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孺悲)가 孔子를 뵙고자 하였는데, 孔子께서는 병이 있다고 사양하시고 명령을 전달하는 자가 문밖으로 나가자, 瑟을 가져다가 타면서 노래를 부르시어 그(孺悲)로 하여금 듣게 하셨다.
이 장에서는 이른바 ‘불설지회(不屑之誨)’라는 공자의 독특한 가르침의 방식을 구사한다. 불설지회(不屑之誨)의 ‘不屑’은 달갑게 여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不屑之誨란 <맹자(孟子)>의 ‘고자(告子) 하(下)’편에 나오는 단어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가르치지 않는 것 자체가 도리어 좋은 가르침이 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不屑之敎라고도 한다.
처음 상황은 의외로 간단하다. 유비(孺悲)라는 인물이 공자를 뵙고 싶어 했으나 공자가 그 만남을 사양한 것이다. 여기까지 만으로 가르침이라 지칭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공자의 행동이다. 만나주지 않겠다고 병을 핑계 대고 돌려보내놓고서 악기를 가져다가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는 그에게 자신이 실제로는 병이 있어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핑계를 댔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 상황과 유비(孺悲)에 대해 주자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孺悲(유비)는 노나라 사람이니, 일찍이 공자에게 士(사)의 喪禮(상례)를 배웠는데, 이때에 반드시 〈어떤 일로〉 죄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병이 있다고 사양하시고, 다시 그로 하여금 병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하여 일깨워 주신 것이다.
이 상황만 봤을 때는 예법의 대명사라 불리는 공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의아하고, 무엇보다 그런 무례(?)를 통해 상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인지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중에 출간된 대부분의 현대 해설서에서는 이 부분을 공자의 꼰대질정도로 파악하거나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 않았겠나 하는 식의 애매한 해석정도로 여지를 남기며 넘어가는 이상한 방식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명확하며 예법의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에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학문적 의심을 궁구 하지 않은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명확하게 공자의 행동과 가르침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조금은 구체적으로 해설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여 좀 구체적인 설명을 부연하기로 한다.
유비(孺悲)는 魯나라 哀公의 명으로, 휼유(恤由)의 상례를 거행하기 위해 제대로 된 선비의 喪禮(상례)에 관해 공자에게 배우려고 했다. 이 경우 예법(?)상, 정식 소개(紹介)를 통해야만 배움을 청할 수가 있었는데, 그는 왕명을 빙자하여 그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곧바로 공자를 알현(謁見)하려고 했다.
이에 공자는 집사에게 병이 나서 만날 수 없노라고 말을 전하게 했다. 집사가 말을 전하러 나가자마자, 공자는 바로 25 현금을 타면서 노래까지 불러, 자신이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만나기 싫어서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비(孺悲)로 하여금 확실하게 알도록 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전에 공부하면서 금슬(琴瑟)을 구분하면서 설명한 바 있지만, 瑟은 비파에 가까운 25현의 큰 거문고를 의미한다.
그래서 정자(明道(명도))는 이 장을 시작하면서 내가 설명했던 <맹자(孟子)>의 ‘不屑之敎誨(불설지교회)’를 언급하며 공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것은 맹자께서 말씀하신 ‘달갑게 여기지 않는 가르침〔不屑之敎誨(불설지교회)〕’이란 것이니, 그를 깊이 가르쳐 주신 것이다.”
유비(孺悲)에 대해서는 노나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열전(列傳)>이나 <가어(家語)>에도 그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위 내용들은 <예기(禮記)>의 ‘잡기(雜記) 하(下)’의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비(孺悲)는 애공이 그를 공자에게 보내 예법을 배우게 하여 결국 사상례(士喪禮)를 배웠고, 이로 인해 사상례(士喪禮)는 다시 기록되어 보존되기에 이르렀다고 한 기록이 바로 그 근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의 일화가 그가 처음 공자와 처음 만났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기에 단언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과연 공자가 그런 행동을 보인 것으로 유비(孺悲)에게 어떤 가르침을 전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배우러 온 사람을 만나주지 않으면서 병 때문이라고 전하라고 하고서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자신이 만나주지 않는 것은 병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하는 무례가 과연 올바른 가르침인지 그것이 과연 가르침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일 수 있겠다.
이전에 공부에서도 강조한 바 있지만, 상황의 어느 한 면만을 보거나 어느 한쪽의 말만을 듣는 것으로 섣불리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거나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해석해 버리고 상대방을 매도하거나 힐난하는 것은 스스로의 수준이 바닥임을 자인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공자는 예법 그 자체로까지 불렸던 성현(聖賢)이었다. 그런데 예법을 배우러 오겠다고 하는 자가 정식으로 소개를 받아 예를 갖춰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에서 예가 시작됨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자의 입장에서는 예법을 배울만한 마음의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 여겼고,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은 그에 맞는 가르침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야말로 배우는 자의 눈높이에 맞춰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식을 맞춰주는 것이 공자만이 보여주는 특유의 교육법 아니던가?
공자는 유비(孺悲)가 느끼는 무례로 인한 모멸감이 그에게 아주 아프고 따끔한 깨달음으로 전달될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아무리 왕명으로 예를 배우러 왔다고 하더라도 정식으로 소개를 받아 예를 갖춰 찾아뵈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조차 갖추지 못했다면 그 위에 뭔가 대단해 보이는 예를 배우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호된 가르침이 공자의 무례한(?) 행동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공자의 모든 사상의 기본을 설명하는 메시지 중 하나라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을 이 장에서는 예법에 적용하여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그 대단한 왕명을 빙자하여 예법을 배우겠다고 왔는데, 자신을 왕처럼 받아들여주기는커녕, 병을 핑계로 만나줄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오히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해서 ‘내가 너를 만나주지 않는 것은 내가 너를 내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무례함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모욕감에 대해 이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누가 있었을까 싶다.
사실 이 장에서 사건의 결과나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없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유비(孺悲)가 공자의 이러한 심오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었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어제 공부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공자가 이렇게 눈높이 교육을 통해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처절하게 그 무례함을 느끼도록 했음에도 그저 자신이 기분 나쁜 것만을 생각하고 상대를 욕하는 자들이 당대에는 물론 작금의 시대에도 길거리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不屑之誨가 효과를 거두기 위한 가장 큰 전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뼈아프게 후회하고 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받아들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 가르침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주자가 원추(袁樞)라는 사람과 편지를 통해 학문을 논했던 일화를 들 수 있다. 주자는 몇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와 학문을 논했지만, 어느 순간 원추(袁樞)가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자 ‘입을 열어 죄다 말할 것 없이 각각 자기 소견만 지키도록 합시다’라며 그 이상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주자의 이 말 역시 이 장에서 공자가 보여준 不屑之誨와 같이 기껏 학문적인 교류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검증받고 발전을 하려는 의도가 빛을 바래버릴 지도 모른다는 점을 은미하게 일러주어 원추(袁樞)가 깨닫도록 일침을 가한 것이다.
파란당의 당대표가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을 때 인수위의 비서실장에서부터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 수정구청장 전 모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그가 남긴 유서 6장에 대해 유족들이 공개를 거부하면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몇몇 공개된 문장이나 단어를 통해 온갖 해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조폭인지 검찰인지 헷갈리는 미친 망나니 칼잡이를 앞세운 빨간당은 그 기세를 높일 새라 판사출신이라는 대변인의 입을 통해 참람되게도 ‘파란당의 당대표 한 사람의 정치행보가 그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다섯 사람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지는 않다’라는 망발까지 쏟아냈다. 대변인이 그저 위에서 던져주는 원고만 읽는 아나운서나 성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법대출신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교육부 공무원을 하다가 다시 사법고시 보고 경성제대 출신이랍시고 판사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내용정도는 스스로 검증을 하고 읽었어야 옳을 것인데 참으로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소한 사실관계부터 파악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다섯 사람이라고 지칭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검찰의 칼춤에 시달린 것이 촉매제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으나 최소한 스스로 생을 달리 한 사람의 명단에 버젓이 지병으로 죽은 이를 집어넣는 뻥튀기까지 해가며 그들이 파란당을 뒤흔드는 목적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리고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자꾸 이상한 화면이 현실과 겹쳐 올라옴을 느낀다. 막장드라마에서 조폭들이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폐건물에 인질로 잡고 있으면서 때리고 고문하면서 주인공에게 굴복을 요청할 때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에서 물건 팔면서 드라마를 보는 아지메조차도 주인공 때문에 인질들이 고생하는 것이니 주인공이 나쁜 놈이라 여기지 않는다. 쓰레기라 욕을 먹어야 할 대상이 조폭임은 시장 아지메들도 안다.
그는 진실을 밝히고 자살했음에도 그들(?)에 의해 진실은 묻혔다.
앞서 행정고시를 통해 교육부 공무원을 하다가 더 높은 권력을 손에 잡고 누리겠다고 사법고시를 통해 판사가 되고 다시 정치판까지 나와 대변인을 한 이와 비슷한 궤적을 걸어온 이 하나가 이번에 빨간당의 최고위원이 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목사도 아닌 그저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대중을 선도하는 자의 교회라는 곳을 찾아가 버젓이 아양 떠는 모습이 방송에 공개되었다.
하나님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겠다며 종주먹질을 허공해 해대는 목사도 아닌 사이비 선동자를 지지자랍시고 그 교회까지 찾아가 자신들의 정치적 뒷배가 되어주어 감사하다며 우익 유튜버와 함께 키득거리며 농지거리를 해대는 것이 현재 빨간당 최고위원의 딱 그 수준이다. 그 현장이 전국에 방송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가 현실을 자각하고 나서 기자들에게 내뱉은 변명은 한술 더 뜨는 수준이었다. 대통령의 공약에 전라도에 대한 립서비스이지 않았냐고 한 워딩에 긍정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덕담'이라 답했다. 덕담이 무슨 뜻인지 사전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경성제대 법학과를 나오고서도 사시를 패스하지 못해 행정고시를 통해 행정사무관 하다가 역시나 더 높은 권력에 오르겠다고 사시를 다시 봐 검사가 된 그는 역시나 최종 자신의 목적지인 여의도에 도착했고 배지를 달지 못한 때에도 끊임없이 생글거리는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존재가 잊힐까 두려워 방송에 뻔질나게 등장했더랬다.
굳이 판사출신 빨간당 대변인과 비슷한 인생궤적을 가진 그의 이력을 기술한 이유는, 빨간당의 배지를 달고 빨간 넥타이를 차고 나오는 이들의 삶이 그린 궤적이 어쩜 그렇게도 닮아 있는지를 발검스쿨 학도들이 제대로 읽고 반면교사하라는, 오늘 배운 不屑之誨의 응용버전임을 깨달으라는 복습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