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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변혁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라.

by 발검무적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長沮와 桀溺이 함께 밭을 갈고 있었는데, 孔子께서 지나가실 적에 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 하셨다. 長沮가 말하기를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인가?” 하자, 子路가 “孔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가 “이 분이 魯나라의 孔丘인가?” 하고 다시 묻자,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 분은 나루터를 알 것이다.” 하였다. 桀溺에게 묻자, 桀溺이 “당신은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子路는〉 “仲由라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그대가 바로 魯나라 孔丘의 무리인가?” 하고 다시 물으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滔滔한 것이 天下가 모두 이러하니, 누구와 더불어 변역(개혁)시키겠는가. 또 그대가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하겠는가?” 하고는 씨앗 덮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子路가 돌아와 아뢰니, 夫子께서 〈한동안〉 憮然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鳥獸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天下에 道가 있다면 내 더불어 변역 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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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부에 이어 이 장에서는 공자가 만난 당대 은자(隱者)들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장의 내용은 ‘問津(문진)’이라고 축약되어 설명되며 그 의미가 ‘학문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전성되게 사용된 일화이기도 하다.


'공자가 길을 지나다가 만나 나루를 묻는다'는 상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두 사람은 隱者(은자)이다. ‘耦(우)’는 함께 밭을 가는 것이다. 이때 공자께서 초나라에서 채나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津(진)’은 물을 건너는 곳(나루터)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기록에 따르면, 이 상황은 공자가 제(齊) 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경공(景公)이 죽은 다음 해부터, 초(楚) 나라로 향하였다가 다시 채(蔡) 나라로 돌아오고 또다시 섭(葉) 땅으로 떠났다가 다시 채(蔡) 나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어디 하나 마음을 두지 못하고 처량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좌절하고 상처받았던 시기로, 공자의 나이 61세 즈음에 있었던 일이다.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라고 소개된 이 두 사람의 은자(隱者)들은 앞서 살펴보았던 접여와 같이 전통적인 처세관을 가지고 세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시골에 숨어 지내는 현자들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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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 두 사람과의 대화는 마침 공자를 모시고 있던 자로(子路)가 대신하게 되었는데 먼저 나섰던 장저(長沮)는 공자를 풍자하며 그리 오랫동안 천하를 주유하여 스스로 나루를 알 것이란 말로, 無道한 세상을 구원하려고 철환천하(轍環天下)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본래는 나루가 어디인가를 물었던 내용이었는데, 그의 풍자적인 대답 한 마디로 중의적인 의미로 확장시켜 버리는 화술이 장저(長沮)가 만만하지 않은 현자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하다.


이와 같은 그의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執輿(집여)’는 고삐를 잡고 수레에 있는 것이다. 본래 자로가 御車(어차)하여 고삐를 잡았었는데, 지금 수레에서 내려 나루터를 묻기 때문에 夫子(부자)께서 대신 잡으신 것이다. ‘나루터를 안다.’는 것은 자주 周流(주류)하여 스스로 나루터를 앎을 말한 것이다.


그의 중의적인 풍자 속 깊은 의미를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 자로(子路)는 다시 그 곁에 있던 걸닉(桀溺)에게 나루가 어디인지를 묻는다. 그런데, 이번엔 자로가 공자의 제자인 것을 물어 확인한 걸닉(桀溺)이 보다 구체적으로 자로(子路)의 입장을 비유하여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비아냥거리며 차라리 공자보다 자신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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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앞서 장저(長沮)의 비유보다 훨씬 더 복잡해져 버린 걸닉(桀溺)의 비유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인다.


‘滔滔(도도)’는 흘러가고 돌아오지 않는 뜻이다. ‘以(이)’는 與(여, 더불어)와 같다. 천하가 다 어지러우니, 장차 누구와 더불어 변역 시키겠는가라는 말이다. ‘而(이)’는 너(그대)이다. ‘辟人(피인)’은 공자를 이르고, ‘辟世(피세)’는 걸닉(桀溺)이 자신을 이른 것이다. ‘耰(우)’는 씨앗을 덮는 것이다. 그 또한 나루터를 알려 주지 않은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공자가 陳과 蔡의 大夫들이 보인 질시로 인한 방해와 해코지를 피해 큰길도 아닌 샛길로 도망치듯 가고 있었으므로 걸닉이 그를 사람 피하는 선비라고 말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걸닉(桀溺)이 펼친 고도의 표현방식 또한 자로(子路)를 향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그 비판의 초점은 공자에게 향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방점은 마지막 반어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세상이 도처가 썩어 있는데 도대체 누구와 함께 이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설치고 다니느냐는 신랄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비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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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의식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전통적인 은자(隱者)의 처세(處世) 의식이 단순히 고루하다고만 비판할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주군에게 간언 해보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몸만 보신하겠다고 은거하는 것만은 아님을 걸닉(桀溺)은 자신의 주장을 통해 명확히 제시한다. 최소한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만 있었더라도 그들과 함께 변혁을 꿈꾸었겠으나 도처가 썩어 빠져 있는 상황에 어디 하나 기대어 함께 힘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데 뭘 어쩌겠다고 혼자서 나대겠느냐는 비판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의식이 깨어있는 한 두 사람만으로 세상이 변할 것도 아니고 그나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장 걸닉(桀溺)은 장저(長沮)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자로(子路)가 다시 돌아와 그들과의 대화를 스승 공자에게 보고하였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지식과 지혜를 갖춘 현자(賢者)들의 빤한 은거(隱居) 세계관에 동의할 수도,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그 논리에도 수긍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가장 큰 객관적인 근거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공자의 마지막 한 마디에 모두 담겨 있다.


앞서 접여를 만나하고 싶었던 그의 한 마디는 바로 이 장에서 그대로 기록되어 남았다. 대강 눈으로만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만한 뻔한 옳은 소리 같지만 예순이 넘도록 그 고초를 겪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샛길을 가야만 했던 공자의 인생 전체에서 농축되어 나온 이야기임을 감안하며 결코 쉽게 소화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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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마디부터 나온 ‘鳥獸(짐승)과 함께 무리 지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하는 표현자체가 공자의 기존 표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재 도가 행해지지 않는 시대이고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챙기려는 자들을 서슴없이 인간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짐승으로 비유하여 그런 자들과 무리 지어 살 수는 없다고 단언한 것에서 공자의 심정이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마지막 문장에서와 같이 ‘天下에 道가 있다면 내 더불어 변역 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숨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세상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직접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라도 끝끝내 변혁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공자의 이 피맺힌 절규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憮然(무연)’은 悵然(창연)과 같으니, 자신의 뜻을 깨닫지 못함을 애석해하신 것이다. ‘〈내가〉 함께 무리 지어 살아야 할 바는 이 세상 사람들뿐이니, 어찌 사람을 끊고 세상을 피하여 깨끗함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천하가 만약 이미 고르게 다스려졌다면 내가 변역 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으니, 바로 천하에 도가 없기 때문에 도로써 변역 시키려고 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공자는 다시 환기시키며 왜 자신이 그렇게까지 얻어터지고 내쫓기고 박대를 당하면서까지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는지에 대해 강조한다. 세상에 지치고 온통 자기 욕심에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자들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자연인을 꿈꾸며 산속에 처박힌다고 해서,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자신만의 독야청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공자는 다시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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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처박혀 산들, 같은 시대, 같은 천하, 같은 지구상에 산다면 그것은 더불어 산다는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공자는 깨달으라고 외친다. 공기를 공유하고 같은 하늘을 공유하며 어디선가 내려온 물이 그 근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세상천지 공유하지 않고 더불지 않는 삶이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말을 알아듣지 않는 짐승들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여길지 모르겠으나 결국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은 사람임을 깨달으라는 일갈을 내지른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일갈을 이해한 정자(明道(명도))는 이 장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성인은 감히 천하를 잊는 마음을 두지 못하셨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이와 같은 것이다.”


전통적인 은거관에 동의하지 않는 공자의 마음을 이해한 장자(張子)는 공자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성인의 인(仁)은 〈천하에〉 도가 없다고 하여 천하를 단정하여 버리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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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이 부족하기 그지없는 필력으로 읽는 이들의 마음이라도 움직여 보겠다고 시작한 <논어(論語)>읽어주기 공부가 어느 사이엔가 2년을 꽉 채워가면서 그 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내 하찮은 글이 세상을 움직이고 읽는 이들이 변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2년간 펼쳤던 캠페인의 씁쓸한 실패에 입안에서 쓴맛이 배어난다.


공자를 비아냥거렸던 은자들은 모두 세상을 탓하고 썩은 이들을 비난하며 도저히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없어 속세와 등을 지게 되었다고 변명(?)한다. 양심은 있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 수는 없고 머리는 있어 어떤 자들이 그런 행태를 벌이고 어떻게 그 알량한 지식과 스펙, 그리고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리 독설을 내뱉고 은거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변혁의 더불어 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부터임을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렇게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그저 시류(時流)에 편승하여 공범이 되어 똑같이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것에 귀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만이라도 제 목소리를 내고 올바른 것에 힘을 실어주는 시도라도 보였더라면 그저 혼자 더러운 꼴을 안 보겠다고 은거하는 것보다 사회는 아주 조금이지만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공자처럼 사람들 무리의 앞에 나서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까지는 두렵고 힘겨운 일이라 못할지라도, 공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게 지원은 못해주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자리가 날아가버릴까 봐 질시하고 방해하고 견제하는 짓 따위만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공자의 변혁은 그들의 협조(?)에 더불어 기적적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하늘이 공자라는 인물을 내어 그가 고난만이 가득한 처연한 삶을 걷는 것으로 인해 그것을 수천 년이 지나도록 내내 배우고 익힌 세계 곳곳의 군자들이 수천 년에 걸쳐 조금이라도 자신이 있는 사회와 나라를 올바른 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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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그렇다고, 나 하나 달라진다고 해서 뭐가 바뀌겠느냐고, 나도 원래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고, 구차한 사족을 붙여가며 자신의 비열하고 저열함을 변명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으로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태도로 당당히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음을 그대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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