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막상 억울한 일을 당해야만 분개할 것인가?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楚나라 狂人인 接輿가 孔子〈의 수레〉 앞을 지나가며 노래하였다. “鳳이여, 鳳이여! 어찌 德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지만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오늘날 政事에 종사하는 자들은 위태롭다.”孔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더불어 말씀하려고 하셨는데, 빨리 걸어가 피하니, 그와 함께 말씀하시지 못하였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초나라에 있을 당시 만날 뻔했던 접여(接輿)라는 은자(隱者)와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접여(接輿)는 당시 초나라의 유명한 현인으로 세상을 피하여 일부러 미치광이 노릇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에 관해서는 성이 接(접)이고 이름이 輿(여)라는 설과 성이 육(陸)이고 이름이 통(通)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공자의 수레에 접촉했기 때문에 후대에 ‘접여(接輿)’라고 불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주자는 공자와 접여(接輿)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뻔한 당시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접여(接輿)는 초나라 사람이니,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세상을 도피하였는데, 夫子(부자)께서 이때 장차 초나라로 가려고 하셨기 때문에 노래하며 수레 앞을 지나간 것이다. 鳳(봉)은 道(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접여가 봉황(鳳凰)으로써 공자를 비유하고 공자가 숨지 못함은 덕이 쇠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오는 것은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이라도 오히려 숨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已(이)’는 그만둠이요, ‘而(이)’는 어조사이다. ‘殆(태)’는 위태로움이다. 접여는 공자를 존경할 줄 알았으나 취향이 같지 않은 자이다.
‘過孔子’에 대해 주자는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났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다른 학자들은 공자가 머물던 객사의 문 앞을 지나갔다는 해석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접여(接輿)가 공자의 수레를 지나며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조언 아닌 조언은, 전통적인 은자(隱者)의 처세관을 다시 한번 소환한다. 공자를 봉황에 비유하며 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숨지 못하고 드러나게 된 이유가 덕이 쇠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의 논조를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촌철살인에 공자는 접여(接輿)가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는 현자(賢者)였음을 인지하고 바로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예를 갖춰 자신의 처세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오해를 풀고 의견을 나누고자 하였지만, 접여(接輿)는 자신의 뜻만을 전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한 설명으로 부연한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리신 것은 그에게 출처의 뜻을 말씀해 주려고 해서였는데, 접여(接輿)가 스스로 옳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여 피한 것이다.
전통적인(?) 은자(隱者)의 처세관, 이른바 ‘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때 제대로 된 군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은거한다.’는 논리는 초나라의 은자(隱者), 접여(接輿)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앞서 우리가 공부한 바와 같이 공자는 공자만의 명확한 자기 출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천하를 주유하면서까지 자신과 뜻을 함께 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주군을 찾는 대의명분이 분명했기에 그들의 비난이나 비아냥거림에 신념이 흔들리거나 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레 앞을 지나며 민감한 조언(?)을 남긴 접여(接輿)를 만나고자 했던 것은 사실 당시 공자가 겪고 있던 상황을 조금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기록에 의하면, 이 일이 일어났던 때는 공자가 63세 때의 일로, 초나라 소왕(昭王)이 ‘서사(書社)’라는 곳의 땅, 700리를 주어 공자를 대부로 봉하려 하였으나 앞서 몇 번이나 있었던 견제와 같이 영윤(令尹)이던 자서(子西)가 극구 반대하면서 전면백지화가 되어버린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초나라의 소왕(昭王)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앞서 ‘선진(先進) 편’의 2장과 ‘위령공(衛靈公) 편’의 첫 장에 살펴본 바와 같다. 그 유명한 ‘진채지액(陳蔡之厄)’의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공자가 소왕(昭王)의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자의 그릇을 알아본 소왕(昭王)과의 인연이 이어졌던 것이었다.
이 장의 일화는 그렇게 일이 다 이루어졌다 싶었던 순간, 자서(子西)의 결사반대 공작에 의해 엎어지면서 다시 기약 없는 주유를 떠나던 공자의 수레의 앞에서 생긴 일이었다고 고증학자들은 추정한다. 접여(接輿)의 입장에서는 세상은 이렇게 일그러져 도가 행해지지 않음에도 굳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뭐 하러 그렇게까지 천하를 주유하며 자리를 얻어 지위를 얻으려고 하냐며 봉황까지 언급하여 비유하며 일갈을 던진 셈이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겨우 일이 이루어질 만하면 엎어지고 여러 주변 위정자들의 견제와 방해를 통해 어그러지기 일쑤였는데, 다시 그 똑같은 일을 당하고 떠나가는 수레에서 나름 그 나라의 유명한 현자(賢者)라는 이에게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상처를 다시 벌리고 그 안에 소금을 끼얹는 것과 같은 고통에 뭔가 할 말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저 자신을 방해하고 질시한 이들도 아니고 세상에 은거한답시고 광인(狂人) 행세까지 하던 이에게는 제대로 뭔가 한마디 확실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렇게 공자는 초나라에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예순이 훌쩍 넘은 만년의 나이로 진(陳) 나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같은 질시와 시달림은 반복되었고 마지막으로 위(衛) 나라까지 갔다가 결국 5년의 헛수고를 뒤로 하고 조국인 노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접여(接輿)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려 도(道)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지경의 자신의 조국 초나라 상황을 볼 때, 군자(君子)이고 현자(賢者)라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미친 사람의 행세까지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퍼포먼스를 할 필요까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대로 공자를 봉황(鳳凰)에 비유하며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무엇을 얻으려 하냐고 비난했다. 공자는 이전에 만나왔던 수많은 은자(隱者)들에게 적지 않은 그와 같은 비난과 비아냥을 들어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비난처럼 공자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공자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세상에 도가 드러나지 않아 혼란스럽고 사리사욕만을 채우려는 자들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려 가는데, 그저 자신만이 그 흐름을 알고 있으니 손을 떼고 유유자적 자신만이 은거한다는 것은 공자의 배움과 실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준비된 자질과 그간의 노력으로 쌓인 경험치가 충분해야만 하다는 사실을 공자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처음 시도했던 자기 조국에서 실패했지만 그것이 설사 다른 나라라 할지라도 천하를 교화시켜 세상에 본보기가 되는 변화를 이끌어낼 자신감이 공자에게는 있었다. 그렇기에 도저히 자기 혼자만의 은거(隱居)를 통해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은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수동적인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음의 울림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의 그러한 실천하고자 하는 삶이 설사 성공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고단 했을지에 대해서는 노나라에서의 첫 실패(?)를 통해서 여실히 증명된 바와 같이, 사특한 무리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이 채운 이익에 위협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를 방해하고 제거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에 그것의 반의 반만이라도 노력했다면 공자가 그렇게 목이 터져라 세상을 바로잡아야만 한다고 소리 지를 필요도 없었을는지 모른다. 어찌 보면 공자는 접여(接輿)과 같이, 그러한 상황을 모두 다 알면서도 그저 자신의 목소리가 통하지 않을 상황이라며 은자(隱者)를 자처하는 이들의 모습이 방관이고 방조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공자가 접여(接輿)의 조언(?)을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었던 것처럼, 어찌 보면 접여(接輿) 역시 공자가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서른다섯의 공자가 얼마나 더 거대한 성인이 될지 위협감을 느꼈기에 안영(晏嬰)은 그에게 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방해했던 것이고, 초나라의 영윤(令尹) 자서(子西)도 본능적인 위협감에 필사적으로 공자의 초나라 입성을 방해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 있는 근거이다.
파란당의 당대표를 어떻게 해서든 기어코 흔들고 그들의 허술하기 그지없는 결속력을 박살 내겠다는 검찰공화국의 끊임없는 집요한 공격은 결국 기소로 결착되었다. 누차 강조한 바와 마찬가지로 나는 파란당의 당대표가 결백한 지 어떤지에 대해 판단할만한 충분한 자료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가 흙수저를 빙자하여 시장에서 경기도지사, 그리고 대선후보에 한 당의 대표에까지 오르면서 어떤 일을 뒤에서 벌였는지 아직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칼잡이를 다량 투입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검찰이라는 조직이 하는 행태를 보건대, 이건 단순한 사회정의를 구현한다거나 잘못한 이를 벌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검찰의 수장이던 자가 대통령이 되어 그 칼을 휘두르며 사건이 아닌 사람을 조지겠다고 춤을 추고 있는 것만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한 사실관계를 증명한 근거들이 너무도 많다.
우연치 않게도 전직 대통령을 모욕의 궁지에 몰아넣어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검사라는 자가 미국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했다가 자신이 대한민국 검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한 같잖은 제목을 달고 책을 내고, 촛불시위를 억누르겠다며 계엄령이 어쩌구 계획을 세운 수장노릇을 했던 전직 기무사사령관이 5년이나 미국에 도피하다가 검찰 공화국이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제 발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이 벌어졌다.
검사가 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극히 이례적인 일도 아닌 대한민국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검사들은 게임으로 치면 목숨이 2개이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비리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더라도 ‘옷을 벗는다’라 말하고 ‘의원면직’이라 쓰는 치트키를 써서, 변호사로 개업을 하고 제2의 법비 인생 막을 올린다. 그들을 곁에서 도우며 보좌했던 계장이나 수사관들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여 그들이 뒷돈을 먹거나 사건을 조작하는데 연루되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바로 수갑을 차고 철창에 들어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
무엇보다 검사들이 현직에 있을 당시 저지른 비리가 나중에라도 불거져 언론을 타게 되는 경우, 부장검사출신이니 검사장 출신이니 검찰총장 출신이니 하는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이 흘러나온다.
“검사는 퇴직 후에 자신이 현직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결코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 말인지 방귀인지 하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몰아세워 결국 그가 사망함으로 인해 공소권이 없어진 사건에 대해, 버젓이 책까지 내가면서 그 사건에 대해 마치 유죄가 확실했던 것처럼 떠드는 행위는 그야말로 검찰 역사에 똥칠을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출신이던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수많은 칼 같은 위계를 자랑하는 검찰선배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따끔한 한 소리를 하는 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얼마 전 언론에 아주 작게 보도되었던 황당한 법조계 뉴스가 있었다.
검사가 특정인에게 뒷돈을 받고 저격형 기소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옥에 보내주는 서비스를 거래한 정황이 드러난 사건이 재심으로 인정된 사건이었다. 재판의 결과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사건의 정황이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뇌물을 받고 기소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서 모두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뇌물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공소시효 3년이 모두 지나버렸기 때문에 그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난 것이다.
억울하게(?) 기소된 희생자는 이미 감옥에 들어가 자신이 어떻게 기소되었고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에 대해서 한참이 지나서야 외부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그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지만, 같은 법비랍시고 재판부는 법률의 내용을 다시 재확인하며 이미 검사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고 있는 그 뇌물 검사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억울한 사람,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말하고 싶은가? 세상이 그런 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당신이 접여(接輿)인가?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할 일은 없을 거라 정말로 자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