 배태한다. 예컨대, 도둑질이라는 행위를 비유하며 원문에서 공자가 구체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보면 더더욱 그 의미는 명확해진다. ‘벽을 뚫고 담을 넘는 좀도둑과 같을 짓’이 바로 공자가 도둑질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남의 눈에 띠지 않게 몰래 하는 행위임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도둑질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하는 경우는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본래 옛날의 도둑질이란 그래도 양심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거나 도망가서도 잡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함으로 바뀌었다. 똑같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행위임에도 시대가 바뀌면서 그 행위의 의도는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깊숙이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살펴보자. 도둑질이라는 행위도 행위지만 도둑은 직업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둑은 본캐일 수 없는 직업이다. 도둑은 부캐일 뿐, 어느 누가 당당히 자신의 직업을 도둑이라 할 것이며,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몰래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려는 행위를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혹은 사회 내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 도둑질이라는 행위에 대한 비유를 하기 전에 그 문장의 앞에 분명히 위선행위를 비유의 본질로 못 박아두었다. 공자가 안과 겉이 다른 자들을 끔찍하게 혐오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일화를 통해서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천하를 주유하며 만나왔던, 그 숱하게 많은, 이른바 정치를 행하는 자들의 민낯을 보면서 그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자신이 떠들고 공약했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꾸는 것을 보면서 위선에 대해 더더욱 넌더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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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공자가 그렇게 완성시켜 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수백수천 명의 거기서 거기인 위정자들을 만나고 똑같은 이야기를 수백수천이나 반복해야만 했던 노력들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린 원인도 결국 그들의 위선이었다는 점에서 공자의 알레르기 반응 역시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앞서 간과해선 안된다는 설명했던 공자의 표현, 왜 안팎이 다른 위선이라 표현하지 않고 내면으로 ‘유약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이 표현 역시 그저 ‘마음이’ 유약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목적어가 생략하여 은미한 풍자를 드러내는 공자만의 표현방식을 고려해 보면, 앞선 의문에 대한 본래의 해답을 조금씩 파악해 낼 수 있다. 좀도둑으로 표현된 유약함이란, 그것을 과감하게 행하지 못하는 그들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바로 ‘원칙에 대한 준수’가 느슨하기 짝이 없음을 지적한 표현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원칙’이란 자신이 세워놓은 원칙이 아닌 누구나가 지켜야 할 바로 사회의 공인된 상식에 해당하는, 공공의 원칙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그것은 명문화된 법도 아니고 군주의 명령도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로 이 표현 뒤에 명확한 설명을 위해 사용된 도둑질의 비유는, 그저 일반적인 의미로만 파악하여 위선자들을 탓하는 공자의 일갈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서는 그 행간에 감춰진 깊이 있는 의미를 파악해 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원문의 구조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일반적인 문장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은 유약한 것’이 小人이라고 비난한 것이 아니라, ‘小人에 비유하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小人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좀도둑과 같다는 표현으로 비유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짧은 표현은 두 번의 비틀기가 들어가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은 유약한 것’이 小人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小人에 한정 지어 비유를 특정하였다는 점이 이 장의 독특한 구조라는 것이다. 위 주자의 주석에서 小人을 서민으로 풀이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에 기인한 것이다.

search.pstatic.jpg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그 정권에서 청와대 요직까지 올라갔던 당신이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은 유약한 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얼굴빛을 위엄스러운 척할 수 있는 신분 자체가 백성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전제를 생각해 보면 그 대상이 위정자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위정자들 모두가 위선 덩어리라 매도하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점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 문제점을 콕 짚어서 ‘小人에 비유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공자 특유의 수사법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안배된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위정자들이 위선적인 것은 아니라는 식의 ‘그러한 양태를 小人에 비유하면’이라는 한정적 표현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위정자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드는 고등 수사를 구사한 셈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겉으로는 엄격한 성인군자의 행세를 하면서도 안으로는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상식에 해당하는 기준에조차 허술하고 느슨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원인이라 지적한 것이다.


공자가 이렇게 면도날로 재단한 듯한 치밀한 안배를 통한 비판을 했던 당대의 현실은 수천 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종합선물세트로 그 사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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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중에서도 핵심 권력에 해당한다는 서초동의 중앙지검에서 인권감독관을 지내던 고위직 검사가, 검찰로부터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감독해야 한다는 ‘인권감독관’ 직을 수행하며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을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언어폭력을 구사하고 주도했음에도, 그 잘못을 인정하고 자식을 잘못 키운 사죄를 하기는커녕, 자신이 검사이기 때문에 반성문이나 사과문에조차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어투가 들어가는 안된다며 코치하는 후안무치함을 당당히 구사하였다.


2018년 사건 당시, 아이의 아버지이자 중앙지검에서 인권감독관의 직위를 수행하던 그의 상관이던 중앙지검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통수권자가 되어 있고, 그와 법무연수원 동기이자 당시 중앙지검 차장검사였던 이는 현재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그런데, ‘경찰위의 경찰’이라는 국가수사본부의 본부장직에 검찰출신의 변호사가 내정되자 경찰은 드라마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수사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내용을 막역한 기레기를 통해 터트렸고 그 여론몰이는 국민의 거친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통령실을 움직여 그를 업무 수행일 이전에 낙마시켰다.


문제는 사건 당시 당사자의 아버지가 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이라는 사실이 공중파 뉴스에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앙지검장이던 대통령과 함께 중앙지검에서 차장검사로 근무했던 법무부장관이 그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카메라에 대고 당당히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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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 흠집이 될 것 같은, 자신의 장모와 아내가 저지른 범죄혐의에 대해는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며 강조하며 기어코 왕좌에 오른 대통령이나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의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의 자리에 올라 사법개혁의 칼을 뽑겠다고 하자, 공부 못하고 능력 없던 그의 딸을 기어코 의사를 만들겠다는 과정에서 벌어진 삐뚤어진 부정에 대해 신랄하기 그지없는 비난을 쏟아냈던 이는 역시나 미국의 명문대에 보내겠다며 그의 처형과 아내가 짠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던 자신의 딸이 벌인 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둥, 실제로 입시에 사용하지 않았으니 법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둥의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후안무치한 변명을 당당히 구사해 댔다.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겸허한 모습을 젼혀 보이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상식이라고 인정하는 기준에 대해 그저 한없이 유약한 모습으로, 파란당의 내로남불을 따박따박 따지는 모습은 조만간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그와 그의 가족들이 전직 법무부장관의 가족들이 당했던 멸문지화를 재현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대선을 치르면서 서로 물고 뜯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그런데, 대선 과정에서 서로 했던 말에 대해서 실질적인 법적처리를 하겠다며 그것도 승자인 대통령 측에서 상대방인 야당 대표에게 칼을 뽑아 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것은 일종의, 승자가 모든 것을 가졌기에 베푸는 아량이자 무언의 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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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가진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파란당의 당대표가 정말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후안무치한 자인지 판단 내릴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은 나를 포함한 국민들이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국민들이 보고 듣고 판단하는 부분은 오히려 명문화된 그놈의 ‘법적’인 부분이 아니란 말이다. 정치꾼들이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 바로 누구나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부분을 법적으로 하등의 하자가 될 것이 없다며 제멋대로 상식을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小人들이 언제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블랙코미디를 전 세계에 공표하며 촛불을 들고 정권을 바꿔주고 국회의 절대다수의 자리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던 이전 정권이던 파란당 정권이 대차게 말아먹고 날려먹은 사실을 보더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 오래된 법비들의 부정을 바로잡겠다고 사법개혁의 기치를 들고 그토록 쌩난리를 치며 만든 ‘공수처’가 현재 유명무실하며 썩은 고위공직자들을 포함한 법비들을 쳐내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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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모두가 상식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한참이나 넘었다고 지적하는 불공정에 대해, 심지어 적지 않은 대다수의 법조인들마저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대통령의 장모와 아내의 범죄사실 앞에서 대통령실의 스피커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전 정권에서 수차례 수사하고 파헤쳤음에도 아무런 결과물을 내지 못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새삼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대놓고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다면 스스럼없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빨간당 뿐만 아니라 파란당에서도 그대로 패러디되어 튀어나온다. 현재 파란당 당대표에 대한 범죄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털었지만 무혐의처분이 나왔던 사실이 정권이 바뀌니 유죄로 바뀌냐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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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장사꾼 대통령과 군바리 대통령의 딸이 같은 빨간당의 기치아래에서 경선이라는 것을 할 때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찔렀던 부분들은 결국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그들을 감옥에 처넣는 사실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금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 대가로 감옥에 가는 것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공통 기준에 대해 유약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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