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가?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子路拱而立. 止子路宿, 殺鷄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 則行矣.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子路가 〈孔子를〉 따라가다가 뒤에 처져 있었는데,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丈人을 만나자, 子路가 묻기를 “노인은 우리 夫子를 보셨습니까?” 하니, 丈人이 말하기를 “四體(四肢)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五穀을 분별하지 못하니, 누구를 夫子라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 子路가 손을 모으고 서 있자, 子路를 머물러 유숙하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그의 두 아들로 하여금 〈자로를〉 뵙게 하였다. 다음날 子路가 떠나와서 〈孔子께〉 아뢰니, 孔子께서 “隱者이다.” 하시고, 子路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셨는데, 도착하니 떠나가고 없었다. 子路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義가 없으니, 長幼의 예절을 폐할 수 없는데 君臣의 義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 〈벼슬하지 않음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大倫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君子가 벼슬함은 그 義를 행하는 것이니, 道가 행해지지 않음은 이미 알고 계시다.”
이 장에서도 앞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마주쳤던 은자들과 같이, 또다시 새로운 은자가 등장한다. 이 은자 역시 직접 만난 것은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잃은 자로(子路)였을 뿐, 공자와 대면하고 서로 간의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은자(隱者)들은 공자의 천하주유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리며 왜 그 정도의 수준을 갖춘 군자이면서 세상에 쓰일 것을 추구하는 가에 대한 자신들의 전통적인 은거관에 대해서 설명할 뿐 공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거나 서로 간의 논박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이 장에서도 역시 자로(子路)가 우연히 만난 은자(隱者)는 자로(子路)가 자신의 스승을 부자(夫子)라 칭하는 것조차 참람된 것이라며 폄하하고 전통적인 은거론을 고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자는 이 새로운 인물이 은자임을 설명하며 부질없는 스승을 따르는 자로(子路)에게까지 차라리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는 것이 낮지 않겠느냐고 권계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장인 또한 隱者(은자)이다. ‘蓧(조)’는 대그릇이다. ‘分(분)’은 분별이다. ‘오곡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菽麥(숙맥)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으니, 농업을 일삼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유학함을 책망한 것이다. ‘植(치)’는 꽂아 세우는 것이다. ‘芸(운)’은 풀을 제거하는 것이다.
원문에는 아무도 그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가 은자인지는 일러주고 있지 않지만, 자로(子路)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행동을 보인 것만으로 주자는 그가 은자인 객관적 근거의 하나로 해설한다.
그가 隱者(은자) 임을 알고 공경한 것이다.
자로(子路)가 그렇게 기인을 만나 묘한(?) 가르침의 말씀을 듣고 그의 아들들과 만남을 갖게 하고 나름 융숭한 촌에서의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 원문의 표현에서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짓는다’는 뜻의 ‘殺鷄爲黍’는 ‘鷄黍’라고도 하는데 ‘남을 극진히 대접한다’는 뜻의 성어로 전성되어 사용된다. 자로(子路)가 이 은자를 만났다는 일화는 원나라 때 희곡의 소재가 될 정도로 흥미로운 요소를 담고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은자였던 장인의 은거관이나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공자와는 많이 달랐지만 자로(子路)가 공자의 제자임을 알아봤음에도 극진히 대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로(子路)가 돌아와 그런 초야속에 살던 은자와의 조우를 스승 공자에게 보고하자, 공자는 대번에 그가 상당한 수준의 은자임을 깨닫고 다시 자로(子路)를 보내 그를 찾게 한다. 그런데 마치 설화 속의 이야기처럼 은자는 자취를 감추고 온데간데없다.
이에 공자가 다시 그를 찾으려고 했던 이유와 은자가 자리를 피한 이유에 대해 이전에 등장했던 접여와 같은 의도였다며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자께서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신 것은 아마도 군신의 의로써 말씀해 주려고 하신 것일 터인데, 장인은 자로가 반드시 장차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떠나가서 그 종적을 없앤 것이니, 또한 접여의 뜻이다.
이 장의 핵심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자로(子路)의 말로 집약된다. 앞서 살펴보았던 내용들은 대개 은자들이 공자와의 만남을 기피하고 사라진 후 그들의 지적에 대한 공자의 뜻을 뒤늦게나마 피력하는 변호의 의미가 강했는데, 이 장에서는 공자의 말을 공자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닌 자로가 다시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전하는 것이라고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로가 夫子(부자)의 뜻을 서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丈人(장인)이 자로를 대함이 매우 거만하였으나 자로가 더욱 공손히 대하자, 장인이 인하여 그의 두 아들로 하여금 자로를 뵙게 하였으니, 그렇다면 長幼(장유)의 예절에 있어 진실로 폐할 수 없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밝게 아는 것을 인하여 깨우친 것이다. ‘倫(윤)’은 차례이다. 사람의 큰 人倫(인륜, 윤리)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부자간에 친함이 있고 군신 간에 의가 있고 부부간에 분별이 있고 장유 간에 차례가 있고 붕우 간에 信(신, 진실)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앞서 주석에서 주자가 은자를 다시 찾아 설명하고자 했다는 ‘君臣의 義’에 대한 설명이 바로 여기서 언급된다. 요컨대 자로(子路)가 정리한 설명에서 공자가 왜 그렇게 전통적인 은거관을 거부하고 자신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포기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의명분이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저 전통적인 은거관이 갖는 명분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大倫을 어지럽히는 것’뿐이라는 논리에 대한, 공자의 반격논리가 갖는 핵심이 고스란히 담긴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에 더해, 수많은 은자들이 공자를 지적하면서 ‘세상에 道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던진 의문에 진실은 그것과 다르다고 항변하고 있다.
원문에서 ‘長幼之節’이라는 의미는,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예절을 의미한다. 전날 자로(子路)가 장인의 집에 갔을 때 은자(隱者)의 두 아들이 자로(子路)를 알현하고 대접한 것이 바로 이 예절이다. 마지막 자로(子路)의 입을 거쳐 나온 공자의 가르침은, ‘如之何其廢之(어찌 그것을 廢棄(폐기)할 수가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다시 말해, 이미 그런 예를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자연스럽다고 여겼던 은자(隱者)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공자 자신이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에서도 그것을 내던지고 자신만이 더러움에 때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고 역공을 펼친 셈이다.
그래서 주자는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은거할 수 없다는 공자의 의도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다시 부연한다.
벼슬하는 것은 군신의 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을 알더라도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의라고 하였다면 일의 가부와 몸의 거취를 또한 스스로 구차스럽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비록 몸을 깨끗이 하여 인륜을 어지럽히지 않으나 또한 의를 잊고 祿(녹)을 따르지도 않는 것이다.
이 해프닝이 있었던 시기도 역시 공자가 장저와 걸닉을 만났을 즈음이라고 고증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대략 공자의 나이 62세이니 자로(子路)의 나이가 53세 때의 일이다. 주자의 해설처럼 자로(子路)가 한 말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들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 논란에 대해 주자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福州(복주)에 國初(국초, 宋初(송초)) 때의 寫本(사본)이 있는데, 길 아래에 ‘反子(반자)’ 두 글자가 있어, 이것을 자로가 돌아오자 부자께서 말씀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옳은 지의 여부는 알지 못한다.
때문에 자로(子路)가 마지막에 한 말은 혼잣말이라는 설도 있고, 자취를 감춰버린 은자(隱者)의 두 아들에게 한 말이라는 설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자로(子路)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자의 사상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게 자로는 떠나간 은자의 두 아들에게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欲潔其身而亂大倫’을 비판한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지러우니 자기 몸만 깨끗이 하면 된다고 여겨 大倫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수많은 은자(隱者)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역시나 똑같은 공격 아닌 공격을 받으면서 공자가 설명하고자 했던 왜 그렇게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에 몸을 던지려 하는가에 대한 핵심이 이 장에서는 자로(子路)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배우는 자들을 향해 울려 퍼진다.
그래서 이 장에서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 범 씨(范祖禹(범조우))는 이 장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공자를 대신하여 전통적인 은자론에 일침을 가한다.
“隱者(은자)는 〈자신이 은둔하는 것을〉 고상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떠나가고 돌아오지 않으며, 벼슬하는 자는 〈자신이 벼슬하는 것을〉 통달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빠지고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鳥獸(조수)와 함께 무리 지어 살지 않으면 性命(성명)의 情(정)을 끊어서(해쳐서) 부귀를 탐하니, 이 두 가지는 모두 미혹된 것이다. 이 때문에 중용에 의지하여 행함이 어려운 것이다. 오직 성인은 군신 간의 의를 폐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정도로써 하니, 이 때문에 혹은 세상에 나가고 혹은 은둔하여 끝내 도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름 학문을 했다는 배우는 자들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근간으로 군주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사회적 실천을 의미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이별(李鼈)이 <六歌>를 지어 세상을 조롱하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을 드러냈다며 비판하면서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질을 담아 저 유명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지었다.
공자의 논리와는 달리 전통 유학에서의 가르침인 <주역(周易)>에 보면 난세에는 군자에게 벼슬하지 않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이것이 바로, 乾卦(건괘)의 ‘文言傳’에 ‘君子遯世无悶(세상을 피해 은둔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의 의미이다. 大過卦(대과괘)의 ‘象傳(상전)’에도 ‘군자는 이 괘를 보고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은둔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다산(茶山; 정약용)은 자로(子路)가 은자(隱者)의 집을 다시 찾아가서 군신의 의리를 운운한 것은, 단순무식하고 다혈질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한 자로(子路)의 무단(武斷)이며 本色이라 비판하기도 하였다. 강진에 유배되어 군신의 의리를 실천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전통적인 은자의 심경을 자신에게 투영하여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인데, 조선시대의 대학자로 인정받는 다산(茶山)마저도 같은 처지였던 처절한 공자의 가르침을 오롯이 이해하고 수용했다고 보기 어려운 한계가 느껴진다.
아주 잠시나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오를 듯도 했으나 더 오랜 시간 더 깊은 고통의 나락에 빠져 고난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공자와 다산(茶山)을 보더라도 원해서 세상을 은거한 것이 아니었던 두 사람의 삶 속에서 오롯이 드러나는 형태를 보건대, 자신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도가 행해지지 않은 시대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바름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유배당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갇혀 있던 다산(茶山)은 공자의 구도(求道) 의식을 공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로(子路)에게 쓴소리를 내뱉던 장인의 입장이 더 싱크로율이 높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茶山)도 추사(秋史; 김정희)도 그리고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해야만 했던 수많은 선각 학자들도 그 마음은 공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릇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삶을 끝없이 핍박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올바른 것으로 향해가려는 의지와 지원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올곧지 않은 세상이 아니다. 그 올곧지 않은 세상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며 그 모양을 만든 정치꾼들이며 기업총수이며, 그들에게 양식을 제공받는 썩은 법조인들이며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적당히 방조한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