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는 것이 당신이 원하는 행복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
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擊磬襄入於海.
太師 摯는 齊나라로 갔고, 亞飯 干은 楚나라로 갔고, 三飯 繚는 蔡나라로 갔고, 四飯 缺은 秦나라로 갔고, 북을 치는 方叔은 河內로 들어갔고, 小鼓를 흔드는 武는 漢中으로 들어갔고, 少師 陽과 경쇠〔磬〕를 치는 襄은 海島로 들어갔다.
이 장에서는 노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러워지자 악사들이 사방으로 분산된 과정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전부인, 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도대체 여덟 명의 악사들이 나라를 떠나간 사실만으로 어떤 생각할 거리와 깨달음을 주고 있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였을까 이 장의 주석에는 마지막 장과 같은 형식이라며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이는 현인이 은둔한 것을 기록하여 앞장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夫子(주자)의 말씀은 아닐 것이다. 끝장도 이와 같다.
그래서 몇몇 현대 해설서에는 이 장의 내용이 원래 <논어(論語)>가 아니던 것이 잘못 섞여든 것일 가능성을 언급한 위 주석과 같은 학설을 어디서 주워 들어 그대로 활용하며 본래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구분 지어 설명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늘 강조에 마지않는 부분이기는 한데, 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정말로 멍청한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잘 모르면 알 때까지 사실을 궁구 하던가 그것을 일깨워줄 스승을 기다려 배울 생각을 해야지 자신이 잘 모른다고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는 행위는 스스로가 얼마나 수준이 저급한 지를 커밍아웃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첫 번째 인물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한다.
‘太師(태사)’는 노나라 樂官(악관)의 우두머리이다. 摯(지)는 그의 이름이다.
고문(古文)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초심자들이 늘 하는 실수처럼 지명을 그대로 풀어 해석하는 등의 어설픈 실수를 할까 봐서인지 사람들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것들이 그 이름의 직책이나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문구임을 넌지시 설명해 주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후의 주석도 마찬가지인데 음악을 하는 악사들에 대해 언급한 이유에 대해 실마리를 열어주듯 그들의 관직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언급한다.
‘亞飯(아반)’ 이하는 〈군주가 음식을 들 때에〉 음악을 연주하여 흥을 돋워 음식을 권하는 관직이다. 干(간) · 繚(료) · 缺(결)은 모두 이름이다.
고방숙(鼓方叔) 역시 성씨가 ‘鼓(고)’라고 무식하게 붙여서 모두 풀이할까 싶었는지 다음과 같이 친절한 주석을 덧붙인다.
‘鼓(고)’는 북을 치는 자이고 方叔(방숙)은 이름이다. 何(하)는 하내이다.
파도무(播鼗武) 역시 실제 이름은 ‘무(武)’ 한 글자뿐임을 주자는 상세하게 정리해 준다. 이런 정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현대 <논어(論語)> 해설서에서는 버젓이 그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해석해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播(파)’는 흔듦이다. ‘鼗(도)’는 小鼓(소고)이니, 양옆에 귀가 달려 있어 자루를 잡고 흔들면 곁의 귀가 다시 스스로 제 몸을 치게 된다. 武(무)는 이름이다. 漢(한)은 漢中(한중)이다.
원문의 '격양양(擊磬襄)'의 경우, 한 사람도 아닌, 경쇠를 치는 두 사람의 이름임을 주자의 주석을 통하지 않고서는 초급자 수준에서는 알 턱이 만무하다.
‘少師(소사)’는 樂官(악관)의 보좌관(부관)이다. 陽(양)과 襄(양)은 두 사람의 이름이니, 襄(양)은 바로 공자께서 찾아가 거문고를 배운 자이다. ‘海(해)’는 海島(해도)이다.
고유명사가 그것도 어디까지가 사람이름인지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의 이름을 그저 붙인 것인지 규칙성도 없고, 그렇다고 유명한 인물들이어서 쉽게 파악할 수도 없는, 해석하기 난해하기 그지없다. 두 사람으로 지칭된 사람 중 뒤의 인물인 襄을 주자가 공자에게 琴(금)을 가르쳤던 인물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앞에 공부할 때 한번 설명한 바와 같이 <공자세가(孔子世家)>의 일화를 통해 언급되었던 사양자가 바로 그 인물이다.
공자가 사양자에게 금(琴)을 배웠는데, 열흘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사양자가 신곡을 공부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공자는 “곡조는 익혔지만, 운율을 다 익히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후에 사양자가 “뜻을 익혔으니, 신곡을 공부해도 되겠다.”라고 하자, 공자는 “아직 지은 이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얼마 후에, 공자는 갑자기 “제가 그 사람됨을 알겠습니다. 문왕이 아니면 누가 지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사양자가 절을 하며, “저의 스승님도 文王操(문왕조)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한 바로 그 일화의 주인공이다.
그 일화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장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배우는 이들을 위해 장자(張子)는 다음과 같이 생각의 실마리를 열어둔다.
“주나라가 쇠하여 음악이 폐해졌는데, 부자께서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시어 한번 일찍이 다스리시니, 그 후에 伶人(영인, 광대)과 미천한 악공들도 음악의 바름을 알게 되었다. 노나라가 더욱 쇠하여 三桓(삼환)이 참람하고 망령 된 짓을 행하자, 태사로부터 이하의 사람들이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가서 황하를 건너고 바다를 건너 어지러운 나라를 떠날 줄을 알았다. 성인의 잠깐 동안의 도우심이 그 功效(공효)가 이와 같았으니, ‘만일 나를 써 주는 자가 있으면 1년이면 가하다.’고 하신 것이 어찌 빈 말씀이셨겠는가.”
위 주석의 설명이 주는 실마리의 단초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공자나 정통 유학에서 음악이 갖는 비중이 정치가 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것의 바로미터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공자가 잠시나마 노나라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자리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당시 악사들조차 모르고 있던 음악의 바름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후 삼환(三桓)의 폭정과 참람함이 심해지면서 모두가 조국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다.
후자의 사실은, 이 장에서 언급되는 은자(隱者)들이 속세를 떠나 칩거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음악을 다루는 악사들은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꾼은 아니지만 공자의 짧지만 임팩트 있는 정치행위를 통해 음악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악사들이 그들의 음악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졌고 이후 정치가 혼미해지게 되자 조국 노나라를 떠났다는 것은 단순히 공자에 대한 칭송을 위한 과장만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앞서 공부했던 ‘팔일(八佾) 편’의 23장과 ‘태백(泰伯) 편’의 15장을 근거로 유추해 보건대, 이 장의 상황들은 아마도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국운(國運)이 심각하게 쇠하고 정치상황이 더욱 혼란에 치닫게 되면서 악사들 모두가 노나라를 떠난 상황을 후대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공안국(孔安國)은 이 시기를 노나라 애공 때라고 추정하며 ‘예(禮)가 훼멸 되고 악(樂)이 붕괴되어 악인들이 모두 노나라를 떠났다.’라고 해설하였다.
한편, 청나라의 학자 모기령(毛奇齡)은 이 장을 고증하며 은나라 말기 때 주(紂) 임금의 폭정에 나라가 흔들리자 은 왕조를 버리고 떠난 악사들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장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제 벌어진 일인가는 이 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과는 크게 연관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아닌 군주를 가까이에서 섬기며 음악으로 봉사하는 악사들이 정치가 혼란해진 것을 느끼게 되면 음악을 버리고 자신이 속한 고국을 버리면서까지 은거한다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작 군주를 음악으로 섬겨야 할 이들이 군주가 군주답지 못한 정치 상황에서 자신의 음악이 봉헌되어야 할 대상을 잃었기에 그들이 음악을 버리고 자취를 감춘다는 인과관계에 의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처음 그들이 음악을 행했던 것이 그저 자신의 기예(技藝)이고, 상하관계에 의한 명령에 따른 직업적인 행위였다면, 공자가 보여준 음악이 갖는 가치에 대한 재해석과 그것이 정치행위에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그들은 그저 밥벌이용으로 음악을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행위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받아 생업으로 음악을 하고 연기를 하고 웃음을 파는 예인(藝人)들은 본의 아니게 사회적인 대우가 그리 높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서민들의 노래였던 <시경(詩經)>을 저술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과 연결 지어 음악을 연주했던 악사들의 가치를 전통적인 예악관과 함께 엮어 높이 평가했던 것은 그 나름의 기준이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아니라 그 어떤 행위라 하더라도 내가 하는 행위가 상대방을 위한 것이 되었을 때는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돈을 받고 생업으로 하는 것일 경우에 그것은 현대용어로 ‘프로의식’과 연관되면서 결코 대강대강 할 수 없는 예술혼이라는 것이 담겨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공자는 그 예술행위로 인해 돈을 받기 때문에 최선의 노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프로의식이 아닌, 음악이 갖는 본래의 개념을 일깨워 정치가 바르지 않다면 음악 자체가 그들을 위해 봉사할 아무런 하등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역설한다.
앞서 문제를 제기한 바와 같이, 이 장의 사실관계가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실제로 이 ‘미자편(微子篇)’을 관통하는 은거관에 대한 논의와 이 장의 내용이 무슨 연관성을 갖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감을 잡지 못하는 초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당신은 먹고사는 일이라는 이유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게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았는가?”
이 장에서 언급된 여덟 사람의 악사는 모두 음악을 생업으로 하고 음악을 지위 높은 이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으로 먹고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굳이 자신의 안정적인 지위를 버리고 조국을 떠나면서까지 자신의 음악을 부정한 정치꾼들을 위해 연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도대체 왜 했다고 생각하는가?
지저분한 법비들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지저분한 자들은 검찰 출신의 전관들이 으뜸이라는 비아냥이 법조계에서는 우스갯소리처럼 퍼져있다. 이유 인즉은, 자신이 검찰에 있을 때 구속하고 기소하여 죄인으로 만들려는 피의자가 자신이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순간 고객님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피의자가 바로 내일의 고객님!’라는 웃픈 명제는 그들에게 있어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재벌그룹의 법무팀에 그 전날까지 검찰 측에 앉아 형량을 다투던 검사가 거액의 연봉과 조건으로 스카우트되는 일은 이제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조직폭력배를 구속하고 기소시키겠다고 수사하던 검사가 그 두목에게 함부로 하대하고 고함치지 못하고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 두목이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쌓을 돈으로 자신을 변호사로 고용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 검사 앞에 취조받는 재벌 2세나 조폭두목이 당당하기 그지없는 이유는,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정의로운 검사 따위는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바로 옆에서 법률 보좌를 해주는 변호인이 앞에 앉은 검사의 직속 선배이기 때문이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쳤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모든 형사 사건을 무마해 주던 부패경찰이 지방 경찰청장이라는 고위직으로 구체화되어 등장한 것은 상투적인 클리셰 따위가 아니다. 그의 입에서 버젓이 “세상 모든 경찰이 깨끗하고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만 해나간다면 세상이 이렇겠냐?”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참혹한 작금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당신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하며 범죄행위에 동조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자는 정치꾼이며 재벌 2세이고 조폭 두목이라고 당신의 공범의식을 부인하려 든다. 정말로 그 불의를 눈감아주고 심지어 도와주기까지 한 당신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을까?