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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는 이가 왜 존경받진 못하는 걸까?

영웅은 결코 승승장구하며 꿀 빠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

by 발검무적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柳下惠가 士師가 되어 세 번 내침을 당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떠날 만하지 않은가?” 하니, 柳下惠가 대답하였다. “道를 곧게 하여 사람(군주)을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으며, 道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何必(어찌 굳이) 父母의 나라(故國)를 떠나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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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공자가 존경에 마지않던 유하혜(柳下惠)의 일화를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전부인 방식으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공자보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유하혜(柳下惠)라는 노나라의 걸출한 성현은 앞서 ‘위령공(衛靈公) 편’의 13장과 본편의 8장, 그리고 이 장까지 포함하여 모두 세 번에 걸쳐 <논어(論語)>에 등장한다. 앞서 공부했던 ‘위령공(衛靈公) 편’에서도 설명했지만,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공자가 현인(賢人)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훌륭한 인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장의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가 관직에서 승승장구하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무엇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시선으로 그에게 우문(愚問)을 던진 이에게 유하혜(柳下惠)의 현답(賢答)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공자는 던져준다.


원문에서 그가 맡았던 관직명인 ‘士師’가 정확히 어떤 관직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현답(賢答)의 행간에 어떤 가르침이 담겨 있는지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士師(사사)’는 獄官(옥관)이다. ‘黜(출)’은 내침이다. 유하혜가 세 번 내침을 당했는데도 떠나가지 않고 그 辭氣(사기, 말의 억양)가 雍容(옹용, 온화하고 여유로움)함이 이와 같았으니, 和(화)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도를 굽힐 수 없는 뜻은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반드시 正道(정도)로써 하여 스스로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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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옥관(獄官)이라고 설명한 ‘사사(士師)’라는 관직은 현대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지금의 고등법관정도의 판결을 받는 직책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양 당사자간의 이익이나 범죄를 저질러 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죄과를 논하여 판단하는 법관의 업무는 엄중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어느 한쪽의 불만이나 억울함(?)은 언제나 들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자리이다.


그런데, 그저 그 일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유하혜(柳下惠) 같은 인물이 세 번이나 그 자리에서 내쳐졌다고 판단하기는 것은 그야말로 섣부른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 번이나 그 자리에서 내쳐졌다는 것은 반대로 그가 최소한 2번 이상 그 자리에서 내쳐졌음에도 다시 그 자리에 임명될 정도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적 관계를 반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정말로 능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어 그 직책에서 쫓겨난 것이거나 심지어 부정한 짓이 발각되어 그런 결과를 맞이한 것이었다면 임명권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를 3번이나 그 자리에 임명했을 리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굳이 그 자리에서 어떤 이유로든 쫓겨나 잘린 인물을 다시 2번이나 불러들여 임명했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새로 임명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자리인데, 쫓아냈던 사람을 다시 그 자리에 불러 앉혔다는 것은 이후 논란의 여지를 훨씬 더 크게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정치꾼들이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임용에 재재임용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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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관계들을 통해 유추하고 분석해 보건대, 이 장에서의 일화와 같은 대화가 나올 만큼 그는 그 시대 가장 핫했던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음에는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 장이 온전한 가르침의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이 일화에 대한 공자의 평가나 코멘트정도가 당연히 이어져 나와야 하는데 그러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의문을 갖고 이 장의 가르침을 공자가 어떻게 평가했을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해하던 호씨(胡寅(호인))는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이 장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공자께서 단정하신 말씀이 있을 터인데, 亡失(망실)되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논어(論語)>를 8부 능선이나 넘었으니 이 일화만 읽는 것만으로도 공자가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것인지 그 일실 된 가르침을 스스로 복원해 보기로 하자.


일단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실마리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유하혜(柳下惠)에게 일반인 수준에서 던진 우문(愚問)에서 찾을 수 있다. 명예로울 수 있는 그 중직(重職)에 임명되고서 세 번이나 내침을 당했음에도 왜 떠나지 않느냐는 질문은 일반인의 시각에서라며 뼈 때리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일찌감치 그 질문을 우문(愚問)이라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이 글을 함께 공부하는 학도들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할만한 질문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search.pstatic.jpg 유하혜(柳下惠)의 지조에 대한 일화를 그린 그림

왜냐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법관은 선출직이 아니다. 임명직이다. 임명직이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는 선출직이 아닌, 임명권자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의 자질과 능력을 임명권자가 믿고 다시 맡겼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내친 것이니 유하혜(柳下惠) 같은 성현(聖賢)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소신껏 공무(公務)를 공정하게 처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통하지 아니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의 간언(諫言)에 해당하는 공무처리가 자신을 임명해 준, 혹은 그 무리들에게 간절하게 와닿은 것에 실패(?) 한 것이니, ‘세상에 도가 통하지 않으면 떠날 뿐이다.’라는 전통적인 처세관에 의거하여 은자(隱者)를 자처하며 그 정치판을 떠나거나 원문에서의 의미처럼 최소한 노나라를 떠나야 옳을 듯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는 일종의 질책에 가까운 질문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노나라의 법무부장관에 해당하는 대사구(大司寇) 직에 임명되어 자신의 뜻을 막 펼치고자 했던 공자는 그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상황임을 파악하고 쫓겨나다시피 직에서 물러났고 그것은 그의 기나긴 천하주유로 이어졌다. 물론 100% 그의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조국을 떠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장의 대화는 공자에게도 의미하는 파장의 정도가 결코 작지 않다.


이 장의 백미(白眉)는 역시 다소 불편하게 들렸을 수도 있을 우문(愚問)에 대한 유하혜(柳下惠)의 시원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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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를 곧게 하여 군주를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으며, 道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何必(어찌 굳이) 父母의 나라(故國)를 떠나가겠는가.”


자신이 세 번이나 내침을 당했다는 사실이 결코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당당한 자존감과 자부심에 바탕하여 오히려 도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며, 그런 상황에서 도를 굽혀가며 사리사욕을 추구할 생각이 있다면 굳이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 지금의 나라에서도 충분히 권력에 기생하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회초리까지 꺼내든다.

이 짧고 굵직한 답변에는 상당한 내공으로 축적된 당대 사회의 일갈이 꾹꾹 눌러 담겨져 있다. 일단 앞서 간략히 설명한 바와 같이, 유하혜(柳下惠)는 질문했던 이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어 당대의 상황이 도가 통하지 않는 올바른 교정이 필요한 시대임을 완곡하지만 강력하게 방점을 찍는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은 유하혜(柳下惠)가 사용한 고도의 수사법이다. 유하혜(柳下惠)는 질문자의 의도를 역으로 꼬집고 있다. 질문자는 그만한 명망을 가진 자질과 능력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을 텐데 뭐 하러 이 작고 힘없는 나라에서 그런 대접을 받느냐는 안타까움과 비아냥이 같이 묻어있음을 드러냈다.

search.pstatic.jpg 유하혜(柳下惠)의 초상

그 의도를 읽은 유하혜(柳下惠)는 현재 도가 통하지 않는 것은 노나라뿐이 아님을 한 마디의 수사로 확장시킨다. 도를 곧게 하여 군주를 섬기는 정도(正道)를 행하려면 노나라가 아니라 천하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천하 전체가 썩어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가 천하를 주유하여 모든 나라가 똑같음을 검증해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나라에서 경험했던 인간의 본능적인 사리사욕이 노나라 정치꾼들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정치를 한다는 위정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천하의 백성들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정치행위가 갖는 근본적인 목적을 환기시키는 일갈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하혜(柳下惠)는 천하를 올바르게 바로잡겠다는 올곧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일신을 편하게 하기 위한 정치행위를 위해 거침없이 망명하고 조국을 떠났던 당대의 정치꾼들을 엄중하게 꾸짖고 있다. 결국 자신이 있는 고국부터 바꾸지 못하면서 그것을 나라 탓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바꾸지 못하고 다른 나라를 찾아가서 뜻을 펼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명예를 구하기 위한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따끔한 회초리인 셈이다.


굳이 질문한 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도를 굽히고 속세에 영합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콕 찝어서 ‘道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이라는 가정을 한 이유는 질문자를 포함한 세간 사람들의 생각이 결국 적당히 자신을 굽히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통해 자신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이루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도를 명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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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유하혜(柳下惠)의 일화를 듣고 읽었다면 당연히 다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감히 성현에 비할 바 없는 촌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평생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어오며 전혀 원만하지 못한 사회생활을 했던 터라 이 장의 일화가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지난주 그놈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검수완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아무리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해석을 자기식대로 가져다 붙인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명확하게 검수완박에 대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얼굴만으로도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빨간당의 판사출신의 국회의원은 해당 사안에 직접 관여하면서 최종 논평으로 헌법재판관들의 자질과 소양에 대해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법조계에서, 특히 법원 쪽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다. 이른바 판사의 정점에 해당하는 대법원의 대법관에 비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자질의 인물들을 보낸다는 점이다. 대법원의 대법관은 학적은 물론이고, 판사임용당시의 성적에서부터 법원생활을 하면서 쌓은 도를 굽혀가면서까지 얼마나 권력에 부합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역대 대법관들의 학적에서부터 그들이 어떤 삶의 궤적을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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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경성제대 법학과 출신에 판사를 지내다가 빨간당 배지를 단 국회의원이나 역시 동문의 입장에서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하며 동기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기어코 법무부장관직까지 꿰찬 이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에 대해 그들의 평상시 생각이 드러나 보이는 논평들이 기레기 언론들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기레기 언론사의 역대 기사들을 찾아보라. 그들이 대법원의 대선배 대법관에게 그런 참람된 언행을 보였던 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공식적으로 A급 판사들의 종착역이라는 대법원의 대법관에 비해 B급이라 공인(?) 받는 헌법재판소의 법관들 9인의 임명방식을 보면, A급 법관의 수장이라는 대법원장의 추천이 3인, 대통령의 추천이 3인, 국회의원에서 추천한 이들 3인으로 이루어진다. 제도상으로 그렇게 만들어둔 이유는 어느 한쪽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양하고자 함이 명백하다.

search.pstatic.jpg 위의 판단과 비교해보면 안보이는 것이 보일지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빨간당의 주요 보직을 차지한 경성제대 법학과 출신의 법비들의 입장에서 자신들보다 아래라 여기는 이들에게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이 짜증 나고 분통 터짐은 이해할 만도 하지만 그렇게 도를 굽혀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면 굳이 이 나라가 아니라 다른 개도국에 가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권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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